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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만들 줄 아나? (2) (15/204)

#15. 만들 줄 아나? (2)2020.11.04.

너무 뜻밖이라서 숨도 못 쉬고 있다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양평입니다.”

잠시 말이 끊겼다. 그러다가 한숨이 들려온다 싶더니 말씀하셨다.

- 기래? 알갔다. 조심해서 오라우.

전화가 끊긴 후, 난 눈을 껌뻑이며 핸드폰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뭐지? 이게 끝? 주말에 전화를 하신 걸 보면 뭔가 달리 하실 말씀이 있었던 거 같은데. 대체 뭘까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전화하신 거지? 며칠 전 고윤수 주방장님이 지나가는 얘기로 휴일엔 출장을 나갈 수도 있다고 하셨던 걸 떠올렸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랬다면 바로 전화를 끊진 않으셨겠지. 그럼 뭐지? 대체 무슨 일일까? 그냥 안부 전화인가? 흠, 요사이 가까워진 건 맞지만 아직은 휴일에 전화를 주고받을 정도까진 아닌데. 궁금했지만, 확인해볼 방도가 없다. 주방장님께 전화해서 무슨 일이냐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뭐, 내일 출근하면 알게 되겠지. 정 안 되면 김진호 셰프께 물어도 될 일이고 말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고 말았을 때였다.

“무슨 일이야?”

심각한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느닷없이 들려온 음성에 돌아보니 강형식이 묻고 있었다. 걱정스럽다는 표정이다. 그를 보며 말할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별일 아니야.”

“별일 아니긴.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구만. 뭔데 그래? 혹시 지금 전화……. 주방장 할아버지야?”

어라? 서로 아는 사이……. 흠, 하긴 모를 수가 없겠구나. 강형식에겐 할아버지가 되는 강 회장님이 젊었을 적 인연을 빌미로 붙잡아둔 사람이 바로 고윤수 주방장님이니. 그렇다곤 해도 말투로 보아선 꽤 친해 보이는데. 두 사람 간에 내가 모르는 사정이라도 있는 건가.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강형식이 픽하고 웃는다.

“쯧. 한소리 들은 모양이네. 하여간……. 주말인데 좀 쉬게 해줄 것이지. 하긴 주방장 할아버지가 좀 괴팍하긴 하지. 그래도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라. 그 할아버지 성격상 관심 없는 사람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으니까.”

“그래?”

“왜 아닌 거 같아?”

“글쎄다. 나야 잘 모르지. 출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이미 알고는 있었다. 고윤수 주방장님이 내게 뭔가 가르쳐주려고 애쓰시는 중이라는 걸. 어째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시 돌아가서…….”

얼씨구? 이 자식 이거 좀 끈질긴 구석이 있네. 설마 계속하려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강형식의 말을 끊었다. 안 그랬다간 해 떨어질 때까지 조를 것 같아서. 참네, 요리사한테 무슨. 스카우트를 할 대상을 잘못 짚은 거 아니냐고.

“형식아.”

“……?”

말을 멈추고 의아한 눈빛을 해보이는 강형식에게 씩 웃어보였다. 한 손을 들어 산길을 가리키면서.

“차가 오는 거 같은데?”

“……그러네.”

여전히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는 얼굴이기에 덧붙였다. 칼같이 끊긴 좀 뭐하니까 좀 더 완곡하게 나가볼까.

“그 얘긴 나중에 하자. 오케이?”

“……그래, 그럼.”

떨떠름한 얼굴이지만, 하는 수 없지. 그나저나 차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어느 쪽일까? 레커차인지 아니면 장동일 상무가 보내준 차인지 궁금한 눈빛이 되어 차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쳐다보았다. ***

“못 온답니까?”

김진호 셰프의 물음에 고윤수 주방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온다는 건가. 아니면 못 온다는 건가. 살짝 헷갈리는 김진호였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고윤수 주방장이 말없이 턱을 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물었다.

“회장님댁 선산이 양평이랬지?”

“예. 그렇습니다.”

“길쿠만.”

선상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티를 보면서 고윤수 주방장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거렸다. 반면 절로 그 눈길을 따라 시선을 돌린 김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요리사로선 좀처럼 얻기 힘든 기회임에는 분명했다. 그것도 이제 막 인정받기 시작한 주방 막둥이에겐 더할 터였다. 호화 유람선 위에서 밤늦도록 이어지는 파티. 정·재계는 물론이고 방송 쪽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들까지. 요리는 말할 것도 없고 어느 것 하나 화려하지 않은 게 없었다. 요리사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언제고 한 번쯤은 반드시 경험해봐야 하는 자리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워낙 규모가 크고 중요한 파티인지라 아무나 올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직 자격을 갖추지 못한 최준석이나 서진영을 부르지 않은 까닭도 그 때문이었고. 주방은 물론이고 홀 쪽까지 하나같이 경력이 많고 능숙한 이들로만 구성되었다. 그러다가 디저트 쪽을 담당하던 스텝 한 명이 칼을 잘못 놀려 크게 다치는 바람에 공석이 생겨 연락한 건데……. 무슨 일이 있는지 몰라도, 올 수 없다고 하니 뭐라고 해야 할까. 제 복을 제가 찼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김진호는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원래부터도 이런 중요한 자리에, 아무리 갑작스럽게 공석이 생겼다고 해도 그렇지 아직 채 여물지도 않은 요리사를 부른다는 게 조금은 못마땅했던 차였다. 그것도 바로 윗줄에 있는 최준석을 제치고서 말이다.

“어떻게 할까요?”

“뭐가 말이네?”

“사람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기야 기렇지.”

“하면, 준석이라도 부를까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고윤수 주방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렇게 하라우.”

담담한 말투와 함께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김진호는 알 수 있었다. 고윤수 주방장이 아쉬워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마음이 누구를 향해 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김진호가 말했다.

“어째서 그렇게 그 아이에게 신경을 쓰시는 건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말이지만, 오늘 같은 날까지 서진영을 챙기는 고윤수 주방장이 이해되지 않아 묻고 말았다. 최근 들어 서진영에게 은근슬쩍 가르침을 내리는 고윤수 주방장이란 걸 알기에 언제고 한 번쯤은 묻고 싶은 말이기도 했고.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고윤수 주방장은 김진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불쑥 물었다.

“니래 그 아새끼래 마음에 안 드는 거이가?”

“그런 건 아닙니다만. 주방장님께서 손수 챙기시는 걸 보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해서 그럽니다.”

그런 이유조차 없다면 고윤수 주방장의 행동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 고윤수 주방장은 시선을 돌려 홀 쪽을 바라보며 턱을 살짝 들고 있을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맛이란 게 기래. 뉘기는 입안에 넣자마자 바로 느끼고, 또 뉘기는 혀를 몇 번이나 굴려봐야 그 맛을 아는 거이디. 긴데, 말이야, 음식이야 입에 넣어보면 되지만, 사람은 것도 안 되는 거잔네. 그럼 어찌해야 할까?”

말끝에 빙글빙글 웃기까지 하는 고윤수 주방장을 보다가 김진호는 나직하게 대답했다.

“주방장님께서 보시는 걸 제가 놓치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간나새끼. 날 세우지 말라우. 니래 내 나이쯤 되믄 다 보게 되었어, 야. 그러니끼리 너무 조급해 말라. 급하게 먹은 밥이 체하게 돼 있다 안칸?”

그렇게 말하곤 주방 쪽으로 등을 돌리는 고윤수 주방장. 그를 말없이 바라보던 김진호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가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을 누구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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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헐. 진짜 놓고 오다니. 난 수퍼카를 산속에 덩그러니 남겨놓고 떠나가면서도 믿기 어려웠다. 물론 회사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을 남겨놓긴 했지만, 그래도 저게 얼마짜린데. 수십억이라고 하지 않았나? 근데 망설임이라곤 1도 보이지 않는 강형식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뭐해? 안 타고.”

벤츠사가 인수하기 전부터 이미 세계 3대 고급차종으로 분류되어 있는 마이바흐에 오르기 전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렌터카는 아니겠지?”

강형식이 운전대를 잡다 말고 날 빤히 쳐다보다가 킥킥거린다.

“방금 그 말……. 웃겼다.”

아, 이게 바로 재벌 3세의 클래스구나. 기본 옵션만으로도 한 대에 2, 3억은 훌쩍 넘어가는 차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우리 형식이. 이런 애랑 친구 먹어도 되는 건가 의구심이 일 정도다. 하긴, 수십억짜리 차도 내팽개치고 가는 녀석인데, 무슨. 그렇긴 한데, 우리 대신 혼자 남아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차를 지키는 신세가 된 직원만 불쌍하게 됐다.

“먼저 가서 죄송해요. 추운데 수고하세요.”

“아, 아닙니다! 조심해서 가십시오!”

폴더폰처럼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직각 인사를 직원을 보면서 한숨과 함께 차에 올랐다.

“왜? 저 친구가 불쌍해?”

내 속내를 읽기라도 한 건가? 강형식이 묻고 있었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했겠지.

“그런 표정 지을 거 없어.”

“…….”

“다들 각자의 포지션이 있는 거고, 거기에 충실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대신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할 테지만. 일테면 저 친구, 오늘 일로 장 상무님한테서 한층 더 강한 신뢰를 얻게 되겠지. 뿐만 아니라 휴일인데도 여기까지 나온 셈이니 수당이야 말할 것도 없고 말이야.”

흠, 새삼 달리 보인다. 호랑이는 절대 강아질 낳지 않는다더니. 얘가 진짜 재벌집 자식 맞긴 맞구나. 세상을 보는 눈이 나랑은 확실히 다르단 생각에 쓴 웃음을 짓고 말았다. 난 지금 어떤 포지션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 일요일 낮이라 그런지 도로는 한산하다 못해서 여유롭기만 했다. 오후 2시가 조금 못 되는 시간. 뻥 뚫린 길이라지만 생각보다 빨리 서울로 돌아온 우리는 오는 길에 잠시 식당에 들러 간단히 점심을 먹곤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난 뒤 그와 헤어져 샤워까지 하고 포근한 잠자리에 몸을 뉜 상태다. 강형식 역시 지금쯤이면 자기 방에서, 아니 차고에서 한창 기름때 묻혀가며 렌치를 돌리고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는 길에 그 문제의 수퍼카가 집에 도착했다는 직원의 보고를 받았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고윤수 주방장님은 왜 전화를 하신 걸까? 그리고 내가 양평이라고 대답했을 때 뭔가 하실 말씀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참네. 이 집구석엔 비밀이 많기도 하다. 뭐 그렇게들 조심스러운 건지. 후우. 재벌집 재벌집 하기에 천국까진 아니라도 온갖 사치와 향락 그리고 기쁨으로 넘쳐날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가 보다.

“역시 우리 집이 최곤데…….”

나는 잠자리에 누운 채 가만히 식구들을 떠올렸다. 말씀은 잘 안 하시지만, 은근 세심하게 가족들을 보살피시는 외삼촌. 바쁘기만 한 외삼촌을 대신해 가족의 중심에서 온갖 잡다하고 힘든 일들은 다 처리하시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시는 외숙모. 그리고 항상 투덕거리면서 형제애를 과시하는 수연 누나와 수아. 그들이 있는 곳엔 언제나 따스한 공기가 맴돌았다. 그 따스함이 지치고 시들어가던 내가 다시 일어나게끔 만들어주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봐라. 그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꽉 찬 듯한 이 느낌을. 그런 게 가족인 건데……. 쯧, 강형식을 생각하니 썩 마음이 편칠 않다. 한편으로는 그런데도 꿋꿋이 나아가려는 걸 보니 조금은 대견하단 생각도 들고. 그렇긴 한데, 거참 그건 대체 뭘까? 아깐 워낙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생각하질 못했는데……. 브레이크 호스는 왜 터진 걸까? 새것이라며? 그것도 성능이 개선된 신제품이라고 하지 않았나? 단지 불량? 그렇기엔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기만 하다. 역시 어젯밤 차고 앞에서 마주쳤던 남자 때문이겠지. 대체 그는 누구였을까? 아니 그전에 진짜로 그가 차에 손을 댄 걸까? 그랬다면, 정말이지 대담하기 짝이 없는 일인데. 다른 곳도 아니고 브레이크에 손을 대다니. 위험한 것도 정도가 있지. 더구나 시속 180킬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밟아대는 수퍼카라는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아니고선 그럴 순 없는 거겠지.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건 내가 너무 나간 걸까? 어쩌면 너무 심한 비약인지도 모르지. 강형식이 오늘 무슨 차를 탈 줄 알고 전날 손을 댄단 말인가? 아니지. 자신이 직접 손봐서 완벽하게 정비를 마친 차를, 설사 오늘이 아니라도 조만간 시운전할 거라는 걸 예상하는 것쯤이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와, 소름! 그럼 진짜 죽이려고 한 거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간이 떨리고 온몸의 솜털이 바짝 서는 느낌이었다. 어쩌지? 어젯밤 있었던 일을 강형식에게 말했어야 하나?

“젠장. 나도 모르겠다!”

난 점점 더 복잡해져 가는 머리통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래라도 해야겠다. 내일부턴 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이 이어질 테니까. 그렇게 정신없었던 한 주의 끝이 막을 내리고 있었다. *** 언제나처럼 주방 안은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희한할 정도로 준석이 형은 업돼 있었다.

“형, 뭐 좋은 꿈이라도 꿨어요?”

어라? 진짠가? 소리는 내지 않지만, 굳이 표현하면 흐흐흐 하는 표정으로 헤벌쭉 벌어지는 준석이 형의 입을 보면서 나는 기가 막힌다는 얼굴이 되고 말았다.

“뭔데 그래요? 로또라도 당첨된 거예요?”

뭐가 그렇게 좋은 걸까? 준석이 형은 싱글벙글하더니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곤 머리를 바짝 들이밀었다.

“실은 어제 고윤수 주방장님이 불러서 선상 파티에 갔었거든. 거기 스텝 중에 한 명이 다쳤다나? 그 사람한테는 미안하지만, 덕분에 내가 급히 투입된 거지. 흐흐흐. 규모 자체가 어마무시해서 그런지 수당이…….”

순간 머릿속에 어제 고윤수 주방장님께 전화가 걸려왔던 게 떠올랐다. 아, 그런 거구나.

“와아, 근데 진짜 장난 아니더라. 나 거기서 남서희도 봤다는 거 아니냐. 실물로 보니까 얼굴이 조막만 한 거 있지. 몸매는 또 얼마나 예술인지.”

몽롱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형을 보고 있으니 뭐라 할 말이 없다. 하아, 이 한심한 아재를 어쩌면 좋다냐. 고개를 짤짤 흔들다가 툭 내뱉었다.

“형수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더라……. 헙!”

잽싸게 입을 틀어막는 준석이 형. 험악한 눈초리로 날 노려보며 협박을 해온다.

“이게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유분수지. 너 인마 까마귀 얘기 몰라? 응? 은인을 살리겠다고, 엉! 종에다가 머리를 처박고 죽은. 까마귀!”

까치겠지. 난 형의 손을 떼어내곤 침을 뱉었다.

“아, 짜. 그렇다고 소금 묻은 손으로 입을 그렇게…….”

젠장! 짠 거뿐만 아니라 비린내가 확 올라온다. 방금까지 준석이 형이 소금에 재우고 있던 고등어를 보곤 속이 메스꺼워졌다.

“우웩!”

헛구역질을 하며 밖으로 나가는 내 등 뒤로 준석이 형이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이그. 요리한다는 놈이 저렇게 비위가 약해서야.”

와씨, 진짜! 생선 주무르던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게 누군데! 밖으로 나가기 전 형을 향해 한차례 눈을 흘겨보았다. *** 아쉬운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일 거다. 물론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좀처럼 오지 않을 기회를 내 발로 차버린 거 같아서 속이 쓰렸다. 아, 그렇다고 해서 준석이 형이 배 아프다거나 한 건 아니다. 오히려 형이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았다. 그렇긴 해도, 역시 아깝다. 선상 파티라……. 일반적인 뷔페와는 질적으로 달랐을 텐데……. 모르긴 몰라도 평소 먹기는커녕 보기도 힘든 음식들이 잔뜩 나왔을 거다. 어쩌면 몇 가지 레시피는 고윤수 주방장님이 손수 시범을 보여주며 알려주었을지도 모르고. 후우, 아까운 건 아까운 거고……. 혹시라도 건방지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닐까? 됐다. 이미 지난 일인데. 남자 새끼가 이렇게 간이 작아서야 얻다 쓰겠냐. 설마하니 고윤수 주방장님이나 되시는 분께서 겨우 이 정도 일로 사람을 그렇게 가볍게 평가하시겠냐고. 아니 설사 그렇다고 해도 앞으로 더 잘하면 될 일. 뒷북치는 것도 아니고, 다 끝난 일을 가지고 고민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 동안 아침 식사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점심도 지나 저녁 식사 때가 되었다. 어제 선상 파티가 저녁이 되어서야 끝났다고 하더니, 고윤수 주방장님은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고 계셨다. 덕분에 김진호 셰프가 주방을 진두지휘 중이었다. 몸에 딱 붙는 검은 유니폼을 입은 채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요리에 몰두하시는 모습이 남자인 내가 봐도 멋지기 그지없다. 듣기로는 김진호 셰프도 어제 파티에 가셨던 거로 아는데. 피곤하시지도 않은가? 준석이 형은 아침까지만 해도 괜찮더니 지금은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와 아까부턴 아예 좀비처럼 흐느적거리고 있는데 말이다. 역시라고나 할까. 저 정도로 프로페셔널한 요리사는 자기 관리에 철저하구나 싶었다. 느끼는 바가 있어서 김진호 셰프를 감탄 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였다. 헛! 김진호 셰프가 갑자기 시선을 돌리시는 바람에 그만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우연을 가장한 채 얼른 시선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서진영.”

“예!”

“생굴 취급할 때 주의할 점, 말해봐.”

응? 갑자기 웬? 혹시 김진호 셰프도 고윤수 주방장님처럼 내게 뭔가 알려주시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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