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왔어?
한국 시각 기준으로 5월 7일의 아침.
유선우는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귀국길에 올랐다. 그는 개인 항공기의 좌석에 앉아 하품을 찍찍 내뱉었
다.
“선우 씨, 피곤해 보이네요?”
그 모습을 지켜본 박아연이 말을 건넸다. 조롱과 언짢음이 반씩 섞인 어조. 간밤의 일에 대해 눈치챈 기색
이었다.
“네, 조금. ”
유선우는 괜히 먹이를 주지 않고 가볍게 수긍했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캘린더를 확인했다. 내일 날짜
를 보니 어버이날 표시가 떡하니 떠올라 있었다.
‘부모님도 만나 봬야겠네.’
- 효자다, 효자. 부모님 하니까 떠올랐는데, 너 잘도 욕 안 먹었다.
‘응?’
- 그 금발 가족한테 욕먹을 줄 알고 쫄았었잖아.
‘…아. 그러게.’
유선우는 뜻밖이게도 딜런과 그레이스에게 질책을 받지 않았다. 애초에 차세정과의 스캔들 얘기가 거의
나오지를 않았다. 그레이스가 처음에 한 번 흘렸던 게 전부였다.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말 맞춰뒀던 것 같은데.’
- 처음에도 그냥 놀렸던 건가?
‘뭐랄지. 이상한 집안이야.’
유선우는 테일러 가에서의 시간을 떠올리며 피식거렸다. 그대로 눈을 감은 그는 덮쳐오는 수마에 몸을 맡
겼다.
***
귀국은 출국 때처럼 조용하게 행해졌다.
일행이 한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유선우는 식구들을 집에 데려다주고는 부모님에게 향했다. 그대로 수원에서 여독을 풀고, 다음날이 되어
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쉴 여유는 없었다. 그는 곧바로 일행을 데리고 차에 올라탔다.
같은 8일에 게이트가 열린다던 서울과 김포.
둘 중에서 그들의 행선지는 서울이었다.
“여길 또 오네요.”
운전대를 맡은 박아연이 무덤덤한 투로 중얼거렸다. 유선우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요. 재건은 하고 있나 몰라.”
“아직일 거예요. 몬스터 처리가 덜 됐다고 들었거든요. 게다가 서울이 망한 건 사람보단 게이트 때문이었
고.”
“게이트라.”
“왜요?”
“그냥요. 어쩐지 감성 돋네.”
지겹도록 들어온 단어가 요즘 들어 유의미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끝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리라.
유선우는 여전히 무너진 채인 서울을 둘러봤다. 눈꺼풀을 경계선 삼아 황폐한 광경과 온전한 서울의 모습
이 교차한다.
과연 미래에는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그 결과가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이 어째선지 우스웠다.
‘이건 아무래도 관심 없단 말이지.’
눈곱만치도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소피아에게 들었던, 또 없어질 것이냐는 물음이 더욱 마음을 흔들었
다.
덜컹.
“언니. 운전 좀 잘 해줘요.”
“이 이상 못해요. 도로가 개판인데 무슨.”
엉망인 도로를 달리며 차체가 오르내렸다.
안전벨트를 풀면 당장이라도 머리를 박을 듯이 험난한 길. 흔들릴수록 유선우의 머릿속에선 잡념이 마구
잡이로 묶은 신발끈처럼 뒤엉켰다.
***
정확히 한 달 전, 유선우가 모습을 드러냈던 장소인 강남대로. 현재 그곳에선 수백의 헌터가 자리를 지키
고 있었다.
장소의 분위기는 상당히 밝은 편이었다. 앞으로 몬스터를 상대할 이들이라고는 보기 힘든 태도였다.
“해이해진 거 봐라, 이 새끼들.”
“말조심해요. 여기에 오빠보다 어린 사람 별로 없을걸요?”
“나이가 벼슬이야? 정신머리가 썩어빠졌는데.”
헌터들 사이에서 강창민과 한강이 말을 섞었다.
한강은 떫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심 강창민의 의견에 동의했다. 평소와 다르게 주변이 웅성거렸기 때문
이다.
“언제 왔대? 미국에 있는 줄 알았더니.”
“걔 누구야. 루루는 안 데려왔나?”
“가서 말 붙여봐요! 전에 얘기해봤다면서.”
“누, 누가 그랬어? 얘기해본 것 같다고 했지. 방송 채팅으로.”
헌터들의 시선은 대부분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유선우를 비롯한 다섯 명이 서 있는 최선두였다.
다섯은 게이트 발생을 기다리는 동안 주위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저 자기들끼리 몇 마디씩 대화를 나
누며 시간을 죽일 뿐이었다.
“저 형, 오늘따라 조용하네.”
“그러게요. 미리 와 있는 것도 신기해.”
“이 와중에 사진 찍는 것들은 뭐 하는 놈들일까?”
“…좀 있으면 알아서들 정신 차리겠죠.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그거잖아요. 베테랑.”
“요즘 베테랑 아닌 헌터가 어딨어.”
각성자가 나타나지 않게 된 지 어언 3년. 유입이 끊기니 헌터 업계도 고인물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실정
이다.
“근데 숙련자라는 것들이 이 모양이니까 더 어이없는 거 아니야.”
“지도 똑같으면서.”
“내가 뭐 했다고.”
“저기 앞에 빨간 머리 언니한테 집적대는 거 다 봤거든요? 선혜 언니한테도 그러다가 차여놓고.”
“이, 이런 미친…!”
깨시민 강창민도 시끄럽긴 매한가지였다. 그는 주변 눈치 탓에 손을 올리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한
강은 기회를 살려 마음껏 그를 놀려먹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시간만이 흘러갔다.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나가 저녁이 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헌터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게이트가 발생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진짜로 안 열리나?”
“좋기는 한데, 이상하네.”
“그러게. 유선우가 던전 깼던 데는 부산이잖아.”
자세한 속사정을 모르는 헌터들에겐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혼란보단 기대감이
담겨있었다.
서울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면 혹시나 다른 지역도 똑같지 않을까. 한국에서의 게이트 집단 발생 현상이 완
전히 끝난 게 아닐까.
그런 낙관을 지울 수가 없었다.
“김포는 어떻대?”
“협회 말로는 잠잠하다네.”
“일단 오늘 지날 때까진 경계 풀지 말랍니다.”
들뜬 사람은 비단 헌터뿐만이 아니었다. 상황을 TV로 시청하는 국민도 한마음이 되어 자정을 기다렸다.
유선우만이 초조함을 앓았다.
‘일본이든 중국이든 가봐야겠어.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르겠네.’
- 아마 미국에서 잡은 숫자의 반도 안 될걸. 그마저도 금방 숨어들 거고.
‘…다른 방법이라도 찾아야 하나.’
관리자의 살해 외에 강해질 수단이 필요했다. 당연하지만 수련 같은 정공법은 넌센스.
창술에도 미답의 길은 있지만 환경이 문제다. 지구에는 시간 배율이 다른 장소 따윈 없을뿐더러 수련에
어울려줄 상대도 없다.
수련보다 훨씬 효율적인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다.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마는.
‘골치 아픈데.’
유선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낮은 숨을 흘렸다. 그러자 리디가 우려하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스승님?”
“아니야. 지금이 몇 시지?”
“7시 조금 넘었네요. 계속 기다릴까요?”
“12시까지만 기다리죠. 배도 고프니까 뒤에 가서 뭐 좀 먹고.”
일행은 뒤편의 간이 급식소로 이동해 배식을 받았다. 용기를 내서 다가오는 헌터들과도 어울리며 시간을
죽였다.
특별한 일 없이 밤이 깊어갔다.
이윽고 11시 59분이 됐을 때는 도로에 빛이 가득했다. 전부 스마트폰의 불빛이었다.
헌터들은 눈 깜빡하는 순간마저도 아까워하면서 시계를 쳐다봤다.
그리고 고대하던 자정이 찾아왔다.
“여, 열두 시! 시간 됐습니다!”
“나도 알아! 하하, 이게 무슨 일이야.”
“김포도 똑같단다. 으하하하하!”
도로 위에서 환호성과 웃음소리가 뒤섞인다. 나이나 성별의 구별 없이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나눈다.
소란 속에서 유선우가 조용히 말했다.
“돌아가자.”
***
사흘간 유선우는 전국을 돌아다녔다.
거리에 상관없이 온갖 곳을 누볐음에도 관리자는 둘밖에 죽이지 못했다. 게이트 출현 자체가 현저하게 줄
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뾰족한 수가 없는 건 아니야.’
유선우는 고민 끝에 강해질 방법을 찾아냈다.
지금의 난관은 얻어낼 격과 간섭력이 없다는 것. 그렇다면 새로이 격을 만들어내면 될 일이다.
- 어떻게? 이젠 몬스터도 거의 없는데.
‘업적 쌓는 거니까. 언론만 잘 써먹으면 돼.’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 유선우에게는 이미 그를 위한 패가 있었다. 누구보다도 충직하리라 짐작되는 패
가.
‘문제는… 그냥 내가 찜찜하다는 거지.’
유선우가 스마트폰을 꺼내 카톡을 열었다. 대화창의 스크롤을 내리자 찾는 이름이 보였다.
- 민설아 : 혹시 저녁에 시간 되시는지….
유선우의 낯이 급속도로 떫어졌다. 물론 그가 알기로 민설아는 청초하고 참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선우
회는 아무래도 껄끄러웠다.
- 원래부터 이럴 때 쓰려고 둔 거 아니었어?
‘그건 그런데.’
선우회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밀어 자신의 명성을 드높인다. 잘만 하면 음모론에 종종 등장하는 여러 단
체만큼이나 강대한 영향력을 지닐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힘으로 여태 해온 일들을 찬란한 업적으로 재포장하면 되는 일. 말로 풀면 쉽지만 굉장히 껄끄럽다.
‘근본부터가 사이비들이라 그런지 기분 나빠.’
안 그래도 요즘 들어 찜찜한 변화가 몇 생겼다.
예를 들어 집 근처가 성역 취급을 받으면서 땅값이 더럽게 비싸졌다던가.
이따금 보이던 파파라치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던가.
‘어그로 끈답시고 내 욕했다가 잠적한 놈도 있었지.’
- 장담한다. 어디 뒷산에다 묻혔을걸.
엔라의 말에 괜스레 망설임이 더해졌다. 유선우는 폰을 붙잡고 한참을 끙끙거렸다. 그러다가 결국엔 민
설아에게 연락해 만날 약속을 잡았다.
“이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유선우가 중얼거리며 현관을 나섰다. 그가 택시를 부르려는 때였다.
쩌어어억!
전조도 없이 길바닥에 게이트가 나타났다. 유선우는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게이트를 응시했다.
‘뭐 이렇게 커?’
여태까지 본 적도 없는 규모. 부산에서 봤었던 거대 게이트의 두 배는 족히 넘어가는 크기다.
남의 집 앞에서 무슨 민폐인가 싶을 지경. 성역의 땅값이 순식간에 곤두박질칠 미래가 뻔히 보였다.
하지만 당황은 금세 사라졌다. 오히려 흥미가 동했다. 유선우는 현재 상황을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
들였다.
‘어떤 새끼인지는 몰라도.’
잘 왔다.
그는 마음속으로 환영하며 고개만 뒤로 돌렸다. 나오라고 크게 소리치자 식구들이 부랴부랴 뛰어왔다.
“…어라. 어떻게 된 거예요?”
“나도 몰라. 그냥 갑자기 생기더라고.”
“몬스터가 안 나오는군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쉬발이 수상쩍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의 말대로 몬스터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불길한 게이트만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을 뿐이다.
“이상하면 뭐 어때. 물불 가릴 처지는 아니지.”
“스승님. 좀 신나 보이십니다.”
“그래?”
유선우가 미소지은 채로 창을 꺼내 들었다.
“어째 삘이 좋거든.”
그가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이내 그의 몸이 시커먼 게이트에 삼켜졌다.
***
차원을 넘자 울창한 나무들이 일행을 맞이했다. 유선우는 여느 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가 느낀
감상은 ‘별 것 없다’ 였다.
“이번엔 산이네요. 재미없네. 나무 색깔도 다 평범하고.”
“짐승 냄새도 안 납니다. 던전 정보? 그것도 안 나왔습니다.”
“산…. 고향이 떠오릅니다. 날아도 됩니까?”
아이릴과 리디, 쉬발이 차례로 한 마디씩 뱉었다. 자연밖에 없기 때문인지 인간 둘은 지루한 기색이었다.
“맘대로 해. 나는 김에 탐색도 한번-”
파지직!
갑작스레 창에서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방출되는 백색의 줄기가 급격하게 굵어진다. 창을 보던 유선
우는 문득 기시감을 느꼈다.
‘시스템이다.’
관리자들이 시스템으로 그를 건드렸을 때. 그때마다 창이 스파크를 방출하며 권한에 저항했었다.
‘근데 지금은 이상한데.’
전류가 미친 듯이 튀어 오르나 싶더니 차츰 흩어진다. 흡사 에너지가 부족해 출력이 약해지는 모양새였
다.
츠츠츠.
끝끝내 흐름이 완전히 잠잠해졌다.
그 순간, 유선우의 의식이 가라앉았다.
***
다시 눈을 뜨자 이번에는 끝없이 펼쳐진 평야가 보였다. 하늘에선 휘황한 은하수가 밤을 밝히고 있었다.
부자연스러운 아름다움. 도화지에 그려 넣은 듯한 경치였다.
유선우는 밤하늘에서 주의를 거뒀다. 그러나 들어 올린 고개는 떨어지지 않았다. 별무리 아래에서 허공
을 밟고 있는 한 사내를 쳐다봤다.
등까지 내려오는 금색 머리카락과 헐벗은 상체가 특징적인 사내. 유선우가 사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물었다.
“뭔가 다른 느낌인데. 누구야?”
그 말에 사내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가 오연하게 유선우를 내려보며 말했다.
“투신 지오반. 지고한 신계의 결정으로 네놈을 죽이러 왔다, 인간.”
혐오감이 뚝뚝 묻어나오는 음성. 벌레라도 상대하는 태도였다. 하지만 유선우는 지오반이 굉장히 친절하
다고 느꼈다.
‘일일이 설명까지 다 해주네.’
초월자들이었다면 선빵부터 쳤을 텐데.
낙원에서의 생활을 떠올린 유선우가 피식거렸다. 이내 그의 눈이 먹잇감을 앞에 둔 뱀처럼 번뜩였다.
“혼자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