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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177화 (177/179)

신계

“쳐라!”

천공성에 진입하자마자 고함이 귀를 때렸다. 누군가의 지시가 떨어짐과 동시에 수백의 전사들이 돌진했

다.

그들을 보며 유선우가 휘유, 휘파람을 불었다.

“무장이 좀 다르네요.”

여태까지 본 전사들은 순백의 갑옷과 장검으로 장비를 통일하고 있었다. 반면에 지금은 갑옷이 황금색이

었고, 쥐고 있는 무기도 각각 다양했다.

“실력도 다르겠지.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겠다만.”

대수롭지 않게 말한 백명이 주먹을 뻗으려 했다.

부웅!

그때 뒤편에서 거대한 도끼가 날아왔다. 피격한 전사들의 몸이 처참하게 짓뭉개졌다. 다섯이 쓰러진 뒤

에야 내구력이 다했는지 도끼가 부서졌다.

“와오.”

유선우가 괴력에 감탄하며 뒤를 돌아봤다. 서로를 밀치면서 천공성의 문턱을 넘는 초월자들이 보였다.

그 선두에는 사납게 웃는 거구의 사내가 있었다.

“둘이 다 해먹으려는 건 아니겠지. 적당히 하고 그냥 올라가게.”

“누구세요? 낙원에서 본 적 없는데.”

“흥. 그땐 네놈이 코찔찔이였었으니까. 본좌는 쓰레기와 어울려줄 정도로 한가하진 않다.”

아, 그러시구나. 유선우는 대충 받아넘겼다.

본좌충이랑은 어울려서 좋을 게 없다.

“그래서 제자 넘기라고 지랄지랄 했었나?”

“그, 그런 적 없다!”

백명의 말에 사내가 길길이 날뛰었다. 씩씩거리는 사내의 귀 끝이 불그스름하다. 유선우는 못 볼 걸 봤다

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떠드는 와중에도 전사들은 제 목숨을 도외시하고 밀어닥쳤다. 시시각각 달려오는 초월자들과 격돌해 난

전이 벌어졌다.

유선우와 백명은 허공으로 붕 떠올라 주변을 탐색했다. 마치 사냥감을 찾는 맹수처럼.

곧 네 개의 눈알이 거의 동시에 중앙 계단을 향했다. 헐레벌떡 위층으로 달려가는 반나체의 남성이 포착

됐다.

파직!

어느새 번개를 휘감은 백명이 남성의 앞에 나타나 다리를 휘둘렀다.

남성은 경악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두 팔을 들어 올렸다. 그의 팔이 진득한 용암으로 변해 백명의 다리를

뒤덮었다.

푸욱!

그때 남성의 가슴팍에서 창끝이 튀어나왔다. 맺혀 있던 보랏빛 기운이 폭발하자 용암이 사방으로 흩어졌

다.

백명의 손에서 뻗어진 백색의 선이 용암 파편과 이어졌다. 그곳을 중심으로 뇌전의 사슬이 증식해 넓게

퍼졌다. 모든 파편이 엮이자 흡인력이 작용해 용암을 밀집시켰다.

그리고 창이 다시금 용암을 찔러 터뜨렸다.

같은 과정을 반복하기를 다섯 번.

그제야 남성이 본모습으로 돌아와 바닥에 주저앉았다.

“배, 백명! 살려……!”

말을 끝맺기도 전에 놈의 목이 떨어졌다. 절단된 머리가 계단을 데구르르 구른다. 그것을 힐끗 쳐다본 유

선우가 창대를 어깨 위에 올렸다.

“아는 놈이에요?”

“글쎄다… 기억 안 나는구나.”

“인상이 흐릿하긴 하네요.”

그렇게 말한 유선우가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 죽였는데도 얼굴을 까먹어버렸다.

“이거 몇 층까지 있을까요? 바깥에서 보니까 더럽게 크던데.”

“직접 올라가 보면 알겠지.”

“하. 엘리베이터 없나.”

유선우는 불평하면서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계단의 끝에 도달하자 시야가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뒤틀림이 멎었을 때는 발밑이 뭉글뭉글한 구름으로 변해 있었다. 고개를 올려보니 탁 트인 하늘이 보였

다.

“와, 신기하네.”

“층마다 다른 차원으로 연결된 게다. 만드는 데 고생깨나 했겠군.”

진짜 갖고 싶다.

유선우의 눈에서 탐욕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리고 발밑도 뽀글뽀글 끓어올랐다. 구름이 두드러기 난 살결처럼 기포로 뒤덮였다. 곧 기포가 펑펑 터

지면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놀래라.”

유선우가 전혀 안 놀란 목소리로 말하면서 발을 굴렀다. 주변으로 한기가 퍼져 불기둥이 가라앉고 구름이

얼어붙었다.

빙판을 만드는 사이 백명은 저만치에 떨어져 있었다. 백광이 번쩍거릴 때마다 비명이 터져 나온다. 소리

가 멎은 것은 섬광이 열 번쯤 깜빡인 뒤였다.

빛의 속도로 처맞은 네 남녀가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그들을 보던 유선우는 어깨에 올린 창을 미끄러트

려 후방을 찔렀다.

“아아아악!”

그의 뒤에서 나타난 드레스 차림의 여성이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안구에 꽂힌 창에서 불길한 보라색 광

채가 번쩍였다.

콰직!

창끝에 맺힌 기운이 폭발해 여성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유선우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저 고

깃덩이가 등에 달라붙는 감각만을 느꼈다.

***

유선우와 백명은 파죽지세로 층을 올랐다. 맞닥뜨리는 적은 갈수록 적어졌고, 마주쳐도 숨거나 달아나기

에 급급했다. 그새 1층도 정리되었는지 초월자들이 하나하나 따라붙었다.

정말로 질릴 정도로 오르고 올랐다.

50층인지 100층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숫자도 세지 않게 됐다.

슬슬 너도나도 빡쳐갈 즈음.

신성한 빛이 내리쬐는 신전의 모습이 나타났다.

유선우는 한차례 신전을 둘러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위기상으로는 맞는 것 같은데… 아무것도 없네요. 더 가야 하나?”

예상 밖으로 문지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신전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병력은커녕 적막함만

이 짙게 깔려 있었다.

“아니, 내가 알던 의회 건물이다. 이제는 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마는… 그렇다면 진작 부쉈겠지. 천공성

안으로 옮기지도 않았을 것이고.”

새 건물을 지었다면 이 신전은 철거됐어야 정상이다. 의회는 신계에서도 특별한 상징성을 지니니까. 기

존의 건물을 남겨둬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다.

“건물 이전하진 않았단 거네요. 근데 왜 아무도 없대.”

“글쎄다. 일단 들어가자꾸나.”

그들은 잠깐 눈을 굴리다가 발을 내디뎠다.

내부로 들어가자 빛이 가득한 복도가 드러났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황금색 광채가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신성하면서도 화려한 광경이었다.

“허전한데.”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말마따나 신전은 바깥이나 안이나 허전했다. 상주하는 병력은커녕 개미 한 마리

보이질 않았다.

기묘한 정적에 초월자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입을 다문 채 빛이 내리쬐는 길을 걷고 걷는다.

발걸음을 거듭할수록 다리에 무게가 실린다.

홀린 듯이 걷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시야 끝에 문이 활짝 열린 방이 나타났다.

수십 쌍의 눈알이 그 안으로 집중됐다.

날붙이를 결합해 만든 거대한 옥좌.

그곳에 한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조금 늦었군.”

철처럼 단단한 목소리가 내리깔렸다. 남자의 붉은 눈동자에 침입자들이 담겼다.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시선이다.

초월자들의 얼굴이 납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공포, 혹은 혐오감. 그들에겐 생소한 감정이 발밑에서부터

기어올랐다.

그중에서 백명만이 태연히 파,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옥좌까지 만들었나. 거 대단한 새끼군그래.”

본래 신계에 옥좌는 없었다. 의회의 구성원들이 앉는 자리는 바보같이 기다란 테이블 앞이었다.

두런두런 앉아 같은 눈높이에서 여러 사안을 논하곤 했었다. 백명도 이따금 참관했었기에 그 분위기를 기

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개뿔도 아닌 모양이다.

“그렇게도 원하던 곳에 앉으니 기분이 어떻더냐, 아트마.”

“무거울 뿐이다. 주신의 자리는 사리사욕으로 짊어지는 것이 아니니.”

“지랄하네.”

잠자코 있던 유선우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비아냥에 아트마의 핏빛 눈이 유선우를 향했다.

“프흐흐.”

다시금 웃음소리가 흘렀다. 백명이 발을 내딛자 아트마의 시선이 되돌아갔다.

“지랄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다른 놈들은 다 어디 갔지?”

“조금 전에 카르밀라가 잠들었다.”

아트마가 옥좌의 팔걸이 끝부분을 쓰다듬었다. 그의 손등 위로 검붉은 기운이 선향처럼 피어올라 여자의

얼굴을 그렸다. 여자는 소리 없이 울부짖고 있었다.

“질서를 위한 희생이었지. 그녀도 선뜻 이해해주더군.”

알 만한 개소리였다. 아트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유선우도 적막함의 이유를 파악할 수 있었다.

‘어이없는…… 아니, 좀 웃긴 새끼네.’

유선우는 몇 분 전의 상황을 상상해봤다.

아트마는 초월자들이 천공성을 오르는 사이 제 동포를 먹어치웠겠지. 혹은 낙원이 열리자마자 포식을 시

작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후자였으면 루프 님 사슬이 진작 풀렸으려나.’

정확한 시기는 불확실하다. 어쨌건 아트마가 다른 신들을 먹어치웠음은 분명했다.

‘이유는 뭐. 스승님 이길 자신 없었겠지.’

원래 급해지면 금기에 손을 뻗기 마련이다. 여태까지 봐와서 아는데 사람이든 신이든 똑같다.

모르긴 몰라도 죽은 놈들도 열심히 튀었을 거다. 카르밀라인지 뭔지의 원통한 얼굴을 보니 가만히 대준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까 아트마도 빨빨거렸을 게 분명하다.

‘그 지랄해놓고 여기까지 돌아와서 있는 척 오지게 하는 거 아냐?’

호다닥 달려와 옥좌에 앉는 모습을 상상하니 모양새가 우습다. 솔직히 좀 등신 같다고 할지.

‘근데 나만 이런 생각하나?’

유선우는 아닌 척 양옆을 곁눈질했다. 엔라와 이화는 물론 본좌충 아저씨도 얼굴이 심각하다.

웃는 건 백명뿐이다.

역시 스승이라 마음이 통하는 걸지도 모른다.

“희생이라. 웃기는 개소리다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군. 팰 것이 줄어버렸으니.”

이죽거린 백명이 느릿하게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그만큼 네가 맞아줘야겠어.”

파지직!

백명의 신형이 사라지더니 잔불처럼 스파크가 일었다. 아트마는 동요하는 기색도 없이 좌측으로 손을 뻗

었다.

아트마가 펼친 손바닥이 은밀하게 다가오던 백명의 주먹을 붙잡았다. 곧이어 허공에서 아귀의 입이 튀어

나왔다.

쿠르릉!

천장에서 벼락이 내리쳐 아귀를 찢어발겼다. 백명이 떨어진 벼락을 손에 쥐었다. 검처럼 벼려진 뇌전이

아트마의 가슴을 갈랐다.

벌어진 흉부에서 검붉은 손이 뻗어진다.

손이 터지면 그곳에서 머리가.

머리가 잘리면 짐승의 발톱이 튀어나온다.

지켜보던 유선우가 인상을 구겼다.

‘으, 징그러워.’

피가 안 나오니 더 별로다.

이빨 딱딱거리는 소리도 묘하게 신경을 긁는다.

유선우가 질색하는 사이에 일행들이 정신을 차렸다.

특히 백명의 오랜 전우들이 분노를 불태우며 달려들었다. 이화도 사나운 낯을 짓고 푸른 불꽃을 휘감은

검을 휘둘렀다.

어느새 거리를 벌린 백명이 양팔을 뻗었다. 수천 갈래의 번개가 옥좌에 내리꽂혔다.

백색의 광채가 겹치고 겹쳐 안구가 타버릴 듯한 섬광을 낳는다. 벼락이 폭우처럼 쏟아진다.

그 속에서 핏빛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아트마의 모습이 사라지고 텅 빈 눈의 아귀가 나타나 빛을 집어

삼켰다.

사아아아-

붉은 장막이 펼쳐져 공간을 감쌌다. 장막에는 수십의 실선이 그어져 있었다. 아귀가 몸을 일으키자 선이

일제히 위아래로 벌어졌다.

눈알, 눈알, 눈알.

큼지막한 눈알이 가득하다.

시뻘건 홍채 속에서 누군가의 팔이 튀어나온다.

가늘고 굵은 손들이 허공을 휘적거리다가 한 초월자를 붙잡았다. 곧바로 무수한 손이 달라붙어 그를 눈

안으로 잡아끌었다.

우드득, 콰득!

무언가를 물어뜯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끌려간 초월자는 다신 바깥으로 나오지 못했다. 손만이 아무 일

도 없었다는 듯 뻗어져 허기짐을 호소했다.

초월자들은 차마 아귀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팔에서 팔이 돋아나면서 제멋대로 길어지니 피하기에도 급

급했다. 백명만이 즐겁다는 기색으로 아귀와 사투를 벌였다.

한편으로 유선우는 틈을 노리고 있었다. 그는 다가오는 팔을 대충대충 잘라내고 전황을 살폈다.

백명이 흡, 숨을 흘리며 발을 굴렀다. 황금색 바닥이 갈라지고 틈새에서 새하얀 작살이 솟구쳤다.

아귀가 쩍 벌어진 입으로 뇌전을 먹어치웠다. 놈이 입을 다물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벼락을 뱉어내려

는지 입안에서 백색 광채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지금이다.’

유선우의 눈이 번뜩거렸다. 그의 손에 하나의 사슬이 잡혔다.

투명하지 않은, 선명한 청색의 사슬. 열쇠가 아니라 루프라테스를 묶고 있던 쪽이었다.

루프라테스를 풀어줄 때 몰래 슬쩍해왔다.

촤르륵!

정확하게 아귀의 목에 사슬이 휘감겼다. 일순간 놈의 움직임이 멈추더니 핏빛 기운이 눈에 띄게 불안정해

졌다.

머금었던 벽력이 통제에서 벗어난다. 빛이 번쩍거리며 놈의 머리가 일부분 날아갔다.

그리고 텅 비었던 눈에 눈동자가 생겨났다.

아트마의 적색 눈. 그 안에서는 숨길 수 없는 당혹감이 몰아치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아트마가 싸우다 말고 유선우를 노려봤다. 유선우는 빙긋 웃으며 사슬을 아래로 휘둘렀다.

콰아아앙!

거대한 아귀가 지면에 처박혔다. 엎어진 놈을 쳐다보며 유선우가 미소지었다.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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