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선우교
난데없이 사이비의 흑막으로 의심받기 시작했다. 빡이 안 칠래야 안 칠 수가 없다. 그가 콧김을 씩씩 내뿜
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쾅!
“아오!”
유선우는 얼마 지나지도 않아 샷건을 쳐댔다. 필사적으로 자신의 실드를 쳐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
다.
반대로 금선우교인이라는 오명을 얻어버렸다. 익명의 한계다.
‘강창민 이 새끼가.’
가장 줄기차게 까는 놈이 강창민이었다. 고정 닉네임은 아니었으나 IP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얘 나한테 왜 이래?’
- 삐진 거 아니야?
‘삐져? 내가 뭐 했다고.’
- 소개해달라는 거 계속 깠잖아.
강창민은 저번 B급 던전의 일 이후로 리디와의 만남을 원해왔다. 당연하게도 유선우는 요청을 전부 거절
했다. 징징대는 게 같잖아서 차단까지 박아줬다.
그 탓에 앙심을 품은 모양이었다.
‘좀스러운 놈. 이러니까 인기가 없지.’
- 원래 본인은 모르는 거야. 근데 한 번쯤은 괜찮지 않아? 어차피 리디가 알아서 깔 텐데.
‘말했잖아. 기분 나쁘다고.’
- 네 애 같아서?
‘잠깐만. 몰고 가지 말자.’
은근한 목소리에 유선우가 딱 잘라 말했다. 그러자 엔라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 세정이 울겠다, 개나쁜 새끼야!
‘아오, 좀!’
요즘 들어 엔라가 굉장히 얄밉다. 실제로 만날 수라도 있으면 엉덩이를 두드려서 버릇을 고쳐놓을 텐데.
평소에는 정보원으로 편리해도 이럴 때는 아쉬웠다.
유선우는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금선우교의 사이트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표기된 약도를 찍어 갤러리에
저장했다.
‘내 이 새끼들을 그냥…….’
유선우의 눈동자에서 의지가 일렁거렸다.
오늘은 기필코 조져버리고 말 것이다.
일단 일부터 끝내고.
***
“여기까지만 합시다.”
“벌써요? 아직 4시밖에 안 됐는데.”
“이 정도면 됐어요. 많이 피곤해서.”
유선우는 스트레칭하듯 뻐근한 몸을 쭉쭉 당겼다. 힘이 쌓일수록 근원석의 흡수로 인한 부담은 줄어들었
다.
문제는 소화가 하루 만에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 소화가 덜 된 상태에서 계속 받아들이다 보니 컨디션의
난조가 계속되었다. 23일까지는 페이스를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달리 할 일도 있고요.”
“또 데이트예요?”
박아연이 새침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녀는 돌아온 후로 찬밥 신세가 된 듯해 서운함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었다. 동료로 여겨지는 건 좋지만, 그녀가 원하는 관계는 연인이었다.
“이걸 저를 깐다고요? 제가 꼬실 땐 맨날 바쁘다고 하면서.”
“시, 시간이 안 맞는 걸 어떡해요.”
박아연도 그녀 나름대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새로운 차와 새로운 집.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게 보
통 일이 아니었다.
“그럼 오늘 갑시다. 시간 돼요?”
“시간이야 뭐… 선우 씨는 괜찮아요?”
“원래부터 약속 잡은 거 아니었어요. 그냥 다른 일 있는 거지.”
유선우가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이릴, 넌?”
“마음 같아선 가고 싶은데….”
아이릴이 아쉽다는 듯이 땅이 꺼지라 한숨을 뱉어냈다. 거절하려는 낌새에 유선우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TV라도 보려고?”
“아니요. 기도해야 돼요.”
“요즘 잘 안 하잖아.”
“그래서 아브나바 님한테 혼났어요. 아니지. 혼났다기보단 삐지셔서 좀.”
“뭐? 삐져?”
나이 지긋하게 처먹고 잘하는 짓이다. 그렇게 생각한 유선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어. 그럼 둘이 가야겠네.”
“스승님, 왜 저한테는 안 물어보십니까?”
“저도입니다. 아직 돌아다니고 싶습니다만.”
“노는 자리가 아니라서 그래. 다음에 같이 가자.”
리디와 쉬발은 반응이 하나하나 촌놈 같았다. 뭐만 보면 호들갑을 떨어대니 동행하는 입장에선 심히 피곤
했다.
“아쉽습니다….”
리디의 눈가가 축 처졌다. 그녀는 시선을 떨군 채로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
박아연은 여주시청 인근에서 주차했다. 차 문을 나선 그녀는 주변의 건물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근데 여기는 왜 온 거예요?”
“사이비 놈들 잡으러요.”
“사이비?”
어리둥절한 모습에 유선우가 불쾌한 낯으로 설명했다. 금선우교에 대해서 얘기하자 폭소가 돌아왔다.
“아, 금선우교. 푸흡.”
“웃지 마요. 심각하니까.”
박아연이 으흠, 하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여러 매체로 주워들은 정보를 떠올렸다.
“저도 대충 들어서 알아요. 악질이던데.”
“집문서 털린 사람도 있고, 싸구려 창을 500만 원에 샀다는 사람도 있고. 웬 부적도 판다더라고요.”
“남이 뭐라든 신경 안 쓴다더니.”
“이건 예외죠. 어떻게 남의 이름 달고 사이비 짓을 해.”
언짢은 어조로 말한 유선우는 상가 건물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박아연은 그의 옆을 걸으면서 슬며시
손을 잡았다.
“이래도 되죠?”
“맘대로요. 어차피 변장도 했는데.”
변장 반지는 유선우가 투명 망토만큼이나 애용하는 아티팩트였다. 민낯으로 돌아다니면 맥주 하나 사는
데도 사인 요청을 대여섯 번씩 받고는 했다.
“근데 간다고 뭐가 될까요?”
“본인이 등판했는데 그냥 배 째진 않을걸요.”
“배 째면 어쩌시려고,”
“와장창이죠 그럼.”
가벼운 내용과는 반대로 목소리는 심각하다. 박아연은 피식거리면서 추억을 회상했다.
‘예전엔 이런 말 들으면 겁먹었었는데.’
헌터 협회 앞에서 폭탄을 던지고 싶다 했었던가. 그때는 지금처럼 웃기는커녕 눈에 쌍심지를 켰었다.
어느새 이만큼 유선우에게 익숙해졌는지. 그녀는 자신의 변화가 새삼스레 신기하게 느껴졌다.
둘은 손을 엮은 채 5층짜리 상가 건물로 들어갔다. 4층으로 올라가자 북적대는 인파가 보였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계단까지 줄이 이어질 정도였다. 성행한다더니 과장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게 다 선우 씨 신자예요?”
“…어이가 없네. 가입비가 30만원이라는데. 30만 원이 껌값인가?”
“글쎄요. 다들 부자로는 안 보이네요.”
“하, 일단 갑시다.”
유선우는 행렬의 앞으로 거침없이 걸어갔다. 열 발자국 정도를 떼자 누군가에게 어깨를 붙잡혔다. 뒤를
돌아보니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이보쇼. 줄 선 거 안 보입니까? 급한 건 알겠는데, 다 똑같으니까 새치기는 하지 맙시다.”
“대체 댁들은 뭐가 급한데요?”
유선우가 황당하다는 듯이 말하며 손을 치워냈다.
“말로 해서 안 될 사람이네. 처맞고 싶으면-”
“별의별 씹…….”
사내의 낯이 일그러진 순간이었다. 은은한 빛무리가 흘러나오더니 유선우의 변장이 풀렸다. 그 신비한
장면에 곳곳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오, 오오오…!”
“유선우다….”
“등신아, 교주님이셔!”
“교주님!”
죄다 개소리를 뱉어댔다. 한 발짝 떨어져 있던 박아연이 웃음을 참아내면서 소곤거렸다.
“역효과 같은데요?”
“개 같네 진짜.”
욕지거리를 중얼거리자 위협하던 사내가 흠칫거렸다. 사내가 털썩 무릎을 꿇고는 유선우의 바짓가랑이
를 붙잡았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몰라뵙고!”
“제발 그냥 일어나요.”
“아, 아흐흐. 웃으면 안 되는데.”
- 풉, 어흐흐흐! 제가 교주님을 몰라 뵙고오오!
유선우가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슬슬 딜 미터기가 한계에 달했다. 그가 씩씩거리고 있을 때 사
무실의 문이 열렸다.
“무슨 소란이죠? 여긴 신성한 곳입니다. 가능한 한 조용히….”
한 인상 좋은 남자가 문밖으로 나왔다. 그가 눈알을 데구르르 굴리다가 유선우와 눈이 마주쳤다.
“음. 으흐음.”
다음으로 남자의 시선은 엘리베이터와 계단에 머물렀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침을 삼키곤 유선우를 똑바
로 응시했다.
“오셨습니까, 교주니이이임!”
“저런 미친.”
수준급의 태세전환에 유선우가 허탈한 목소리를 흘렸다. 그러든 말든 남자는 함박웃음을 지은 채로 다가
왔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너 뭐 하는 새끼야?”
“하하. 난장판은 서로 원하는 바가 아니지 않습니까.”
남자가 수군거리면서 유선우를 사무실로 안내했다. 유선우는 난장판을 만들어도 상관없었으나 우선은
따랐다. 어떤 개소리를 뱉는지 들어나 보려는 심산이었다.
***
달칵.
사무실로 들어가자마자 남자가 문을 잠갔다. 그는 책상 앞에 있는 의자를 빼내고는 유선우에게 내밀었
다.
“자, 자. 우선 앉으세요.”
태도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연스러웠다. 유선우는 순순히 의자에 앉고 거만하게 다리를 꼬았다.
“근데 이 여성분은….”
“네가 알 거 없고. 의자나 꺼내줘.”
“옙.”
남자가 빠릿빠릿하게 다른 책상으로 달려가 의자를 가져왔다. 박아연은 입꼬리를 미친 듯이 씰룩거리면
서 그대로 엉덩이를 깔았다.
“그래. 말해봐.”
“뭘 말씀이신지. 하하.”
“야.”
유선우가 상체를 반쯤 숙이고는 팔꿈치를 무릎에 지탱했다.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면 뒤진다. 내 입에서 똑같은 말 나와도 뒤진다.”
“아, 알겠습니다.”
기세가 자못 사나워 남자의 눈동자가 파들파들 떨렸다. 그는 황급하게 사무실 곳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부에는 교인이 네 명 있었다. 그들은 남자와 시선이 마주치는 족족 딴청을 피웠다.
‘X 됐다.’
남자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그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유선우의 시선도 날카로워졌다.
스읍.
남자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고는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사, 살려주세요…….”
반항하는 낌새는 일절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몸을 파들파들 떨어댔다. 도주는 불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었다.
“이, 이러려던 게 아니었습니다.”
“원래 다들 그렇게 말해.”
“정말입니다! 전 원래 견실한 회사원이었는데….”
“하아.”
유선우가 깊게 숨을 토해내 말허리를 끊었다.
“후회하고 말고는 전혀 안 중요해. 남한테, 주로 나한테 민폐를 끼쳤다는 게 핵심이지. 네 인생사는 관심
없고. 얼마 해 먹었어?”
남자는 고개도 들지 못했다. 그는 지면에 이마를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저희도 정확한 액수는 잘…. 일의 특성상 장부를 기록하지는 않아서요. 하하.”
“뭘 잘했다고 웃냐.”
유선우가 못마땅하게 혀를 찼다.
“일단 말이 통하니 다행이네. 튀거나 뒷돈 찌르거나 정색하거나. 이 셋 중 하나였으면 바로 뚝배기 깼을
텐데.”
“말이 통하긴요. 선우 씨, 호구 잡히면 안 돼요. 딱 봐도 연기잖아요.”
“연기라니요! 저 무릎까지 꿇었습니다!”
“큰 소리 내지 마. 어차피 개맞을 거야 넌.”
연기든 아니든 별 의미는 없었다. 이번 일에서 유선우는 오로지 팩트만을 따졌기 때문이다.
팩트는 단 두 가지였다.
금선우교가 자신의 이름을 멋대로 썼다는 것.
사이비 소굴까지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는 것.
그 둘로도 빡치기에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