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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시운전 (3) (12/204)

#12. 시운전 (3)2020.10.28.

“괜찮아요?”

한창 나레이션을 듣는 와중에 걱정스럽다는 듯 내 어깰 툭 치며 묻는 이하연. 그 때문에 나레이션의 뒷부분을 듣지 못했다. 아쉽게도 그사이 사라져버린 나레이션. 배가 떠나간 뒤에 손을 흔들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예? 아, 예…….”

그나마 뒷부분은 별거 없었던 거 같긴 한데. 시간상으로 봐도 그리 길지 않았고. 그렇다곤 해도 꺼림칙하긴 하다. 뒷부분을 듣지 못했다는 게 그렇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앞서 들었던 내용들이. 텐션이 높은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확실히 그런 면이 있기는 하지. 오래 살진 않았어도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세상일이란 게 대체 그렇다. 의욕이 너무 높으면 당장엔 반짝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대신 에너지가 너무 빨리 소모된달까. 그렇게 쉽게 지치다가 결국 에너지가 바닥까지 고갈되는 시점에서 레이스 자체를 포기해야 처지에 놓이는 경우를 숱하게 보아왔다. 나 역시도 이런 일들을 몇 번이고 경험했고, 그 결과 깨달았다. 뭐니 뭐니 해도 적당한 텐션을 유지하는 게 최고란 걸. 이른바 컨디션 조절. 텐션을 최고조로 유지하는 것과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건 다르다는 얘기다. 말이 쉽지 막상 해보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테고. 그러니 요즘은 어딜 가나 컨디션 컨디션 하는 거 아닌가.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세상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나레이션이 전하는 메시지도 의미가 있다. 흠, 아무래도 이따가 강형식이랑 얘기 좀 해봐야겠는걸. 될 수 있으면 내일 약속은 취소하는 방향으로. 그런데도 꼭 가야겠고 한다면, 최대한 조심하라고 얘기하는 수밖에. 다른 일도 아니고 운전이니까. 쯧, 과연 들을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취 상태에서도 핸들을 잡았던 놈인데 무슨.

“진짜죠?”

“예. 출근한 지 얼마 안 돼서 무리를 좀 했더니 피곤했던가 봐요.”

대답을 듣고도 아무 말 없이 날 빤히 쳐다만 보던 이하연이 조용히 수저를 내려놓는다.

“왜요? 더 안 먹고?”

“정신이 반쯤 나가버릴 정도로 피곤한 사람을 앞에 두고 음식이 넘어가면 그게 사람이에요?”

“아, 그런 거 아닌데…….”

“아니긴요. 아깐 진짜 뭐에 홀린 것처럼……. 휴, 됐어요.”

“음, 그러게요.”

“참네. 지금 댁 얘기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요.”

내가 멋쩍게 대꾸하자, 이하연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가요. 제가 데려다줄게요.”

“괜찮아요. 버스 타고 가면 되는데요, 뭘.”

“제가 안 괜찮아서 그래요. 무슨 남자가 이래? 여자가 에스코트를 해줘야 하고.”

툭툭 던지는 말투인데도 이상하게 사람을 잡아끈다. 그래서였을까.

“저어, 하연 씨.”

“예?”

“…….”

잠시 망설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녜요. 오늘 즐거웠다고요.”

그래, 즐거웠으면 된 거다. 더 이상 미련을 두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나랑 그녀 사이에 놓인 사회적 격차 따위는 둘째치더라도 내가 지금 그럴 때냐고. 이제 막 취직한 상황인 데다, 모처럼 고윤수 주방장님께 배움을 얻을 기회까지 잡았다. 그런데 한눈을 판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순 없지.

“뭐에요? 싱겁게.”

곱게 날 흘기는 이하연에게 말없이 옅은 미소만 지어 보였다.

  *** 집으로 가는 길에 그녀가 물었다.

“그 시계……. 꽤 낡아 보이던데. 의미가 있는 거예요?”

“어? 봤어요?”

“몰랐나 봐요? 자기, 가끔 한 번씩 손목 쳐다보는 거? 그러니 절로 눈이 안가냐고요. 하아, 하여튼 가만 보면 진짜 매너 없어. 여자랑 함께 있으면서 시계를 왜 보냐고.”

“아! 죄송해요. 항상 쫓기듯 살다 보니 그런 습관이 생겼나 보네요.”

“그래서, 그 시계. 누가 준 거?”

“아뇨. 별 의미 없어요. 그냥 오래전에 길거리에서 산 거거든요.”

“흐음, 그렇단 말이죠?”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시계를 차고 있는 내 왼쪽 손목을 흘깃거리더니 갑자기 음악을 틀곤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통통 튀는 목소리로 다시 물어왔다.

“다음 주엔 뭐해요?”

“……아마 출장 나갈 것도 같은데.”

반쯤은 희망 사항이지만, 실제로 그럴 가능성 또한 없잖아 있었다. 고윤수 주방장님이 지나가는 말로 그런 뜻을 살짝 비치기도 했기 때문이다. 출장 나가게 될 때 날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그럼 그 다음 주엔?”

“모르죠. 또 어떻게 될지. 주방장님이 어떻게 하실지에 따라…….”

“아, 쫌!”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소리친 이하연이 불쑥 물었다.

“저 싫어요?”

“예? 아, 아뇨. 그럴 리가…….”

“근데 왜 그래요? 아니다. 일단 싫지 않단 말이죠? 알겠어요. 그럼 됐어요.”

이 여자……. 강적이다. 옛날에 태어났으면 적어도 장군감. 어쩌면 나라를 세웠을지도. 그만큼 추진력 하나는 최고다. 아, 그래서…… 레오파드라고 했던 거구나. 진짜 멘탈 하난 장난 없네. 게다가 영리하기까지 하다. 봐라. 내가 딴말 못 하게 바로 화제 전환하는 거.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죠? 저도 좀 해봐서 아는데, 딱 보니 공부 좀 했을 거 같아. 맞죠?”

쓰게 웃고 말았다. 잘했다. 늘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그래 봐야 중학교 때까지지만. 졸업을 한 학기 앞뒀을 때 부모님께서 돌아가셨고, 그 충격으로 반쯤은 넋이 나가버린 난 공부고 나발이고 할 정신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것만으로도 부족할까 봐 집안에 들이닥친 친척들은 친절하게도 한 손씩 거들어주셨고. 덕분에 우등상은커녕 개근상조차 타질 못했더랬다. 그걸 또 마음에 담아놓으셨는지 외숙모는 아직도 두고두고 그 얘길 하신다. 그때마다 눈물을 글썽거리시면서.

“조금?”

엄지와 검지로 공간을 만들며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자, 이하연이 어이없다는 듯 외친다.

“뭐양! 잘난 체 하는 거? 완전 재수 없다! 흡큭! 그래도 귀엽네. 자기 그거 알아요? 거짓말할 때 한쪽 눈 깜빡이는 거?”

“지, 진짜?”

“풋! 당연히 거짓말이죠.”

와, 이 여자. 진짜 요물이네.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게 진짜……. 안 되겠다. 정신 단단히 챙겨야지. 하지만 소용없었다. 뒤이어 들려온 말은 날 통째로 흔들었으니까.

“혹시 집착하는 거 싫어해요?”

“그게 무슨 얘기죠?”

“집착이요, 집착! 음악이 너무 큰가?”

볼륨을 줄이는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때, 그녀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핸들을 부드럽게 꺾는다. 중형 세단이라 그런지 우회전하는데도 차는 흔들림이 없었다.

“싫어하나 보다. 그럼 전 시크하게 갈게요.”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을 때였다.

“전 좋아해요.”

“……?”

“집착하는 거 좋아한다고요.”

“예?”

“그러니까 집착해달라고!”

두근. 미친! 이 시점에서 가슴이 벌렁거리는 건 뭐냐고. 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모르긴 몰라도 빨개지지 않았을까 싶다. 덕분에 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시선을 창 쪽으로 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연락할게요∼!”

집 앞에 날 내려놓고 인사 대신 마지막으로 이 말만 던지곤 떠나가는 이하연. 그녀가 몰고 사라지는 차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 탁. 방문을 닫고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으…….”

지금 내 상태, 뭐임? 힘든 거야? 아니면 기쁜 거야? 아직도 두근거리는 가슴 위로 손을 가져가 본다.

“이하연.”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름도 이쁘네.”

후우, 세상 참 불공평하다. 예쁘고, 몸매 좋고, 머리도 좋고, 착하고, 센스 있고, 집안도 좋은데 집착까지 해달란다. 진짜 다 가진 여자네. 그런 여자를 가지면 나도 다 가진 사람이 되는 건가? 피식. 그럴 리가 없잖아. 그녀는 그녀. 나는 나인 거지. 그래서 어쩌라고? 좋은 여자라는 건 알겠는데, 내가 지금 그럴 형편이냐고! 그렇긴 한데……. 어우, 갑자기 머리가 확 복잡해진다. 아무래도 힐링이 필요해. 참네, 방금 힐링하고 왔는데, 그것 때문에 머리가 아파서 또 힐링을 해야 하다니. 고개를 내저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 누나.”

- 뭐야, 너. 무슨 일 있어?

“뭐래. 꼭 무슨 일 있어야 전화하나?”

- 장난해? 전화비 나온다면서 쓸데없이 전화하지 말라고 했던 게 누구더라?

“에이, 삐친 거야?”

- 나쁜 새끼. 가족들 전부 걱정하고 있는 거 뻔히 알면서. 가뭄에 콩 나듯이 연락하고. 그리고 내가 네 누나거든? 어디서 까불고 지랄이야? 나중에 보기만 해봐. 확 그냥!

“확 그냥?”

내가 빙그레 웃으며 되물었을 때, 수화기 너머에서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아인가 보다. 큭큭 여동생한테 놀림 받고는 얼굴이 벌게져서 씩씩거리는 수연이 누나가 보이는 듯하다.

- 언니, 나도 나도.

잠시 후, 수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오빠, 나 이번에 교내 수학경시대회에서 금상 탔어!

“진짜? 크아, 우리 수아 대단한데?”

- 히히히. 그럼 나 상 줄 거야?

“당연하지! 외숙모 생신 때 내가 끝내주는 거로 사갈게.”

-피이. 오빠가 돈이 어딨어. 그냥 마음만 받을게.

아이고, 이 요망한 것. 겨우 초등학교 6학년짜리가 한다는 말 좀 보게.

“지금 이 오빨 무시하는 거야? 오빠 요즘 완전 잘나가거든?”

- 진짜?

“진짜!”

- 와아! 그럼 나 라미 샤프 사줘!

- 얘가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지난번에 너 샤프 샀잖아.

- 아앙! 다른 애들도 다 갖고 있단 말이야. 나도 그거…….

막둥이인 수아가 수연이 누나랑 투닥거리는 걸 듣다가 말했다.

“라미 샤프? 알았어. 꼭 사갈게.”

- 와아아아! 오빠 최고!

아, 이게 힐링이지. 내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을 때였다.

- 야, 넌 자꾸 왜 그래? 그러니까 애가 점점 버릇없어지잖아.

“에이, 누나도 참. 샤프 그거 얼마나 한다고.”

- 후우, 엄마가 바꾸래.

조금 소란스럽다 싶더니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외숙모셨다.

“아, 외숙모. 잘 계시죠?”

- 우리야 별일 있겠니? 그런 넌 힘들진 않고?

“에이, 아시잖아요. 저, 사막 한가운데 던져놔도 잘살 놈인 거. 그리고 요즘 진짜 좋아요. 여기 고윤수 주방장님이라고 계시는데…….”

조금, 아주 조금 부풀렸다. 평상시보다 한 톤 높은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얘기 속에서 난 고윤수 주방장님의 수제자였고, 강 회장댁 주방도 내가 없으면 돌아가질 않을 정도로 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게다가 회장님댁 도련님과는 친구 사이로 지낼 정도로 다들 잘해준다는 말까지. 강형식 얘기만 빼곤 사실과는 살짝 달랐지만 상관없었다. 이렇게 말해야 외숙모 마음이 편할 테니까.

- 알지? 우리가 진영이 너 많이 사랑하는 거?

“에헤헤. 쑥스럽게. 아, 알아요. 저도……. 큼, 외삼촌은 아직 퇴근 안 하셨죠?”

- 그 양반은 밤이나 돼야 오잖니. 근데, 옮긴 데는 숙소가 따로 있다며? 거긴 어떠니? 햇볕 잘 들어와? 빨래는? 설마 손으로…….

“걱정 마세요. 말씀드렸잖아요. 이쪽에선 거의 최상급 대우라고. 독방에 침대도 있고, 해도 잘 들어와요. 외풍도 없고 보일러도 빵빵하게 틀어줘서 반팔만 입고 지내는걸요. 따뜻한 물도 콸콸 나오고요.”

- 잘됐다, 잘됐어. 네가 그렇게 고생하더니, 진짜 성공하려나 보다.

- 오빠! 축하해!

- 라미 샤프 사 오지 마!

- 어, 언니!

괜히 코끝이 시큰하다. 그런데도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마음 같아선 밤새도록 핸드폰을 붙잡고 있고 싶지만, 통화료 무서워서 그럴 순 없지.

“숙모. 이만 끊을게요. 예, 예……. 걱정 마시라니까요. 아, 외삼촌한테는 제가 나중에 전화 드린다고 전해주시고요. 그럼, 한 달 뒤에 뵐게요.”

전화를 끊고 나서 다시금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하아. 좋다.”

마음이 푸근해지는 느낌이다. 보고 싶다. 외삼촌도, 외숙모도, 수연이 누나도, 수아도. 좁은 거실에 모여 앉아 TV를 보면서 웃고 떠들던 그때가 그립고, 별거 없는 반찬에도 숙모가 산더미처럼 퍼주신 밥을 먹으며 그날 하루 있었던 일 없었던 일 다 떠들어대던 그 시절이 너무 그립다. 그러니까…… 다! 요즘 공장 사정도 장난 아니라서 언제 잘릴지 모른다던데. 수연이 누나가 과외까지 해가며 돈을 보탠다지만, 그것만으론 집을 사면서 낸 대출 이자 갚기도 벅찰 게 뻔하지. 하아, 외삼촌도 많이 힘들 텐데 얼른얼른 성공해야지. 핸드폰을 들어 가족들 사진들을 열어보곤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그리고 잘까 해서 시계를 봤는데, 아직 초저녁이다.

“자기엔 좀 이르네.”

잠시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다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강형식이라도 만나러 가볼까 해서.

“전화부터 해야 하나?”

아니다. 수납고에 가면 있겠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인데, 괜히 통화료 낭비할 필요가 있나. 가서 없으면 그때 전화해도 되는 거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수납고에 도착했는데…….

“어라?”

불이 꺼져 있다. 이미 해가 완전히 져서 어두워진 하늘을 한차례 올려다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써 들어간 건가?”

하긴 목표로 했던 그 피닌 머시긴가 하는 차의 정비도 끝낸 마당에 이 시간까지 여기 붙어있을 이유가 없긴 하지. 괜히 헛걸음했다는 생각에 툴툴거리며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툭! 누군가와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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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사적으로 사과부터 했다.

“아, 죄송합니다.”

어둠 속이라서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건 분명 내 잘못이니까. 그러고서 고개를 드는데, 처음 보는 남자다. 하기야 이 집 담벼락 안에 내가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된다고. 강 회장 가족은 아니니, 나처럼 고용인이거나 것도 아니면 회사 사람이겠지. 어? 근데, 이 남자……. 날 힐끗 보더니 황급히 고개를 돌리곤 빠르게 걸음을 놀려 사라져버리는 게 아닌가. 뭐지? 사람이 사과를 하면 좀 받아줄 일이지. 그리고 이쪽만 잘못한 것도 아니잖아. 굳이 얘기하면 쌍방과실인데. 어떻게 보면, 다른 곳에 비해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이 아닌지라 주위가 어두워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아씨, 그러니까 여기도 가로등 좀 많이 설치해 놓을 것이지.

“더럽게 친절하네!”

뭔가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빠져 불퉁거리면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얜 또 왜 안 받아?”

몇 번이나 걸어봐도 강형식은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톡이 날아든다. 타이밍도 좋지. 이하연이였다. - 잘 들어갔어요 - 오늘 즐거웠구요 - ㅋㅋ 노루궁뎅이 귀여워 - 죽! 진짜 맛있었어요 - 근데 다음엔 뭐 해줄 거예요? 연이어 날아드는 톡을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급할 때 빼곤 핸드폰 자체를 잘 쓰지 않는 탓에 타자가 익숙지 않은 나로선 따라갈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답톡을 보낸다. - 저도 즐거웠습니다. 잘 들어가셨다니 다행이고요. 내일도 즐거운 휴일 되십시오. 너무 정중한가 싶기도 하지만, 이 정도가 딱 좋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싶다는 생각이니까. 까똑! 와, 엄청 빠르네. - ㅋㅋ 완전 아재 말투 답톡을 날리려다가 멈칫하고 말았다. 무서운 속도로 날아드는 톡을 보느라. - 그래도 괜찮아요. - 내가 상큼하니까! - 나 먹고 싶은 거 생각났는데 - 담엔 된장국 끓여줘요 - 해물 잔뜩 넣고 뭐라고 답을 할까 고민하다가 타이밍을 놓쳤더니, 저쪽에서 알아서 정리해준다. - ㅋ 땀 흘리는 거 보이는 거 같아 - 또 연락할게요 - 잘 자요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느껴졌지만, 이쯤에서 그만둔 느낌이다. 자기가 한 말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겠지. 스스로 시크하겠노라고 선언한 그녀를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재밌는 여자다.

“이만 돌아가 볼까?”

그렇게 막 자리를 뜨려는 찰나였다. 부으으으으. 전화가 들어온다. 강형식이다.

“어, 형식아.”

- 워우! 브라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음성에는 취기가 묻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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