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선우교
“하나 묻자. 네 위치가 어느 정도야? 혹시 창시자 같은 건가?”
“전혀 아닙니다. 저는 대외 담당이고, 교주는 제 동생이 맡고 있습니다.”
“동생?”
유선우가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되물었다. 눈앞의 남자는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
다. 그보다 어린 사람이라면 거의 자신의 또래다.
“형제가 쌍으로…. 그래서 걔가 나쁜 새끼다?”
“아니요, 제가 쓰레깁니다! 설아는 그냥 순수하게 신앙생활 하는 거예요.”
“아, 여동생인가 보네.”
유선우에게는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금선우교의 홈페이지엔 그의 기사와 사진들이 징그러우리만치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스토커였다. 업로더가 남자였다면 찝찝해 죽는다. 물론 페이지 관리자가 따로 존재할 가능성도 있
겠지마는.
“잠깐만요.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좋은 의도로 사이비 짓을 했다고요?”
“어폐가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래도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어요. 다 제 탓입니다.”
“읊어봐.”
남자가 목청을 가다듬고 설명을 시작했다. 이야기의 발단은 무려 9년 전의 일이었다.
“걔는 유선우 씨의 팬… 이라고 할지. 사생팬이었습니다.”
“응?”
“중3 때부터였죠. 그때는 몰랐었는데, 학원비를 전부 별풍으로 쐈었더라고요. 닉네임이 뭐랬더라. 서누T
팬티? 기억나십니까?”
“뭔 그딴… 몰라. 너무 오래돼서.”
낙원에서의 세월까지 합치면 35년가량이 지났다. 시청자들 닉네임을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하여튼 어느 날 갑자기 소리를 오지게 질러대더군요. 오빠가 사라졌다고. 그 후로는 좀 성격이 어두워졌
습니다. 그래도 그게 전부였죠.”
남자가 하소연하듯이 한숨을 토해냈다.
“문제는 그로부터 5년 뒤였습니다. 유선우 씨가 유명해지신 뒤로 애 정신이 맛 가기 시작했어요. 4년 동
안이나 종교를 운영했죠. 홈페이지 보셨으면 아시겠지만요.”
“아니, 그걸 다 진심으로 쓴 거라고?”
“예. 말씀드렸다시피 순수한 신앙생활입니다.”
순수가 죄다 얼어 죽었다. 닉네임부터가 여중생은커녕 시커먼 남고생 같다.
“본 적도 없는 애 의도는 둘째치고, 넌 뭔데? 내 시청자였던 것 같지는 않은데.”
“그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하하. 주식이 떡락했던 시기라.”
그다음부터의 전개는 뻔했다. 남자는 돈이 궁해서 본격적으로 사이비 활동에 착수했다. 처음에는 주춤했
었으나 유선우가 돌아오면서 떡상을 해버렸다.
미친 듯이 돈이 들어오자 본인도 멈추기가 힘들어졌다. 끝끝내 도를 넘어버려 유선우가 등판하게 된 것이
다.
“개판이네. 어쩔 거예요?”
사건의 전말을 파악한 박아연이 물었다.
“어쩌긴 어째요. 주모자들 찾아가서 몇 대 패주고 다 배상시켜야지.”
“그건 당연한 거고요. 금선우교 말이에요.”
“그대로 해산시켜야죠. 돈 빨아먹든 말든 사이빈데.”
매정한 말에 남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가 유선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했다.
“기, 기다려 주십쇼! 금선우교에 몸을 맡긴 교인만 벌써 네자릿수입니다.”
“떨어져, 징그럽게.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같이 사이비 하자 이거야?”
“그 사람들이 유선우 씨한테 버림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 동생은 진짜로 자살할지도 모른다고요!”
남자의 눈가에서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그러자 병풍처럼 박혀 있던 교인들이 허겁지겁 달려와 머리를
조아렸다.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습니다! 회사는 망하고 아내는 야반도주하고….”
“솔직히 가르침이 틀린 것도 아니잖아요. 유선우 씨, 아니. 교주님 아니시면 한국은 쫄딱 망할 텐데.”
“그렇습니다!”
朝廷흡사 사극의 조정( )과도 같았다. 소란이 격화될수록 유선우의 표정은 뚱해졌다. 흥분은 어느새 가라
앉고 귀찮음이 몰려왔다.
‘아, 그냥 다 부술까.’
머릿속에서 저울질이 시작되었다.
부술지 말지의 고민이 아니었다.
건물을 날려버릴지 태워버릴지의 선택이었다.
“선우 씨, 선우 씨.”
“왜요. 태우고 싶어요?”
“태워요? 아니, 그보다 그냥 내버려 두는 건 어때요?”
얼토당토않은 발언에 유선우의 고개가 돌아갔다. 개소리하지 말라는 시선에도 박아연은 개의치 않았다.
“관리만 잘하면 다양하게 써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글쎄요. 전 저놈 못 믿어요.”
“동감이에요. 저 사람은 인터넷에다 사진 올려서 박제해요. 근데 설아라는 사람은 괜찮지 않아요?”
장장 9년간 팬을 자처해온 인물이다. 팬심이 어느 순간부터 신심으로 변질됐지마는. 그래도 의도를 의심
할 여지는 없어 보였다.
“4년 동안 유지해온 거잖아요. 선우 씨가 없어졌을 때도 꿋꿋하게. 철저히 비영리 단체로 운영하면 괜찮
을지도 몰라요.”
“으음….”
“팬클럽이라고 생각하면 어때요?”
어떻게 보면 사이비가 팬클럽이 되는지. 정신 나간 소리였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유선우는 귀가 솔깃
해졌다.
‘의외로 할 만해 보이기도 하고.’
한동안 BJ를 했었던 탓일까. 열렬한 팬에 대한 욕심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으으음…….”
유선우가 팔짱을 낀 채로 고심에 빠졌다. 그의 모습을 보며 교인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기나긴 침묵이 이어졌다.
이윽고 꾹 다물려 있던 입술이 벌어졌다.
“네 동생, 이름이 뭐라고?”
“서, 설아입니다. 민설아.”
“전화 걸어봐.”
***
유선우는 민설아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결과적으로 금선우교는 해산하게 되었다.
실컷 남들의 등골을 뽑아먹던 집단이다. 그 이름이 존속되어서는 길이길이 발목을 붙잡히게 될 터였다.
대신에 새로운 집단을 발족하기로 했다.
사이비 인상을 쫙 빼내 팬클럽의 느낌으로.
이름은 내부 회의를 거쳐서 정하겠다던가.
민설아는 오히려 기뻐하는 낌새였다. 본인도 금선우교의 꼴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고.
앞으로는 유선우의 뜻을 그대로 반영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만악의 근원인 민설아의 오빠, 민병수는 인생이 시궁창으로 변했다. 유선우가 그놈을 참교육하는 영상을
뮤튜브에 올렸기 때문이다.
영상의 조회수는 순식간에 십만 대를 돌파했다. 댓글에 피해자도 대거 등판했기에 민병수는 밤길도 걷기
힘들게 되었다.
‘내 알 바는 아니지.’
사이비 소동은 싱겁게 일단락되었다. 세간은 여전히 소란스러울지라도 유선우의 관심사에서는 벗어났
다.
그는 다시금 관리자 사살에 집중했다.
“괴, 괴물 같은 놈….”
“너흰 항상 똑같은 소리 하더라. 혹시 짰어?”
푸욱!
서슬 퍼런 창이 민머리 관리자의 뒤통수를 꿰뚫었다. 그러자 창끝에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전류가 엎어진 관리자의 전신을 수차례 왕복했다. 이내 관리자의 몸이 압축되더니 자그마한 돌로 변했
다.
동시에 여지없이 공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미 적응된 유선우는 여유롭게 근원석을 챙기고 공간에서
벗어났다.
“후우.”
육체로 돌아온 유선우는 아이릴의 무릎 위에서 눈을 떴다. 그는 잠시간 허벅지의 감촉을 즐기다가 몸을
일으켰다.
“아직 2분도 안 지났는데.”
“갈수록 빨라지는 게 당연하지.”
오늘이 정확히 15번째였다.
슬슬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유선우는 축적된 피로감에 하품을 내뱉으며 걸었다. 귀환 게이트를 넘어가자 화창한 하늘이 보였다. 시
간대를 보아하니 한둘 정도는 더 처리할 수 있을 듯했다.
“다음은 어디예요?”
“근처에는 없어요. 3시간은 더 가야 돼요.”
“그렇게 많던 게 다 어디 갔대.”
“그게… 요 며칠간 게이트 발생 빈도가 극도로 줄어들고 있다더라고요.”
박아연의 설명에 유선우는 고심에 잠겼다. 결과로부터 원인을 도출해봤다. 생각보다 답은 간단하게 나왔
다.
‘나한테 쫄았구나.’
유선우는 관리자를 말 그대로 학살하고 다녔다. 그러니 관리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지지 않을 리가 있
나. 놈들의 움직임이 소극적으로 변하는 것도 당연했다.
‘어떻게 보면 좋은 일이긴 한데.’
게이트 발생의 둔화는 국민의 입장에선 둘도 없는 호재였다. 하지만 유선우에겐 달갑지 못했다. 그는 관
리자를 열다섯이나 흡수했음에도 부족하다 생각했다.
‘스승님은 대체… 알면 알수록 어이없단 말이지.’
강해질수록 백명의 경지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백명이 어쩌다가 낙원에 갇히게 됐는지 의심될 지경이었
다.
‘멀다, 멀어.’
유선우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그러고는 상념에서 깨어나 박아연을 봤다.
“그럼 오늘은 돌아가죠.”
“안 가려고요?”
“네. 컨디션 좀 조절하고 싶어서.”
“하긴, 그게 맞겠다. 내일은 바쁘겠네요.”
박아연은 토 달지 않고 수긍했다.
내일의 날짜는 4월 23일.
부산의 게이트 집단 발생이 예정된 날이다.
***
다음날이 되었다.
유선우는 시간을 맞춰 부산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근데 허탕 치면 앞으로 어쩌려고?
‘글쎄다. 그래도 오늘은 괜찮을걸.’
- 왜?
‘보다 보니까 관리자들 습성을 좀 알겠더라고.’
관리자들은 하나 같이 자존심이 강하다. 인간이 자신의 머리 위에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다.
엔라나 아브나바와 차별화되는 점이었다. 그것은 그녀들이 특별하다기보단 다른 이유가 있었다.
‘자기들 차원에선 나 같은 사람이 없었으니까.’
유선우만 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들의 차원은 망하지 않았을 터. 그런 만약의 가정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
서 인간을 무시하는 셈이다.
‘그런 꼬장꼬장한 놈들이 숨을 리가 없지.’
- 요즘 다 숨고 있다면서?
‘걔넨 개인이고, 얘넨 집단이잖아. 원래 세 명만 모여도 자신감 팍팍 생기는 거야.’
숨죽이는 대신에 나름대로 전략을 짤 터다. 유선우는 그것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감을 품었다. 부
산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가 투쟁심을 불태우고 있을 때였다.
우우웅.
유선우는 문득 들려온 진동음에 폰을 꺼냈다. 메시지를 확인한 그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데 그래요?”
“민설아요.”
“민설아… 아, 그 사이비?”
곰곰이 떠올리던 박아연이 피식거렸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여자 이름에 아이릴이 끼어들었다.
“뭐야. 그게 누구예요?”
“선우 씨 팬이에요. 뭐라는데요?”
“별건 아니고. 그냥 다치지 말라네.”
“지극정성이네요. 끝이에요?”
“일단은 그런데. 종종 연락해오길래요.”
“귀찮게 굴면 딱 자르면 되죠. 무시하거나.”
“그게 좀 애매해요.”
문제는 귀찮은 정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민설아는 딱 적당한 경계를 지켰다.
끈질기게 굴지도 않았고 사적인 대화 사이사이에 반드시 일 얘기를 집어넣었다. 대화할 때면 절묘한 줄타
기라도 보는 기분이었다.
‘다음에 한 번 만나봐야겠다.’
인생사부터 성격까지 하나하나 신기한 여자였다. 유선우는 그래, 하고 짤막하게 답장해주곤 폰을 넣었
다.
차는 도로를 달리고 달려 부산에 도착했다.
***
“뭐, 뭐지?”
“게이트가 왜…….”
부산 서구 시내가 소란으로 휩싸였다.
게이트를 응시하는 헌터들의 얼굴에 혼란이 가득했다. 3년간 이어져 온 긴장감 대신에 당혹감이 내려앉
았다.
그들의 눈앞에는 단 하나의 게이트만이 나타나 있었다. 집단 발생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하
지만 누구 하나 안심하는 이가 없었다.
게이트의 크기가 심상찮았다. 열댓이 합쳐진 듯이 거대한 게이트가 시내 한복판을 차지했다. 그 안에서
는 몬스터가 봇물 넘치듯 쏟아져 나왔다.
캬아아아!
“정신 똑바로 차려! 한 마리도 흘려서는 안 된다!”
인파의 선두에서 굵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몬스터들의 울음소리에도 뒤지지 않는 목청이었다.
일갈에 분위기가 급변했다. 게이트는 달라졌지만 몬스터의 침공은 여전했다. 그렇다면 자신들도 여느 때
처럼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헌터들이 결사의 의지를 다지는 순간,
쿠웅!
돌연히 날아온 인영이 몬스터의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곧이어 중심에서부터 맹렬한 한기가 뿜어졌다.
갈라진 아스팔트가 얼어붙었다. 수백의 몬스터가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유선우는 먼지를 털어내듯이 전방으로 창을 휘둘렀다. 그러자 길을 막은 얼음이 모조리 갈라졌다.
탁 트인 시야로 몬스터를 토해내고 있는 게이트가 보였다. 벌어진 아가리에서는 불길한 기운이 피어오르
는 듯했다.
“이래야지.”
유선우가 입가를 씰룩였다.
관리자 사냥
전장의 한가운데서 유선우는 게이트를 주시했다.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단 하나의 게이트가 열려 있을
뿐. 관리자들이 손을 썼음이 틀림없었다.
‘엔라. 뭐 좀 알겠어?’
- 으음… 미안. 보는 것만으론 몰라.
‘보기에는 게이트가 합쳐진 것 같은데.’
- 그건 아닐걸. 하나하나 다른 던전인데 합칠 수 있을 리가.
게이트는 각각 다른 차원을 연결하는 통로다. 그 너머의 지역들을 통합하는 건 관리자의 권한으론 불가
능. 신계에서도 간단히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 그냥 몰아준 거 아니야?
‘자세하게.’
- 관리자 하나에 간섭력을 몰아줘서 큼지막한 놈으로 뽑은 거지. 확실하진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