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 제안 (3) (35/204)

#35. 제안 (3)2020.12.20.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근데 그쪽은 왜 보자고 하는 거지? 아, 거기도 TV 출연해보면 어떠냐는 제안이었지. 순간 웃긴단 생각이 들었다. 무슨 프로그램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다큐멘터리 같은 거라면……. 크큭, 현실에서도 열심히 다큐를 찍고 있는데 TV에서 다큐가 나오면 진짜 웃기겠다. 또 그걸 보고 있을 때, 현실에서 나레이션이 들려오면 그건 그것대로……. 따라라라라, 라라……. 뭐야? 갑자기 이 타이밍에? 내가 놀라든가 말든가 느닷없이 들려오는 BGM. 그리고 이어지는 나레이션. - 서진영은 진짜 모지리다. 헐, 뭐래? 기가 막혀서 혀를 차고 있을 때, 나레이션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 그는 지금 웃기지도 않은 걸 상상하면서 웃고 있다. 정말이지 그 빈약한 상상력에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황당해서 걸음까지 멈추고 중얼거렸다.

“와나, 이젠 얘까지. 그래, 나 모지리다. 뭐 보태준 거 있냐?”

그렇게 말해봤지만, 더 이상 나레이션은 들려오지 않았다. 어느샌가 BGM도 사라진 뒤였고. 대신 핸드폰이 까톡거린다.

- 뭐에요?

- 자요?

- 아님 씻나?

--- 아직 밖입니다.

- 앙. 그렇구낭.

- 근데, 왜 ㅆ 답을 안 해요?

뭐지? 답 앞에 ㅆ는? 고개를 갸웃했다가 무슨 상관이냐 싶어서 톡을 보냈다.

--- 현정 씨에겐 저 대신 좀 전해주세요.

--- 이번 주엔 좀 바빠서 힘들고요.

--- 다음 주말에나 시간 낼 수 있다고.

--- 아, 그리고 무슨 프로그램인지 알려줄 수 있는지 물어봐 주실래요?

답톡은 금방 날아왔다.

- 넹.

- 지금 현정 언니한테 말했어요.

- 그러라고 하네요.

- 그리고 프로그램 얘기는 그날 해준다고.

- ㅋㅋ 둘 다 뭐양? 신비주의양?

듣고 보니 좀 웃기긴 하네. 내가 뭐라고 이러나 싶기도 하고.

--- 전 아닌데요.

- 앙. 신비주의도 좋은데.

- 아! 나 때문에 아직도 밖인 건 아니죠?

맞는데요? 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대신 양해를 구했다.

--- 그런 건 아니고, 좀 생각할 게 있어서요.

--- 바람 좀 쐬고 있었어요.

--- 들어가서 씻고 난 후에 연락할게요.

- ㅇㅋ

- 기다리고 있을게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서 숙소로 향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금 차오르는 잡념에 머리가 살짝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 씻고 나서 이하연과 톡을 주고받다가 침대에 몸을 뉘었지만, 밤새워 뒤척이는 바람에 잠을 설쳤다. 그러고도 딱 부러지게 결정을 못 내려서, 혹시 내가 결정 장애인가 의심까지 하게 됐다. 덕분에 오늘도 일찍 일어나서 누구보다 먼저 주방에 발을 들였다. 한데……. 낭패다. 할 게 없다. 머랭? 당연히 이젠 칠 필요가 없다. 안 그래도 머랭이라면 지긋지긋했는데, 잘됐다고나 할까. 한데, 사람 마음이 묘한 게 막상 하지 말라고 하니까 뭔가 아쉽다. 조금만 더하면 머랭에 관해선 누구도 넘보지 못할 정도로 잘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그러고 보니 이번 주말에 김장한다고 했었지, 아마? 어제 이하연한테 이번 주는 바쁘다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고. 근데, 재벌가에선 무슨 김치를 담아 먹을까? 배추김치는 당연할 테고. 동치미랑 깍두기? 아, 갓김치를 담으려나? 어쩌면 보쌈김치를 담을 수도 있겠다. 혹시 막 보쌈김치 안에 밤이랑 잣이랑 그 외에도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과일이나 해물 같은 거 잔뜩 넣는 거 아닐까? 흐, 수육도 삶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군침이 돋아서 나도 모르게 입안에 침이 고였다. 김장 다 끝나고 나서 고갱이에 김칫소 넣고 수육 한 점 싸서 먹으면 죽일 텐데. 술도 한잔 곁들이면 끝내줄 테고. 갑자기 확 기대가 된다. 몇 포기나 담으려나? 설마 막 몇백 포기씩 담는 건 아니겠지? 에이, 아무리 재벌가라도 그렇게까진 안 하겠지. 아마 딱 겨울 날 정도로만 담을 거다. 이것도 최대한으로 잡은 거고, 어쩌면 그냥 맛보기 정도로 열 포기 정도만 담을지도 모르지. 솔직히 요즘엔 돈만 있으면 사시사철 김치 사 먹는 건 일도 아니니까. 백화점 식품 코너까지 갈 것 없이 마트에만 가도 늘상 파는 게 김치 아닌가. 그게 입에 안 맞으면 전문 업체에 배송시켜도 되고. 사실 지금 같은 때에 김치를 담그는 것도 귀찮은 일이긴 하다. 어떨 땐 배춧값이 금값이라 사 먹는 게 더 싸게 먹힐 때도 있고. 심지어 음식점에서도 직접 담그지 않고 김치 전문 업체에서 대먹는 실정이니 뭐. 단가 때문에 중국산을 쓰기도 해서 문제지.

“오이소박이도 담갔으면 좋겠는데.”

오이소박이를 떠올리니 저절로 외숙모가 생각난다. 벌써 김장 끝냈으려나? 외숙모가 오이소박이 하난 진짜 끝내주게 담그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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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확 그리워졌다. 외삼촌은 요즘 몸이 어떠시려나? 수아는 잘 지내고 있는지……. 지난번에 라미 샤프 사준다고 약속했는데. 수연이 누나는 또 보자마자 눈물부터 글썽거리려나? 그러다가 내 등짝을 때리면서 밥은 먹고 다니냐고 소리칠 테지. 그리고……. 외숙모가 보고 싶다. 혹여라도 내가 소외감 느낄까 봐서 배 아파서 난 딸들보다 더 살갑게 챙겨주시던……. 내가 감기라도 들면 안절부절못하시며 밤새 물수건을 갈아가며 온몸을 닦아주시던 게 생각나 울컥해버렸다. 얼마 뒤면 외숙모 생신이신데…… 뭘 사 가지고 가야 할까? 확 그냥 한우라도 사갈까? 투플러스로다가 한 열 근 사가서 가족들이랑 배터지게 먹을까보다. 아, 내가 미쳤지. 아무리 상상이라도 그렇지. 그런 사치를 어떻게……. 그래도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 한 번쯤은, 그래 진짜 딱 한 번만이라도 외삼촌이랑 외숙모랑 그리고 수연이 누나랑 수아한테 투플러스 한우만으로 배부르게 먹여주고 싶다. 크큭, 그땐 밥이나 다른 건 일절 먹지 말라고 해야지. 그러면서 열 근 가지고도 모자라려나? 수아 고것이 체구는 작아도 어지간히 먹어야지. 괜히 돈 아낀다고 모자라게 사가면 외숙모는 또 애들만 먹이겠다고 굽기만 하시겠지.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갑자기 떠올랐다. 지난 주말에 진 회장 팔순 잔치에 간 거. 그때, 주방장님이 수당 넣어주신다고 했었는데. 어디 보자. 얼마나 들어왔으려나? 난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넣었다. 5시 42분. 다른 사람들 출근하려면 아직 조금 더 있어야 한다. 불 꺼진 주방이라서 조금 춥긴 하지만, 견딜 만하다.

“흣!”

은행 앱으로 접속해 통장을 확인하는 순간, 내 입에선 기묘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백, 백오십?”

와! 진짜? 다시 한번 15 뒤에 늘어서 있는 0들을 세어보곤 혀를 내둘렀다. 겨우 하루 일했는데, 백오십만 원을 준다고? 원래 이렇게 많이 주는 건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로 그렇게 주신 건가? 머릿속에선 어제저녁 고윤수 주방장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핸드폰을 꼭 쥐었다. 마음의 결정을 내려서 그런가, 아까까지만 해도 무겁기만 하던 머리가 어느새 가벼워져 있었다. ***

“하겠습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주방을 나가시는 주방장님을 뒤쫓아가 말씀드렸다. 이제 와 얘기지만, 이렇게 결정할 때까지 많은 생각을 했더랬다. 돈도 돈이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주방에선 결코 쌓을 수 없는 경험. 아, 물론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뭐라 뭐라고 해도 돈이다. 속물적일 수도 있지만, 출연료 400만 원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돈이 아니니까. 그 돈이면 진짜 꿈에서나 그릴 법한, 그런 집을 숙모님께 사드릴 수 있게 된다. 하루 이틀 모아서 될 일은 아니겠지만.

“기래?”

“예.”

“기럼 기렇게 하라우.”

오랜만에 주방엘 나와서 그러신지, 유독 피곤해 보이시는 얼굴로 날 바라보시던 주방장님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없이 내 어깨를 두드리셨다. 그러곤 돌아서시기 전에 뒤늦게 생각나셨는지 물으셨다.

“강형식이하고는 요새도 연락하고 지내니?”

“예? 아, 예. 녀석도 그렇고 저도 바빠서 가끔 통화만 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몇 차례 끄덕이시던 주방장님은 떠나시기 전 덧붙이셨다.

“김동하 국장한테는 내래 연락하디. 기렇게 알고 있으라우.”

“알겠습니다.”

“기래. 추운데 얼른 들어가라우.”

뒷짐을 지시고 휘적휘적 걸어가시는 모습이 여유롭기 그지없으시다. 누가 보면 구한말 어느 양반집 선비라도 되는 줄 알겠다. 음, 그렇게 사셨어도 어울리셨겠는데. 나도 모르게 늙어 죽을 때까지 한량으로 지내며 여유자작 하는 주방장님이 도포에 갓을 쓴 모습을 떠올리곤 웃고 말았다. *** 사실 이런 건 한 그룹의 회장, 그것도 삼한씩이나 되는 그룹의 회장이 할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먼저 나서서 얘기를 꺼낸 것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결정이 되면 직접 말하라고 했던 거였고.

“한다고 합네다.”

고윤수 주방장의 얘기에 강 회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불쑥 물었다.

“그 아이가 혹시 그 친구 아닌가?”

“맞습네다.”

이렇다 할 설명도 없었는데도 고윤수 주방장은 찰떡같이 알아듣곤 대답하고 있었다.

“혹시 요즘 형식이가 가까이 지낸다는 아이도…….”

“기것도 맞습네다.”

“……그래.”

나직하게, 혼잣말이라도 하듯 대꾸한 강 회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 자연스럽게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을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이젠 담배의 담 자도 꺼내지 못하게 하는 주치의 때문에 그저 수염 하나 없는 턱만 쓰다듬을 뿐. 그렇게 강 회장은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다가 어느 순간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말했다.

“아, 그만 나가보게.”

“기러디요.”

“참. 그 아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어릴 때 조실부모하고 힘겹게 버티며 여기까디 온 아이입네다.”

“대충 들어서 알고 있네.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아이에겐 피해가 안 가게 할 테니 걱정 말아.”

어지간한 측근한테도 보여주지 않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강 회장이 덧붙였다.

“나도 맛있었네. 그날 먹은 국밥은.”

그러곤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을 보던 고윤수 주방장이 홀가분해진 듯한 표정이 되어 방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한 사람이 나가고 남겨진 또 다른 한 사람, 강 회장이 손에 깍지를 낀 채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나직하게 읊조렸다.

“안쪽이 아니면 바깥쪽에서 활로를 찾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여전히 표정이 없는 얼굴로 전화기를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통화가 연결됐다.

-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소. 김동하 국장이 어찌나 성화던지.

애당초 제안은 이쪽을 통해 들어왔으니, 통보도 이쪽을 통하는 게 맞을 터다. 그 점은 서로 간에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말하긴 한결 편했다.

“그랬을 거요. 알아보니, 그럴 만도 하더군.”

- 아, 그래요? 그것 참 묘하군. 뭐가 그렇게 그 친구를 안달 나게 하는 건지. 뭐, 그건 그렇다 치고. 한답디까?

“한다고 합디다. 품 안으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식구요. 잘 좀 부탁한다고 전해주시오.”

말이 부탁이지, 그저 담담하게만 얘기하는 강 회장의 시선 끝에 책상 위에 올려진 액자가 있었다. 그 액자에는 아직 큰아들 내외가 죽기 전 찍었던 가족사진이 들어있었다. *** 신현정은 이제 막바지에 이른 프로그램 기획을 정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컨셉이야 이미 윗선에 말해서 확정 지은 상태였고, 방영시간에 맞춰 촬영 계획까지도 짠짠하게 다 짜놓았다. 문제는 출연진인데, 여기서 막혔다. 이런저런 이유로 메인 MC는 요리사보단 개그맨 출신의 연예인을 섭외하기로 했고, 고정 패널로는 요 몇 년 인기를 얻다가 팀 해체설과 함께 슬슬 솔로 데뷔를 한다는 소문이 있는 아이돌 한 명을 구워삶았다. 그쪽도 일단 하겠다고 했으니, 여기까진 만사형통인 셈. 그리고 지금 그녀의 손에는 한 장의 종이가 들려 있었다. 이름부터 생년월일. 출신지와 그간의 이력 등 입사면접에서나 볼법한 신상명세서였다.

“중학교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라…….”

얼마 후 고등학교로 진학하기는 했지만, 어 다르고 아 다르다고 중학교 때부터 자수성가한 요리사의 얘기는 충분히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할 만하다. 그렇긴 한데…….

“후우, 역시 좀 그렇지?”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려지면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감성팔이 하는 건 그녀의 스타일도 아니고 서진영에게도 실례가 될 수 있을 터다.

“뭐, 처음부터 정해진 거나 다름없으니까.”

어차피 그를 섭외하려고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니까.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배려심이 깊은 태도. 그리고 그에 맞춰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관심을 끌어내 요리와 접목하는 그 능력에 주목한 게 아니었던가. 아마 방송에서도 통할 거다. 그 이전에, 촬영에서도 통할 거고. 모르긴 몰라도 쇼에 초대된 손님은 서진영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먹고 싶은, 혹은 먹어야만 하는 요리를 먹고 있게 될 테다. 그 와중에 마음을 열고 진솔한 얘기를 털어놓는 건 덤이고. 거기에 화려한 말발이나 우스꽝스러운 광대 짓은 필요 없다. 그런 건 개그맨 출신의 MC가 알아서 할 테고, 그걸로도 모자라면 패널들이 채우면 된다. 서진영은 오로지 평소처럼 얘기하고, 요리하면 되는 거다. 그날, 바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때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흡족해져서 미소를 머금고 있을 때였다. 신현정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 선배.”

고민준 본부장이다.

- 뭐야? 뭔 전화를 울리자마자 받아. 바쁜 거 아냐?

“여태 일했어. 그러다 좀 쉴까 하고 있을 때 전화 온 거고.”

- 흐흐흐. 누가 뭐래? 바쁜가 해서 걱정한 거지. 그리고 야, 그래도 내가 명색이 본부장인데 한 번쯤은 갈궈 보고 그래야 하지 않냐?

“예, 예. 어련하시겠어요. 근데, 왜 전화했는데? 나 금방 또 회의 들어가 봐야 해.”

- 아, 다른 게 아니고. 그 왜 있잖냐? 국장님이 만나본다는.

“응? 국장……. 아! 근데 왜?”

살짝 불쾌해진 음성에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도 더듬거렸다.

- 뭐, 뭘 또 그렇게 날카로워지냐? 그만큼 국장님이 너한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건데.

“글쎄. 간섭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 얀마. 짬밥 어디로 먹었냐? 응? 누가 쓰래? 한번 만나보고 아니다 싶으면 뺀찌 놓으면 되는 거지. 섭외 한두 번 해봐?

“그건 그렇지.”

- 암튼, 국장님이 연락을 했던가 봐. KS 그룹 비서실 통해서. 며칠 된 모양인데, 오늘 연락을 받았다네?

“뭐래는데? 아니, 그전에 누군데? 그 사람이?”

- 그건 나도 모르지.

“아, 선배. 지금 그게 무슨…….”

- 진짜 몰라 인마. 국장님이 안 가르쳐주는데 어떻게 알아? 아직 확정은 아니라고 하면서……. 일이 틀어지면 좀 곤란한 문제가 있나 보더라. 흠, 내 생각엔 어디 그룹 임원 아들이 아닐까 싶은데.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까지 조심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렇지?

“하아. 난 모르겠구요. 이제 회의 들어봐야 하니까, 나중에 통화해.”

- 그래. 아참, 현정아.

“……?”

- 밥은 꼭 먹고 일해. 꼬옥!

전화를 끊고 난 뒤 신현정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가 이내 찡그렸다. 웃은 건 선배인 고민준 본부장 때문이었고, 찡그린 건 김동하 국장, 정확히는 국장님이 밀어 넣으려는 요리사 때문이었다.

“얼마나 대단한 요리사길래 그러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린다. 들어오라고 하니 문을 열고 들어선 이는 이번에 새로 FD로 배정된 직원이었다.

“시간 됐습니다.”

“가죠.”

신현정이 자리를 뜬 책상 위에는 서진영이라는 이름이 선명히 박힌 신상명세서가 프로그램 기획안 위에 올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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