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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138화 (138/179)

서울

“괜찮습니까?”

“어. 시원하게 질러.”

“그,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후욱, 후욱!”

허가가 떨어지자 쉬발이 흥분에 차올랐다. 용은 이따금 브레스를 쏴줘야 성미가 풀린다. 음식물 찌꺼기

를 배출한 목을 브레스로 청소하는 것이다.

“그럼 제대로 박아보겠습니다!”

쉬발이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몸속에서 마력이 들끓어 불꽃을 정제했다. 그가 다물고 있던 아가리

를 벌리자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아!

화마가 붉은 빌딩을 향해 맹렬하게 쏘아졌다. 그러자 빌딩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벽에 둘린 창자가 일제히 펴져 거대한 그물을 만들어냈다. 곧이어 핏물이 코팅을 제거하듯이 벗겨졌다.

핏물이 내장의 그물에 달라붙어 순식간에 모든 틈새를 메웠다.

완성된 그물이 불길로부터 건물을 보호했다. 지켜보던 유선우가 황당하다는 듯이 헛웃음 쳤다.

“돌았네. 저걸 막아?”

- 무슨 폭격이라도 대비하려던 것 같은데.

브레스를 지워내고도 그물은 소멸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다시 벽으로 돌아갈 뿐이었

다.

그래도 아무런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전에 비하면 피의 색이 상당히 옅었다.

“이, 이, 이런 씨…!”

쉬발이 부들거리며 사나운 목소리를 토해냈다. 용족의 2인자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는 머리끝까지 화

가 뻗쳐 다시 숨을 들이쉬었다.

쐐애액!

그때 창자가 세 가닥 뻗어져 날아들었다. 목표는 벌름거리는 쉬발의 콧구멍이었다. 피를 머금은 창자의

끝부분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쉬발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는 브레스의 준비로 무방비했다.

서걱!

어느새 튀어나온 순백의 창이 창자를 잘라냈다. 유선우가 불쾌하다는 눈빛으로 건물을 쳐다봤다.

“누굴 건드리려고.”

“혀, 형님!”

황급히 불꽃을 잠재운 쉬발이 감동한 어조로 외쳤다. 화를 내는 유선우의 모습이 쉬발의 눈을 시큰하게

만들었다.

‘얘 피가 얼마나 귀한데!’

유선우는 이런 장소에서 용의 피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어린 용보단 못해도 늙은 용의 혈액도 나름대

로 수요가 있었다.

“아이릴, 가자.”

“저만요?”

“충분해. 리디, 넌 애들 지키고 있어.”

“괜찮으시겠습니까?”

“어.”

명색이 초월자다. 육체에 묶인 탓에 격을 온전하게 사용하진 못해도 고전할 리가 없었다. 관리자도 아니

고, 대리자 정도는 간단하다.

유선우가 허공을 달리자 아이릴도 그를 뒤따랐다. 덮쳐드는 내장을 베고 뭉개며 다가간다. 건물에 가까

워지자 핏물이 가시가 되어 고슴도치처럼 돋아났다.

“선우, 피해요!”

“그냥 뚫는다. 조금만 떨어져 있어.”

아이릴의 경고에도 유선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격을 미세하게 발출하자 바람이 그를 덮치는 가시를 모

조리 썰어냈다.

뒤이어 유선우가 창을 휘두르려는 순간이었다.

문득 그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지.’

밤의 왕국에서 얻어낸 격이 떠올랐다. 정확한 효과는 몰라도 어쩐지 활용할 수 있을 듯했다. 당시 업적의

재현율은 덜하더라도 충분하리라 직감했다.

그 특별한 격에 집중하자 칼바람에 붉은 기운이 섞였다. 사용하는 건 처음이었으나 어렵지는 않았다. 오

히려 자신의 손발처럼 익숙했다.

건물을 뒤덮은 혈액도 유선우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다. 그는 피의 가시를 매만지며 속으로 꺼지라고 읊조

렸다.

사아아악!

핏물이 물에 씻겨지듯 벽 아래로 줄줄이 흘러내렸다. 웅장하면서도 해괴한 장면이었다.

“…저기, 뭐한 거예요?”

“나도 몰라. 그냥 되더라고.”

“저 안 따라가도 되는 거 아니에요?”

“혼자 가면 심심하잖아.”

유선우는 잡담하면서 창대로 벽을 후려쳤다. 드러난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둘러봤다. 확인한 결과 내부

의 상태도 가관이었다.

“대체 이게 몇 명이죠…?”

“슬슬 정신 나가겠다.”

사람이었던 것이 주변에 가득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잡동사니들 위에 빨랫감처럼 걸려 있었다.

유선우조차도 눈을 돌리고 싶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오늘 본 것 중에 제일이네요.”

“한동안 고기는 못 먹겠다.”

“그런 얘긴 하지도 마요. 으으.”

“그보다 우선 어쩔까? 들어오긴 했는데 막상 찾기가 귀찮….”

유선우가 말을 흐리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위층에서 낯익은 감각이 전해져 왔다. 낙원에서 몇 번이나 느

꼈던 감각이었다.

“엔라, 이거.”

- 근원석이네. 왜 여기 있지?

관리자의 격이 담긴 돌. 유선우가 현재도 몸에 품고 있는 근원석이 감지되고 있었다. 기운은 상당히 약하

더라도 착각은 아닐 터였다.

“선우, 뭐해요? 위에 뭐 있어요?”

“그런가 본데. 가자.”

유선우가 창을 가볍게 휘두르자 천장이 잘려 떨어졌다. 그는 뚫어낸 구멍으로 도약해 층을 올라갔다. 착

각은 아니었는지 올라갈수록 감지되는 감각이 짙어졌다.

재빠르게 세 층을 더 이동했을 때였다. 위에서부터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치지지직!

혈액이 모든 사물을 녹이면서 유선우와 아이릴에게 떨어졌다. 그러나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피는 유선우에게 닿자마자 사방으로 흩어졌다. 흡사 꽁무니 빠지라 달아나는 모양새였다.

“진짜 아까부터 뭐예요?”

“나도 모른다니까.”

“…으, 꺼림칙한데.”

“편하면 됐지.”

“그건 그렇지만요.”

이후로도 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붉은 칼날도, 화살도 귀인을 알아보듯 저 혼자 빗겨 갔다.

어떤 위협도 유선우를 감히 해치지 못했다. 지배자 앞에서 설설 기는 하층민과도 같았다.

“이야, 편안하네.”

격을 얻어낸 과정은 개 같았으나 써먹으니 좋았다. 희희낙락하며 오르고 올라 끝끝내 흉수를 발견했다.

“너, 너 뭐 하는 새끼야! 왜 아무것도 안 통해?”

30대로 추정되는 홀쭉한 남성이 보였다. 그는 혼란스러운 눈동자로 유선우를 쳐다봤다. 귀신을 보는 듯

한 시선이었다.

“꼬우면… 알지?”

유선우는 창대를 어깨에 올린 채로 히죽거렸다. 치트키라도 쓴 듯해 기분이 들떴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

은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사내를 훑었다.

놈의 헐렁한 바지 주머니가 갈색으로 빛났다.

“아이릴, 쟤 묶어줘.”

“하아. 내가 이러려고 왔나.”

아이릴은 자괴감에 투덜거리면서도 영창을 읊었다. 사방에서 금빛의 사슬이 뻗어 나와 사내에게로 쏘아

졌다.

사내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사슬을 피해냈다. 때로는 잘라내기까지 하며 제 실력을 뽐냈다.

“오. 새끼.”

여유로운 기색은 없을지라도 움직임이 썩 괜찮았다. S급이라 여겨진다더니 과연. 나름대로 실력은 있는

듯했다.

“씨, 피하지 마요!”

괜히 화가 뻗친 아이릴이 우악스럽게 사슬을 두어 개 잡아챘다. 그러고는 제 손으로 직접 던져대기 시작

했다.

“빌어먹을 년이…!”

괴력이 더해지자 사내는 회피에 급급해졌다. 돌연 그를 지나쳐간 사슬의 끝부분이 폭발을 일으켰다.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확실하게 틈이 드러났다. 자세를 무너뜨린 사내가 황급히 능력을 사용했다.

“꺼져라!”

주변에 가득한 피가 가열된 것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기포가 생겨나며 일제히 솟구쳐 올랐다.

위협적인 현상에 아이릴이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눈에 적잖은 경계심이 어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그거 아니야. 하지 마.”

재롱을 관람하던 유선우가 심드렁하게 검지를 까딱거렸다. 그 별것 아닌 몸짓에 피바다가 잠잠해졌다.

말 잘 듣는 아이와도 같았다.

“잡았어요!”

“끄으으윽!”

결국에는 아이릴의 사슬이 사내의 전신을 옭아맸다. 묶인 사내가 꼴사납게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의

입에서 구슬픈 음성이 흘러나왔다.

“흐으, 끄흐윽….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유선우는 사내를 내려다보며 혀를 끌끌 찼다. 보기에 불쌍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잠깐 주위를 둘

러보니 연민도 불식되었다.

“어디 보자.”

유선우는 사내에게 다가가 바지를 뒤적거렸다. 그의 목적을 알아챈 사내가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아, 안 돼. 건드리지 마!”

“응. 돼. 아이릴.”

“알아요.”

아이릴이 주먹을 쥐자 사슬이 더욱 조여졌다. 사내가 고통에 이를 악물고 비명을 삼켰다.

“아으으윽! 죽여, 죽여버리겠어…!”

그러든 말든 유선우는 행동을 속행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네모난 물건이 있었다.

제법 세련된 외관의 상자였다. 덮개를 열어보자 그 안에는 갈색의 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 똥색이네. 붉은색일 줄 알았는데.

“쟤 능력은 관리자한테 받아서 쓰는 거잖아. 근원석이랑은 별개지. 이건 다른 놈이야.”

- 아, 그렇지. 그걸로 사람들 각성시켰나 보네.

“그보다 좀 작은데. 파편인가?”

해봤자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크기였다. 주먹만 하던 엔라의 근원석과는 차이가 상당했다.

- 그런가 보다. 여러 군데 뿌려져 있는 거 아니야?

“아예 다른 나라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 찾으러 다니게?

“뭐하러? 귀찮아.”

재앙을 일으키는 물건임은 확실했으나 고생할 생각까진 없었다. 이번에도 그냥저냥 뜻밖의 소득이라는

느낌이었다.

“끄으으, 돌려줘! 너 같은 놈이 건드릴 게 아니다. 뭣도 모르면서…!”

“너보단 내가 더 잘 알아, 인마.”

“그게 뭔데요?”

“사람이 건드리면 위험한 거.”

적당한 설명에 아이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위험하게 생기긴 했네요. 근데 당신은 왜 멀쩡해요? 제대로 건드리고 있으면서.”

“누가 나보고 사람 아니라더라.”

“그건 또 뭔 소리래.”

아이릴은 투덜대면서도 근원석에서 관심을 거뒀다. 의문이야 넘쳤으나 보는 것조차 불쾌했다. 혐오스러

운 사교의 기운이 풀풀 풍겨 나왔기 때문이다.

“어쩔 거예요? 마음 같아선 부수고 싶은데.”

“글쎄다.”

유선우는 처리를 고민하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결정을 내린 뒤였다.

‘부수기는 왜 부숴, 이 귀한걸.’

당연히 흡수할 셈이었다.

문제는 방법이 영 떠오르질 않았다.

분명 낙원에서는 만지기만 해도 흡수가 됐었다. 반면 지금은 까칠까칠한 질감만 느껴질 뿐이었다. 아마

도 정신체가 아니기 때문일 터였다.

- 그냥 먹어.

“안 먹어지잖아.”

- 아니, 입으로 먹으라고.

“…그래도 돼?”

- 네 격이 훨씬 강하니까 상관없어. 조금 배 아프고 말걸? 잘 씹어 먹어.

엔라의 말에 유선우는 께름칙하게 근원석을 주시했다. 그러다가 눈을 딱 감고는 입안으로 넣었다.

“미쳤어요? 돌았어!? 그걸 왜 먹어!”

“의외로, 음. 딱딱하진 않네.”

까득까득 소리를 내면서 돌을 씹어댔다. 그러자 사내와 아이릴의 시선이 정신병자를 보는 눈으로 바뀌었

다.

“미친 새끼야아아아! 내, 내 근원석을!”

인간이 알 리가 없는 명칭이 튀어나왔다. 귀가 솔깃해진 유선우가 절규하는 사내를 응시했다.

“뭐야. 너 의외로 아는 거 많나 보다?”

“선우, 입 벌려요. 힐 들어가요!”

“응?”

아이릴이 끼어들어 유선우의 입안에다가 신성력을 퍼부어댔다. 그녀의 표정은 걱정으로 일그러져 있었

다.

“괜찮아요? 어디 안 아파?”

“어, 어. 멀쩡해.”

유선우는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영상을 무시하고 대답했다. 경험이 있는 만큼 넋을 놓지는 않았다.

그가 아이릴의 머리를 토닥거리며 달래줬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경솔한 행동이었다.

엔라의 확언이 있었을지라도 아이릴 앞에서 할 짓은 아니었다. 속으로 반성하고는 재차 현재 상황에 집중

했다.

‘분명 근원석이라 했지.’

다시 생각해보면 그리 놀랄 것도 없었다. 뻔하다. 관리자한테 들었겠지. 그보다 깊은 사정을 파악할 필요

가 있었다.

‘쟤를 맡은 관리자가 뭔가를 알 텐데.’

문제는 관리자에게 도달할 방법이 없다는 것. 관리자가 내려오지 않는 이상 현재로선 뾰족한 수단이 없었

다. 놈이 굳이 강신해서 자살하지도 않을 테고.

“이놈을 어쩐다.”

유선우가 중얼거릴 때였다.

[색욕의 지배자가 당신에게 제안을 건넵니다.]

[H64-C5A2로 그를 찌르세요.]

아브나바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유선우는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따름이었다.

“H64…. 그게 뭔데?”

왜 이름이 그따위인지. 발음하기도 어렵다.

말은 사람이 좀 이해할 수 있게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엔라가 소리쳤다.

- 맞다, 창!

“아, 이게 그거야?”

유선우가 헛웃음을 치며 창을 붕붕 돌렸다.

“그냥 찌르면 되지?”

그는 질문과 동시에 놈의 팔을 찔렀다. 아이릴도 있으니 몇 번 쑤시는 것쯤은 괜찮았다.

“끄아아아아악!”

“엄살은. 네가 죽인 애들은 더 아팠어!”

“…말투 왜 그래요?”

연극조에 아이릴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장난치는 듯한 모습이 TV에서 본 사이코패스 같았다.

파지직!

돌연히 창에서 순백의 스파크가 흘러나왔다. 전류는 사내에게 전도되어 타닥타닥 튀어 올랐다.

“끄륵, 끄르르륵!”

사내의 몸이 세차게 경련하며 입에서 거품이 새어 나왔다. 예기치 않은 고문의 시작이었다. 전류가 수 초

간 그의 전신을 헤집다가 어느 순간에 흩어졌다.

[좌표 추적이 완료되었습니다.]

[248-2 차원으로 안내합니다.]

잠잠해지자 유선우의 시야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곧이어 건물이 반쯤 날아가면서 공간이 찢어졌

다.

게이트의 출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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