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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168화 (168/179)

명계, 중층

유선우와 엔라는 여전히 이슬라와 동행하고 있었다.

여태까지와 다른 점은 이슬라가 앞장서지 않고 있다는 것. 그녀는 길잡이 역할을 하면서도 보호받듯이 중

간에 껴 있었다.

“여기서 오른쪽이에요. 함정 있으니까 바닥 조심-”

부우우웅!

경고하기 무섭게 전방에서 두꺼운 통나무가 날아들었다. 고전적인 함정이었다.

유선우가 창을 내밀어 막아내자 웬 금속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지역의 특성인지 나무가 죄다 철처럼

단단했다.

“그냥 앞으로 가지? 일부러 방해하는 거야?”

엔라가 입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유선우와 손을 잡은 채 걷고 있었건만. 이슬라

가 주제도 모르고 끼어드니 굉장히 기분이 불쾌했다.

“여기 혼자 다녀본 적은 없어서. 무섭잖아요. 저거 봐요.”

이슬라가 멋쩍게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나무 위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눈이 다섯 개 달린 짐승이 가지에

올라타 있었다. 짐승은 낮은 울음소리를 내다가 유선우를 보곤 꽁무니를 내뺐다.

“이상한 게 다 있네. 뭐예요?”

“방금은 위간이라는 놈인데, 더럽게 빨라요.”

“여기 사는 애들이에요?”

“정확히는 풀어놓은 거죠. 우리… 그러니까 저 같은 사람이 벗어나지 못하도록.”

유선우는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수는 공격 안 받는 거고요.”

“그런 셈이에요.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일행은 철조망 같은 잎사귀들을 치우며 앞으로 나아갔다.

5분가량을 걸어가자 풍경이 바뀌었다. 울창한 나무들은 사라지고 탁 트인 장소가 드러났다.

“와. 진짜 마을이네.”

잿빛의 풀밭 위에 세워진 드높은 목책. 조악하지만 망루도 있었고, 경비대라도 되는지 경계 중인 사람들

도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은 유선우 일행을 향해 있었다.

“누구십니까?”

길쭉한 창을 들고 문 앞을 지키던 한 남자가 달려왔다. 그가 경계하는 눈초리로 유선우를 살펴봤다.

“혹시 위에서 내려오셨는지요. 죄송하지만, 이번 달 상납을 치른 게 바로 그저께입니다. 다른 곳을 알아

보심이…….”

“나야 나. 안 보여?”

이슬라가 말을 끊고 앞으로 나섰다.

남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하더니 이내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남자는 반갑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가, 그

녀의 목덜미를 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왜 여기 계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돌아가십시오. 당신이 있으면 마을이 위험해집니다.”

“나도 다 알아. 그런 걱정 안 해도 되니까 일단 비켜.”

“비킬 수 없습니다.”

남자가 창을 내밀어 위협하는 자세를 취했다. 유선우가 창을 툭 치워주자 이슬라가 씩 웃으면서 문으로

걸어갔다.

이슬라는 주위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고개를 돌려 밝은 얼굴로 말했다.

“누추하지만 들어오세요.”

***

유선우와 엔라는 마을 한가운데의 커다란 집 앞에 서 있었다. 죄수들의 마을이니만큼 폐쇄적인 분위기인

지 따가운 시선이 곳곳에서 쏘아졌다.

한편으로 콧물을 찔찔 흘리며 다가오는 아이도 한 명 있었다.

“오빠, 언니. 여기서 뭐해요? 벌 받아?”

“얘는 또 뭐야. 쉬쉬!”

뚱한 낯을 지은 엔라가 꺼지라며 손짓했다. 그녀의 매정한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긴 유선우가 혀를 찼다.

“애한테 왜 그래?”

“애는 무슨. 너보다 나이 훨씬 많을걸?”

“…그런가? 어째 기분 이상하네.”

생각해보면 다들 최소 수백 살은 먹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이제 27살 먹은 유선우는 명계에선 거의 갓난

아기 수준이다.

그의 표정이 거북하게 변하자 아이가 손가락질하며 깔깔 웃었다.

“아하하! 어른인데 혼난대. 나잇값도 못 해!”

“너나 나잇값 해, 이 새끼야.”

유선우가 불량하게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그가 N살 아이와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집의 문이 열렸다.

이슬라가 문밖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녀가 미안하다는 기색을 내비치며 말했다.

“오래 기다리셨죠? 들어오세요.”

“아, 네.”

“빨리 좀 나올 것이지.”

“죄송해요. 사정 설명이 조금 오래 걸려서. 근데 언니는 거기서 뭐 하세요?”

이슬라가 아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아이가 유선우처럼 땅바닥에 침을 뱉었다. 치아 사이로 가래

침이 찍 나오는 게,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엉. 그냥 이 새끼들 뭔가 해서. 오랜만에 보니까 좋네. 수고해.”

“네. 들어가세요.”

둘의 대화를 들은 유선우는 황당함에 허,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뒤통수가 얼얼하다. 그는 혼이 반쯤 빠져

나간 채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에는 이슬라 외에도 다른 인물이 한 명 자리해 있었다. 눈에서부터 현기가 드러나는 중년의 사내였

다.

사내는 유선우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그가 공손한 어조로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위대한 분이시여.”

“어, 저요?”

“달리 누가 있겠습니까. 만나 뵙게 되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조롱이나 과장이 아닌지 사내는 말하고도 허리를 펴지 않았다. 인사를 받아주지 않으면 계속 숙이고 있을

작정인 모양이었다.

유선우는 맘대로 하라고 5분 동안 입을 다물었다.

“……크흠!”

그쯤 되니 쪽팔렸는지 사내가 상체를 일으켰다. 묘한 분위기 속에서 유선우가 말문을 열었다.

“그래서 이슬 씨. 슬슬 들어볼 수 있겠죠? 그쪽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

“딱히 대단한 사람은 아니에요. 뭐라고 해야 하나… 여기 촌장 같은 거였죠.”

아까는 듣지 못했던 얘기. 숨겼다는 것이겠지만, 유선우는 굳이 태클을 걸진 않았다.

애초에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에게 솔직하게 얘기하는 쪽이 이상한 것이다.

“제가 끌려간 뒤로는 여기, 시한이 맡고 있고요. 미리 뽑아둔 게 다행이었죠.”

“과분한 자리입니다.”

“관심 없고. 우리한테 원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그거나 말해봐.”

엔라의 쌀쌀맞은 목소리에 시한이 나서서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는 가축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적치를 모으기를 강요받고, 상납을 거부하면 노예가 되어 팔려

나가죠. 간수들은 죗값이라고 말합니다만 저도, 이슬라도 남들보다 더한 죄를 지은 기억은 없습니다.”

“어떻게 사는지는 오면서 들었어요. 불쌍하긴 했는데, 제 팔자지 싶더라고요.”

감성팔이는 됐고 본론이나 꺼내라. 그렇게 알아들은 시한이 멋쩍게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저희가 두 분께 요구하는 건 딱히 없습니다. 그저 들었을 뿐이지요.”

“들어? 뭘요?”

“지금의 체제에 저희보다도 분노하는 이들이 있다고. 신계마저도 두려워하는 존재들이 명계의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고요.”

유선우는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틀림없이 낙원에 대한 얘기다. 말로 들으니 거창해 보이

긴 했으나 과장이랄 것도 없었다.

실제로 백명은 신계를 뒤엎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 유선우가 낙원의 문을 연다면 신계에 앞서 먼저 명계

부터 정리될 터.

그로 인해 죄수들은 부당한 처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눈앞의 이들은 가만히 있어도 떡고물을

받아먹는 입장이라는 거다.

‘이거 좀….’

배알이 꼴린다.

물론 인성 파탄자도 아니니 남 좋은 일을 하는 건 괜찮다. 하지만 ‘공짜로’ 해준다는 게 굉장히 맘에 안 든

다.

“그래요,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누구한테 들었어요?”

“그것이… 저희도 잘 알지 못합니다.”

“이게 말이야 똥이야. 촌장, 이렇게 나오면 섭섭해.”

엔라도 유선우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표정이 더욱 시큰둥해졌다. 분위기가 나빠지자 이슬라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수습하려 들었다.

“지, 진짜예요. 저번에 짐승 하나가 마을로 들어온 적이 있었어요. 그 짐승이…….”

“개나 돼지가 알려줬다 이거예요? 좀 실망인데.”

“아니, 진짜로!”

이슬라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실 유선우는 딱히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 별의별 신기한 새끼가 다 있는 세상인 만큼 그럴 수도 있다

고 여겼다. 관리자 중에도 까고 보면 짐승같이 생긴 놈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럼 그렇다고 칩시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저흰 아마 그쪽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거예요. 알다시피 그

쪽한테도 두 번 다시 없을 기회인 셈이죠. 그런데 문제는….”

유선우가 돌연 어두운 안색으로 말을 흐렸다.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챈 엔라가 바통을 받았다.

“명계가 어디 보통 위험한 데야? 게다가 우리는 하층으로 가야 돼. 어떤 곳인지는 들어봤겠지?”

“하층 말입니까….”

시한과 이슬라가 침을 꼴깍 삼켰다.

하층. 간수들마저도 두려워한다는 마경. 그곳은 환경부터가 지랄 맞아 걷기도 힘들며, 포악한 마수가 우

글거린다고 한다.

이슬라는 유선우의 실력을 일견했음에도 여전히 하층이 두렵게 느껴졌다. 긴장을 눈치챈 엔라와 유선우

가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여기까지는 어찌어찌 잘 왔어도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우리한테도 도박이나 다름없다 이거야.”

“그쪽 얘기는 굉장히 마음이 아파요. 저희가 실패하면 X 같은 수감 생활도 그대로겠죠.”

“괜히 들어서 어깨가 무거워졌단 말이야. 어?”

“그래서 말인데.”

유선우가 말했다.

“부담 말고 도움을 받고 싶네요. 몰래몰래 준비해둔 거 한둘은 있겠죠?”

있는 건 받아가야지.

날먹은 사양이다.

***

이슬라는 집안의 한구석에서 길쭉한 작대기를 꺼내왔다. 그녀는 구멍이 송송 뚫린 바닥에 작대기를 꽂고

돌렸다.

철컥.

그대로 작대기를 잡아당기자 밑바닥이 문처럼 열렸다. 문 안쪽에는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다.

“이쪽이에요.”

이슬라가 불빛도 없는 지하로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지하실의 입구를 쳐다보던 엔라가 감탄을 흘렸

다.

“완전 영화 같아.”

“그거 내가 할 소리 아닌가?”

“나도 할 수 있지 왜. 나 요즘 사람이야.”

“요즘 사람은 요즘 사람 같은 말 안 써.”

유선우와 엔라는 잡담하며 이슬라의 뒤를 따라갔다.

생각보다 계단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공간의 폭도 비좁아 창고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어라.”

맨 밑까지 내려가자 생각지도 못한 것이 보였다. 흐릿하게 피어오르는 회백색의 기류. 포탈이었다.

유선우보다 엔라가 먼저 반응을 보였다.

“뭐야. 포탈이 왜 여기 있어? 중층에선 보기도 힘든 건데.”

“그래?”

“구역마다 있는 건 상층만 그래. 여기는 다 합해서 10개도 안 될걸.”

“포탈은 저희가 쓰라고 있는 시설이 아니니까요. 이건 비인가 포탈이에요.”

이슬라가 설명을 이었다.

“제가 명계에 오기 전부터 있었다고 들었어요.”

“신기하네. 누가 만들었나?”

“저도 잘은 몰라요. 그냥 있으니까 쓰는 거지.”

그렇게 말한 이슬라가 포탈로 발을 내디뎠다. 유선우와 엔라는 서로를 잠깐 쳐다보다가 기류 안으로 들어

갔다.

넘어간 장소는 지하실과 마찬가지로 어두컴컴했다. 하지만 포탈만 덩그러니 놓여 있던 곳과는 천지 차이

였다.

어지간한 집보다도 넉넉한 넓이.

벽마다 적혀 있는 의미 모를 문구와 그림.

그리고 가지런히 보관된 각종의 무구들.

인상적인 실내였다.

그러나 유선우는 장소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보다도 눈에 밟히는 게 있었다.

“쟨 또 누구야.”

한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는 흑발의 여성이 보였다. 뚫어지라 쳐다보자 여성도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춰왔

다.

“역시 이곳으로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뭐?”

그 말에 유선우는 뒤통수를 맞았나 싶어 이슬라를 쳐다봤다. 예상 밖으로 이슬라의 표정은 경악에 차 있

었다.

그녀가 뒷걸음질하며 중얼거렸다.

“여, 여기를 어떻게…!”

“누군데 그래요?”

물음에 여성이 한 발짝 다가오며 고개를 숙였다.

“중층을 맡은 이화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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