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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만 들리는 거야? (1) (1/204)

#1. 나만 들리는 거야? (1)2020.10.02.

그냥 그랬다. 계기가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난 어릴 때부터 다큐멘터리를 좋아했다. 그게 동물 얘기든, 우주에 관한 얘기든 혹은 사람 사는 얘기든, 다큐멘터리를 보는 게 무척 좋았다. 다른 아이들이 만화를 좋아할 때도, 갓 초등학교에 올라가 남들이 한창 게임에 빠져들 때도, 중학생이 되어 친구들이 아이돌을 따라 춤추고 노래하며 노래방에 드나들 때도 난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곤 했다. 그러다 먹고 사는 데 치중하느라 마음의 여유도 사라지고 몸도 지쳐가기 시작하면서 보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아마도 그건 그 무렵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생 자체가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 문을 닫기 전, 나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하아, 더럽게 구질구질하네.”

이런 데서 몇 년을 살았다고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내저어진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까 말까 한 좁은 골목길. 경사가 가파른 노량진의 뒤안길을 기어 올라오다 거의 꼭대기에 이르러서야 마주할 수 있는 대문. 허름한 시멘트 담벼락에 둘러싸인 채 땅에 묻힌 듯 서 있는 작은 집. 그 집 지하 셋방에 틀어박힌 지 4년째였다. 여름엔 눅지고 겨울엔 외풍에……. 열 평 남짓한 지하방엔 햇살 한 줌 들어오지 않았다. 없던 기관지염이 생겼을 정도니 말해 무엇할까. 이제 와 말하지만, 사람 살 곳이 아니었다.

“내가 다시는 이런 곳에서 살면 사람이 아니다.”

침이라도 한번 뱉을까 하다가 말았다. 내가 또 그런 인성은 아니니까. 철컥. 반쯤은 녹이 슨 열쇠로 문을 잠그며 돌아섰다.

“내 참. 번호키 그거 얼마나 한다고.”

월세가 하루만 밀려도 득달같이 전화를 걸어오던 집주인을 떠올리며 인상을 구겼다. 구두쇠 같으니라고. 그렇게 난 지난 4년간, 정확히는 3년하고도 7개월 동안 먹고 자고 뒹굴거리던 셋방을 떠났다. ***  

“짐은 대충 아무 데나 던져 놓고, 바로 내려와. 마음 같아선 하루쯤 쉬게 해주고 싶은데……. 알지?”

“아유, 알죠. 걱정 마세요, 형. 저 잘할게요.”

“그래, 인마. 내 얼굴 봐서라도 잘해. 아니, 사고만 치지 마. 특히 강형식이랑은 엮이지도 말고. 오케이?”

“예? 강형……. 누구요?”

“이 집 손자.”

“이 집 손자요?”

“뭐, 그건 차차 알게 될 거고. 먼저 내려갈 테니까, 준비되면 저기 걸어 둔 옷 입고 내려와라.”

내려가는 준석이 형이 가리켰던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가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새하얀 조리사복. 따지고 보면 저런 옷쯤이야 어지간한 음식점 주방이라면 흔해 빠졌고, 나 역시도 안 입어 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다 울렁거린다. 좋네. 인생 참……. 한 방이구나. 역시 인맥만이 살길이다. 특히 나처럼 학력도 집안도 돈도, 뭣도 없는 놈한테는. 다시 한번 절감하며 옷을 갈아입었다. 그렇게 잠시 후, 아래층으로 내려간 나는…….

“니래 말하던 아새끼가 이 아새끼네?”

“예. 주방장님.”

“서진영입니다!”

한복은 한복인데, 거친 무명베로 지은 갈색 옷을 입은 채 뒷짐을 지고 있는 할아버지. 고윤수 주방장을 향해 허리가 직각이 되도록 숙여 보였다.

“거 아새끼. 목청 한번 크구만, 기래.”

일흔이 넘었다고 하더니만. 허연 머리는 그렇다 치고, 어지간한 청년들보다 더 정정해 보인다. 아니, 건장하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 걷어붙인 소매 아래의 팔뚝 두께만 봐도, 솔직히 말해 나보다 힘이 셀 것 같달까. 한 대 맞으면 골로 갈 것 같은 저 주먹을 보고 있자니, 절로 머릿속에 저분에 대한 소문이 떠오른다. 평안도 출신으로 1.4 후퇴 때 퇴각하는 국군을 따라 월남한 뒤, 접시닦이부터 시작해 온갖 궂은일은 다해봤다던가. 그럼에도 결국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셰프, 아니 요리 장인이 된,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 거의 요리계에선 신화로 통하기 때문인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청와대에서 몇 번이나 요리사로 와달라고 청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걸 또 매번 단칼에 거절한다는 전설 같은 얘기도 있었고. 그런데도 저분이 지금 이곳에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이 집 주인인 강 회장에게 젊은 시절 목숨을 빚진 게 있어서 며칠에 한 번씩만 들여다본다는 조건으로 주방을 맡았다고 했지, 아마? 흠, 솔직히 준석이 형한테서 이런 말들을 들을 때는 전혀 믿기지 않았지만……. 직접 보니까, 어쩐지 사실이 아닐까 싶다. 요리사답게 단단한 체구를 지녔지만 그에 비해 나보다 한 뼘은 작은 키. 그럼에도 온몸에서 뿜어내는 카리스마가 보통이 아니다. 특히 사람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다. 게다가 성격은 또 어찌나 깐깐한지 싫은 일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쓸데없이 허세를 부리거나 잘난 체하는 걸 몹시 싫어한다고 했다. 저분 앞에서 셰프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가는 싸대기 날아오기 일쑤라며 목에 핏대를 세우던 준석이 형을 떠올리며 외쳤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대한 공손하면서도 나름 패기 넘치게 인사했지만, 고윤수 주방장은 턱을 당긴 채 눈을 치뜨고 날 바라볼 뿐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그 시간이 길어지자, 준석이 형이 안절부절못한다. 나야 말할 것도 없었다. 미치겠네, 진짜. 그냥 좀 쳐다보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다리가 덜덜 떨리는 거냐고.

“주방장님, 이제 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김진호 셰프가 나서서야 눈길을 거둬들이는 고윤수 주방장.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 번은 자리를 비워야 하는 자신을 대신해 사실상 이 집 주방을 책임지다시피 하는 김진호 셰프라 그런지 듣는 시늉이라도 하는 듯싶었다.

“기래? 기럼 가야디. 높으신 냥반들, 기다리게 하믄 쓰것네?”

살짝 가늘어진 눈으로 날 한차례 보다가 돌아서려고 하던 고윤수 주방장이 멈칫하더니 이내 눈살을 찡그리셨다.

“긴데, 니래 밥은 먹고 다니네?”

“예? 그게 무슨…….”

“쯧. 굶지 말라우. 기렇게 빼짝 꼴아서야 솥이나 들갔어?”

생각지도 못한 얘기에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가,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고개를 깊이 숙여 보이자, 고윤수 주방장이 헛웃음을 흘리셨다.

“진호야.”

“예. 주방장님.”

“저거이 좀 모자란 것 같디 안칸?”

당황해서 얼른 고개를 들고 눈을 껌벅이고 있는데, 김진호 셰프는 딱히 대꾸하지 않고 그저 지긋이 웃고만 있다. 그럼에도 고윤수 주방장은 이미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만 짤짤 흔들며 돌아설 뿐이었다. 저만치 걸어가는 두 사람으로부터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니 귀에도 내래 칭찬한 거로 들렸네?”

“주방장님께서 살림뿐만 아니라 아랫사람들까지도 살뜰히 챙기시는 거야 다들 알고 있는 거 아닙니까.”

“일 없다, 야.”

“제가 언제 없는 말 지어서 하는 거 봤…….”

“개나발 불지 말고 날래 가자우. 박 회장, 그 영감탱이래 지금쯤 내래 왜 안 오냐고 지랄이갔다.”

무슨 행사인지는 몰라도 김진호 셰프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가는 고윤수 주방장이었다.

“후우!”

그제야 숨통이 트인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힘이 너무 빠진 탓에 준석이 형을 돌아보지도 못한 채로.

“여기 분위기 원래 이래요? 와, 주방장님 포스 장난 아니네. 난 잠깐 뵀을 뿐인데도 숨이 턱 막히는 게…….”

하지만, 대답은커녕 말을 채 마치지도 못했다.

“뭐해? 얼른 와서 감자 안 까고.”

언제 저기로 갔대? 준석이 형이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주방 안은 이미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준석이 형과 여자들, 그러니까 이 집 마나님이 돌아가시기 전부터 있었다는 아주머니 즉 안성댁과 푸근한 인상만큼이나 푸짐한 몸매를 가진 누님 한 분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야 말할 것도 없었다. 지금 시각이 3시.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 이 집의 가장인 강 회장님이 오후 7시면 퇴근할 테고 그때 맞춰서 온 집안의 식구들이 식사를 시작하게 될 터다. 그 시각까지 총인원 13명에 이르는 대식구의 식사를 마련하려면 미친 듯이 움직여도 시간이 모자란다.

“와, 무슨 조선 시대도 아니고 가족이 그렇게 많대?”

주방 한구석에 주저앉아서 감자를 까면서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툭. 누군가 발길질을 해온다. 깜짝 놀라서 내 허벅지를 때리는 검은색 장화 코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들어 올렸다.

“서진영! 말조심하라고 했지?”

인상을 쓰며 속삭이듯 내게 말하는 준석이 형이었다. 그러면서도 연방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아닌 게 아니라 내가 한 얘기를 들었는지, 저만치서 안성댁이 날 슬쩍 흘겨보는 게 보인다. 헙! 얼른 입을 막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나를 커버할 심산인지 안성댁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곤 내게 으르렁거렸다.

“얀마, 너 다시 그 더러운 골방으로 돌아가고 싶어? 내가 말했지? 사고만 치지 말라고!”

머리를 벅벅 긁으며 대꾸했다.

“조, 조심할게요.”

그때였다.

“됐다. 그래서야 숨 막혀서 살겠냐?”

어? 언제 오셨는지, 김진호 셰프가 등 뒤로 지나가고 있었다. 맵시 있게 차려입은 검은 색 조리사복만큼이나 행동 하나하나에서 기품이 느껴진다. 그저 걷고 계신 것뿐인데도 그 뒷모습에서 품격이 느껴진달까. 마흔이 넘어도 멋있을 수 있다는 걸 직접 몸으로 보여주시는 느낌이었다. 남자가 봐도 멋지다는 건 저런 걸 말하는 거겠지. 나름 감동하고 있을 때였다. 준석이 형이 남들 모르게 허공에다가 주먹질을 해 보이며 입만 벙긋거려 얘기했다.

‘말조심해! 알았어?’

‘그, 그럴게요.’

물론 말뿐만은 아니었다. 준석이 형에게 얘기했던 대로 난 약속을 지켰고, 그 후론 아무 일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올 게 왔다.

- 치이익. 회장님 귀가하십니다.

보안팀으로부터 무전이 날아들고. 안성댁과 혜순이 누나가 김진호 셰프가 만든 음식들을 하나하나 내가고, 그 많은 음식들이 커다란 식탁 위에 차려졌을 때였다. 현관문이 열리고 회장님께서 들어오셨다. 뒤로는 한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들을 대동한 채로.

“오셨어요?”

이미 나와 있던 회장님 부인, 이 집 마나님이 죽고 나서 새로 들인 여자라던데, 그래서 그런지 엄청 예쁘다. 아무튼, 이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전부인 즉 마나님과 헷갈리지 않으려고 사모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그 여자가 강 회장의 외투를 벗겨 들고 있는데, 나랑 엇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애새끼들이 줄줄이 튀어나와 인사를 하고 있다. 하이고, 눈빛들 좀 봐라. 주방 한쪽에서 서서 국자로 국통을 저으면서 바라본 풍경은 꼭 TV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재벌가 모습이었다. 가족애? 그런 건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강 회장이야 이 집의 가장이란 건 둘째치고, 대한민국에서도 알아주는 사람이니 거칠 것 없다는 듯 움직이고 있지만, 나머지 식구들은……. 뭐랄까,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고, 서로 간에 견제하는 듯한 모습이 장난 아니다. 저러다가 욕설과 함께 주먹이 오가고 머리끄덩이를 잡고 늘어지는 순간, 드라마는 막장으로 치달을지도. 무엇보다도 진짜 질리는 건, 그 와중에도 그들이 강 회장을 바라보는 눈빛이란……. 뭔가 강렬하게 바라는 듯한, 그래, 탐욕 그 자체였다. 하이고. 이 집만 그런 거야, 아니면 재벌들은 다 저런 거야? 가족 간에 우애는 고사하고 아주 그냥 살벌하기 그지없네. 나더러 저런 데서 가족 중 한 명으로 살라고 하면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대가족의 저녁 식사가 시작된 것은 잠시 후였다.

“먹자.”

강 회장의 한마디에 다들 수저를 든다. 그때부터 들려온 것은 음식을 먹는 소리뿐이었다. ……저러고도 체하지 않는 게 용하네. 나 같으면 진짜 숨 막혀서 한순간도 참지 못했을 거 같은데. 뭐,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니. 어깨를 으쓱이며 식탁이 바라다보이는 창을 닫았다. 그 틈이라 해봐야 1센티도 될까 말까여서 그대로 놔둬도 되겠지만,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보다간 내가 다 얹힐 것만 같아서. 뜻밖의 음악이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따라라라, 라라……. 응? 이건 무슨?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음악과 함께 낭창낭창한 음성이 날아들었다. - 다소 무겁긴 하지만, 무척이나 바쁜 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인 자리인지라 분위기가 나쁘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진 못할 터다. 물론 그 이유가 여느 집과는 다른 재벌집이라선 아니다. 그것은 바로……. 따라라라, 라라……. 뭐지? 이 묘한 음악과 나레이션은? 어디서 TV라도 틀어놓았나?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의아해하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목소리. - 한 남자 때문이다. 바로 이 휴먼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강형식. 그가 이제 곧 들이닥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강형식?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누구였더라? 탤런트인가? 그나저나 방금 휴먼 다큐멘터리라고 하지 않았나? 헐……. 이게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지. 아무튼, 주인공이 강형식이라고? 근데 이거 진짜 어디서 들려오는 거지? 밖에서 들리는 거면 이렇게까지 분명하게 들릴 순 없을 텐데……. 혹시나 해서 쪽창을 살짝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TV는커녕 라디오도 켜져 있지 않다. 강 회장 식구들이 그 어떤 대화조차 없이 식사에만 몰두하는 모습만 볼 수 있을 뿐. 그럼에도 내 귀에는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 오늘도 술을 마신 강형식은 집이 그리웠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그리웠고, 자신을 그토록 귀여워해서 주시던 할머니도 보고 싶었다. 누가 들어도 여성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는 목소리에 난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곤 안성댁과 혜순이 누나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다시 한번 시기적절하게 날아드는 목소리. 마치 알리바이라도 대려는 듯, 목소리의 주인이 그들 두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 강형식은 무엇보다도 꿀물이 마시고 싶었다. 자신이 유학을 떠나기 전 할머니께서 손수 타주신 그 꿀물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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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도 아니고. 어디서 들려오는 거지? 대체 누가 말하는 거냐고? 강 회장 식구 중 한 명인가? 아니 아니. 그건 아닌 거 같다. 아까부터 바늘이라도 하나 떨어지는 소리를 냈다간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서, 더럽게 무겁고 답답한 분위기 속에 식사하고 있는 그들인데 무슨. 그럼 누구지? 대체 어디서 들리는 거지? 설마 귀신? 하, 진짜……. 이게 뭔 일이냐고.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리고 또 계속해서 BGM으로 들려오는 이 음악은 뭐냐고.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데……. 근데, 다들 안 들리는 눈치잖아? 뭐냐고, 이거? 혹시 나한테만 들리는 건가?

“혀, 형.”

“왜?”

“지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

쾅! 주방으로 통하는 창문 너머에서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내 목소리가 삼켜지는 순간, 준석이 형이 인상을 팍 구겼다.

“후우, 요즘 뜸하다 싶었다.”

고개까지 설레설레 내젓는 형을 보곤, 사태가 꽤 심각하다는 걸 직감했다. 워낙 크게 들려온 소리라 흠칫하기도 했고.

“뭐, 뭐야!”

내가 방금 물으려던 것도 잊고서 놀라 준석이 형을 바라보자, 형이 어깨를 으쓱거린다.

“쉿!”

뒤늦게 실태를 깨닫곤 급히 입을 막고 있을 때, 준석이 형이 말했다.

“말했지? 금방 알게 될 거라고.”

“그게 무슨…….”

“강형식.”

“에?”

누구라고?

“방금 뭐라고 그러셨어요? 강형식이요?”

아니 여기서 그 이름이 왜 나와? 강형식이라면 아까 그 여자가 말한 이름이잖아. 살짝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해서 물었지만, 형은 내 질문엔 대답하지 않고 밖을 내다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렇게 쪽창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준석이 형이 조심스럽게 내 귓가에 대고 속닥였다. 여전히 주방 안에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한잔 걸쳤나 보네.”

“누가요? ……강형식?”

고개를 끄덕이는 준석이 형에게 한숨과 함께 물었다.

“그러니까, 그…… 강형식이 누군데요?”

“누군 누구야.”

“……?”

“이 집 막내 손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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