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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방송 촬영 (2) (40/204)

#40. 방송 촬영 (2)2021.01.01.

지나다니다가 보기만 했지, 와본 건 처음이었다.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외삼촌은 비롯해 가족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주머니에 돈이 있어서 그런가, 그리 주눅 들거나 하진 않았다. 근데 그건 나만 그랬나 보다. 조금은 긴장한 얼굴로 식당에 들어온 가족들은 미닫이 식으로 되어 있는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 후, 크게 숨을 몰아쉬시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수연이 누나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야, 여기 진짜 비싸겠다.”

“그래, 진영아. 그냥 가자. 소고기 먹고 싶으면 다른 데 가서 사 먹어도 되잖아. 아니면 집에서 구워 먹든가.”

외숙모까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말하는 걸 보면서 난 옅게 미소지었다.

“에이, 집에서 프라이팬에 구워 먹는 거랑 같나요. 그리고 오늘은 외숙모 생일이잖아요. 그냥 여기서 먹어요. 저, 돈 많이 번다니까 그러네요.”

“그래도…….”

외삼촌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지만, 근심 어린 얼굴이셨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족이다. 그것도 내겐 어머니나 다름없는 분의 생신이었다. 한우 투플러스를 파는 곳이 얼마나 비쌀는지 모르지만, 내가 오늘은 진짜 빚을 내서라도 모신다.

“이거 메뉴판인가 본데…….”

그러는 동안 수연이 누나가 테이블 한쪽에 세워둔 메뉴판을 뽑아 들자, 가족들이 우르르 몰려가 가격을 보곤…….

“지, 진영아.”

“왜?”

“나가자, 응?”

참네. 생각보다는 안 비싸구만. 난 또 소갈비 한 대에 10만 원씩은 할 줄 알았더니. 안창살이나 살치살로 다섯이서 배터지게 먹어도 30만 원은 안 넘겠다.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며 종업원이 들어와 밑반찬을 깔기 시작했다. 햐, 고급 식당이라 그런가 일명 스키다시도 수준이 다르네. 요리사로 일하는 나도 먹어본 적 음식들도 가끔 보인다.

“여기, 살치살로 5인분 먼저 주시고요. 아, 외삼촌 육회 좋아하시죠? 육회도 좀 주세요. 누나! 누나도 냉면 먹을래? 난 회냉면 먹을 건데. 물냉? 비냉?”

“나……도 회냉면.”

“수아도 냉면 먹을래?”

“아니, 난 밥이 좋은뎅.”

“숙모도 밥 드실 거죠? 회냉면 두 개랑 밥 세 개 주시고요. 찌개는 어떻게 나와요?”

“원래 뚝배기 작은 거로 밥 두 개당 하나 드리는데요. 그 이상이면 보통 큰 뚝배기로 시키세요.”

“저희도 그렇게 주세요.”

종업원이 나가고 난 뒤에도 여전히 걱정스러워하는 가족들. 그중에서도 특히 외삼촌이랑 외숙모가 어찌할 줄 몰라 한다. 하는 수 없이 마법의 단어를 던졌다.

“누나한텐 말했는데…… 저 다음 주부터 TV 출연해요.”

눈이 동그래진 외삼촌이 말까지 더듬는다.

“티, 티비?”

“예.”

“오빠, 그럼 막 유명해지고 그러는 거야?”

수아가 좋아서 방방 뛰고. 수연이 누나도 말은 안 하지만 좋은지 나 모르게 히죽히죽 웃고 있다. 그리고 외숙모는……. 눈이 그렁그렁하다. 그런 채로 날 보면서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다. 난 맞은편에 앉은 외숙모의 손을 가만히 잡고는 말씀드렸다.

“항상 감사했어요. 그리고 생신 축하드려요.”

외숙모가 고개를 살짝 돌리고도 어쩌지 못하시더니, 도저히 안 되겠는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미안. 잠시만 좀…….”

급히 밖으로 나가는 외숙모를 수연이 누나가 급히 따라 나갔다. *** 처음엔 부담스러워하더니, 방송 출연이라는 말이 먹혔는지 점점 활기를 띠며 가족들이 편하게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배터지게 먹었다. 맛있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고기도 입에 살살 녹을 정도로 육질이 좋았지만, 그것보다는 가족들이랑 이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기뻐서일 터다. 누군가 말했던가.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돈으로 행복하게 만들 상황은 살 수 있다고. 나 역시 모든 가치에서 돈이 가장 우선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가족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돈을 버는 데 주저할 생각은 없다. 그것이 불법적이거나 남을 해치는 일이 아니라면.

“이제 케이크 해야지.”

“응응. 폭죽은 내 거!”

“그래, 수아가 하나. 그리고 수연이 누나가 하나.”

“내가 애냐? 내가 애야?”

“그냥 좀 해라. 결국 할 거면서 꼭 저러더라. 그치?”

“응! 언니는 츤데레.”

“크큭. 츤데레래.”

“이씨!”

조금만 더 놀리면 진짜 화낼 거 같아서 얼른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수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귀엽게 율동까지 하며 노래해서 한층 더 분위기가 좋았다.

“……사랑하는 엄마의 생일 축하합니다.”

팡! 팡! 짝짝짝짝짝짝! 거봐, 결국 할 거면서. 난 폭죽을 터뜨리고 즐거워하는 수연이 누나를 보면서 피식거렸다. 그때, 누군가 내 손을 꼭 잡아 오길래 보니까 외숙모다. 이번엔 외숙모가 내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다.

“고맙다.”

“…….”

“그리고 그동안 고생했어.”

난 말 없이 외숙모를 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가족들을 보다가 말했다. 멋쩍은 표정이 되어.

“이제 시작인데요, 뭐.”

  ***

“박씨, 그게 뭐야? 못 보던 반지네?”

함께 일하는 아줌마 하나가 손목을 덥석 잡더니 물었다. 오른손 중지에 끼고 있는 반지에선 투명하면서도 영롱한 보석이 찬란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수연이 엄마는 한 손에는 대걸레를 잡은 채로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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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비싼 걸 샀다고, 부담스럽다며 한사코 거절했지만 진영이는 끝내 그녀의 손가락에 이 반지를 끼워주었다. 시집올 때 남편이 해준 반지가 왼손 약지에서 빛나고 있었지만, 그것과는 의미가 또 달랐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자식이란 생각은 그냥 하는 말로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을 잃고 어깨가 축 처진 채 집으로 온 날, 그녀는 아이를 안고 펑펑 울었다. 안쓰럽고, 또 가슴이 아파서. 그리고 정말 자식처럼 생각하며 키웠더랬다. 때때로 수연이가 혹시 자신은 주워온 자식이고, 진짜 자식은 진영이가 아니냐며 투덜거릴 정도였다. 물론 그 아이도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었을 테지만, 그만큼 진영이는 그녀에게나 다른 가족들에게 있어서 소중했다. 그래서였을 거다. 그 좋은 머리에도 공부를 등한시해서 속을 썩이더니만, 끝내 대학도 안 가고 집을 나간다고 했을 때, 너무 속상해서 사흘 밤낮을 끙끙 앓았던 것은. 어떻게든 그 애 마음을 돌리고, 또 대학갈 돈을 마련하려고 두 내외가 사방천지로 돈을 빌리고 다녔을 정도였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결심을 굳혔는지 진영이는 단호했고,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며 집을 나갔다. 그리고 어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고깃집에서만 화장실에서 몇 번이나 눈물을 쏟아내고, 그걸로도 모자라 집으로 돌아와 남몰래 울었다. 기특했다. 고마웠고. 여전히 안쓰러웠다. 그러면서도 뭐 하나 도와줄 수 없어서 미안했다.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이런 생각들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나 폭풍처럼 가슴속에 몰아치니 그 격정을 더 이상 숨길 수도, 감당할 수도 없었던 까닭에 울고 또 울었더랬다. 그 증거가 바로 지금 오른손 중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였다. 오롯이 사랑하는,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은 아이. 배 아파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가슴으로 키운 아이라서 더 마음이 가는 그 아이가 해준 선물은 돈으로는 매길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말할 수 있었다. 수연이 엄마가 동료를 향해 배시시 웃으며 얘기했다. 자랑스럽다는 듯이.

“우리 아들이 해준 거야.”

그녀의 입가에, 아니 얼굴에 떠올라 있는 미소는 시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 촬영을 코앞에 두고 작가들과 모여서 대본을 훑어보고 있었다. 첫방 촬영분의 대본에 관해선 거의 마지막 회의였다. 갑자기 회의실이 벌컥 열린 건 회의가 거의 끝나갈 즈음이었다. 안 그래도 이런 일이 벌어질까 봐서, 문에다가 ‘회의 중’이란 팻말까지 달아놨는데도 이 모양이다. 대체 어떤 인간이 이런 몰지각한 행동을 하나 싶어서 시선을 돌렸다가 신현정 피디는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어, 선……. 본부장님?”

“미안. 방해해서.”

그렇게 말하면서도 고민준 본부장은 쭈뼛거릴 뿐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뭔가 자신에게 긴히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챈 신현정 피디가 대본을 덮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죠.”

의자 끄는 소리가 들리고 작가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그제야 둘만 남게 된 작은 회의실에서 먼저 말문을 연 것은 고민준 본부장이었다.

“야, 얘기 들었냐?”

“뭐가?”

“국장님이 얘기 없으셨어?”

“아직 못 들었는데?”

신현정 피디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선배를 바라보았다. 혹여라도 프로그램이 무산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서진영이 잘려나가는 불상사가 생기는 건 아니겠지? 그 두 가지 경우만 아니면 어떻게든 자신이 할 수 있으니 상관없지만, 그래도 저런 선배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부터 그랬으니까. 학교 다닐 때도 저런 표정으로 방송실로 쳐들어올 때면 둘 중의 하나였다. 대길 아니면 대흉. 그중 대흉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뭔데 그래?”

“와, 진짜!”

“뭐냐니까.”

“이제 겨우 예능 편성 끝냈는데, 뭐 이러냐?”

“나 화낸다?”

“알았어, 알았어.”

그렇게 말하곤 고민준 본부장이 씨익 웃었다. 순간 직감했다. 이번엔 대길이구나. 아니나 다를까. 고민분 본부장의 입에서 더없이 반가운 얘기가 흘러나왔다.

“C 마트 알지?”

고개를 끄덕이자, 고민준 본부장이 기분 좋은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거기서 광고 들어왔네?”

“C 마트가?”

“그렇다니까.”

“걔네 어지간히 잘나가는 데 아니면 광고 안 주잖아. 대신 광고비는 꽤 높게 책정하는 거로 아는데. 그래서 거기 회장 똘아이라고 소문이 자자…….”

“스읍! 거기까지. 누가 들을 줄 알고. 아무튼, 스타트가 C마트라니. 이거 완전 길조 아니냐?”

“그렇긴 하네.”

“뭐야? 나만 좋은 거야?”

“좋아. 나도.”

“야! 얀마! 어디 가는데?”

“일해야지. 엄청난 광고주가 납셨다는데, 피골이 상접할 때까지 분골쇄신해야지.”

“오오! 기세 좋고! 좋아, 그대로만 가는 거야!”

한껏 신나서 떠들어대는 고민준 본부장을 뒤로 한 채, 신현정 피디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커다란 회사에서 비싼 광고를 준다고 하니 담당 피디로선 더없이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에 걸려서였다. 그날…….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보았던 김진숙 회장. 돌아앉아 있던 서진영은 느끼지 못했겠지만, 분명 그때 김진숙 회장은 떠나기 전까지 내내 이쪽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게 내내 걸렸다. 프로그램에 영향을 끼치거나, 아니면 서진영에게 뭔가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걱정되어서. 괜한 우려냐고? 그럼 김동하 국장을 통해 서진영을 메인 셰프로 꽂아 넣은 KS 그룹은 뭐고? 다 그런 법 아니겠는가? 어차피 방송사야 광고로 먹고 살다 보니, 기업들의 돈질에는 어지간해선 견디지 못하고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조만간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속으로 노심초사했었는데. 그러더니 이렇게 치고 들어온다. 광고라니. 아무래도 서진영과 뭔가 있는 건가 싶기는 한데, 그래도 일단은 좋은 일이니까. 애써 마음을 다독이는 신현정이었다. *** 첫 촬영일은 11월 12일, 오늘이다. 방영일은 일주일 뒤였고, 그다음 주까지 오늘 촬영분이 나간다고 했다. 긴장한 채 방송국 로비로 들어섰다. 그러자 저만치서 한 남자가 뛰어왔다. 저쪽에선 날 아는 모양인데, 나로서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지난번에는 다들 바빠서, 심지어 신현정 피디까지 너무 바빠 그냥 계약만 하고 헤어졌기 때문에 출연진은 고사하고 스텝들과도 인사를 나누지 못했던 것이다. 성격 좋아 보이는 얼굴의 남자는 예상대로 촬영 스텝이었다.

“처음 뵈네요. 조강훈이라고 합니다. FD고요.”

“아, 예.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편하게 말씀하세요. 선생님.”

“예?”

너무 훅 치고 들어와서 반응이 늦었다. 선생님이라니. 살짝 당황했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말하려고 하는데, 저쪽에서 먼저 치고 들어온다.

“아차! 여기서 이러실 게 아니고 얼른 가시죠. 다들 기다립니다.”

자신을 FD라고 소개한 조강훈에게 이끌려 움직이면서 한숨을 내쉬어 본다. 선생님이라니……. 이거 아무래도 호칭 문제부터 어떻게 좀 정리해야겠다 싶었다. 안 그러면 민망하다 못해서 부끄러워 죽는 사태가 벌어질 거 같으니까. ***

“오오! 이분이……?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한진석이라고 합니다.”

“아, 예.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아, 진짜. 사람 쑥스럽게. 그렇게 말씀하시면…… 감사하죠.”

한진석은 국민 MC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입담도 좋고 성격은 그보다 더 좋았다. 음, 그런데 어째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적은데? 카메라를 비롯한 장비들을 점검하느라 스텝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거야 그렇다 치고, 다른 출연진은커녕 신현정 피디도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슬쩍 주변을 살피고 있자, 한진석이 픽하고 웃는 게 아닌가. 왜 그런가 싶어서 그를 빤히 쳐다보자, 한진석이 다 안다는 듯 내 옆구리를 쿡 찌른다. 얼씨구? 언제 봤다고 사람 옆구리를. 사교성이 넘치는 건지, 아니면 방송과 달리 예의가 없는 건지 도무지 분간이 안 간……. 헐. FD인 조강훈은 왜 저렇게 웃는 건데? 아니, 웃기나 하면 다행이지. 고개를 돌리고 이를 꽉 깨문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다. 그러니까, 뭐? 내가 뭘 어쨌기에 두 사람이 이러는 거냐고?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그보단 의아함이 커서 물었다.

“제가 뭐 잘못한 거 있습니까?”

한진석이 킥하고 웃음을 터뜨리곤 고개까지 주억거린 뒤에야 말했다.

“그래요. 남자는 참 슬픈 동물이죠.”

“예?”

“흐흐흐. 다 알아요. 헤나가 안 와서 그러는 거 아닙니까?”

헤나? 그게 누군데?

“저어, 누굴 얘기하시는 건지?”

“에이, 왜 이러실까? 다 아는……. 어? 정말 몰라요?”

“누구요? 헤나……란 분?”

“얼래, 진짜 모르나 보네? 스피너스!”

아, 그 헤나였군. 2년 전? 아니 3년 전인가? 데뷔한 이래 꾸준히 인기몰이를 해왔고, 신인 시절엔 군통령으로도 통했을 만큼 대단한 인기를 자랑하던 걸그룹 스피너스. 그중에서도 폭발적인 가슴과 그에 버금가는 가창력으로 인기를 한 몸에 모으던 헤나였다. 그런 여가수…… 요즘엔 간간이 영화에도 출연하고 있으니 여배우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런 스타를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다만, 여기서 그 이름이 왜 나오느냐는 거다. 덕분에 한진석의 입에서 헤나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도 그 헤나일 거라곤 전혀 짐작도 못 했을 정도였다.

“알죠. 헤나는.”

“아니, 아니. 그거 말고.”

“……?”

“허이고야. 진짜 못 들었나 보네. 사실 신 피디님이 헤나 소속사 사장이랑 친분이 좀 있나 보더라고요. 아, 아시죠? 헤나 요즘 몸값 장난 아닌 거? 아무튼, 그래서 이번에 합류하기로 했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것만으로도 일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만하다.

“하아, 막판에 빠졌다는 거 아닙니까. 쯧, 여기 있는 남자들 다 한껏 기대하고 있었는데……. 저기 FD 양반도 그 소식을 듣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아닌 게 아니라 방송 기자재를 이리저리 만지면서도 한진석의 얘기를 듣고 있었는지, 조강훈은 쓸쓸한 눈빛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참내, 누가 보면 실연이라도 당한 줄 알겠다.

“헤유, 저 마음 알죠. 저도 기운이 쭉 빠질 정도니까.”

난 한진석을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결혼한 거 아니셨습니까?”

“아……. 하하하하. 했죠. 결혼.”

“…….”

“에이, 유부남은 남자 아닌가요?”

멋쩍게 웃고 있는 한진석을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뉴스에서 봤는데. 올가을에 결혼하셨죠. 아마?”

뜨끔한 표정이 된 새신랑이 눈알을 굴리며 대답하고 있었다. 한숨도 안 쉬는데, 어째 말투에서 한숨이 묻어났다.

“……되도록 늦게 하세요.”

그러니까, 뭘? 크큭. 살짝 일그러진 한진석의 얼굴을 보곤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며 걸음을 내디뎠다. 저만치에 신현정 피디의 모습이 보이길래.

“어?”

근데, 뒤쪽에 한 남자가 따라오는 게 보인다. 문제는……. 그 남자를 따라다니는 소문이다. 류승렬. 아직 서른도 안 되었음에도 벌써 천만 영화를 두 번이나 찍은 대세 배우. 그래서인지, 성격 장난 아니라던데. 깐깐하다 못해서 더럽다고…….

“오셨네요. 인사하세요. 여긴 우리 프로그램 메인 셰프예요.”

“서진영입니다.”

그동안 돈이 없어서 영화관도 못간 탓에 그가 나온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워낙 유명해서 조금 굳어졌던 걸까? 내가 들어도 조금은 딱딱한 느낌으로 인사하긴 했지만, 그래도 허리까지 살짝 숙이며 나름 예의를 갖췄는데. 돌아온 건 철저한 무시였다. 아니, 어딘지 모르게 삐딱하게 쳐다보는 시선이었다. 뭐지? 이 분위기는? 어째 오늘 하루, 순탄하지만은 않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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