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 시운전 (4) (13/204)

#13. 시운전 (4)2020.10.30.

덜컥까진 아니지만, 살짝 벌렁거리긴 했다. 가슴이. 지난번 일도 그렇지만, 이상하게 이 자식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불안해진다. 특히 지금과 같은 밤이면. 더욱이 술 취한 목소리라면 말할 것도 없고.

“술 마시나 보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보모도 아니고 딱히 따지고들 생각은 없었다. 한 살 어리다곤 해도 엄연히 그와 난 친구고, 그게 아니더라도 이 이상은 참견이니까.

- 걱정 마. 몇 잔 안 마셨으니까. 크으! 내일 신나게 달릴 생각인데, 설마 코알라가 되도록 마시겠어? 아, 상무님! 제가 얘기했던 친구예요. 하하하. 안 올걸요? 크큭. 알았어요. 일단 얘기나 해볼게요. 야! 내가 지난번에 얘기했었잖아? 장동일 상무님이라고 계시다고.

얼핏 들은 기억이 난다. 강형식 부친과 친구기도 하고, 삼한그룹의 중역인데 일도 제법 잘해서 강 회장에게 꽤 신임을 받는다고. 무엇보다도 사내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강형식을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했지, 아마.

“기억하지, 그럼.”

- 크크큭. 역쉬! 전교 1등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야이! 그게 언제적 일인데!”

하이고, 머리야. 술이 웬수지. 할 얘기가 없어서 그런 걸 자랑했던 내가 밉다.

- 뭐래. 중학교 때 1등이 고등학교 때 1등인 거고, 고등학교 때……. 아우씨! 모르겠고! 아무튼, 머리 겁나 좋은 내 친구! 그래서 올 거야, 말 거야?

헐. 뭔 얘기를 훅훅 건너뛰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내가 거기 가긴 좀 그렇지. 그리고 너랑 내일 나갔다 오려면 빨래도 좀 해놓고……. 아무튼 난 안 갈란다. 너나 재밌게 놀다 와라.”

핑계란 건 나도 알고 그도 안다. 아마 장동일 상무도 알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 두 사람은 이해해줄 거라 믿는다. 적어도 장동일 상무가 녀석이 말한 그대로라면. 아무리 가까워졌다지만, 아직은 내가 마음 편히 녀석을 따라다니며 회사 중역까지 만나기엔 한참 이르다는 걸을 말이다. 물론 한 번쯤은 장동일이란 사람을 보고 싶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만나서 될 일은 분명 아니다. 자칫하면 구설수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나 나나. 적어도 이 집구석 사람들 중 누군가의 눈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강형식을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강형식과 친하게 지내는 것과 그와 함께 회사 중역을 만나는 건 차이가 크단 얘기다. 강형식에게나 나에게나 득 될 게 손톱만큼도 없는 일인 건 분명하다.

- 오케이! 그럼 잘 자고, 내일 보자구!

뚝. 강형식답게 다짜고짜 끊어버렸다. 뭐, 이젠 익숙해져서 별 감흥도 없다. 나 역시 별일 아니라는 듯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곤 숙소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 오랜만에 외출을 했던지라, 조금 피곤해서 잠자리에 들었던 나는 당연히 약속 시간 직전까지 잘 줄 알았더랬다. 한데 새벽 6시에 눈이 떠져 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이불 밖으로 기어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 봐야 한 시간. 이불 속에서 와이파이를 잡아 핸드폰으로 뉴스도 읽고 웹툰도 보았지만, 더는 몸이 근질거려서 참지 못했다. 결국 7시쯤 돼서 침대에서 내려온 나는 어제 강형식에게 말한 대로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며 아침 시간을 보냈다. 밥은 고용인들이 모이는 식당에 가서 대충 때웠다. 그리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을 때였다. 우웅! 우우우우우우우웅! 미쳤네, 진짜! 얜 뭘 먹고 살았기에 이렇게 정력이 넘치는 거야? 술 마시고 난 다음날 저렇게 쌩쌩해도 되는 거냐고. 시뻘건 스포츠 안에 앉아 날 향해 웃고 있는 강형식을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우리 10시에 만나기로 하지 않았냐?”

“따지긴. 얼른 타기나 하셔.”

“이 꼴로 가라고?”

내가 눈짓으로 내 몸을 훑듯이 가리키자, 강형식이 킥킥거린다.

“뭐 어때서? 빈티지한 게 좋구만.”

빈티지가 아니라 빈티겠지. 아니 아니, 옷이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갖고 있는 옷이라 봐야 거의 없어서, 사실상 지금 입고 있는 게 단벌이나 마찬가지인지라.

“야이, 머리도 안 감았는데!”

“거기 여자 없거든요. 얼른 타기나 해. 어차피 바람에 날리면 엉망 되는 거 한순간이야.”

뭔 개소리야! 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별다른 말 없이 차에 올랐다. 위이이이잉. 오오! 내려온다, 내려와! 한껏 치켜져 있던 차 문이 마치 날개를 접듯 내려오는 걸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는데, 그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안전벨트를 가리켰다.

“어? 어어…….”

얼결에 대답하며 안전벨트를 매는 동안 알피엠을 끌어올리며 배기음을 울리고 있던 차가 한순간 튀어나갔다.

“헉!”

순간 가속으로 출발과 동시에 100미터까지 도달할 때까지의 시간을 제로백이라고 하는데, 수퍼카들이 얼마나 빠른지를 비교할 때마다 3초네 4초네 하는 말들만 들었지, 실제로 경험해보니 장난 아니다. 와, 진짜! 농담이 아니라 풍압 때문에 목이 부러질 거 같다! 강형식이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아가며 능수능란하게 차를 모는 사이, 우리가 탄 차는 몇 번인가 신호대기에 걸렸다가 십 분도 채 되지 않아 올림픽대로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곤 그때부터 광란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으어어어억!”

차체가 위로 뻥 뚫린 스포츠카라서 그런가, 속도감이 그냥 차를 탔을 때랑은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런 데다가 바람은 또 얼마나 거센지. 강형식의 말대로 이미 내 머리칼은 산발이 된 지 오래. 마치 수십 개, 아니 수백 개의 선풍기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모자라도 챙겨……. 으헉! 속도를 줄이려면 말을 해야지!

“여기 카메라는 뻥카가 아니거든.”

와씨! 마냥 생각 없이 운전하는 줄 알았더니 그래도 지킬 건 다 지키……. 으아아악!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가속과 함께 귀를 파고드는 소음. 엔진 소리와 배기음 그리고 바람 소리에 고막이 터져나갈 것 같다. 그전에 한껏 꺾인 고개 때문에 비명조차 쉬이 내지를 수가 없었고. 그때였다. 강형식이 뭐라 뭐라 소리친 것은.

“뭐라고오오오?”

아 놔, 오픈카라고 해서 마냥 좋은 것도 아니네. 시속 180킬로로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 차인데, 뚜껑까지 없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다. 악다구니 쓰듯 고함쳐보지만, 내 목소리는 강형식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세차게 불어닥친 바람결에 흩어지기 일쑤다. 그건 강형식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 그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손가락을 들어 위쪽을 가리켰다. 설마? 어이가 없어서 크게 소리쳤다.

“미쳤냐! 지금 나더러 일어나란 거야?”

“큭큭큭큭!”

미친놈! 누굴 죽이려고. 핸들을 잡은 채 낄낄대고 있는 강형식을 노려보며 난 엉덩이로 깔고 앉아 있는 좌석을 양손으로 꽉 잡고 손에 힘을 주었다. 강형식이 음악을 튼 것도 그때였다. 볼륨을 최고조로 올리자 고막을 때리기 시작하는 음악. 뿐만 아니라 우퍼가 달린 건지, 차체 자체가 비트에 맞춰 진동하며 쿵쾅거리는 느낌이 온몸을 타고 심장을 직격했다. 엄청난 속도감과 함께 음악까지 크게 들려오자 몸뿐 아니라 영혼까지 송두리째 뒤흔드는 듯하다. 쿵쾅쿵쾅. 자, 장난 아니다! 이래서들 수퍼카 수퍼카 하는구나!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우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이 미친놈이 지가 무슨 아마존의 전사라도 되는 줄 아는지, 갑자기 고함을 내지르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몸을 거칠게 흔들며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한다. 웃긴 건 악악거리는 게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화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거였지만.

“In this farewell(이 작별에는).”

  - In this farewell. - There's no blood, there's no alibi. - 'Cause I've drawn regret From the truth of a thousand lies. - So let mercy come and wash away. - 이 작별에는. - 폭력도 없고 변명도 없어. - 수많은 거짓 속 진실에서 후회를 그렸기 때문이야. - 그러니 자비를 줘! 씻어 내리도록. 린킨 파크의 ‘What I've done’이다. 영화 트랜스포머의 OST이기도 해서 나 역시 알고 있는 노래였다. - What I've done. - I'll face myself. - To cross out what I've become. - Erase myself. - And let go of what I've done. - 내가 했던 일을. - 스스로 마주하겠어. - 자신을 뛰어넘고. - 자신을 지우기 위해. - 그리고 내가 한 일을 놓아버릴 수 있도록.

“What I've done…… To cross out what I've become.”

어느샌가 나 또한 목놓아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린 정말 미친놈들처럼 노래, 아니 악다구니를 쓰면서 강변을 내달렸다. *** 얼마나 달렸을까. 강변을 따라 쭉 뻗어있는 도로를 달리다가 어느샌가 차는 국도로 빠져나갔다. 그러곤 또다시 한참을 달리고야 멈춰섰다. 냇가 앞에 펼쳐진 자갈밭에 차를 세운 강형식이 음악을 끄곤 차에서 내렸다. 그런 그를 가만히 보고 있을 때, 그가 냇가 건너편 산을 보며 말했다.

“우리 집안 선산.”

“……아!”

“저기에 할머니도 계시고, 아버지도……. 그리고 어머니도 계시지.”

그럼,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묘소에라도 가봐야 하지 않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강형식의 얼굴이 처연하기 이를 데 없어서. 그 까닭을 짐작하긴 어려웠지만, 그래도 한 가진 알 것 같았다. 지금 뭔가 그가 매우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아니나 다를까. 그가 내 쪽으로 돌아섰다. 그때까지도 차 안에 앉아 있던 나로선, 이제라도 일어나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틈을 주지 않았다. 아까와는 사뭇 달라진 눈빛으로 말했던 것이다.

“이제 어리광은 그만 부리려고.”

살짝 띄우고 있던 엉덩이를 도로 주저앉혔을 때, 그의 입이 다시 열렸다.

“말했던가? 몇 번이나 죽어버릴까 생각했다고.”

“어? 어…….”

“근데!”

“…….”

“살아보려고!”

강형식의 눈이 타오르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게 고스란히 전해져서 보는 내가 다 심장이 거칠게 뛸 정도였다. 설명하긴 힘들지만, 뭐랄까. 그래. 감동…….

“너도 사는데!”

엉?

“나라고 못 살겠느냐고!”

망할 자식! 찬물을 끼얹어도 정도가 있지. 한창 감동하고 있는데. 픽. 그래, 살아라. 대체 뭐가 그렇게 네 발목을 잡고 있고 또 네 앞에 뭐가 가로막고 있는지 나로선 짐작도 하기 어렵지만, 네 말처럼 나조차 사는데 너라고 왜 못 살겠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을 때, 강형식이 양주먹을 꽉 쥐고 소리를 내질렀다. 마치 포효하듯이.

“그래이, 씨발! 다 부숴버릴 거야! 아무도 날 막지 못해! 앙! 누구도 날! 씨발! 막지! 못한다고오오오오!”

발악하듯 절규하는 그였지만, 내 눈에는 그동안 가슴속에만 쌓아왔던 울분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걸로만 비쳤다. 난 그가 말한 선산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보고 계십니까? 아쉽겠습니다. 비로소 당신들 품에서 벗어난 아들이, 손자가……. 이제 제 길을 간다고 하네요. 제가 다 걱정이 되는데, 심정이 오죽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지켜봐 주실 거죠? 당연한 얘기지만 대답은 없었다. 영화에서처럼 그의 외침에 산이 흔들리며 새들이 날아오르는 일도, 산그늘이 드리워진 냇가로 서광처럼 햇살이 쏟아지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녀석이 다짐하듯, 반복해서 질러대는 소리만이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고 있었을 뿐. *** 그새 마음이 단단해진 건지 강형식은 어딘지 모르게 밝아진 모습이었다. 아마도 그동안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꾹꾹 눌러두고 있던 걸 터뜨렸기 때문일 터였다.

“후련하겠다?”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오르는 강형식에게 묻자, 그가 웃으며 대답한다.

“좇나 후련하다, 왜!”

“그러길래 왜 그러고 살…… 됐다. 이제라도 잘하면 되지.”

“새끼가. 말을 해도. 어떨 땐 널 보면 고딩 때 학주 생각난다니까. 어우, 그 양반……. 잔소리 장난 아니었는데.”

“그래?”

“말도 마라. 내가 진짜 그 선생님 때문에…….”

강형식은 옛 생각이 나는지 운전을 하면서 눈을 가늘게 해 보였다. 그러더니 한다는 말이.

“근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그 선생님밖에 기억나질 않아. 다른 선생님들은 우리 할아버지 무서워서 내가 뭔 지랄을 해도 아무 소리 못 했는데, 그 선생님은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거든. 크크큭. 들리는 얘기론 내가 졸업하고 한 달도 안 돼서 위궤양이 싹 나았다고 하더라.”

“크크크큭. 너 때문에 어지간히도 속 썩었나 보다.”

보조석에 타서 막 운전벨트를 매며 말하자, 녀석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해도 당시의 난…….”

따라라라라, 라라……. BGM이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 강형식은 오늘처럼 마음이 가벼웠던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그동안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압박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상태. 그게 누구 덕분인지 모를 그가 아니다. 성격상 내색하기엔 어렵겠지만,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아무튼, 강형식은 지금 묵직하게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사라진 듯한 느낌과 함께 기분 좋게 차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운전대를 잡아선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대로 차를 몰았다가는 국도를 빠져나가기도 전에 문제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 대체 뭐가? 나레이션의 내용이 너무 뜻밖이어서 강형식의 얘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리고 의아함은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 브레이크 유압 오일 호스가 파열된 상태여서 자칫하면 고속주행 중 제동력을 상실하는 사태가 벌어질 테고, 그렇게 되면 사고가 일어나 누군가는 죽음에 이를 수도……. 그게 아니라도 둘 중 하나는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어쩌면 불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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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그만 사색이 되고 말았다. 죽음? ……지금 죽는다고 말한 거냐? 설사 운이 좋아도 두 사람 중 한 명은 불구가 될지도 모른다고? 현실감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눈앞에선 강형식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데……. 후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난 정신을 바짝 차리곤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냉정해지려고 애쓰며 생각했다. 제동력 상실? 자동차의 구조는커녕 어떤 부품들이 쓰이는지도 잘 모르는 나이지만, 그래도 알 건 안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항상 같은 속도를 유지할 수는 없다는 사실. 단순히 카메라 때문이 아니라 도로 사정 때문에라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을 수 없음을 말이다. 일테면 급커브 구간이라든가. 한데, 브레이크 유압 오일 호스가 파열됐다고? 그럼 뭐야? 안 그래도 저 자식 성격상 미친 듯이 밟아댈 텐데, 그렇게 한창 속도를 내며 달리고 있을 때 앞에 차라도 끼어들면? 그게 아니라도 옆길로 빠져나가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다 캄캄할 정도다. 그제야 나레이션의 얘기가 과장이 아님을 깨달았다. 모르긴 몰라도 사고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것도 보통 사고가 아닐 게 틀림없다. 머릿속에서 우리가 탄 차가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그 속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찌그러져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려졌다. 절로 마른 침이 넘어갔다. 그 내용이 하도 기가 막히고 엄청나서 내가 아무런 말도 없이 인상을 쓰고 있자, 강형식이 이상함을 느꼈는지 말을 하다 말고 내 눈치를 본다. 그러다 더 이상 기다리기엔 답답했던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난 가만히 시선을 돌려 강형식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눈을 감았다. 차에 대해선 쥐뿔도 모르는 나인데,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하면 어쩌지? 입술을 잘근 씹다가 눈을 떴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형식아.”

건조하게 말라버린 목소리가 잔잔하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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