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님 뭐하세요-152화 (152/179)

미국 갔다

결과적으로 일행은 사건이 터진 장소로 향하게 되었다. 이동에는 능력자 관리부 소유의 헬기를 이용했

다. 마일러에게 입을 잘 털은 덕에 아이릴들의 탑승에도 문제는 없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네요.”

“짐도 못 풀었는데. 하아.”

유선우의 말에 소피아가 피곤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마일러에게 들은 정보를 떠올렸다.

‘망할 암 덩어리들.’

미국 곳곳에 숨어든 무정부주의자들. 이전부터 몇 차례 소탕해왔으나 완전히 뿌리 뽑는 건 불가능했다.

끈질기게 살아남은 이들은 몇 개월이나 그늘 속에서 숨을 죽였다. 그리고 현재, 그 잔당들이 준동하고 있

다.

물론 그뿐이면 큰일도 아니다. 적당한 병력에다 S급을 하나만 더해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터.

문제는 상황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선우. 진짜일까요?”

“뭐가요?”

“그놈들이 게이트 열고 다닌다는 거 말이에요.”

마일러가 말하기를, 놈들은 게이트를 여닫으며 몬스터를 부린다고 한다. 본래였으면 금세 발견했어야 정

상이다. 몬스터를 데리고 다닌다면 눈에 띌 테니까.

그러나 결과적으로 발견은 늦어졌다. 놈들이 게이트를 연 장소가 미국 땅이 아니라 던전 내부였기 때문이

다. 능관부로서도 쉬이 찾아낼 수 없었던 게 당연했다.

지금에 와서는 샌프란시스코 일대에 자리 잡은 채 군세를 늘려가고 있다던가. 그야말로 날벼락이 따로 없

었다.

“진짜겠죠. 지금에 와서 말하는 건데, 옛날에도 본 적 있어요.”

“언제요?”

“언제였더라, 가물가물하네. 누나 만나기 전이었어요.”

“아니…….”

그걸 왜 숨겨왔는가. 질책하려던 소피아가 목 안으로 말을 집어넣었다. 자신을 대입해 봐도 유선우와 똑

같이 행동했을 터였다.

‘알려지면 혼란이 심했겠지.’

게이트를 여는 능력자. 알려졌다가는 능력자 전반의 이미지가 깎여나갈 게 분명했다. 지금은 죄다 까발

려져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버렸지마는.

소피아는 한숨을 거듭했다. 그녀의 모습에 유선우가 태평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렇게 심각해요?”

“당연히 심각해야죠. 오자마자 이게 뭐야.”

소피아의 목소리가 축 처졌다. 기껏 유선우와 같이 왔기에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꽁냥거릴 생각이었건

만. 막상 까보니 죽어라 일만 하게 생겼다.

잔뜩 실망한 그녀와는 반대로 유선우는 들뜬 상태였다.

‘이래야지. 암.’

확실하진 않아도 대리자가 다섯은 족히 될 터. 그놈들의 배후를 전부 추적해 죽인다면 적지 않은 수확이

다. 미국까지 찾아온 게 헛수고로 끝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서울은 좀 아까웠어.’

창의 추적 기능을 몰랐기에 대리자든 뭐든 쓱싹 죽여댔었다. 그 피를 사용하던 관리자의 말에 따르면 애

초부터 셋밖에 없었던 모양이지만.

그래도 실제로 둘을 놓쳤으니 입맛이 쓴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엔 뽕 제대로 뽑자.’

***

헬기에서 내린 장소에는 인파가 바글거렸다. 전부 능관부에서 파견한 인력들이었다. 헌터만 수백을 헤아

렸고, 지원 인원 역시도 상당했다.

난데없이 펼쳐진 대규모 작전이었다.

“우리 여행 온 거 아니었어요?”

아이릴이 언짢은 목소리로 말하며 주변을 살폈다. 하늘에 떠다니는 헬기와 대로를 비좁게 느끼게 하는 군

용 차량. 긴장한 낯빛으로 제 무기를 손질하는 헌터들까지.

어딜 봐도 여행이라는 기분이 나질 않았다.

“여행보단 출장이지.”

“전 개인적으로 이런 쪽을 좋아합니다.”

“동감이다. 남의 싸움에 끼어드는 건 의외로 재밌단 말이야.”

리디와 쉬발이 들뜬 기색으로 한 마디씩 뱉었다. 며칠간 골골대더니 몸이 근질근질해진 모양이었다.

그들을 쳐다보던 소피아가 물었다.

“새삼스럽긴 한데, 이분들은 누구예요?”

“제 파티요.”

“그건 저도 한국에서 많이 들어서 알아요. 그냥 무슨 관곈가 싶어서.”

“음… 뭐라고 해야 하나.”

유선우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일행들을 번갈아 봤다. 그러고는 우선 설명하기 간단한 쪽부터 손으로 가리

켰다.

“이쪽은 제 제자고요.”

“제자입니다.”

“얘는 부하 같은 거고.”

“부하다.”

리디와 쉬발은 있는 그대로 밝히면 됐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유선우가 곤란함을 내비치자 본인들이 선수를 쳤다.

“애인이에요.”

“저도 맞죠?”

아이릴과 박아연이 차례로 말했다. 애인이라는 말에 소피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이 유선우에게 쏘아졌다. 하지만 그는 머쓱하다는 듯이 시선만 피할 뿐이었다.

“세정 씨는 알아요?”

“어렴풋이요. 소개한 적이 없어서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고.”

“먼저 들이대 놓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참…….”

쓰레기 같네요.

뉘앙스만으로 뒷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유선우는 변명도 못 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요즘 들어 이런 일이 많네.’

분명 자업자득이었다.

그 사실을 아는데도 어째서일까.

슬슬 진저리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나만 쓰레기야?’

솔직히 아이릴한테는 면목이 없다. 아이릴만큼은 차세정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으니까. 처음부터 자신이

본처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을 터다.

‘내 옷 냄새 맡았던 건 넘어가고.’

그때의 책임소재는 아브나바에게 있었다. 아이릴의 탓을 하는 건 아무래도 억지였다.

‘근데 이 둘은 아니지.’

먼저 유혹했던 게 누군데.

소피아는 시도 때도 없이 자극해댔었고, 박아연은 아예 새벽에 방으로 찾아오지 않았었나.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네?’

자신을 욕해도 되는 사람은 아이릴과 차세정뿐이었다. 자기합리화를 마친 유선우가 소피아에게 반항심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왜 그렇게 봐요? 뭘 잘했다고.”

“…아니에요.”

유선우는 찍소리 않고 한발 물러났다. 동시에 속으로는 의지를 불태웠다.

‘다음에 기강 한 번 잡아야겠어.’

***

헌터들은 짧은 브리핑 이후에 작전 지역으로 이동했다. 전달받은 위치는 유니온스퀘어의 한복판. 금전적

인 피해는 이미 천문학적인 수준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인명 피해는 거의 없었다는 것. 능력자 관리부의 발 빠른 대처 덕분이었다.

위기 상황의 발견은 늦었을지언정 대응은 훌륭했다. 물론 비난을 피하기는 어렵겠지마는.

“소리만 들어도 장난 아니네요.”

박아연이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귓가에는 괴수의 울음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오

고 있었다.

“그러게요. 몇 마리나 있으려나.”

유선우는 창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수긍했다. 무리에서 이탈한 몬스터만 수십을 넘게 처리해왔다. 게이

트 집단 발생 때만큼이나 많은 숫자가 있을 터였다.

‘이거 나 때문이지?’

- 그럴걸?

소극적이던 놈들이 갑작스레 습격에 나선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한 우연이라기에는 시기가 공교롭다.

지금은 한국을 노리던 다수의 관리자가 흩어진 상태다. 그러나 겁을 먹었을 뿐이지 침공을 단념했을 리는

없다. 그들의 집념을 생각해보면 단순히 시선을 돌렸다고 보는 게 옳다.

‘한국은 포기하고 다른 나라로 넘어왔다는 거네.’

- 아마도. 원래부터 이쪽에 있던 애들이랑 짰나 보다.

‘이러면 참…….’

예상외의 이득이다. 본래 유선우가 목표로 잡았던 숫자는 열 놈이었다. 미국에 체류하는 기간이 길지는

않으니 욕심은 부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열다섯은 거뜬할 듯했다.

‘이 사람들한텐 미안하지만.’

선두를 걷던 유선우는 머리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눈에 들어온 헌터들의 행렬은 군대처럼 질서정연했

다.

하지만 대부분의 얼굴은 딱딱했다. 훈련이 긴장을 덜어주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처리도 내가 해주면 되는 거지.’

유선우가 아공간 주머니를 뒤졌다. 그가 꺼낸 물건은 서울에서도 유용하게 써먹었던 통신기였다. 일행들

에게 하나씩 건네주자 질문이 돌아왔다.

“이번에도 이게 필요합니까?”

“이 일대만 정리하면 끝인 거 아니에요? 서울에서랑은 달리.”

리디가 묻고 아이릴이 덧붙였다.

“몬스터 잡는 게 전부면 그렇지. 이상한 놈들 보이면 나 불러.”

“이상한 놈들이라 하시면….”

“몬스터 부린다거나 괴상한 능력 쓰는 애들. 적당히 패놓고 나한테 말해. 아이릴은 우선 나 따라오고.”

“알았어요.”

지시를 내린 유선우는 소피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대화를 들었는지 의아하다는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먼저 갑니다.”

짤막하게 뱉은 유선우가 땅을 박찼다. 탁 트인 도로를 단숨에 주파해 코너를 돌자 밀집한 몬스터들이 보

였다.

푸확!

다가온 유선우를 인지할 새도 없이 놈들의 목이 달아났다. 한 번의 휘두름에 수십의 몬스터가 추풍낙엽처

럼 쓸려나갔다. 무너진 건물 사이를 누비는 그에게 아이릴이 소리쳤다.

“천천히 좀 가요!”

“평소에 운동을 안 하니까 그렇지. 빨리 와.”

유선우는 아이릴과 속도를 맞추며 중심지로 이동했다. 그는 전차라도 된 듯이 돌파해 수백의 머릿수를 지

워냈다.

그런데도 여전히 몬스터가 우글거렸다. 줄어들기는커녕 중심지에 가까워질수록 밀집도가 높아졌다.

“천은 그냥 넘기겠는데.”

“시가지라서 복잡해 죽겠어요. 그냥 다 부수면 안 되나요?”

“안 돼.”

유선우는 잠깐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이릴을 번쩍 안아 들었다. 난데없는 스킨십에 아이릴이 눈을 끔뻑거

렸다.

“선우?”

“입 닫고 있어. 혀 깨문다.”

탓!

유선우가 높게 도약하고는 아래를 훑어봤다. 당장 눈에 띄는 장소는 총 네 군데. 전부 수백의 몬스터가 옹

기종기 모여 있었다.

가장 가까운 장소를 주의 깊게 확인해봤다. 그러자 몬스터를 토해내는 소형의 게이트가 시야에 포착됐

다. 그 바로 옆에는 웬 로브를 뒤집어쓴 괴인이 서 있었다.

‘찾았다.’

유선우는 아이릴을 안은 채로 호신강기를 둘렀다. 그리고 그대로 괴인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악!”

신형이 대포알처럼 쏘아져 몬스터들을 관통했다. 골렘의 몸통마저 종잇장처럼 뚫려 바람구멍이 생겨났

다.

쿠웅!

몸으로 길을 튼 유선우가 바닥에 착지했다. 막대한 충격에 지축이 흔들리며 괴인이 비틀거렸다.

“What……!”

“입 다물어.”

무감정한 목소리에 뒤이어 창이 날아들었다. 작살처럼 쥔 창이 괴인의 팔을 관통하고, 갈라진 지면에 꽂

혔다. 그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백색의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끄륵, 끄르르륵!”

이전과 마찬가지로 연결된 관리자의 좌표를 찾는 과정이었다.

그때 품에 안긴 아이릴이 격렬하게 발버둥 쳤다.

“이것 좀 놔줘요!”

“아, 미안.”

“하아, 하아악! 죽는 줄 알았네!”

자유를 되찾은 아이릴이 숨을 몰아쉬었다. 육탄전이 특기인 그녀도 방금의 일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너무 막 대하는 거 아니에요?”

“음… 옛날보단 배려하고 있지 않나.”

“그건 그렇지만!”

빽 소리치고는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가도 한숨을 내쉬고는 괴인과 게이트를 번갈아 봤다.

“어쩔 거예요? 지금 들어가나요?”

“아니. 이따가 한 번에 처리하려고.”

하나하나 게이트를 들리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바쁘게 돌아다닐 바에야 상황이 정리된 후에 일망

타진하는 편이 낫다. 그렇기에 유선우는 좌표부터 확인해둘 요량이었다.

그의 말에 아이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근데 그러면 저도 따로 움직이는 게 낫지 않나요? 효율 면에서.”

“됐어. 혹시 모르니까 그냥 이대로 가자.”

말하자면 아이릴은 보험이었다. 대리자의 여벌 목숨이라고 할까. 정보를 뽑아내기도 전에 대리자가 죽을

수도 있으니 대비를 한 것이다.

[좌표 추적이 완료되었습니다.]

메시지가 나타나자 유선우가 창을 뽑아냈다.

전과는 다르게 새로이 게이트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대신에 아브나바가 알아서 좌표를 기억해둘 터였다.

괴인은 거품을 물고 풀썩 쓰러졌다. 그러자 몬스터를 뱉어내던 소형 게이트도 자취를 감췄다. 공급되던

마나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크르르르!”

동시에 주변의 몬스터도 통제를 잃고 날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선우가 손을 쓸 필요는 없었다. 여행이

어그러져 화난 아이릴이 빛무리에 휘감겼다.

“내가 왜 미국까지 와서!”

그녀가 거대한 망치를 소환해 붕붕 휘둘러댔다. 광전사 같은 모습을 보며 유선우가 피식거렸다.

***

‘진짜 말도 안 되네.’

소피아는 감탄과 허탈감이 뒤섞인 눈으로 반파된 시가지를 둘러봤다. 주변엔 몬스터의 사체가 쓰레기처

럼 널브러져 있었다.

살아 있는 놈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끔가다 잔챙이 한둘이 나타나는 게 전부였다.

작전은 이미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고작 30분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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