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대박 냄새 (2)2020.12.04.
한낮의 강남역 주변은 말 그대로 사람들로 넘쳐났다. 바글거리다 못해 도롯가로 밀려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인파. 오래간만에 만나는 친구들, 일주일을 기다려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단란한 한때를 보내기 위해 음식점을 찾은 가족들로 거리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람만 그런 게 아니었다. 차들도 넘쳐난다. 사거리를 중심으로 뻗어있는 대로는 말할 것도 없고, 뒤안길로 이어진 좁은 골목들은 행인들과 뒤섞인 채 빵빵대는 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신현정의 차가 그곳 골목으로 들어갈 일은 없다는 것. 그녀가 모는 차는 강남역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한 후, 다시금 오르막길을 달리고도 5분 정도 지난 후에야 멈췄다. 역삼역 부근의 한 건물. 그곳 지하, 룸살롱에서 고민준 국장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가 드나들기엔 부담스러울 만도 하지만, 차에서 내린 신현정의 걸음은 거침없었다. 그녀의 복색이 단정하기 이를 데 없는 투피스 정장인지라 어딜 봐도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과는 확연히 구분되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라도 직원들 혹은 손님들은 그녀에게 쉽사리 다가오지 못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녀에게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는 단지 고아하기만 한 것만은 아니었으니까. 방송가에서 십 년 넘게 구르며 몸에 밴 카리스마가 절로 흘러나오고 있달까. 그래서인지 다들 그녀를 막아서지 않았다. 물론 지배인은 이미 신현정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막지 않았고, 오히려 일행이 기다리는 곳으로 그녀를 안내해주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공손하기 이를 데 없는 지배인의 태도에 신현정은 예의를 잃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린 뒤 문을 열었다.
“오! 왔어?”
“아이고, 이게 누구야? 신 피디 아닌가!”
“오랜만에 뵙습니다.”
신현정은 김동하 국장과 고민준 본부장에게 인사를 하며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빠르게 테이블 위를 스캔했다. 다행히 아직까지 굴러다니는 술병은 없다. 처음 세팅된 상태에서 그다지 흐트러지지 않은 테이블 모습. 비교적 깔끔한 모습에 신현정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여자들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뭔가 일 얘기를 하기 위해 자리만 빌린 분위기. 여자들이 들어왔다가 나갔는지, 아니면 아직 부르지 않은 건지. 분위기로 봐선 일 얘기부터 마치고 부를 모양인 듯한데. 것도 아니면 애당초 선배가 자신을 부를 심산으로 자리를 세팅했는지도 모르고. 어느 쪽이 되었든 자신에겐 좋은 기회임은 틀림없었다. 그녀는 김동하 국장의 건너편, 고민준 본부장의 옆자리에 앉으며 빈 잔을 들어 올렸다. 돌돌돌돌돌. 김동하 국장이 기분 좋은 얼굴로 호박색 양주를 따라주며 칭찬이랄지, 투정이랄지 볼멘소리부터 늘어놓는다.
“아, 이 친구가 어찌나 자네를 빼달라고 아우성인지 견딜 수가 있어야지. 덕분에 시사교양국 쪽에선 지금 입이 댓 발 나왔다니까. 아무튼 이왕 옮긴 것, 예능국을 한번 뒤집어 엎어놓으라고!”
“하하하하! 한번 지켜보십시오. 이 녀석이 어떻게 대한민국을 뒤흔드는지!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돌려 술잔을 입가로 가져가며 신현정은 자연스럽게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3시 15분. 일요일 한낮, 아직 밝기만 한 시각인데 벌써부터 이 어두컴컴한 곳에서 이러고 있는 까닭은 뭘까? 역시 그거겠지? 개편안. 고민준 본부장은 자신의 선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실제로도 매우 뛰어난 인재였다. 그러다 보니 입사 초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승승장구. 지금에 와선 김동하 국장의 오른팔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사내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를테면 김동하 국장의 진성 라인. 이 두 사람이 이 시간부터 만나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게 뭘 의미하겠는가. 거기에 자신을 부른 이유? 뻔하다. 이번 개편에서 김동하 국장은 자신의 라인으로 반 이상을 채워 넣을 심산인 거다. 그중에 한 명이 자신인 거고. 아니나 다를까. 김동하 국장이 사람 좋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사근사근 말하고 있었다.
“이미 얘기 들었겠지만, 신규 프로그램은 굳이 파일럿 형태로 짤 필요 없어요. 바로 정규로 갈 거니까, 예산 걱정 말고 기획 잡으라는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죠?”
좀 더 빙빙 돌릴 줄 알았는데, 대놓고 말하니 황당할 틈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부담스럽진 않았다. 대신 그녀는 머릿속에 구상해둔 기획을 보다 확실하게 정리하며 술병을 들어 올렸다. 그러곤 김동하 국장의 빈 술잔을 채워준다. 그렇게 술이 몇 잔 오간 뒤, 고민준 본부장이 은근슬쩍 물어왔다. 물론 그전에 두 사람 간에 의미 모를 눈빛이 오갔다.
“그래, 어떻게 윤곽은 좀 잡았어?”
기다리던 질문. 신현정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토크쇼 형태로 가볼까 해요.”
“호오. 토크쇼라. 일테면 투나잇쇼 같은 건가?”
김동하 국장도 흥미가 돋는지 눈을 빛내고 있다. 신현정은 찬찬히 풀어놓기 시작했다. 자신이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던 기획들을.
“비슷하긴 한데, 다만…… 요리를 메인 테마로 잡고 가려고요.”
“응? 그거 SBC에서 하는 <냉장고를 봐주세요> 같은 컨셉?”
“아, 요리가 중심이 되긴 하는데, 그거랑은 좀 다를 거예요. 굳이 말하자면 힐링 토크쇼랄까. 초대손님으로 온 게스트의 니즈에 맞춰서 요리를 함께 하면서 그동안 쉽게 말하기 어려웠던 얘기들을 나누는 방식으로…….”
솔직히 처음엔 이미 한물간 쿡방 얘기인가 싶기도 했지만, 김동하 국장은 그래도 자기 라인으로 들어온 인재다 싶어서 얼굴에 웃음을 지우지 않고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그의 얼굴에 핀 미소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옆에 앉아 있는 고민준 본부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흡족한 표정이 역력했고. 덕분에 분위기는 한층 더 좋아졌다. 김동하 국장이 그녀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참지 못하고 얘기할 정도였다.
“웃음과 감동을 함께 잡을 수 있겠군. 좋아, 아주 좋아. 흐흐흐. 요리와 사람이라……. 캬! 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냄새가 나네, 냄새가. 이거 무슨 냄새지?”
“사람 사는 냄새죠. 크크크. 그리고 대박 냄새고요.”
“하하하. 맞네. 맞아. 아무튼 냄새가 끝내주는군!”
“원래 신 피디가 옛날부터 냄새 하난 죽이게 맡았거든요.”
“흐흐. 그래? 아참, 고 본부장.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기인데, 내가 혹시 말했던가? 어제 내가 KS 그룹 진 회장 팔순 잔치에 갔었지 않은가? 거기서 좀 재밌는 일이 있었거든. 자네도 알지? 내가 요즘 식단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거? 근데 말이야, 어떻게 알았는지 내 사정에 딱 맞게 요리를 준비해주더라고. 그게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닌데, 막상 그런 대접을 받으니까, 진짜 기분 좋더군.”
“호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누군지는 몰라도 대단하네요? 하객들한테 일일이 신경 쓰는 주방장이라…….”
“맛도 장난 아니더군. 안 그래도 풀떼기밖에 없는 그놈의 식단 때문에 짜증 났었는데, 그런 퀄리티라면 몇 번을 먹어도 물리지 않을 거 같더군.”
“오! 요즘 잘나가는 데이비드 곽이라도 있었던 겁니까?”
“아니, 아니. 그쪽은 아니지만, 주방장이 꽤 유명하다는 얘길 듣긴 했어. 근데 말이야…….”
말하다 말고 김동하 국장은 목소리를 낮췄다. 듣는 사람이라곤 고민준 본부장과 신현정뿐임에도 그러는 걸 보니 둘 중 하나일 터다. 새어나가선 안 될 비밀 얘기거나, 것도 아니면 일명 ‘카더라 통신’으로 통하는 찌라시 중에서 사람의 욕망을 부추기는 얘기. 섹스 스캔들을 필두로 오감을 자극하는 류의 얘기일 거다. 어느 쪽이 되었든 은밀하게 공유한다는 점에서 묘하게 흥분을 일으키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데, 막상 듣고 보니 어느 쪽도 아니었다.
“하객들에게 맞춘…… 일테면 맞춤 서비스를 제안한 게 주방장이 아니라더군.”
“예? 그게 무슨…….”
“글쎄,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한동안 술잔을 부딪치는 것도 잊고 얘기가 이어졌다. 그 끝에 고민준이 탄성과 함께 되물었다.
“캬! 그런 일이……! 근데, 그건 또 뭡니까? C 마트 김진숙 회장이 그 요리사를 불러서 뭔가 제안을 했다? 혹시 그 남자 잘생겼습니까?”
“거야 나도 모르지. 그런 쪽으론 아무 얘기도 듣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그쪽은 아닐 거야. 김진숙 회장이 그런 쪽으론 좀 그렇잖아?”
“하하하. 그렇긴 하죠. 흠, 그럼 스폰은 아닌 거 같고. 실력이 엄청난가? C 마트 쪽에선 외식 사업부도 있으니까, 어쩌면 그쪽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모르지, 그야. 한데 말이지. 이런 생각이 드는군.”
“예?”
“솔직히 말해서 어제 꽤 감동이긴 했거든. 그런 면에선 확실히 김진숙 회장의 마음도 이해가 간달까? 어떤 이유로 그 요리사를 불렀는지는 몰라도……. 자네도 알잖아? 내가 어디 사적인 얘길 흘리고 다니는 사람인가?”
“아니죠.”
“근데 내가 어디가 아픈지 잘 아는 것처럼 딱딱 맞춰서 식단이 나오더란 말이지. 그것도 얼마 전부터 챙기기 시작한 식단인데. 솔직히 이 정도면 미국 가 있는 마누라보다 나은 거 아냐? 이러니, 감동은 둘째치고 궁금해질 수밖에 없잖아? 대체 누가 이렇게까지 날 신경 써주고 있는 걸까 하고 말이야.”
“햐, 듣고 보니 더 대단한데요?”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이미 술을 반병이나 비운 시점이었기에 눈이 살짝 풀린 고민준 본부장이 게슴츠레 눈을 뜨고 물었지만, 김동하 국장이 시선을 향한 것은 신현정 쪽이었다.
“신 피디. 내가 생각하기엔 그래.”
“예.”
“그 요리사가 딱이란 거지. 자네가 만들려고 하는 프로에.”
“…….”
신현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마음속으로 서진영을 낙점하고 있었기에 김동하 국장의 제안이 기꺼울 리가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래서 더 말을 아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김동하 국장은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세. 내가 한번 KS 그룹에 알아봄세. 어제 왔던 요리사 누구인지. 아마 조금만 신경 쓰면 알아낼 수 있을 걸세.”
“……감사합니다.”
성격상 이쯤에서 확실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김동하 국장의 제안을 쳐낼 법도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직 아무것도 구체화되지 않은 프로그램인데, 벌써부터 이런 일로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아서. 설사 김동하 국장이 요리사 한 명을 출연진으로 밀어 넣는다고 해도 자신의 선에서 얼마든지 커트시킬 수 있으니까. 검토단계에서 컨셉과 맞지 않는다고 퇴짜를 놓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몇 번 카메라 앞에 세우다 보면 제풀에 떨어져 나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방송계란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김동하 국장은 기분이 좋은지 연신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하하하! 자, 받게 받아.”
그가 따라주는 술을 신현정은 단번에 비워내곤 쓴 표정 하나 짓지 않은 채 되돌려 주었다. 그러자 김동하 국장은 말할 것도 없고 고민준 본부장까지 아주 그냥 신바람이 난 모양새다.
“신 피디! 진짜 화끈하구먼! 역시 듣던 대로야! 좋았어! 어디 한번 제대로 해봐! 그 컨셉, 아주 마음에 든다고!”
솔직히 말해서 처음 얘기를 꺼낼 때는 살짝 걱정하고 있었는데, 묘하게 아다리가 맞았는지 자신의 기획이 먹혀들어 가자 신현정은 얼떨떨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드러내 보일 정도로 어수룩한 그녀가 아니다. 신현정은 고개를 다시 한차례 숙여 감사를 표하며 얼른 술병을 들어 김동하 국장의 잔을 채웠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론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서진영. 이제 그녀에게 있어서 그 남자는 반드시 잡아야 할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녀가 알기로 그만큼 자신의 토크쇼에 어울리는 남자는 없었으니까. *** 고맙게도 신현정이 돌아간 뒤에도 이하연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임신이라든가, 당뇨에 관해 물을 법도 한데 그녀는 그 문제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다른 화제에 뺏기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자신이 독차지하고 싶은 게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좀 더 지켜보니 그건 또 아닌 듯했다. 가끔 내 안색을 살피며 앙앙거리는 것을 보면.
“앙! 저녁은 내가 산다니까요.”
피식. 귀엽긴 한데, 그녀의 제안은 솔직히 내키진 않는다.
“오늘은 내가 다 쏩니다.”
내가 이러는 이유? 돈이 많아서? 설마. 부담스러워서다. 왜 부담스러운가 하면……. 그녀의 스케일로 봤을 때, 우리가 갈 곳은 뻔할 테니까. 모르긴 몰라도 한 끼에 십만 원은 훌쩍 넘길 레스토랑이 되겠지. 아우, 상상만 해도 몸이 뒤틀리고 체할 것 같다. 그렇게 불편한 자리에서 밥을 먹느니, 그냥 분식집에서 쫄면을 먹고 말지. 뭐,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이 여자를 데리고 분식집을 갈 생각은 없었지만.
“짜장면으로 하죠.”
“에? 짜, 짜장면?”
“왜요? 싫어요?”
눈썹을 꿈틀거리던 이하연이 소심하게 물어온다.
“꼬, 꼭 짜장면이어야 해요?”
음, 중국 음식 싫어하나? 크크큭. 뭐가 됐든 살짝 곤란해하는 모습이 어째 보기 좋네. 근데, 이러고 있으니까 미안한 느낌도 들고. 그래서 말했다.
“다른 거 먹으러 가도 돼요. 파스타도 괜찮고…….”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설마, 입에 묻거나 옷에 튀는 게 싫어서 그래요?”
이하연이 머리카락을 빙빙 돌리며 눈을 피한 채 말했다.
“아뇨. 그게 아니라…… 난 짬뽕이 좋은데.”
옅게 웃고 말았다.
“아, 왜 웃어요! 얼큰한 짬뽕 국물에 소주 한잔이면 진짜…….”
“큭. 예, 예. 그러시겠죠.”
“아앙! 몰라!”
“아무튼간에…… 하연 씨는 짬뽕파였단 말이죠? 그럼 나도 그걸로 하죠, 뭐. 아니면 둘 다 시켜서 나눠 먹을까요? 이왕이면 탕수육도 시키고…….”
짝! 이하연이 손뼉을 부딪치며 눈을 빛냈다.
“좋아요!”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내 손을 잡고 한쪽으로 끌면서 외치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만 가면 진짜 맛있는 중국집 있거든요!”
“하하. 알겠으니까, 천천히…….”
“안돼요! 거기 얼마나 사람 많은데! 지금이 딱 브레이크 타임 끝나기 삼십 분 전이니까, 가서 줄 서면 5시에는 먹을 수 있을 거예요!”
콧노래까지 부르며 날 잡아끄는 그녀를 따라 못 이긴 척 움직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거참. 재벌이라며? 근데, 이렇게 소소해도 되는 거야? 거기다가 상큼하고 발랄하기까지 하면, 반칙인데……. 살짝 곤란해져서 콧잔등은 긁고 말았다. 이하연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온 것도 그때였다. 부르르르.
“어? 잠시만요.”
백에서 핸드폰을 꺼내 이름을 확인한 그녀는 내게 양해를 구하곤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낯설지만은 않은 이름이 튀어나왔다.
“현정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