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님 뭐하세요-145화 (145/179)

금선우교

이후로도 관리자 사냥은 계속되었다.

유선우는 하루에만 세 던전을 클리어했다.

이동하는 시간까지 합해 6시간 만의 쾌거였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벌써요? 아직 저녁도 안 됐는데.”

“운전하기 피곤하잖아요.”

“어디 주차해놓고 택시라도 타죠 뭐.”

“됐어요. 저도 좀 피곤해서.”

유선우는 피로감을 표현하듯이 좌석에 깊게 몸을 파묻었다. 그는 박아연을 배려하기도 했으나 본인 역시

피곤했다.

정확히는 속이 더부룩했다.

‘허접도 넷쯤 되니까 좀 소화가 힘드네.’

- 걔네도 힘은 나름대로 있어. 그냥 더럽게 못 싸울 뿐이지.

유선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관리자들은 하나같이 약해 빠졌었지만 간섭력의 양과 질은 봐줄

만했다.

적대하는 위치에선 굉장히 바람직했다. 들인 수고보다도 커다란 성과를 얻어냈으니 당연했다.

다만 심적으로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죄다 싱겁게 끝났기에 전투라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투쟁심을

만족시킬 만한 적이 필요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싸움광이었는지.’

- 원래부터 좀 그랬잖아.

‘에이,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낙원에서의 생활로 인해 생긴 변화일 터였다. 하루가 멀다고 살벌한 대련을 해댔었으니. 피가 끓어오르

는 듯한 감각에 매료된 것일지도 몰랐다.

“박아연 씨, 그건 언제인지 알아요?”

“그게 뭔데요?”

“뭐더라… 게이트 한 번에 열리는 거.”

“집단 발생인지 뭔지 하는 거요?”

박아연이 고민하듯이 핸들을 검지로 툭툭 두드렸다.

“한국에선 세 지역인데, 두 곳은 일시가 같다더라고요. 서울이랑 김포가 매달 8일, 부산이 매달 23일.”

“같다고요?”

정보를 들은 유선우가 성가심에 인상을 구겼다. 다음 달에는 아무래도 서울이나 김포 중 한 장소를 골라

야 할 듯했다.

반면에 부산은 형편이 좋았다.

현재는 4월 17일.

엿새라면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아 적당했다.

“여기 인간들도 고생이겠습니다. 매달 저번 같은 물량이 세 번이나 나온다는 거 아닙니까.”

“의외로 네가 그런 소리를 다 하냐.”

“저희도 비슷한 처지였으니까요.”

쉬발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세상 풍파에 지친 중년의 얼굴에 어울리는 미소였다.

“생각해보면 형님도 기구한 인생이십니다.”

“그것도 그렇지.”

유선우는 긍정하며 차창을 바라봤다. 바깥의 풍경보다는 비친 얼굴이 눈에 띄었다. 그는 자신의 모습이

그리 싫지 않았다.

‘처음엔 그렇게 욕했었는데.’

왜 하필 내가, 하며 인생을 한탄하고는 했었다.

남들은 평범하게 잘만 사는데 왜 나만.

일에 치이다가도 밤에는 애인과 맥주를 까는 장면을 꿈꿨었다.

하지만 지금은 글쎄.

오히려 평범한 자신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재미없겠어.’

***

투명 망토는 유선우의 필수 장비가 되었다. 청일의 주변에 그를 노리는 인파가 득실거렸기 때문이다.

“저게 다 기자야?”

창밖을 힐끔 쳐다본 차세정이 질렸다는 듯이 말했다. 사옥 앞에는 폭동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펼쳐져 있

었다.

“다는 아니고, 전 인질도 좀 있다더라.”

“인질?”

“서울에서 돌아온 사람들.”

“아, 그렇구나. 그냥 무시하려고?”

유선우는 대답하는 대신에 콜라 캔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의 매정한 태도에 차세정이 피식거렸다.

“하긴. 속 보이네.”

그들의 속내는 안 봐도 뻔했다. 감사 인사를 구실로 커넥션을 만들고자 찾아왔겠지.

순수한 의도를 가진 사람은 다섯 명도 되지 않을 것이다. 피해자라는 프레임이 사람의 인성을 보증하지는

않는 법이다.

“근데 왜 보자고 했어? 나 아직 일 안 끝났는데.”

“그게, 음… 저녁은 먹었어?”

“같이 먹자고?”

차세정의 눈가가 곱게 휘어졌다. 관계에서 약속은 주로 그녀가 잡는 편이었다. 그만큼 유선우가 먼저 말

을 건네올 때면 기분이 들떴다.

유선우가 조심스러워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귀엽게만 보였다.

“응. 예약 잡아뒀어.”

“뭐야. 웬일이래.”

“그냥 가끔은. 퇴근 언제야?”

“30분도 안 남았어. 좀만 기다려.”

차세정이 따스한 웃음을 흘리고는 유선우의 볼에 입을 맞췄다. 애정 표현에도 유선우는 어색해할 뿐이었

다. 그는 이전의 크리스마스이브를 떠올렸다.

‘제발 별일 없기를.’

***

유선우와 차세정은 풍치 좋은 한식당으로 들어갔다. 차세정은 눈알을 굴리면서 연신 감탄을 흘렸다. 기

품이 느껴지는 인테리어부터가 한 끼 식사의 가격대를 알려왔다.

“나 이런 데 처음 와봐.”

“그래? 돈도 많이 벌면서.”

“그 정도는 아니야. 가끔 사치로는 괜찮겠지만… 같이 올 사람이 있어야 오지.”

차세정이 유선우와 살짝 팔짱을 끼며 생글거렸다. 그녀의 입가는 내려앉을 줄을 몰랐다. 소나기 맞은 식

물과도 같은 활기였다.

한편 유선우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예약한 룸의 미닫이문을 열자 내부에는 이미 선

객이 있었다.

“아, 어서 와요.”

깔끔하게 차려입은 소피아였다. 화려한 금발이 의외로 전통적인 한식당과도 매치가 되었다. 메이크업 샵

에도 들렸는지 미모가 주변마저 환하게 만드는 듯했다.

“…유선우.”

“응.”

“해명해.”

시종일관 온화하던 차세정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변했다. 목소리 또한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유선우는 헐레벌떡 움직여 소피아를 가리듯이 차세정의 앞에 섰다.

“그게 있잖아. 어? 저 누나가 꼭 한번 만나고 싶다고 하더라고.”

“누나?”

“아니이, 누나 맞잖아.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한국 나이로 32살이다. 헌터인 탓인지 20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마는.

어쨌든 애들에게는 아줌마 소리 들어도 투덜대기 힘든 나이다.

“그래서 왜 나한테 말 안 했는데?”

“제가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어요. 일단 앉으세요.”

소피아가 금수저다운 우아한 태도로 방석을 가리켰다. 나긋나긋한 어조에 차세정도 별수 없이 착석했다.

유선우는 잠깐 고민하다가 차세정의 옆에 앉았다.

전부 자리에 앉자 소피아가 말문을 열었다.

“세정 씨 맞으시죠?”

“네. 한국어 잘하시네요, 소피아 씨.”

“선우랑 똑같은 말 하시네. 고마워요.”

다행히도 시작은 잘 끊었다.

유선우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쉴 때였다.

“왜 보자고 하셨죠? 입막음까지 시키시고. 솔직히 좀 불쾌해요.”

“미안해요. 미리 말씀드리면 진솔하게 대화하기가 힘들 것 같아서. 불공평하긴 해도 그건….”

말을 흐린 소피아가 유선우를 지그시 쳐다봤다.

“넘어가 주세요. 선우가 세정 씨 옆에 앉았으니까.”

“별걸 다 지적하네. 그럼 제가 중간에 앉아요?”

“넌 가만히 있어.”

“아니, 하.”

유선우는 헛웃음 치듯이 한숨을 쉬었다. 그가 답답함에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래서 싫었는데!’

- 아흐흐흐! 다 자업자득인데 뭘.

‘원래는 너도 여기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 있잖아. 안 보일 뿐이지.

‘쒸이발…….’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차라리 관리자들과 17대 1로 싸우는 게 훨씬 편할 듯했다.

지금만큼은 동자공을 대성한 백명이 부러웠다. 물론 회귀한다 쳐도 배울 생각은 개뿔도 없지만.

“그래, 좋아요. 저도 그쪽이랑은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유선우가 한탄하는 사이 차세정의 눈빛에 날이 섰다. 반면에 소피아는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말아요.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럼 뭐죠?”

차세정은 이미 방해받은 느낌이었으나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상대가 여유로우니 속 좁은 모습을 보여주

는 건 역효과였다.

“그냥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안 되나요?”

“소피아 씨한테 메리트가 없어 보이는데.”

차세정은 본인과 소피아의 격차를 인정했다. 자신은 아무리 유능하단 소리를 들어도 일개 직장인.

한편 상대는 재벌가의 딸이면서 S급 헌터다. 그런 휘황한 스펙을 가진 여자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기가 힘

들었다.

“너무 빡빡하시다. 친구 관계에 메리트가 필요한가요?”

“요즘은 초등학생도 집안 맞춰서 논다더라고요.”

“으, 징그러워. 요즘도 그래요?”

“살기 힘들다고 똘똘 뭉치는 건 싸우는 사람들만 그래요.”

그 말에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다고 남들이 나쁜 건-”

“죄송한데, 전 에둘러 말하는 거 싫어해요.”

“…둘이 되게 닮았네요.”

소피아는 차세정과 유선우를 번갈아 봤다. 직설적인 면이 특히 닮아 있었다. 성격 외에도 차세정의 사늘

한 인상과 유선우의 장난기가 드러나는 인상이 묘하게 어울렸다.

둘이 마주 웃는 모습을 상상한 소피아는 가슴의 근질거림을 느꼈다.

“세정 씨 말대로예요. 살기 힘들면 뭉쳐야지.”

“네?”

“난 솔직히 선우를 못 믿겠어요. 인기가 좀 많나요? 모르긴 몰라도 한 스무 명은 거쳤을 거 같은데.”

“제 기억으로는 딱히요. 고등학교 때부터 알았거든요.”

유선우는 입도 뻥긋 못 했다. 스물로는 턱없이 모자랐다. 431-9 차원의 병실에서 본 여자만 반백은 넘었

다.

‘갑자기 배가 아프냐.’

- 너는 진짜 나쁜 새끼다.

‘적어도 넌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 알아, 알아. 근데 내가 쟤, 세정이였으면 너 열 번은 찔렀을걸.

유선우는 갑작스레 목이 탔다. 찬물을 한 번에 들이켜도 갈증이 가시지를 않았다.

“그래요? 의외네.”

소피아가 탐색하듯이 유선우를 응시했다. 유선우는 빈 물잔을 꺾으며 침만 삼켜댔다.

‘그렇게 보지 마…….’

따가운 시선이 위장을 쿡쿡 찔러댔다. 딱 10분만 정신을 잃고 싶었다.

“그래도 일단은 동의해요.”

“말이 통해서 다행이네요. 아시겠지만 전 한국에 오래 못 있거든요. 오늘도 미쳤냐고 쌍욕 먹었죠.”

“소피아 씨한테요?”

“일 동료인데, 며칠 안 만나니까 말 막 하더라고요.”

소피아가 섬뜩하게 미소지었다.

“남자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요.”

“에이. 그런 걱정 안 해요.”

유선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걱정 좀 안 했으면 좋겠는데.”

지나가듯이 뱉은 그 말이 핵심이었다. 즉 꼬이는 날파리를 걱정하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말. 알아들은 차

세정이 머리를 주억였다.

“대충 이해는 했어요. 근데 저한테 득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요즘 이런 사람들 있는 거 알아요?”

소피아가 별다른 조작 없이 폰을 내밀었다. 처음부터 무언가를 준비해둔 듯했다.

차세정은 의아하다는 눈초리로 화면을 봤다. 곧이어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도 보자. 뭔데?”

유선우도 달라붙어 화면을 들여다봤다. 그곳에는 인터넷 기사가 나타나 있었다.

- 원아이즈 신소현, 이상형은 헌터 유선우… “한 번쯤 만나보고 싶어”

어그로성 짙은 제목 아래에는 젊은 여성의 사진이 보였다. 내용을 읽어보자 실제로 했던 발언인 모양. 몰

아가기 식의 추측성 기사는 아니었다.

“웬 듣보야. 그냥 반짝인기 따려고 한 소리 아닌가?”

“아니, 요즘 잘 나가. 거의 정상급일걸.”

“잘 아네?”

“나름 팬이거든.”

차세정이 아니다, 하며 정정했다.

“팬이었지.”

그녀가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응이 만족스러웠는지 소피아가 실실거렸다.

“이런 사람들, 세정 씨가 건드리기 힘들잖아요?”

“아쉽게도요.”

“제가 다 치워줄게요. 그러니까.”

소피아는 다시 한번 폰을 건네줬다. 이번에는 인터넷 대신 전화 키패드가 열려 있었다.

“일 생기면 전화해요. 알았죠?”

“…….”

차세정은 한동안 소피아와 시선을 맞췄다.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기를 수 초.

그녀가 뒤늦게 손을 뻗었다.

“좋아요.”

***

유선우의 귀환 이후 한국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얼핏 보기에 열기는 테러리스트 소탕으로 상한가를 기록하는 듯했다. 이제는 유선우가 휴식기에 접어 들

리라는 관점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오히려 워밍업을 마쳤다는 듯이 본격적인 행동이 시작되었다.

- 이거 봤냐

- 청일 유선우, 파죽지세로 던전 공략… 논란 속에서 실력을 입증하다.official

- 하루에 던전 세 개씩 깨신답니다. 그저 빛..

- 빛 드립 슬슬 질리는데 하지 않을 수가 없다ㄹㅇ루다가

고작 E~D급 던전을 골라서만 공략한 것이 아니었다. 유선우는 등급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이 무차별적

으로 던전을 쏘다녔다. 덕분에 국내에서는 오랜만에 축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 근데 파티 짰다며? 누군지 아냐

- 한 명은 옛날에 좀 유명한 B급 헌터였음. 그 막 손가락 튕기면서 능력 쓰길래 대령님이라고 그랬었지

ㅇㅇㅇ기억난다 대령님

- 대령님이 뭐야

- 고전 띵작 갓금술사를 모른다고?

- 킹철의 짱금술사?

- 그게 왜 고전?

- 20년쯤 됐잖아 지금 2022년이다

- ㅈㄴ 미래 같음ㅋㅋㅋㅋㅋㅋ

유선우의 명성이 천지를 울려댔다. 그럴수록 그와 행동하는 넷에게도 시선이 쏠렸다.

- 실제로 만나봤습니다. 리얼루 용 타고 날아다님. 제가 인스타에 올렸음

└ 이거 강창민 아니냐?

└ 강이 좀 그만 때려 쓰레기야

└ 왜 고닉 안 쓰냐

└ 좀 복잡함 갤 하는 거 아버지한테 걸려서;

- 여기서 재평가되는 ‘그 사이비’

저도 사이비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심심해서 전화해보니까 30만 원을 가입비로 내라더라고요ㅋㅋ

느낌이 싸했는데 가봤어요. 뮤튜브 각 재려고요.

하지만 저는 결국 회개했습니다.

썰이 듣고 싶으십니까?

그러시다면 게시판에서 ‘민수’ 찾아주세요.

└ ‘그 종교’ 침투력 무엇 ㄷㄷㄷ

└ 우리 엄마도 빠졌던데... 집문서 날아갔다

└ 저거 설마 윾선우가 사업하는 거 아님?

└ 야리적 코심ㄷㄷㄷ

“아니야, 이 새끼들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유선우가 길길이 날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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