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님 뭐하세요-141화 (141/179)

될 대로 됐다

지구로 돌아간 뒤에 유선우는 남은 테러리스트들을 정리했다. 샅샅이 뒤지면서까지 소탕하지는 않았다.

귀찮기도 했을뿐더러 김정수가 부른 헌터들이 서울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어쩔 거예요?”

“글쎄다.”

아이릴의 물음에 유선우는 포박한 대리자를 쳐다봤다. 현재 놈은 기절한 채로 쉬발의 등에 매달려 있었

다. 수갑의 디버프 탓에 반쯤은 송장이나 다름없었다.

“수갑도 챙겨야 하는데.”

“스승님, 그냥 죽이면 안 됩니까?”

“기왕이면 생포가 낫지. 별로 고생하는 일도 아니고.”

테리러스트에 대한 짜증은 이미 풀 만큼 풀었다. 놈에게 원망이 있는 것도 아니니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

다.

‘한둘쯤은 협회에 던져줘야 덜 귀찮아지겠지.’

문제는 가두는 게 가능할지 어떨지. 관리자가 죽었다 한들 놈의 능력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감금해봤자 사

흘도 못 가서 탈옥할 터였다.

‘이런 면에선 저쪽이 훨씬 편했는데.’

431-9 차원에는 초인을 감금하는 방법이 차고 넘쳤다. 감옥 자체에 마법을 건다거나, 마력을 동결시킨다

거나.

반면 지구는 시원찮았다. 격변이 벌어진 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우선 수갑은 돌려받고.’

유선우는 수갑을 풀어 아공간 주머니에 고이 넣어뒀다. 또 언제 쓰일지 모르는 귀중품이다. 고작 대리자

하나에 낭비할 잡템이 아니었다.

볼 때마다 기분은 나쁘지마는.

‘그냥 얼려서 버려두면 되려나.’

- 금방 죽을걸?

‘그럼 네가 도와줘.’

- 그러려고 했어. 요로코롬….

엔라가 맥 빠지는 음성을 흘리며 권능을 발현했다. 뿜어진 간섭력이 정교하게 대리자의 몸을 옭아맸다.

금세 냉동인간 하나가 완성되었다.

유선우는 놈을 등에 메고 지면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헌터들의 이동 경로에 놈을 대충 떨궈놓았다.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아티팩트로 추적도 걸어뒀다. 살려두면 날뛰는 클리셰가 있기 마련이니까.

‘이젠 헌터들이 죽이든 말든 알아서 하겠지.’

인질로 착각할 가능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꽁꽁 얼어붙은 모습을 보면 누구의 작품인지는 알 터다.

“근데 진짜 괜찮습니까?”

“응. 그대로 가.”

다음으로 유선우는 쉬발을 탄 채 대놓고 복귀했다.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오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았

다.

“제가 보기엔 안 괜찮을 것 같은데.”

“일부러 어그로 끄는 거예요. 어떻게 생각할지는 본인들 맘이겠지만.”

자신이 용의 주인임을 알리는 행위였다. 쉬발의 스트레스를 고려해서라도 숨기는 건 바람직하지 못했다.

물론 당장이야 몬스터 취급을 받을 뿐이겠지. 그러나 머잖아 받아들이게 될 터였다.

‘아니면 말고.’

지들이 인정 안 하면 뭐 어쩌겠냐는 마인드였다. 김정수가 조금 힘들어지겠지마는. 그만큼 실적으로 보

상해주면 되는 일이다.

“아예 인스타에 올려버릴까.”

“잉스타? 그럼 어떻게 됩니까?”

“네가 굉장히 유명해지겠지.”

“오, 오오오…. 뭔진 몰라도 조금 두근거립니다.”

쉬발의 관종 기질을 만족시키기에 지구는 여건이 좋았다. 험상궂은 파충류 얼굴만 보여줘도 화제가 될 게

뻔했다.

“선우 씨, 오늘따라 너무 막 가는 거 아니에요?”

“자각은 있어요.”

“알면 자제 좀 하지….”

“한 번 하니까 못 멈추겠는데요. 하하.”

유선우가 실없이 웃었다. 지구에서도 제멋대로 다니니 해방감이 가슴을 찌르르 울려댔다. 무의식적으로

안고 살던 짐을 덜어낸 듯이 홀가분했다.

“아, 몰라. 이대로 집 앞까지 가자.”

될 대로 돼라.

***

유선우의 만행은 당연하게도 화젯거리가 되었다.

온 세상이 불판이 되었다.

국가의 암세포와 다름없던 테러리스트들의 소탕.

여태껏 해온 일과는 규모부터가 달랐다.

사건의 성격도 상당히 달랐고.

- 근데 이건 쌉오반데...

- 다 죽였다고? 협회에서 시킨 것도 아닌데?

- 국민 수준 혐이네. 내버려 뒀으면 또 쫄보라고 깠을 거 아녀

- 뭐가 문제? 인질도 지키고 공약도 지켰자너ㅋㅋㅋㅋ

대중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학살 행위를 윤리적으로 비판하는 이.

그리고 암이 나았다고 사이다를 외치는 이.

필연적인 대립이었다. 아무리 반쯤 무너졌다 한들 한국은 법치 국가다. 충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

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차피 치렀어야 할 홍역입니다.”

청일의 최상층, 유선우와 마주 앉은 김정수가 말했다. 그의 눈가에는 기미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뒤처

리를 맡은 이의 비애였다.

“무슨 소리예요?”

“전자에는 민간인의, 후자에는 각성자의 목소리가 높죠.”

“숫자부터가 차이 나는데 그게 비교가 돼요?”

“각성자는 수가 적어도 개개인의 영향력이 큽니다. 또 가족이나 친구 같은 우호적인 사람들까지 치면 나

름 세력이 형성됩니다.”

유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이프를 들었다. 접시 위의 스테이크를 자르자 먹음직한 속살이 드러났다.

그는 포크로 고기를 집어 옆으로 가져갔다.

“됐어. 내가 먹을게.”

동석한 차세정이 어색한 손짓으로 포크를 밀어냈다. 그녀는 대표와 함께 하는 식사자리가 더없이 불편했

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본래는 유선우와 데이트할 계획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꽁냥댈 생각에 들떠 있었건만. 어쩌다가 김

정수에게 붙잡혀 이런 거북한 자리가 만들어졌다.

“하하, 제가 몹쓸 짓을 했군요. 차라리 어디 식당이었으면 좋았겠는데…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서요.”

“아니요. 괜찮아요. 그보다 그,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대표님이신데.”

“근무 시간은 끝나지 않았습니까.”

밥 먹으면서 일 얘기 하는 사람이 무슨. 차세정은 불평도 못 뱉고 뺨을 움찔거렸다. 유선우와 비슷하게 노

빠꾸인 그녀도 대표 앞에서는 별수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대화는 계속되었다.

“하여튼 지금은 각성자와 비각성자 사이에는 깊은 골이 생겨 있는 상태입니다. 테러리스트들의 문제가

컸죠.”

“아, 이해됐어요.”

서울에서 비각성자가 차별받은 탓에 바깥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지만 선량한 각성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열 받아서 테러범으로 전향한 사람들도 있었을 테고. 전부 죽었지만요.”

“험악한 분위기를 환기하신 거죠.”

“사석에서까지 그렇게 포장 안 해주셔도 돼요.”

유선우는 세간의 비난에 개뿔도 관심이 없었다. 그의 담담한 태도에 김정수가 쓰게 웃었다.

“솔직히 경솔하셨습니다.”

“알아요.”

“근데 참, 잘 해결될 것 같다는 게 어이가 없군요.”

그 말대로였다.

논란은 필요 이상으로 과열되지 않았다.

그 이유의 반은 김정수의 수완이었다.

“이번 일을 아예 저희 쪽에서 짠 작전으로 만들었습니다.”

“기사 봤어요.”

김정수는 유선우의 서울행이 청일과의 합작이었다고 공표했다. 유선우의 친정 클랜이니 진실성을 의심

하는 이는 적었다.

물론 포장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아무리 청일이라 해도 국가의 중대사를 클랜 하나가 독단으로 처리

한 것이다. 또 새로운 문제가 될 뿐이었다.

그러나 김정수는 그마저도 해결해냈다.

“여러모로 많이 끌어들이셨던데.”

협회의 허가가 있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당연히 허가 따윈 없었으나 공문서야 위조하면 그만이다. 서울

이 무너진 마당에 제대로 돌아가는 기관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어디 언론 플레이를 한 게 협회뿐만일까. 여러 클랜의 유력자들이 유선우의 행동을 칭송했다.

“‘과감하고 용맹한 결단’, ‘실력의 증명’. 금칠도 가관이던데요. 그거 다 빚 아니에요?”

“그렇죠. 정확히는 빚이었습니다.”

뉘앙스가 묘하다.

말뜻을 알아챈 유선우가 피식거렸다.

“베풀고 사셨구나. 역시 평소 행실이 좋아야 하나 봐요.”

김정수가 빚을 진 게 아니었다. 단지 뿌려뒀던 씨를 거뒀을 뿐. 그는 국내에서의 영향력만 따지면 협회장

을 웃도는 수준이었다.

“대표님은 왜 S급이 아니랍니까? 헌터 등급은 영향력 순이라면서.”

“요즘은 정세상 무력이 우선되고 있으니까요. 제가 지기엔 짐이 무겁기도 하고요.”

“충분히 감당하실 거 같은데.”

김정수는 미소로 넘기며 아스파라거스를 집었다, 그는 현재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고 있었다.

“사실 제 힘만으론 덮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단순히 폭탄을 돌렸을 뿐이죠.”

“비난이 사라진 게 아니니까요. 저랑 남들이 나눠서 탱킹한 거지.”

“예. 그래도 포커스가 넘어간 게 주효했습니다.”

화제의 고삐를 잡을 수 있었던 나머지 반의 이유. 그것은 세간의 이목이 다른 방향으로 살짝 엇나간 것에

있었다.

방향은 크게 나눠서 둘.

하나는 구출된 인질들의 진술이었다.

“저도 솔직히 서울이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음식을 입에 가져가던 김정수가 포크를 내려놨다. 얘기로 들은 광경을 상상하니 입맛이 뚝 떨어졌다.

“대체 사람이 어떻게….”

테러리스트들은 성적인 학대는 물론이고 식인과 살인을 밥 먹듯이 자행했다고 한다. 더해 노예를 화폐로

사용했다는 말은 믿기도 힘들었다.

“21세기에 벌어진 일이라는 게 의심스럽군요. 그것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라의 중심이었던 곳인데.”

“밥 먹고 사람 죽이던 놈들인데요, 뭘.”

“비위도 좋으십니다.”

“그러니까 다 잡아 족친 거 아니겠어요?”

웃기 힘든 농담이었다. 김정수는 반응이 곤란해 다시 본론으로 말을 돌렸다.

“이런 말은 뭣합니다만, 덕분에 여론이 괜찮은 쪽으로 바뀌었죠. 죽어도 싼 놈들이었다면서. 수장 격인

놈을 생포하신 것도 컸습니다.”

유선우의 평가도 뒤바뀌었다. 사람을 도살한 학살자에서 쓰레기들을 처단한 영웅으로.

유선우는 이에 대해 대충 예상한 바였다. 하지만 태세 변환이 우습기는 매한가지였다.

“뭘 해도 칭찬받으니까 저도 좀 웃기네요. 슬슬 종교라도 생기는 거 아닌가?”

“이미 하나 있습니다만.”

“…진짜?”

유선우의 얼굴이 똥 씹은 듯이 일그러졌다.

자신의 신자라니. 좋긴커녕 징그럽고 찜찜했다.

“진짭니다. 못 들어보셨습니까? 요 며칠간 제법 눈에 띄던데요.”

“허. 별 미친놈들이 다 있구나.”

둘의 대화를 들을수록 차세정의 표정은 오묘해졌다.

‘어색하네.’

그녀는 유선우가 일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일이라고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었지마는. 어쨌든 이러한 태도

를 본 적이 몇 없었다.

‘이것도 나름….’

언뜻 보기에는 건성인 듯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냉철함이 공존했다.

차세정에게는 그마저도 매력으로 다가왔다. 눈을 떼기가 힘들다고 할지. 신기한 느낌이었다.

그뿐이었다.

그녀는 유선우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당황은 했었으나 금세 받아들일 수 있

었다.

공포나 경멸 따위의 감정은 없었다. 유선우의 비정한 면모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콩

깍지가 씌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얘기는 해야겠지만.’

차세정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위험에 발을 들인 유선우가 못마땅했다.

들었을 때는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는지. 결과적으론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더라도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

었다.

“근데 유선우. 그 용은?”

“걔가 왜?”

“아니, 몬스터잖아. 그냥 좀 걱정돼서.”

세간의 이목이 끌린 두 번째 화제.

그것은 다름 아닌 쉬발의 건이었다. 최초로 나타난 드래곤은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기에 걸맞은 이슈였

다.

유선우는 고기를 씹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우리 집에서 TV 보고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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