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만 들리는 거야? (2)2020.10.04.
아아, 그 말로만 듣던 재벌집 손자? 어……. 잠깐만! 뭐야? 그 강형식이 이 집 손자라고? 그럼…….
“아!”
퍼즐 조각 하나가 더해졌을 뿐인데, 이제까지의 일들이 전부 다 납득되어버리는 이 기적 같은 상황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튀어나왔다. 그렇긴 한데, 뭔가 이상하잖아? 왜 자꾸 그 이름이 언급되는 거지? 아니 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고! 게다가 눈치로 봐선 다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모양인데,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귀신에 홀린 듯한 느낌에 입을 살짝 벌린 채 눈을 껌뻑거리고 있을 때였다.
“충고하는데, 절대로 저 자식이랑 엮이지 마라.”
그럴 일이야 하늘이 두 쪽 나도 있을까마는, 그래도 궁금했기에 물었다. 물론 나도 눈치란 게 있으니까 그저 눈빛으로만. 그래서 그 강형식이라는 재벌집 막내 도련님이 누구냐고. 마음 같아선 지금 내 귀에, 정확히는 나한테만 들려오고 있는 음악과 목소리에 대해서 묻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강형식이란 인물에 대해 물어보는 게 백번 나을 테니까. 역시 준석이 형이랄까.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망나니도 저런 망나니가 없거든. 말 그대로 개차반. 어릴 때부터 사고란 사고는 다 치더니, 결국 쫓겨나다시피 해서 도피성 유학을……. 아무튼 얼마 전 강 회장이 불러서 미국에서 돌아온 것까진 좋은데…….”
말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밖에서 들려오는 심상치 않은 소리들 때문에. 뭘 부수는 건지, 아니면 부딪히는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몰라도 여하튼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인간인 이상 궁금하지 않을 수 없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아니, 것보다 여전히 머리통을 울려대는 음악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따라라라, 라라……. 휴먼 다큐고 지랄이고 간에……. 음, 근데 이거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음악인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무릎을 쳤다. 아! 인간X극장! 음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비슷하다. 어딘지 모르게 처량하면서도 귀에 착착 감기는 선율. 그래서 그런지 자꾸만 귀를 기울이게 된달까. ……확실히 휴먼 다큐멘터리가 맞네. 그리고 그 다큐의 주인공이 강형식이란 말이지? 너무나도 익숙한, 아니 미묘하게 다른 BGM을 배경으로 낯선 음성이 귓속……. 아니 머릿속을 울려대고 있다. - 강형식도 알고 있다. 자신이 집안의 수치란 것을. 그렇기에 집으로 돌아온들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는 걸 모를 그도 아니다. 그럼에도 강형식이 이렇게 낮부터 마신 술에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집으로 돌아온 것은 이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체취와 따스함 때문이다. 그렇다. 그에게 있어 집은 돌아가신 할머니와 부모님의 품이나 마찬가지다. 와, 진짜……. 음악 쫘악 깔고서 쫀득쫀득한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도 마냥 철딱서니 없는 도련님의 몽니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사연이 구구절절한, 그야말로 신파도 이런 신파가 없다. - 그저 강형식은 지금 이 순간 꿀물이 마시고 싶을 뿐이다. 누구라도 좋으니 할머니가 타주시는 것처럼 따스한 물 한 잔에 아카시아 향이 나는 꿀 세 스푼이 들어간……. 아, 미친다 진짜! 쓸데없이 디테일한 레시피 무엇? 그리고 지금 꿀물 타령하게 생겼냐고!
이건 전시로 치면 진돗개 하나? 아니 둘인가? 아무튼, 데프콘과 버금가는 위급상황 아니냔 말이다. 적어도 강형식한테는 그럴 텐데, 무슨 꿀물! - 지금 강형식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줄 수 있는 건 꿀물뿐이기 때문이다. 친절하기도 하지. 설명까지 해주네, 이젠. 그래서 어쩌라고? 나더러 저 난장판에 뛰어들라고? 그것도 한 손에는 꿀물을 들고? 돈다, 돌아. 대체 왜 이러는 건데?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나? 그러니까 강형식 얘기를 왜 나한테 하는 거냐고! 솔직히 나 여기 온 지 하루밖에 안 됐거든요? 그런데 나더러 저기로 뛰쳐나가라? 그거 나보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라는 거랑 진배없거든. 모르긴 몰라도 단 하루 만에 잘리는 꼴이 되고 말 거다. 이게 최소고. 어쩌면 강형식이랑 얽히면서 시비가 벌어질지도 모르고, 그랬다간 그 시비로 인해 서로 치고받는 사태 즉 폭행이 난무, 결국 쇠고랑을 차는 신세가 될지도……. 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해진다. 아니 왜? 다른 사람 다 놔두고 나한테 이러는 거냐고? 도저히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안 가서 혀를 차고 있는 동안에도 밖에선 아주 난리법석이다. 아마 강형식인 뭔지 하는 재벌집 손자가 술을 이기지 못하고 여기저기 부딪히며 내는 소리들 같은데……. 과연 저걸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지. 강 회장까지 갈 것도 없고, 다른 어른들 그중에서도 강형식의 숙부가 그냥 두고만 볼 것 같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예감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그것도 삼류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연출이었다. 철썩하고 아주 찰지게 들려오는 타격음이 막장 드라마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동시에 쩌렁쩌렁한 고함이 주방으로 난 문을 넘어 들려왔다.
“이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어디서 행패냐! 네 눈에는 할아버님이 보이지도 않는단 말이냐!”
목소리가 다소 젊은 거로 보아선 강 회장은 아닌 듯하고, 아마도 강형식의 숙부, 즉 강 회장의 하나뿐인 아들이 아닐까 싶었다. 근데, 저 양반은 자기 아버지가 안 보이는 걸까? 강 회장 앞에서 저렇게 목청을 높여도 괜찮나? 아니면 일부러 저러나? 의아해졌지만, 아무튼 내가 한 추측은 맞았다.
“내 이제껏 돌아가신 형님을 생각해 널 아들처럼 대했거늘, 어떻게 그 나이 먹도록 바뀌는 것이 없는 건지. 뭐하느냐? 어서 할아버님께 사죄하고…….”
강 회장의 아들인 강구철 사장의 목소리가 갑작스레 터져 나온 웃음소리에 묻힌 것도 그때였다. 마치 쇠를 긁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금세 집안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그 소리가 한순간 그치는가 싶더니 술 취한 듯 늘어지는 음성이 들려왔다.
“아, 그러셨구나. 우리 작은 아버지가 날 그렇게 끔찍하게 생각해주셨구나? 근데 내가 그것도 모르고 맨날맨날 사고만 치니까 엄청 쪽팔리셨나 보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허이구, 야. 어느 집에나 막 나가는 자식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지만 것도 집 나름이지. 다른 집도 아니고 재벌가인데……. 어째 좀 위태위태하네. 저러다 엄청 처맞거나, 그게 아니라도 뭔가 큰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데. 걱정스러워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난 다른 의미로 놀라고 말았다. 뭐야? 나만 걱정되는 거야?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인데? 조금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살짝 의아하기도 해서 손가락으로 볼을 긁으며 눈알을 굴리다가 이내 깨달았다. 그러니까, 뭐야? 이게 일상이란 거야? 헐. 뭐 이런 집구석이 다 있어! 이번엔 기가 막혀서 혀를 차고 있을 때였다. 짜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놈! 꼴도 보기 싫으니, 썩 나가!”
한 템포를 두고 뒤이어 들린 목소리에는 어딘지 모르게 비아냥거리는 음색이 섞여 있었다.
“지금 갑니다. 가요. 어!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은 우리 할아버지랑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흐흐흐 옛날 얘기도 하구……. 그러려고 했는데, 술을 마셔서 그런가 너무 힘드네요. 그럼 전 이만 가볼 테니까, 식사들 잘하시고…….”
우당탕거리는 소리. 나도 모르게 한 손으로 얼굴을 문지를 수밖에 없었다. 내 일이 아닌데도, 뭐랄까 민망해졌기 때문이다. 상상이 돼서. 얼마나 취했는지는 몰라도 제 발에 꼬여서 넘어졌다는데 내 전 재산을 걸어도 좋다. 뭐, 전 재산이라도 해봐야 통장에 든, 방을 빼면서 받은 보증금 이백만 원이 전부지만.
“갔나 보다.”
준석 형의 말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었다. 상황 종료. 방금 문소리가 나면서, 데프콘 발령은 끝난 것이다. 근데 이 정도가 일상이라면, 진돗개 하나쯤으로 봐야 하는 건가?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다가 픽하고 웃고 말았다. 아, 그리고……. 머릿속에선 어느새 그 음악도, 낯선 여성의 목소리도 사라지고 없었다. ***
“아까도 말했지만, 본채와는 떨어져 있으니까 일과 시간이 끝나면 자유롭게 지내도 돼. 대신 집 밖으로 나가고 싶으면 경호팀에게 미리 말하는 거 잊지 말고.”
“그럴 일 없으니까, 염려 마세요.”
“자식이. 지금은 아니라도 나중에는 모르잖아.”
“에이, 나중은 무슨. 제가 나갈 일이 뭐가 있어요?”
“또 아냐? 애인이라도 생길지?”
준석이 형이 웃으며 하는 말에 나 역시 웃어 보였다. 물론 같은 웃음이라도 의미는 다르다.
“그럴 돈이 어디 있어요.”
“염병. 그놈의 돈타령은? 너 아직 여자 손도 못 잡아 봤지?”
“그야……. 헤헤. 뭐 그렇긴 한데.”
“자식이! 너 그러다가 마법사 된다?”
“크크큭. 마법사래……. 흡큭.”
생각지도 못한 말에 빵 터져서 코를 들이마실 정도로 킥킥대고 있자, 준석이 형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웃기기도 하겠다. 얼씨구? 지금 그게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웃긴 얘기였냐? 와나, 이 자식을 진짜 어쩌지?”
한참을 웃다가 손등으로 눈가에 맺힌 물기를 닦아내며 말했다.
“저 성공할 때까진 아무도 안 사귈 거예요.”
“못 사귀는 건 아니고?”
“아우, 형이 몰라서 그렇지. 저 학교 다닐 때 인기 많았어요.”
“언제?”
“초……딩?”
“미친!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한숨을 푹 내쉰 형이 불퉁거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해라. 이제 겨우 스물일곱 살인 놈이. 마! 쓸데없는 소리 말고 좀만 기다려봐. 네 형수가 아는 동생한테 네 얘기 해놨다고 하더라. 혹시 아냐? 네 형수 덕분에 내가 또 국수 먹게 될 날이 올지? 내가 진짜,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너 같은 놈을 만나서. 쯧.”
혀까지 차며 돌아서는 준석이 형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두고 봐. 꼭 성공할 거야. 당연하지만, 그때까진 절대로 한눈팔지 않을 거다. 꾹 하고 말아쥔 손에 힘을 불어넣으며 다시 한번 결심을 굳혔다. 여기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반드시 성공으로 가는 문을 열고 말 테다. 반드시.
“보일러가 들어오긴 할 텐데, 혹시 모르니까 이불 잘 덮고 자. 간다.”
방을 빠져나가는 준석이 형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곤 돌아섰다. 그리고 한차례 방을 둘러보았다.
“좋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좋다. 노량진 지하 셋방과 비교한다는 게 미안해질 정도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널찍한 창문으로 비치는 저 달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아, 내일 아침에는 분명 저 창으로 따스한 햇볕이 스며들겠지. 뭐, 그 전에 일어나야 하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팡! 팡! 난 침대에 앉아 보는 것만으로도 포근해 보이는 이불을 두드리며 웃었다. 그러다가 뒤로 벌렁 드러누워 눈을 감아본다. 그래,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다. 눅눅하고 축축한 방구석에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쌀을 걱정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거리를 찾아 길거리를 헤매는 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든든한 직장에 따스한 보금자리. 거기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만 있으면 무슨 걱정이 있을까. 뿐만 아니라 매달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솜털이 바짝 설 정도로 짜릿하다. 게다가 재워주고 먹여주고, 옷까지 준단다. 뭐, 조리사복이야 일할 때밖에는 못 입지만, 방에서는 뭔 옷을 입든 무슨 상관인가. 솔직히 팬티 바람으로 지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는 거지.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입을 옷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시장 좌판에서 산 거지만 청바지도 두 벌이나 있고, 티셔츠도 무려 세 벌이나 있다. 그리고 잠바 한 벌. 그거면 겨울을 나고도 남잖아? 흐흐흐. 이제 돈 모으는 일만 남았다는 거지. 난 기분 좋게 웃음을 흘리다가 이내 정색하고 말았다. 대체 그건 뭐였을까? 아까 강형식이 왔을 때 들려오던 음악과 목소리가 떠오르자 어째 마음 한구석이 찜찜해진다. 휴먼 다큐멘터리라……. 환청일까? 아니면……. 병원에라도 가봐야 하나? 젠장! 첫 월급 받기도 전에 돈 나가게 생겼네. 어우씨. 좋은 일에는 꼭 마가 낀다고 하더니. 근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미치겠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가 없다. 워낙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지금 내 머리론 쉽사리 따라가기 힘들다고나 할까. 그래. 웃기는 얘기지만 차라리 미친 거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납득이나 하겠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 강형식이 나타나기도 전에 음악이 흘러나왔고, 뒤이어 멘트 즉 나레이션이 튀어나왔으니까. 그것도 콕 집어서 강형식의 상태……. 만취한 그의 상황을 정확히 알려주었다는 건, 단순히 나만의 착각 혹은 환청이었다고 치부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게다가 그놈의 꿀물 타령. 돌아가셨다는 그의 할머니와 부모님에 관한 얘기도 그렇고. 오늘 이곳에 온 나로서는 절대로 알지 못하는 부분이잖아. 아, 그건 또 아닌가? 딱히 구체적인 정보가 나온 것도 아니니. 후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모르겠네. 괜히 머릿속만 복잡해지고. 무엇보다도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또 언제부터 이랬는지 알 수가 없다는 거다. 설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뿐,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건 아니겠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일어났다.
“답답해 죽겠네.”
뭔지나 알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침대에서 일어나 창 쪽을 바라보고 섰다가 이내 잠바를 챙겨 입었다. 멀리 나가는 건 아니니까 괜찮겠지. 잠시라도 바람 좀 쐬고 오자 싶어 방을 나섰다. ***
“으으, 춥네.”
바람이 생각보다 차다. 어쩌면 당연한 건가. 10월로 들어선 계절은 이제 곧 찬바람과 함께 겨울로 접어들 테다. 나쁘지 않지. 노상 불 앞에서 일하는 입장에선 차라리 여름보다 겨울이 나으니까. 그래도 좀 춥네. 속에 티셔츠라도 한 벌 더 입을 걸 그랬나? 낮에는 이렇게까지 춥지 않길래 청바지에 티셔츠, 거기에 잠바만 걸치고 나왔더니만.
“그래도 나오니까 좀 낫네.”
복잡하던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후우, 답답하던 가슴도 좀 뚫리는 듯하고. 그나저나…….
“넓긴 오지게 넓네.”
얼마나 넓은지, 사방이 탁 트인 게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질 않는다. 대신 여기저기 깔려있는 CCTV만이 눈에 띌 뿐이다. 지이이잉. 기계음과 함께 돌아가며 내 쪽으로 향하는 렌즈. 그쪽을 향해 손을 흔들려다가 멈칫하곤 고개를 숙여 보였다. 경호팀이라지만, 어떻게 보면 이 집에 먼저 들어온 선배에게 보내는 나름의 인사였다. 그때였다. 차 소리가 들려온 것은. 응? 차 소리?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뭐, 뭐야? 웬 차 소리? 뒤통수에 꽂힐 듯이 들려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저택 안에 직진으로 뻗어 있는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온 헤드라이트 두 개가 허공중에서 비틀거렸다. 그 모습이 마치 도깨비불 같아서 나도 모르게 홀린 듯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끼이이이이익!
“으허어어억!”
타이어가 내는 마찰음이 들린다 싶었을 때, 차가 내 앞에서 멈춰 섰다. 탄내가 코끝을 찔렀다. 미, 미쳤네, 진짜! 난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아. 죽는 줄 알았…….
“어?”
매끈하게 뻗은 차체에서 눈이 아프도록 밝은 헤드라이트가 쌍심지를 켜고 날 비춘다. 와아! 진심 쩐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수퍼카? 한밤중인데도 불구하고 은빛으로 번쩍 번쩍거리는 차체만으로도 간지가 좔좔 흐른다. 낮은 차체만큼이나 날렵한 모습을 드러내며 내 앞에서 멈춰선 차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위이이이이잉. 오오, 문이 올라간다. 말 그대로다. 열리는 게 아니라 올라간다. 하아! 저게 그 걸윙 도어구나! 난 순수한 감탄을 담아 탄성을 내질렀다. 그때였다. 나비가 날개를 펴듯 한껏 올라간 차 문. 아, 그러고 보니 나 치일 뻔했었지. 마음 같아선 버럭 소리치고 싶었다. 대체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냐고!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 인상을 팍 구긴 채 노려보았다. 더럽고 치사하긴 하지만, 이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무래도 이 정도 차를 모는 사람이라면 이 집에 사는 인간일 테니, 고용인인 나로서는 함부로 따지고 들 수도 없으니까.
“……!”
한데, 안에서 비틀비틀 걸어 나오는……. 어? 비틀비틀? 눈을 껌벅이며 쳐다보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근데, 알 것 같았다. 아니, 확신했다. 방금 차에서 내려 몸을 가누지 못한 채 흔들고 있는 남자. 말쑥한 차림에 꽤 잘생긴 얼굴을 한 남자의 이름은 틀림없이……. 강형식! 그가 분명하다……라고 생각되는 건 왜일까? 아니나 다를까.
“뭐야, 시발! 왜 길을 막고 서 있어?”
음성이 아까 들어본 그 음성이 맞다. ……근데, 왜 여기 있는 거지? 의문은 이어지지 않았다. 왜? 강형식이 내 멱살을 잡아 왔기 때문이다.
“큭! 이, 이것 좀 놓고…….”
그리고 내 귀에 강형식의 음성이 날아들었다. 그것은 뜻밖의 질문이었다.
“너 운전할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