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 소고기뭇국 (3) (32/204)

#32. 소고기뭇국 (3)2020.12.13.

“알았다.”

그러곤 등을 돌리는 김진호 셰프였다. ……뭐, 뭐야? 지금 이 상황? 실화? 방금 김진호 셰프가 알았다고 한 거 맞지? 볼이라도 꼬집어보고 싶은 걸 참으며 김진호 셰프의 등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서진영으로선 상상도 못 했겠지만, 사실 김진호는 어제 하루 종일 많은 생각을 하느라 일이 손에 안 잡힐 정도였다. 모두 서진영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서진영으로부터 촉발된 가치관의 변화랄까. 시작은 별거 아니었다. 그가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어떻게 보면 흔하디흔한 초보 요리사에 불과한 서진영을 싸고도는 듯한 태도에서 비롯된 반발이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머랭을 치라고 시켰고, 그걸 또 서진영은 군말 없이 받아들였더랬다. 웃기는 일이었다. 혹시 질투인가? 혹은 스스로에 대한 자조? 어느 쪽이 되었든 마음에 들 턱이 없었다. 하지만, 어제 확실히 깨달았다. 물론 이제 와서도 그 이유를 뭐라고 정확히 꼬집을 순 없다. 그냥 한 가지만 알 뿐이다. 서진영에게 무언가가 있다는 것. 더 큰 문제는 그게 뭔지는 몰라도, 이제껏 김진호가 품어왔던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데 있었다. 기실 이제껏 김진호는 요리계에서 나름 천재란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었다. 그런 그의 눈에 비친 서진영은 어떻게 봐도 평범 그 자체였다. 그건 머랭을 치게 시키면서 증명되기도 했고. 그랬기에 더더욱 고진호 주방장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했던 건데…….

‘그런 건가?’

어제, KS 그룹 진 회장의 팔순 잔치에서 김진호는 깨달았다. 서진영에겐 다른 요리사들에겐 없는, 아니 처음엔 다들 가지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흐릿해진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사람. 단지 맛있고, 혹은 멋진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음식을 먹을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 요리……. 그걸 만들어내고자 하는 의지가 서진영에겐 있었다. 그리고 그건 천재의 영역과는 또 다른 영역이기도 했다. 어쩌면 요리사로선 당연한 마음가짐일지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껏 그걸 몰랐냐고 하면, 김진호로선 할 말이 없다. 요리가 손에 익고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온 부와 명예가 그의 눈을 흐리게 만들었다고 변명할 만큼 구차하게 굴 생각은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랬으니까. 그저 하루라도 빨리 요리를 익혀서 정상에 서고 싶은 욕구. 주위에서 쏟아내는 칭찬과 찬사에 본질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건 김진호뿐 아니라 다른 요리사들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테니까. 누군들 남들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까. 요리의 근본이 음식을 만드는 것……. 누군가는 먹게 될 그 음식을 만들 때 그 누군가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는 말이다. 설사 그 누군가가 자신일지라도. 그렇기에 김진호는 지금 이 순간 서진영이 느닷없이 다가와 레시피를 바꾸겠다고 했음에도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그래, 한번 보자. 네가 또 무얼 생각했는지. 아무 이유 없이 그럴 리는 없을 테고, 그걸 또 일일이 따져 묻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보면 아니까. 요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김진호의 눈은 서진영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소고기뭇국은 결국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달리 빨간 국물이 되고 말았다. 흔히들 말하는 ‘경상도’식 소고기뭇국이 된 것이다. 고춧가루를 팍팍 뿌렸으니 국물이 얼큰해진 거야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 씨. 이거 진짜 잘하는 건가? 평소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싱거운 음식을 즐겨 먹던 강 회장의 입맛인데, 이렇게 해도 괜찮을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하지만, 뭐……. 나레이터가 그렇다고 하니까. 아, 몰라 몰라. 김진호 셰프와 소고기뭇국을 번갈아 쳐다보길 몇 번. 결국, 한숨과 함께 말했다.

“다 끓였습니다.”

그의 말에 주방 한쪽에서 서 있던 김진호 셰프가 다가왔다. 그 모습을 준석이 형과 안성댁 그리고 혜순이 누나가 쳐다보고 있었고. 김진호 셰프가 조용히 다가와 내 손에서 국자를 가져갔다. 그러곤 국을 떠서 맛을 보는 접시에 덜고는……. 너무 긴장돼서 주저앉을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으으,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진호 셰프는 그저 가만히 국자와 접시를 내려놓을 뿐이었다. 그러곤 내가 아닌 준석이 형에게 물을 뿐이었다.

“전채는?”

갑작스러운 일격에 당황했을 법도 하지만, 준석이 형이 태연히 대답하고 있었다.

“다 됐습니다.”

그 점은 안성댁 쪽도 마찬가지였다.

“반찬은?”

“끝났어요.”

준석이 형과 안성댁에게 차례로 묻고는 날 바라보는 김진호 셰프. 뭔가 하실 얘기가 있나? 설마 냄비를 통째로 뒤집어엎는 건 아니겠지? 마른 입술을 살짝 깨무는 순간이었다.

“상 차려요.”

김진호 셰프가 내게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안성댁에게 얘기했다. 후우! 긴장이 풀리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그때부터 또 한차례 전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정해진 식사시간까지 10여 분 남은 상황. 주방 식구들이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수저와 저분이 상에 올려진 후 전채가 나가고 난 뒤, 하나둘 내려오기 시작한 강 회장의 가족들. 한 달가량 봐왔다고 다들 익숙한 얼굴들이다. 그젯밤 내게 협박 아닌 협박을 했던 강윤식도 보였고, 그의 아버지이며 강 회장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강구철 사장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만, 특이한 건……. 언제 왔는지 강형식이 2층에서 내려오더니 식탁 한쪽 귀퉁이에 앉고 있었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하다. 그의 삼촌은 물론이고, 고모들까지 잔뜩 찌푸리거나 은근히 무시하는 눈빛들이다. 사모님께선 별 관심 없는 듯 보였지만, 저게 더 무서운 게 아닐까 싶다. 애정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다는 얘기니까. 하긴 사모님은 마나님이 돌아가신 후 후처로 들어온 셈이니, 여기 있는 가족 중에 피가 이어진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어서 지금의 상황이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아무튼, 강형식의 삼촌과 고모는 말할 것도 없고, 사촌 형제들까지 좋지 않은 얼굴로 그를 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유치하게도 자기들끼리만 얘기를 나누며 강형식에겐 말 한마디 붙이지 않는 모습이, 보는 내가 다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다. 그럼에도 강형식은 담담한 태도로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장하네, 녀석. 나 같으면 열불이 터져서라도 자리를 박치고 일어났을 텐데.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그래. 다들 앉자.”

강 회장이 이 층에서 내려오자, 가족들이 분분히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자, 먹자.”

강형식의 말에 따르면 어제부터 식사를 같이한 모양인데, 그런 손자에게 뭐라도 한마디 할 법하건만 강 회장은 시선 한번 주지 않고 있었다. 관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다른 가족들을 의식해서 일부러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하여튼, 저쪽은 그렇다 치고. 이쪽은 나름 살벌하고 치열한 전투 중이다. 그것도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김진호 셰프가 팔짱을 낀 채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고 있는 가운데, 준석이 형과 내가 안성댁의 지시에 따라 음식들을 카트에 올리는 중이었다. 잠시 후, 상위에 밥과 함께 국이 올라갔다. 꿀꺽.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이 넘어갔다. 동시에 강 회장이 든 수저가 보인다. 그리고 국을 확인한 사모님이 주방 쪽을 살짝 흘겨보는 것도. 그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뭐랄까. 강 회장과 함께 있어서 그런지 대놓고 티 내진 않고 있었지만, 불쾌하단 눈빛이 역력하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온몸의 솜털이란 솜털은 다 일어난 채 주시하고 있던 나로선 느낄 수 있었다. 쥐라도 한 마리 잡아먹을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망할. 평소와는 전혀 다른 레시피 때문에 화가 난 건가? 에이, 설마. 국에 고춧가루 조금 뿌린 거 가지고 그럴까. 아니지. 여긴 재벌가고,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젠장. 이러다가 사모님한테 미운털 박혀서 쫓겨나는 건 아닐지 걱정……. 오오! 뭘 먹어도 시큰둥하기만 하던 강 회장이 한차례 흠칫하는가 싶더니 점점 숟가락질이 빨라지고 있다. 수저가 밥그릇과 국그릇을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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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찬은 손도 대지 않고 밥을 반쯤 먹었을 때, 급기야 국에 밥을 말고 있는 강 회장이었다. 그러곤 보는 사람이 다 맛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먹기 시작한다. 원래부터도 아침밥은 뜨는 둥 마는 둥 하는 다른 가족들이야 크게 신경 쓸 것도 없……. 응? 강형식마저 게걸스럽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정신없이 밥을 먹고 있다. 그것도 강 회장처럼 국에 밥을 말아서. 햐, 저 자식 저거. 하여간 배포 하난 장난 없다니까. 어떻게 보면 적지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라면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라 밥이 목구멍으로 절대로 넘어갈 것 같지 않은 상황임에도 잘만 먹고 있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어제도 나랑 한잔하긴 했지만, 그게 아니라도 요즘 들어 밤마다 마시는 모양이니까. 그것도 필름이 끊길 정도로. 뭐, 예전에도 많이 마시긴 했다고 하던데, 그때와 다른 점은 방황하느라 그러는 게 아니라 일 때문이란 점이려나. 아무튼, 연일 회의와 미팅에 몸은 피곤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밤마다 술독에 빠져 살고 있으니 얼큰한 국이 맛있기도 할 테지. 아마 속이 확 풀리며 온몸에 힘이 넘치는 기분일 거다. 흠칫. 밥을 다 먹었는지, 숟가락을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이쪽을 바라보는 강형식의 눈빛에서 은근한 호감이 느껴지는 거야 그렇다 치고……. 강 회장까지 주방 쪽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한차례 보고 마는 게 아니라 묘한 눈빛으로 한참을 보다가 몸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말까지 하면서.

“잘 먹었다.”

후우! 맥이 탁 풀렸다. 온몸이 힘이 빠져나가다가 이내 손에 힘이 쥐어졌을 때, 뒤에서 누군가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있었다. 돌아보니, 준석이 형이 말없이 웃고 있다. 그리고 저만치 서 있던 김진호 셰프는……. 그저 말했을 뿐이었고.

“수고들 했다.”

그것으로 폭풍같던 아침 식사시간이 지나갔다. *** 출근 후 임원들과 회의까지 마치고 난 뒤였다.

“주방장님이 오셨습니다.”

비서의 얘기에 강 회장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들어오라고 해요.”

잠시 후 문이 다시 한번 열리고 키 작은 노인이 들어섰다. 단단한 체구와 함께 아직도 강렬하게 타오르는 듯한 눈빛을 가진 노인……. 고윤수 주방장이었다.

“부르셨습네까?”

“와서 앉지.”

소파 자리를 권하자, 고윤수 주방장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그런 그를 잠시 바라보는 강 회장. 한마디 말도 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데도 고윤수 주방장은 전혀 긴장한 기색이 아니다. 그러다가, 비서가 차를 내왔을 때야 강 회장이 물었고, 고윤수 주방장 역시 별스럽지 않다는 듯 귀를 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강 회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조금 뜻밖이었달까.

“덕분에 아침 잘 먹었네.”

고윤수 주방장은 뭐라 대꾸하지 않고 눈을 가늘게 한 채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말했다.

“그거이 무슨 말씀이신지?”

강 회장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고맙다는 말이었네.”

오늘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나 싶었지만, 고윤수 주방장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여길 나간 후 김진호한테 물어보면 될 일이니까.

“바쁜 사람을 오라 가라 해서 미안하긴 하네만, 전화로만 할 얘기가 아닌지라. 그렇다고 집에 가서까지 이런 얘기를 하기도 뭐하고.”

“편히 말씀하시라요.”

“그러지.”

얼마 전 의사의 권유로 담배를 끊은 강 회장이 답답한지 괜스레 턱을 만지며 물었다. 요새 들어 생긴 버릇이었다.

“김동하 국장이라고 아나?”

“이름만이라면 들어봤습네다만.”

또 뜻밖의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윤수 주방장은 머릿속으로 언젠가 보았던 KBC 방송국의 김동하 국장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다. 하지만, 얼핏 스치며 지나갔던지라 기억은 잘 나지 않았다. 지난주 KS 그룹 진 회장 팔순 잔치 때, 명단을 확인해서 그때도 왔었다고 알고 있는데…….

“어제 연락이 왔다더군.”

“……?”

“아, 물론 김동하 국장한테 직접 온 건 아니고. KS 그룹의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었다 하네.”

“KS요?”

뭔가 이상하다. KS 그룹과 KBS 방송국……. 그 사이에 무슨 연결 고리가 있을까? 굳이 말하자면 그 둘의 관계는 광고주와 광고를 실어 수익을 내는 방송국에 불과할 텐데.

“별거는 아니고, 방송 출연 문제 때문인데…….”

고윤수 주방장의 눈이 빛났다. 얘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감을 잡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얘기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국내 제일의 그룹 회장이라는 강 회장 입에서 듣는다는 게 의아할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강 회장이 입가에 미소까지 띠며 말했다.

“원래 나한테까지 올라올 사안은 아니네만, 비서실장 얘기론 진 회장으로부터 고맙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혹, 그 일에 대해 아는 게 있나 해서 불렀네.”

잠시 생각에 잠기던 고윤수 주방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날, 진 회장의 팔순 잔치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 사모님이 역정을 낸다든가 하는 우려는 다행히 우려로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다 지나고도 한참 후 막 저녁 식사를 준비하려는 시점에 사모님이 김진호 셰프를 불렀다. 그리고 지금 김진호 셰프는 강 회장의 부인인 통칭 ‘사모님’ 즉 장희경 혜암 아트홀 관장과 독대 중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장희경의 입에서 먼저 말이 나왔다.

“돌려 말하지 않을게요.”

장희경 관장은 언제나 그렇듯 차분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날이 선 듯 차가운 어조로 얘기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할지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고.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오늘 아침 일은 조금 불쾌하군요.”

짐작대로였다. 김진호 셰프는 책상을 사이에 두고 장희경 관장과 마주 선 채로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평소와는 다른, 원래대로라면 맑은 국물로 나갔어야 할 소고기뭇국에 관한 얘기였다. 어떻게 보면 실로 쪼잔한 화제였다. 대한민국 재계 일 위라는 삼한그룹의 안주인이라는 건 차치하고라도, 적어도 국내에선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미술관장으로서 할 얘기는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그녀의 소관도 아니고. 누가 뭐래도 주방일은 고윤수 주방장의 소관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집안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입장에선 충분히 입에 담을 수 있다는 생각에, 김진호 셰프는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매우 미묘한 사안이었고 기실 이 문제의 본질은 일종의 기 싸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일단 사죄부터 하고 보는 그였다. 장희경 관장의 불같은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죄송합니다.”

평소라면 이 정도 했으면 넘어갈 거라 여겼지만……. 뜻밖에도 장희경 관장은 강하게 나오고 있었다.

“그런 말로 넘어갈 문제던가요?”

어떻게 해야 지금의 이 난감한 상황을 넘길 수 있을지 생각하느라 김진호 셰프가 잠시 말없이 있자, 장희경 관장이 다시 한번 치고 들어왔다.

“아니면, 내가 후처라고 무시하는 건가?”

끝내 불길이 여기까지 번지는 건가 하고 생각하며 김진호 셰프는 눈을 감았다. 그러곤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정 안되면 옷이라도 벗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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