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님 뭐하세요-143화 (143/179)

될 대로 됐다

김정수는 유리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유선우와 마주 앉았다. 그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면면들을 훑어봤

다.

묘하게 인상이 흐릿한 여자와 붉은 머리카락의 미녀. 다음으로는 중년 사내에게 시선이 닿았다. 그러자

사내가 벌떡 일어나 얼굴을 들이댔다.

“뭘 꼬라보나, 인간. 눈알 뽑히고 싶은가?”

쉬발이 눈을 부릅뜨고 김정수를 위협했다. 태도가 빚 독촉하는 사채업자나 다름없었다.

김정수는 반응이 곤란해 눈썹을 꿈틀거리기만 했다.

“야. 나대지 마.”

“시정하겠습니다.”

유선우의 타박에 충신 쉬발은 순순히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김정수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그래서 유선우 씨. 이분들은 누구신지요.”

애써 태연함을 가장한 김정수가 물었다.

유선우는 머릿속으로 말을 정리한 뒤에 입을 열었다. 사정이 복잡했기에 설명에는 제법 오랜 시간이 필요

했다.

김정수는 단어 하나도 빠트리지 않겠다는 듯이 경청했다. 그는 지루한 기색도 없이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

다가, 끝에는 허탈한 소리를 흘렸다.

“그게 사실입니까?”

“당연하죠. 전 거짓말 잘 안 해요.”

실제로 거짓의 비율은 적었다. 유선우는 솔직하게 자신이 이계에서의 귀환자임을 설명했다. 431-9 차원

의 주민인 아이릴들의 존재를 납득시키기 위함이었다.

‘하, 더럽게 길어. 이래서 말 안 했었던 건데.’

유선우가 속으로 한숨을 토해냈다. 조리 있게 설명하려니 성가셔 죽는 줄 알았다.

관리자에 대해서는 제외했기에 고생은 더했다. 개연성을 맞추는 게 이렇게도 고단한 일이었다.

“그럼 그, 유선우 씨는 김한성과 싸운 뒤에 그 차원으로 가는 게이트로 들어가셨었다는 겁니까?”

“들어간 게 아니라 얘네가 납치했어요. 거기서 부상 회복하고 얘네까지 데려온 거죠.”

“…솔직히 쉽게 믿지는 못하겠군요.”

그래서 개연성 못 맞췄다.

딱 위험할 때 특정 장소의 게이트가 열렸다는 건 너무 뜬금없었다. 다만 김정수는 그에 초점을 두지 않았

다.

“게이트 너머에 사람이라니…. 그러고 보면 예전에 인간형 몬스터가 나타났었죠.”

“그거 얘예요.”

“제, 제가 몬스터라고요?”

“네가 오자마자 깽판 쳤었잖아. 네 탓이지.”

“그건 그렇지만….”

아이릴도 찔리는 구석이 있어 반박하지 못했다. 그저 입술을 삐죽 내밀 뿐이었다.

“뭐랄지. 들어선 안 될 걸 들은 기분입니다.”

김정수는 손가락으로 눈가를 문지르며 아이릴을 쳐다봤다. 설명하는 도중에 아이릴은 변장을 풀었다. 그

렇게 나타난 본모습은 확실히 그때의 인간형 몬스터와 똑같았다.

“아시다시피 이건 덮어야 합니다.”

“알아요. 알려져서 좋을 게 없죠. 제 이미지는 깨질 거고, 게이트 너머에 필요 이상으로 관심이 쏠릴 거

고.”

김정수의 시선이 다시 유선우에게로 옮겨갔다.

“우선 지금 말씀해주신 이유가 있겠죠.”

“네, 뭐.”

“사실 듣지 않아도 알 것 같기는 합니다.”

다름 아닌 신분의 보장이다. 유선우는 앞으로도 아이릴들과 활동할 터. 가능하다면 편의를 봐줄 사람을

찾는 편이 좋았다.

그리고 김정수는 그 역할을 충분히 소화해낼 만한 인물이었다. 테러리스트 소탕 건을 처리한 수완만 봐도

확실했다.

“얘넬 아예 헌터로 만들고 싶은데, 방법 있나요?”

“글쎄요. 새로운 각성자가 나타나지 않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맞다. 그럼 됐어요. 그냥 문제 생기면 의지할 데가 필요했거든요.”

유선우는 아이릴들을 집에 가둬두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목표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도. 기껏 지구

로 왔으니 즐길 건 즐기게 해주고자 마음먹었다.

- 근데 굳이 말할 필요가 있었나? 배 째라 하겠다며.

‘그러다 얘네가 갑자기 어디 재벌이라도 죽이면 어떡해?’

- 뭔 말도 안 되는 걸 걱정하네.

‘혹시 모르는 거지. 보험이야, 보험.’

쉬발이 도시 한복판에 브레스를 쏘지 않는 이상은 덮을 수 있다. 한국에선 힘만 있으면 세간의 눈마저도

가리는 게 가능하다.

‘경범죄 한둘 정도는 조용히 넘어갈 수 있겠지.’

- 애들 버릇 망치겠다.

‘안 망쳐. 대신에 나한테 뒤지게 맞을 거라서.’

법보다 주먹이 강한 사회.

유가네도 마찬가지다.

“그럼 설마 그 용도 그곳에서 온 겁니까?”

“그건 얘예요.”

유선우가 턱짓으로 쉬발을 가리켰다. 쉬발은 얼굴만 폴리모프를 풀어 그르릉 울어댔다.

“아, 알겠습니다.”

용의 큼지막한 이빨이 다가오자 김정수가 목소리를 가늘게 떨었다. 김한성을 도발했었던 그도 용 앞에서

는 오금이 저렸다.

“그럼 이분은…?”

김정수가 공손하게 손바닥을 펼쳐 리디를 지목했다. 여태까지 나온 게 인간형 몬스터에 용. 그는 다음에

뭐가 나올까 두려웠다.

“그냥 제 제자예요.”

“아, 하하. 그랬군요.”

“이 셋 중에 제일 세죠. 아마도.”

칭찬하자 리디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의기양양한 모습에 아이릴과 쉬발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뭘 봅니까? 꼽습니까?”

“진짜 짜증 나네. 서열 정리한다고 했었죠. 오늘 해요.”

“나도 끼지. 슬슬 때리고 싶어서 미치겠군.”

짙은 살기가 대표실을 가득 채웠다. 김정수는 참다못해 눈을 질끈 감았다. 닫은 눈꺼풀이 처량하게 떨렸

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이 있는데.”

“이번엔 또 뭐죠?”

“너무 걱정하신다. 좋은 일이에요.”

유선우가 키득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슬슬 계약서 쓰려고요. 재계약합시다.”

“재, 재계약….”

김정수는 어째선지 유선우를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얼굴에서 찬란한 광채가 나는 듯했다.

***

“이렇게 모이는 것도 오랜만이네.”

청일의 구내식당, 유선우의 맞은편에 앉은 최현석이 말했다.

테이블에는 한강과 강창민도 동석해 있었다. 강남역 게이트를 공략했었던 인원이었다.

“그러니까요! 연락도 맨날 씹고. 제가 오빠한테 그것밖에 안 돼요?”

“제발 그 소리 좀 하지 마.”

유선우가 넌더리 난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신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나만 나빠? 너네도 토벌이다 뭐다 바쁘면서.”

“하. 제 짬에 왜 지원을 그렇게 많이 가는지 모르겠어요.”

강창민이 피곤함에 절은 음성으로 푸념했다. 그는 월급 루팡하던 시절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원래 A급쯤 되면 놀고먹지 않았나? 나라가 개판인 건 알겠는데, 용인은 나름 멀쩡하다며.”

“요즘은 클랜들끼리 사이가 좋거든. 경쟁도 완화된 편이고. 그래서 청일 일보단 지원 요청이 더 많아.”

“그게 다 빚이었구만.”

“던전 토벌 가면 지들끼리 연애하고 난리 났어요. 오빠가 봐야 알아.”

한강이 고기를 씹어대며 투덜거렸다. 하는 짓만 보면 여전히 병아리였다.

“맞다. 현석이 형도 여자친구 있는 거 알아요?”

“뭐? 누구?”

“이거 말해도 되죠?”

강창민의 물음에 최현석이 어깨를 으쓱였다. 맘대로 하라는 제스처였다.

“지금은 B급인데, 요즘 유망주로 핫해요. 근데 말한다고 아실지 모르겠네. 형, 남한테 별로 관심 없잖아

요.”

“어째 욕하는 것처럼 들리네. 사진 없어?”

“기다려 봐.”

최현석이 어쩔 수 없다는 낯으로 폰을 꺼냈다. 자랑하고 싶다는 낌새가 눈에 선했다.

“오, 예쁘시네.”

사진을 확인한 유선우는 솔직하게 감상을 내뱉었다. 외모가 출중한 여성이었다. 옷차림이 조금 요란했는

데, 얼굴 덕에 싸 보이긴커녕 화려하게만 보였다.

“나이는?”

“스물하나. 좀 어리지? 주변에서 욕 좀 먹었어.”

“어리긴 뭘. 여섯 살이면 큰 차이도 아닌데. 얼마나 만났어?”

“슬슬 2년 정도 됐을걸.”

“…2년? 그럼 고딩 때 아닌가.”

중얼거리는 말에 최현석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딱히 잘못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세간의 인식이라는 게 있기 마련. 뭐라 말한들 변명처럼 들릴 게 뻔했다.

“그래. 잘 만나면 좋은 거지.”

유선우는 물고 늘어지지 않고 응원해줬다. 6살 어린 미녀를 얻었단다. 따져보면 인생의 승리자였다.

“결혼 얘기도 슬슬 오가고 있어.”

“벌써?”

“대화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넘어가더라고. 서로 부족한 것도 없으니까. 애까지 낳을진 모르겠

지만.”

최현석이 쓰게 웃었다.

유선우는 절친의 모습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철없던 10대의 그림자는 온데간데없고 굉장히 어른스러

워 보였다.

“넌 언제 결혼하게? 사이 좋잖아.”

“안 그래도 며칠 전에 혼인신고서 썼다.”

“…허, 진짜요?”

“오빠 결혼해요? 진짜?”

“아니, 아직 그건 아닌데.”

유선우는 구청으로 향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실제로 혼인신고서를 작성했었다. 당연히 제출하진

않았으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냥 쓰기만 했어, 쓰기만.”

“형, 조심해요.”

“응? 뭘?”

“형 신자라는 사람들이요. 요즘 극성이던데.”

뜬금없는 화제에 유선우가 한숨을 내뱉었다.

“맞다. 그런 새끼들도 있었지.”

“갑자기 결혼 얘기 터지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

“저도 그거 알아요. 오빠 거의 예수님 취급이던데요? 두 번이나 살아났다고.”

“두 번?”

유선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확실히 귀환한 건 두 번이 맞다. 하지만 첫 번째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을

터. 뒷조사라도 당한 느낌에 기분이 찝찝했다.

“내 신상 털린 건가?”

“털렸다기보단 그거야. 너 고딩 때 BJ 했었잖아.”

“그게 왜?”

의아하다는 물음에 최현석이 대답했다.

“뭐라고 하냐. 창시자? 그런 사람이 네 시청자였다고 하더라고.”

“…진짜?”

***

“진짜네.”

새로이 장만한 모니터를 쳐다보던 유선우가 헛웃음을 흘렸다.

화면에는 하나의 웹사이트가 펼쳐져 있었다. ‘금선우교’라는 등신 같은 이름이 배너에 달린 사이트가.

‘별의별 미친놈이 다 있구나.’

페이지에는 유선우의 사진과 방송 영상이 가득했다. 그중에는 고등학생 시절의 기록도 소수나마 존재했

다.

‘X나 기분 나빠.’

글귀를 읽어보니 가관이었다.

BJ였던 고등학생이 실종되더니 신의 사도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하여 세상의 썩을 놈들을 죽여 평화를

내려준다나 뭐라나.

이 짧은 얘기를 미사여구로 장식해 5000자는 더 적어놨다. 읽는 쪽이 더 고역이었다.

- 프흡, 아흐흐흐! 틀린 말은 아니네, 왜.

‘그래서 더 골치 아픈 거 아니야.’

엔라의 말대로 마냥 틀린 소리도 아니었다. 구원자 운운이 우습기는 해도 결국에는 그렇게 될 테고. 담백

하게 적으면 오히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그래. 여기까진 좋다 쳐. 근데.’

마우스 커서가 한 방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집회 장소와 문의 번호가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유선우는 궁금해서 실제로 전화를 해봤다. 들려온 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뱉는 개소리였다.

‘가입비가 30만 원이라고? 처돌았냐?’

금선우교라는 이름부터가 느낌이 싸했다. 누가 봐도 사이비다. 그런데 요즘은 사이비가 먹혀드는 듯했

다. 자유게시판의 글이 2분에 한 개꼴로 갱신되니 말 다 했다.

‘내 방송 보고 사이비가 됐다고?’

기분이 개떡 같았다. 자신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서 더더욱 마음에 안 들었다. 이걸 애정이라고 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마는.

‘안 되겠어.’

- 만나보려고?

‘어. 좀 책임감 같은 게 느껴진다.’

- 뭘 책임감까지야. 오늘?

‘오늘은 아니고. 지금은 일부터 해야지.’

유선우는 컴퓨터를 끄고는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돌리자 외출 준비를 마친 식충이들이 보였다.

“슬슬 가자.”

“이번에는 어디로 갑니까?”

“음….”

유선우는 고민하는 듯하다가도 건성으로 대답했다.

“게이트 열린 곳 아무 데나.”

야생의 관리자를 잡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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