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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나 어떡해? (2) (8/204)

#8. 나 어떡해? (2)2020.10.18.

“뭐 하고 섰네? 앉디 않고.”

준석이 형한테 주방장님도 숙소에 머무신다고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방으로 데려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쭈뼛쭈뼛 무릎을 꿇고 앉는 내게 주방장님이 주전자를 들어 물컵을 채우면서 말했다.

“음식하는 아새끼래 기케 앉으면 쓰간? 기러다 무릎 나가면? 어드래 서서 칼질할 거네?”

얼른 자세를 바꿔 양반다리를 했다. 그 모습을 보지도 않은 채 주방장님이 물컵을 내밀었다.

“입 댄 거 아니니까 고저 걱정 말고 마시라.”

“예. 가, 감사합니다.”

“왜 이리 얼었네?”

“…….”

“내래 니 잡아먹니?”

후루룩. 물잔을 들어 마시면서 주방장님은 피식 웃으셨다.

“기래. 요리는 어케 배웠네?”

“여기저기……. 음식점들이랑 레스토랑에서 배웠습니다. 준석이 형도 거기서 만났고요.”

“기렇구만. 힘들었겠다, 야.”

주방장님 말씀대로다. 힘들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앞날이 막막했던 난 고등학교도 졸업하기도 전에 요식업계로 뛰어들었다. 그땐 진짜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뭐라도 하나 더 배워보겠다고. 양식? 일식? 한식? 그런 거 구분할 여유도 없었다. 누군 요리 학원이네 유학이네 하면서 돈 처발라가며 배우는 요리다. 그런데 내겐 그럴 돈도, 시간도 없었다. 이대로 시간만 보내다간 백수 나부랭이 아니면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 판에 무슨. 무엇보다 돈 때문에 그러는 거면 자신들이 어떻게든 할 테니 꼭 대학을 가라며 우시던 외숙모께 보여드리고 싶었다. 혼자 힘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그리고 당시나 지금이나 외삼촌 댁의 살림살이가 나까지 대학을 보내줄 정도로 그리 녹록하지도 않았고. 더구나 외삼촌의 첫째 딸인 수연이 누나가 막 대학에 입학한 시기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학교는 가는 둥 마는 둥 외숙모 눈을 피해가며 막노동을 하며 돈을 모았고, 주말엔 식당에서 접시를 닦으면서 곁눈질로 요리를 훔쳐 배웠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곤 외삼촌 댁을 나와 식당들을 전전하며 일했다. 안 힘들 리가 있겠냐고. 이제 와서 말이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가라면 차라리 접싯물에 코 박고 죽고 만다. 그만큼 힘든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잠시간 상념에 빠져 있을 때였다.

“기거이 아네?”

“예?”

“세상에서 제일루다가 맛있는 거이 뭐인지.”

뭘까? 요리와 관련된 얘기인지라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고민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내가 뭐라 하는지 보겠다는 듯 빤히 쳐다보는 주방장님의 눈빛 때문에 등짝이 축축해질 즈음 결정을 내렸다. 세상엔 참 맛있는 요리가 많다. 고급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요리도. 스테이크며 한우에 스시……. 세계 삼대 요리라는 달팽이나 송이버섯, 푸아그라도 있고, 북경 오리도 있겠지만, 내가 낸 답은…….

“집밥 아닐까요?”

후루룩.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주방장님이 중얼거리셨다. 들으란 듯이.

“아주 맹탕은 아니구만.”

정답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주방장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어려 있었기에. 스테이크 따위를 내뱉지 않은 게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고. 탁. 안심하고 있을 때, 주방장님이 컵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씀하셨다.

“배고플 때 먹는 거래, 제일로 맛있는 거이지.”

“아!”

그거야 그렇겠지. 사람이 살다 보면 굶기도 하고, 때론 방금 점심을 먹었는데도 허기가 지기도 한다. 당연하겠지만, 배고플 때 먹는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다. 하지만, 나처럼 며칠씩 배곯아 본 사람은 방금 저 말이 얼마나 대단한 얘기인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그렇긴 한데…….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를 하시는 이유가 뭘까?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주방장님이 슬며시 웃으셨다.

“내래 쳐돌았다 생각하네?”

“아, 아닙니다.”

“일 없다, 야. 고저 멀끔하게 생겨 갖고, 흰소리 찍찍해대는데 어드래 기케 생각디 않겠네? 긴데 말이디…….”

뭔가 중요한 말이 나올 것만 같아서 귀를 한껏 기울였다. 아니나 다를까. 본론이 튀어나왔다.

“사람들은 모른다는 거이디. 아니디. 생각할 필요도 없는 거이디. 배고플 때 먹으면 왜 맛있는 디는.”

“…….”

“왜 웃네? 기럼 니래 아네? 배고프면 나무뿌리조차 맛있게 느껴지는 거이 왜 기런디 생각해 본 적 있간?”

“식욕이 막 댕겨서 그런 거 아닐까요?”

“기렇디. 긴데, 굶으믄 식욕이 왜 땡기간? 사람이 한두 끼 못 먹는다고 죽네? 물만 먹고도 며칠은 견디는 게 사람 아니가?”

뭐, 뭐냐? 지금 이 상황은? 뭔가 학교 다닐 때 수업 빼먹고 일하러 갔다가 걸려서 담임선생님께 끌려갔을 때 느낌인데…….

“모, 모르겠습니다.”

그래, 이럴 땐 그냥 납죽 엎드리는 게 낫다. 하지만, 이번엔 판단이 틀린 듯하다.

“기게 다이가?”

“…….”

아무 말 못 하고 있는데 냉담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기만 가보라우.”

헐. 대답 좀 못했다고 바로 축객령이라니. 황당해서 쳐다보고 있자, 주방장님이 일 없다는 얼굴로 날 바라보신다.

“니래 방금 생각하는 거이 포기하디 않았네? 속일 생각 말라우. 니 낯짝에 다 써있어 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 고윤수 주방장님이 한층 더 차가운 눈빛이 되어 날 바라보셨다.

“기렇게 겁이 났네? 대답 좀 못했다고 내래 널 때려죽일 거 같았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속을 들킨 기분이라. 창피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을 때였다.

“회장님 속까지 헤아려가며 국밥 말아드리자고 하던 아새끼가 고작 이 정도에 겁을 집어먹어? 내래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을 잘못 봤어, 야. 겁먹은 개처럼 납작 엎드려서는 생각하는 걸 포기해 버렸는데, 내래 무슨 말을 하갔어?”

머뭇거리다가 덥석 엎어졌다.

“잘못했습니다.”

머리도 못 들고 있는데…….

“일 없다. 기만 가보라.”

말투는 담백하고 착 가라앉아 있는데, 주방장님의 음성에는 실망했다는 느낌이 잔뜩 배어 있었다. 다시 한번 입술을 깨물었다. 동시에 지난날 요리 좀 배워보겠다고 여기저길 기웃거릴 때 받았던 냉대와 함께, 그런 날 대 놓고 비웃던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가야, 까불지 말고 학교나 마치고 와라.”

“설거지도 제대로 못 하는 게 무슨! 해장국이라고 우습게 보는 거냐?”

“야이! 튀김옷을 이렇게 두껍게 입……. 하, 됐다. 넌 가서 테이블이나 닦아라.”

“쟤 미친 거 아냐? 지가 무슨 댕댕이도 아니고 왜 맨날 셰프 뒤만 졸졸 쫓아다니면서 꼬리를 흔들어댄대?”

“병신! 그러면 뭐라도 하나 가르쳐줄 거라고 생각하나 보지.”

“고아라며?”

“그러니까. 하여간 근본도 없는 것들은 어딜 가나 티가 난다니까.”

  아프다. 이제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떠올리니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아픔들이. 차라리 지금 깨물고 있는 입술 쪽이 아프지 않을 정도로. 꾹하고 손을 말아쥔 채 말했다. 먹먹한 심정이 목소리에 고스란히 실려 토해졌다.

“알려주십시오.”

“…….”

“뭐라도 좋습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시키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됐다. 기만 하라.”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기만 하라 안칸.”

한 번 더 기회를 주신다는 건지, 아니면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고윤수 주방장님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방금과는 완연히 다른,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기렇게 숨도 안 쉬고 말하면 안 힘드네? 야 야, 숨 좀 돌리라우. 내래 다 숨이 찬다, 야.”

잠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숙였던 허리를 펴자, 주방장님은 한차례 헛기침을 하시곤 말씀하셨다.

“두 번 말하디 않갔어. 잘 들으라.”

그러곤 설명을 시작하셨다.

“사람이 굶으면 어케 되는디 아네? 뱃가죽이 등까지 달라붙디. 기 다음엔 신호가 오는 거이야. 니래 식도 알디?”

당연히 그 식도를 말씀하시는 거겠지? 준석이 형이 물었으면, 에이 그런 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냐고 했겠지만. 지금은 최선을 다해 대답할 때다. 대답하면서도 내가 꼭 의대생이라도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최대한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목구멍에서부터 위까지 이어진 장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기렇디. 내래 기거이 말한 거이야. 속이 비면 말이디, 그 식도부터 위까지 파도치듯 꿀렁거리고 머릿속에선 밥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거 아니갔어?”

주방장님은 빤히 날 쳐다보시며 되물으셨다.

“긴데, 니래 아네?”

이젠 조금 알겠다. 주방장님의 화법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건 안다. 방금 물은 건 진짜로 묻는 게 아니란 걸. 그러니 대답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다음 질문은 달랐다.

“밥을 아이 먹은 것도 아닌데, 위가 막 쪼그라들고 머리에서 날래 먹을 걸 달라고 개지랄을 떠는 때이가 있다는 거. 기거이 언젠지 아네?”

이번엔 진짜로 묻는 거다. 잠시 생각하는 동안 아무런 말씀도 없이 기다려주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맛있는 냄새를 맡았을 때……인가요?”

“기렇디! 바로 기거야. 고저 사람은 다 똑같은 거이디. 밥 냄새, 고기 냄새, 생선 냄새 맡으면 침이 입안에 고이고 위가 쪼그라들어서 먹고 싶어 환장하는 거이디. 내래 지금 무슨 말을 하는디 알갔어?”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지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피식. 주방장님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내 어깨를 토닥이셨다.

“진수성찬은 따로 있는 거이 아니디. 오늘 회장님껜 국밥 한 그릇이 그거였을 거이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인정받은 것도 같고, 한편으론 뭔가 기대감이 들어서. 고윤수 주방장님은 그런 내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으셨다.

“내일부터 내래 시키는 대로만 하라.”

아…….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뜻밖의 얘기에 눈이 번쩍 뜨이고, 동시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고, 고맙습니다.”

나도 모르게 숙여진 고개.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치고 있었다. *** 그날 이후로 크게 달라진 게 있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동이 트기 전 일어났고, 씻고 출근하면 곧바로 식재료부터 다듬었다. 비교적 단출한 아침 식사라지만, 회장님께선 아침에는 꼭 밥과 국을 드시기 때문에 빵이나 시리얼보단 손이 많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점심이 한가한 편. 회장님댁 가족들이 대부분 출근 혹은 외출을 하기 때문에 무얼 만들든 간에 많아 봐야 3, 4인분 정도였다. 역시 고되기로는 저녁 식사 때가 제일이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때가 가장 배울 게 많은 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기쁜 건, 설거지를 하든 식재료를 다듬든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 심지어 주방장님은 보란 듯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기까지 했다. 딱히 설명을 해주시진 않았지만, 어떨 땐 일부러 천천히 움직이시며 양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또 시간 배분을 어떻게 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주시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악착같이 보았다. 손은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눈만은 항상 주방장님을 쫓았다. 그렇게 사흘인가 지났을 때였다.

“니래 빠스 할 줄 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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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하시는 주방장님도, 듣고 있던 나도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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