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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140화 (140/179)

잡았다 요놈

“이럴, 이럴 리가 없다. 있어서는 안 될 일……!”

“정신 놓지 말라고! 싸움이 장난이야? 어!?”

유선우는 훈수를 두며 강제적으로 공방을 속행시켰다. 창대로 후려치자 놈의 등이 짓눌렸다. 뭉개진 부

위가 터져 나가 붉은 액체가 흩뿌려졌다.

콰아아아!

뿌려진 액체가 비대하게 제 몸을 부풀렸다. 이내 피의 파도가 형성되어 사방에서 유선우를 압박했다. 관

리자는 그 틈을 타서 헐레벌떡 뒤로 물러났다.

“야, 이 답답한 새끼야아아아!”

유선우는 그것마저도 예측했다. 창을 앞세워 돌진한 그가 파도를 쉽사리 뚫어냈다. 맹렬한 기세를 이어

나가 사자의 몸통을 찔러냈다.

“끄흐으윽!”

“공격할 거면 좀… 아오, 뭐라 설명을 못 하겠네. 이렇게, 이렇게!”

한 손으로 창을 쥔 유선우가 찌르고 뽑기를 반복했다. 다른 손으로는 주먹을 쥐어 놈의 안면을 강타했다.

숨 돌릴 시간도 없었다. 관리자는 얻어맞을 때마다 눈앞이 차츰 캄캄해졌다.

‘이대로는 죽는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정신줄을 붙잡게 했다. 그가 꼬리로 창대를 붙잡고, 다가오는 주먹을 이빨을 내세워

위협했다. 그러면서 허공에 떠다니는 핏방울에 집중했다.

콰아아앙!

떨어지던 무수한 방울이 역류하며 터져 나갔다. 연쇄적으로 일어난 폭발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유선우는 호신강기를 타원형으로 펼쳐 몸을 보호했다. 쿵, 쿵, 하고 막을 때리는 충격이 제법 거세다.

그는 아까처럼 피를 억제하려 했으나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아무래도 관리자의 격에는 모자란 듯했다.

하지만 기세를 꺾을 수는 있었다.

누그러진 폭발 속에서 한기가 방출됐다. 혈액을 전부 얼리자 공격이 완전히 잠잠해졌다.

그 순간에 관리자가 포효를 토해냈다.

“크허어어어!”

돌연히 붉은 달빛이 강해졌다. 불길한 월광과 숨 막히는 열기가 천지에 차올랐다.

빛이 내려앉자 백색의 성이 잿더미로 변했다. 땅거죽마저 불타오르는 장면은 가히 장관이었다.

그러나 유선우는 여전히 심드렁했다.

“코앞에서 궁 쓰고 자빠졌네. 넌 글렀다. 검선 형한테도 발리겠어.”

푸욱!

그가 관리자의 머리에 창을 내리꽂았다. 입을 관통해 창대가 턱밑으로 삐져 나왔다. 그대로 간섭력을 흘

리자 짐승의 거구가 반쯤 얼어붙었다.

참으로 싱거운 전투였다.

유선우는 혀를 차면서 창을 뽑아냈다. 이 이상 괴롭혔다가는 정말로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정보는 얻고 죽여야지.”

지금까지도 수차례 찌르고 베기는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나름대로 조절한 것이었다. 놈의 생명력도 질

긴 편이니 이 정도까진 괜찮을 터였다.

아니면 말고.

“그럼 어쩔까.”

- 근데 아까부터 다 나한테 하는 소리야? 왜 그렇게 혼잣말을 해.

“너 때문에 버릇됐다.”

- 굳이 입으로 말 안 해도 돼. 속으로 얘기하는 것처럼 생각하면 다 들려.

그렇게 말한 엔라가 말을 덧붙였다. 심층 의식 바깥으로 드러난 생각을 읽는 것이라나.

그러나 유선우는 그녀의 설명이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걸 왜 이제 알려줘?”

- 아니, 뭐.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미친놈 취급받으며 해온 독백이 무쓸모였단다. 갑자기 짜증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런 감정을 읽어냈는지

엔라가 변명을 뱉었다.

- 어, 얼마 전까지는 안 들렸어! 아마도 점점 융화되니까 이러나 봐.

“뭐?”

유선우의 목소리에 꺼림칙함이 섞였다. 마냥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일이 아니었다.

서로의 경계가 허물어지다 보면 무의식도 전해지게 될 터. 언젠가는 엔라의 주체가 희미해질지도 몰랐

다.

‘서두르기는 해야겠는데.’

유선우는 엔라를 꺼낼 시기를 이미 정해두었다. 명계로 이동할 때가 적기였다. 그전에는 신계가 개입하

기에 적당한 빌미를 주게 될 뿐이었다.

‘명분이라.’

신계의 방침은 아직도 불가해했다. 까마득한 윗선이면서도 집요하게 명분을 중시한다. 그 까닭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갑질은 갑이니까 하는 건데 말이야.’

갑질도 지지리 못하는 양반들이었다. 한국에서 사회생활 좀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아니, 생각해보니 나

아지면 이쪽이 손해였다.

“끄으, 허으윽….”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자 고통에 허덕이는 음성이 들려왔다. 죽도록 맞은 관리자가 정신을 차린 모양이

었다.

“오늘따라 남자 신음을 많이 듣네. 기분 나쁘게.”

“날… 어쩔 셈이지?”

“글쎄다. 네 태도에 따라 달라질걸.”

참신함이라곤 뭣도 없는 상투적인 협박. 그래도 위협으로서는 충분했다. 그 증거로 관리자는 유선우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무, 무엇을 원하나?”

“일단 발부터 멈추지그래.”

대화하는 사이에도 관리자는 앞발을 꼼지락대고 있었다. 이내 백색의 전류가 타닥타닥 튀었다.

유선우를 차원에서 내쫓으려는 시도가 불발로 끝났다. 여러모로 학습능력이 부족한 놈이었다.

콱!

“흐으읍!”

유선우가 관리자의 왼쪽 앞발을 깊게 찌르고 얼렸다. 오른쪽도 마찬가지로 봉쇄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눈앞에서 수작을 부리는 것이 보기에 아니꼬웠다.

“먼저 관리자들부터 묻자. 너도 그 뭐야, 같이 움직이는 놈이 있나?”

“내가 여럿이서 몰려다닐 것 같은가?”

“응? 응.”

퍽!

유선우가 발길질해 관리자의 얼굴을 걷어찼다. 거짓말에 대한 답례였다.

그는 서울에 대리자가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관리자도 더 있으리라는 추측

이었다.

대리자라면 이미 죄다 죽었지마는.

“이러면 귀찮은데. 아브나바 불러와야 하나.”

- 좀 더 때리면 알아서 불 거야.

“그래?”

- 우린 아픈 거에 안 익숙하거든.

“그럼 뭐….”

말을 흐린 유선우가 손바닥을 호호 불었다. 관리자를 고문하는 건 처음일지라도 자신은 있었다.

본래부터 사람 패는 법에 빠삭했던 그다. 더해서 백명에게 가르침을 받음으로 그 기술이 완숙해졌다.

“이 악물어라.”

“아니, 잠깐만. 잠깐!”

그런 거 없다.

***

“세, 세 명이다!”

“뭐가?”

“네놈이 묻지 않았나! 행동을 같이하는 건 나를 포함해 셋이다.”

“그것밖에 없다고? 내가 본 대리자만 다섯은 되던데.”

“내세울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 아니지.”

관리자가 고분고분해지는 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창이 항문을 들락날락하자 놈도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똥꼬에서 뽑아낸 창이 질척한 피로 반들거렸다.

“게이트 쪽은?”

“…그쪽은 잘 알지 못한다. 의견이 맞지 않아 엇갈렸다.”

“그전에는 같이 움직였었다는 거잖아.”

알 만큼은 안다는 소리다. 금세 번역을 마친 유선우가 재차 항문을 쑤셨다.

쑤컥쑤컥!

손에 모터 달린 듯 순식간에 수십 번을 왕복했다. 응기잇, 하는 구슬픈 비명이 휘영청 달 아래서 울려 퍼졌

다.

“말하겠다, 제발. 제발 그만해라!”

“내가 보기엔 아직 아니야.”

“이런 미친 새끼!”

관리자가 억울하다는 눈초리로 유선우를 노려봤다. 학습능력만 없는 줄 알았더니. 지금 보니 반골 정신

도 강한 모양이다.

유선우는 자애롭게 웃었다. 조금 귀찮더라도 내줄 시간 정도는 있었다.

3분이 더 흐르자 관리자의 꼴은 처참하게 변했다. 상체가 엎어진 채로 엉덩이만 들이댄 모습이었다.

흉포한 사자머리는 바닥에 처박혀 흙을 퍼먹었다. 엉덩이에선 검붉은 피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유선우는 유용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한국을 노리는 관리자 집단은 총 셋.

인원수는 합계 스물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놈들까지 합치면 사오십은 헤아릴 터였

다.

“코딱지만 한 땅에 뭐 이렇게 관심들이 많아.”

“그 작은 땅에서 네놈이 태어난 게 아닌가. 부수는 것도 당연하지.”

매를 버는 말투는 둘째치고 이유는 타당했다. 초월자가 되기 전부터 유선우는 경계대상이었다. 그런 같

은 예외적인 강자가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 침공하는 입장에선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집단 하나씩 머리도 있겠네.”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강자들이다. 네놈의 콧대가 내려앉는 날도 머지않았다.”

나는 사천왕 중의 최약체다,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유선우는 겁먹기는커녕 피가 끓었다.

“그건 좀 마음에 든다.”

이놈은 투쟁심을 만족시키기엔 너무도 부족했다. 싱겁게 잦아들던 불길이 다시 타오르는 듯했다.

‘사오십이라.’

제법 수가 많았다. 귀찮을 정도로.

그래도 전부를 죽이지는 못할 것이다. 적당히 죽여가다 보면 꼬리를 말고 달아날 테니까.

도망가기 전에 가능한 한 다수를 쓸어 담아야 한다.

방어전은 서서히 종막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이제는 역할이 뒤바뀔 때.

초봄이 지나 때아닌 사냥철이 왔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자. 근원석은 어디서 얻었지?”

“…동료와 합심해 관리자 하나를 죽였다.”

“지랄하지 마. 머리 굴리는 소리 다 들린다.”

뉘앙스부터가 거짓이라는 티가 팍팍 났다.

유선우는 창대로 놈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관리자는 모욕감에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도 입을 열었다.

“내 주께서 친히-”

말은 끝맺어지지 못했다. 붉은 전류가 발끝에서부터 치솟아 올라 관리자의 전신을 지졌다.

“끄으, 끄르르륵!”

전류에 휘감긴 관리자가 미친 듯이 경련했다. 본인이 장기말로 삼았던 대리자와 똑같은 꼴이었다.

유선우는 거리를 벌리면서 손에 쥔 창을 쳐다봤다. 전기가 전도되어 백색과 적색의 스파크가 실처럼 뒤엉

켰다. 다행히도 붉음은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 뭐야. 쟤 뭐래?

“뻔하지. 신계에서 제약이라도 걸어놨나 본데.”

그렇게 중얼거린 유선우가 재차 관리자를 응시했다. 놈의 거체가 찌그러지며 괴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붉은 달이 떨어지고 천지가 요동친다. 돔이 깨지듯이 공간의 파

편이 빗발처럼 쏟아진다.

[색욕의 지배자가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육체로 돌아가시겠습니까?]

[Yes / No]

급박해진 상황에 아브나바가 구명줄을 내려줬다. 하지만 유선우는 곧바로 붙잡지 않았다.

“챙길 건 챙겨야지!”

그는 창을 놓고 압축된 관리자에게로 다가갔다. 갈라진 지면 위에는 사자의 몸 대신에 핏빛의 돌이 놓여

있었다.

근원석이었다.

부서진 부분 없이 온전한 돌.

크기는 엔라의 반도 되지 않았으나 충분한 수확이었다.

유선우의 손이 닿자 근원석이 흡수되어 그릇으로 빨려 들어갔다. 과정은 낙원에서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장면을 애써 무시했다.

“꺼억!”

트림 소리를 내며 메시지를 눌렀다.

그러자 의식이 점차 가라앉아갔다.

***

유선우는 풀숲에 누운 채로 눈을 떴다.

정신을 잃고 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해봐야 20분이 채 되지 않은 정도일까. 그런데도 주변의 풍경은 완

전히 달라져 있었다.

“왜 이렇게 더러워?”

사방에 몬스터의 사체가 즐비했다. 나무에 걸린 와이번의 날개,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오우거의 살

점. 시산혈해의 풍경에서 비린내가 훅 끼쳐왔다.

“이제 일어났어요?”

아이릴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유선우를 쳐다봤다. 조금 전과 달리 그녀에게 혼란의 기색은 없었다. 머

잖아 똑바로 설명해주겠다는 아브나바의 확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별로 늦진 않은 것 같은데… 이놈들은?”

“갑자기 달려들더라고요. 어디서 듣기라도 한 것처럼.”

박아연이 대답했다. 지쳤는지 그녀의 안색이 살짝 거멨다.

한편으로 쉬발은 실컷 공중을 누비고 있었다. 리디도 신나게 뛰어놀며 창을 휘둘러댔다.

한 차례 둘러본 유선우가 몸을 일으켰다. 정신이 들고 나니 갑작스레 컨디션이 나빠졌다. 통증은 없었으

나 숙취와도 비슷한 감각이었다.

‘기분 나쁘네.’

- 좀만 참아. 소화하는 과정이겠지.

‘너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었는데.’

- 상황이 다르잖아. 지금은 억지로 흡수한 거니까.

엔라도 전부 알고서 뱉는 말은 아니었다. 그저 정황으로 파악해서 추측을 건네줄 뿐이었다.

유선우도 그녀의 의견에 순순히 동의했다. 성장에는 성장통이 동반하기 마련이다.

“스승님. 고깁니다, 고기!”

리디가 코카트리스의 허벅지를 창에 꽂은 채로 달려왔다. 피를 철철 뿌려대는 모습에 박아연이 질색했

다.

“그, 그걸 왜 가져 와요?”

“언니, 저거 안 먹어봤어요? 맛있는데.”

“왜 멀쩡한 음식 두고 몬스터를….”

시답잖은 얘기로 시끌벅적해졌다. 그러는 와중 유선우는 옷소매를 잡는 감촉을 느꼈다.

“형, 괜찮아요?”

김한영이었다.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그의 낯빛이 푸르죽죽했다. 몬스터 탓인지 겁에 질린 기색이었

다.

유선우는 피식거리곤 김한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은 저녁도 닭고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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