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님 뭐하세요-135화 (135/179)

서울

“다음은… 또 지하철이구나.”

- 애들 하는 생각이 다 똑같네.

“아무래도 몬스터 막으려면 폐쇄된 데가 편하지. 나한테도 형편 좋은 일이고.”

거점이 죄다 뻔한 곳이라 위치를 특정하기도 쉬웠다. 숨어 지내는 놈들 때문에 골치 아플 일은 적을 듯했

다.

유선우는 지하철역으로 이동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중심지에 가까워질수록 거리의 상태가 좋지 않았

다. 가끔은 몬스터마저 눈에 띄고는 했다.

‘뭐 먹고 사나 싶었는데.’

통조림 외에도 먹을 건 썩어 넘쳤다. 식인도 하는 놈들인데, 몬스터를 못 먹을 이유는 없었다.

‘맛있는 놈들도 많긴 하지.’

유선우는 시답잖은 생각을 품으면서 행동을 속행했다.

그의 눈에 담긴 서울은 지옥도였다. 전쟁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어딜 가든 시체가 보였다.

특이한 점은 사지가 멀쩡한 시신은 단 한 구도 없었다는 것이다. 팔을 잘라서 입안에 꽂아놓은 시체가 있

다 하면, 엄한 부위를 귀에 박아놓은 시체도 있었다.

“진짜 이상한 새끼들이야.”

- 나라 무너지는 데 5년은커녕 3년도 안 걸렸겠다.

“뭐야. 왜 이렇게 남 일처럼 말해?”

- 남 일 맞잖아. 관리자 때려치웠는데.

엔라가 담담하게 말했다.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린 말이었다.

“때려치우긴 무슨. 잘린 거겠지.”

- 그, 그게 그거지!

발끈하는 음성에 유선우가 피식거렸다. 그러면서 그는 조금 전에 들었던 엔라의 말을 곱씹었다.

지구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며칠 전에 직접 뱉었던 발언이었다.

‘그래, 그랬지. 어떻게 되든 딱히 관심은 없어.’

정 뭣하면 지인들을 데리고 431-9 차원으로 이주하면 될 뿐. 그 외의 사람들과 지구는 그다지 상관이 없

었다. 단지 오락이 줄어드는 게 아쉬운 정도.

그런데도 관리자들을 죽이려는 까닭은 힘을 얻기 위함이었다. 강해져 명계를 엎고자 했다.

백명에게 쪽팔리고, 신계가 짜증 나니까.

테러리스트를 죽이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엔라의 지적대로 이는 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유선

우는 직접 손을 쓰고 있었다.

‘왜?’

그 이유를 자문해봤다.

답이 나오는 건 의외로 금방이었다.

‘마음에 안 들어.’

그냥 이 새끼들이 거슬렸다.

피해를 줄인다, 한국을 위해서다.

다 허울 좋은 지랄이었다.

‘내가 달라졌다고.’

지하철역으로 들어간 유선우는 테러리스트들을 도륙하며 깊이 인정했다.

‘뭔가 좀… 가벼워졌다고 할지.’

이전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과격하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남들의 시선을 우려해 빙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 하잘것없이 느껴졌다.

‘그런 거 있지 않았나. 뭐였더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던가.

어째선지 그 말이 문득 떠올랐다.

‘잘 모르겠다.’

유선우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비웠다. 확실한 건 하나뿐이었다. 자신이 한없이 감정적으로 변했다는 것.

그 사실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어떻게 행동해도 내 발목을 잡을 게 없으니 그런 거겠지.’

어느 순간부터 시선이 달라졌다.

법이나 타인의 평가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가족, 친구, 연인.

소중한 사람은 여전히 소중했다.

그러나 그 외에는 길가의 자갈처럼 느껴졌다.

아마 초월자가 된 이후의 변화이리라.

변화 자체가 나쁜지 어떤지는 불확실했다.

그건 차차 알아갈 문제였다.

***

툭툭.

김정수는 검지로 테이블을 연신 두드렸다. 다른 한 손은 스마트폰을 쥔 채 귓가에 대고 있었다.

뚜, 뚜 하는 신호음만이 일정한 간격으로 흘러나왔다. 신호음을 듣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초조함도 더해

져 갔다. 이미 7통째인데도 한 번이 연결되질 않았다.

‘정말로 간 건가?’

김정수는 유선우가 뱉었던 서울로 가겠다는 말을 떠올렸다. 유선우가 거짓을 잘 입에 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쉬이 믿을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믿고 싶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거짓말이기를 바랐다.

‘몬스터랑은 달라. 복잡한 일이다.’

문제가 너무나도 많았다.

먼저 시기가 좋지 않았다.

현재 한국은 유선우의 복귀로 인해 한창 활기를 띠고 있다. 그의 영향력은 국가의 분위기를 단숨에 바꿀

정도로 지대했다.

‘유선우 씨가 잡히거나 죽게 된다면….’

불씨가 된 장본인의 비보가 터져 나올 경우.

깊이 고민할 것도 없었다.

대중들은 완전히 마음을 닫게 될 터였다.

‘만약 성공한다 쳐도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야.’

유선우의 섣부른 행동으로 인해 무고한 민간인이 피해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단순히 인질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미처 소탕하지 못한 테러리스트가 보복심을 불태우며 다른 지역을

넘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유선우의 명성에 흠집이 갈 게 분명했다. 천운으로 전부 좋게 해결된다 쳐도 마찬가지. 결

국에는 테러리스트들을 학살했다는 사실이 남는다.

‘문제시될 건 틀림없어.’

테러리스트의 괴멸은 국가적으로는 둘도 없는 호재다. 하지만 대중의 눈은 초점이 다르다. 어떤 방면으

로든 이름에 흠집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선 사실 확인부터 해야 할 텐데.’

김정수는 스마트폰을 뚫어지라 응시했다. 그때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손에 쥔 폰이 아니라 테이블

위에 놓인 내선전화였다. 그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키며 수화기를 들었다.

“무슨 일이지?”

- 대표님. 방금 막 경부고속도로 봉쇄구역에서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들려온 말에 김정수가 눈을 질끈 감았다. 경부고속도로라면 용인에서 서울로 향하는 길이다. 공교롭게도

방향이 일치했다.

“자세히 말해봐.”

- 테러리스트 다섯이 나타나 아이를 하나 납치해갔다고 합니다.

“…테러리스트?”

심각하던 김정수의 목소리가 대번에 뒤집혔다.

테러리스트는 뭐고 아이는 또 뭐란 말인가.

게다가 다섯이라니. 철석같이 유선우가 홀로 움직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뭐라던가? 굳이 우리 쪽에 연락한 이유를 모르겠는데.”

김정수가 애써 동요를 숨기며 물었다.

- 그게… 흔적을 찾는 데 필요한 인력을 파견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거절할까요?

“파견? 아무 준비도 없이 추적하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김정수의 눈가가 짜증스럽게 찌푸려졌다. 왜 그렇게들 사지로 못 들어가서 안달인지 알 수가 없었다.

- 아니요. 서울 안이 아니라 바깥입니다. 그 다섯 외에도 다른 인원이 남아 있을지 모르니 흔적이라도 찾

고 싶답니다.

“아, 그런 말이었군. 그 정도야….”

빚을 만들어둘 겸 허락하려 했던 김정수가 말을 멈췄다. 이내 잠시간 고민을 거쳐서는 결정을 번복했다.

“아니, 내가 그쪽으로 따로 연락하지. 수고하게.”

-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김정수는 수화기를 내렸다. 그러고는 군대에 연락해 곧장 인원을 보내겠다는 대답을 건네

줬다.

다음으론 헌터들을 소집했다. 추적에 능한 한둘뿐이 아니라 기백의 헌터들을. 유선우가 부탁했던 대로

인질 구출조를 보낼 셈이었다.

‘유선우 씨가 행동한다면 포장하는 게 내 역할이다.’

유선우는 항상 막무가내로 움직이면서도 청일에 피해를 준 적이 없었다. 클랜에 먹칠하기는커녕 막대한

이득을 안겨주기만 했다.

문제는 뒤처리를 얼마나 훌륭하게 마치느냐.

소화해내는 건 김정수의 몫이었다.

오랜만이었기에 정신이 흔들렸을 뿐이었다.

조금 과격해졌을지라도 이번 역시 다를 바는 없었다.

‘아무래도 잠을 더 줄여야겠어.’

***

서부로 향한 박아연과 쉬발, 김한영은 거대한 건물 앞에서 발을 멈췄다. 쉬발이 흥미롭다는 기색으로 건

물을 올려다봤다.

“상당히 크군. 뭐 하는 장소지?”

“병원이에요.”

“아저씨는 그런 것도 몰라요?”

김한영이 묘하다는 듯이 말했다. 쉬발의 외모는 40대인데 병원을 모른다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

해보면 유선우의 집안에서도 이상한 소리를 일삼고는 했었다.

“기억상실이야.”

“아, 그런….”

박아연이 얼버무리자 딱하다는 시선이 쉬발에게 향해졌다. 쉬발은 불쾌해하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일단 들어가죠.”

“아줌마, 조심해요. 여기는-”

“아줌마라고 부르지 마.”

박아연이 싸늘한 음성으로 지적했다. 그녀는 현재 30대지만 50대가 되어도 아줌마 소리를 듣고 싶지 않

았다.

“하여튼 무서우면 눈 감고 있어도 돼.”

“괘, 괜찮아요.”

김한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무리하는 모습에 박아연은 내심 한숨을 쉬곤 발을 떼어냈다.

“쉬발 씨, 빨리 끝내죠.”

“그거야 상관없다만 내 이름은 쉬발라다.”

“그래요? 처음 듣는데.”

“앞으로는 똑바로 불러줬으면 좋겠군.”

“음… 미안한데 입에 잘 안 붙어요.”

대화를 나누면서 병원으로 이동했다. 유리문은 진작 깨져 있었고, 대신에 바리게이트가 쳐진 상태였다.

잡동사니를 모아서 만든 조악한 방벽이었다.

콰앙!

쉬발이 툭 걷어차자 물건들이 죄다 부서져 흩어졌다. 과격한 행동에 박아연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째 선우 씨 지인은 다 막무가내인 거 같아요.”

“형님이랑 같은 취급하지 마라. 내 인성은 그렇게 되바라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꼬박꼬박 형님이라 부르네요?”

“……입에 달라 붙어버렸다.”

이마저도 유선우의 설계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한 쉬발은 악독함에 치를 떨었다.

“잡담은 그만하지. 우선-”

병원의 내부로 진입할 때였다.

전등 하나 켜지지 않은 어둑한 로비에서 수십의 안광이 번뜩거렸다.

크르르르!

짐승이 목을 끓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로비를 훑어본 박아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몬스터가 왜 여기 있죠?”

“누가 몬스터를 기른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관심 없다. 쓸데없이 많군.”

쉬발이 귀찮다는 감정을 드러내며 몬스터 사이로 달려들었다.

별의별 종류의 괴수들이 그의 살점을 물어뜯으려 아가리를 벌렸다. 그러나 놈들의 이빨은 살가죽조차 뚫

어내지 못했다.

퍼억!

쉬발이 팔다리를 휘두르는 족족 추풍낙엽처럼 몬스터가 떨어져 나갔다. 박아연이 손을 쓰지 않아도 1층

은 금세 정리되었다.

“…저 아저씨, 뭐 하는 사람이에요?”

“글쎄.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

박아연은 의미심장하게 말하고는 다음 구역으로 향했다.

병원은 몬스터 천지였다. 1층의 모든 방에 몬스터가 득실거렸다. 2층도, 3층도 다를 바는 없었다. 마치 몬

스터를 죄다 수용해놓은 듯했다.

‘전부 통제하고 있는 건가?’

간담이 서늘해지는 가정이었다. 이대로 물량을 계속 끌어모아 타지를 습격한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은

금세 아비규환의 현장이 될 터였다.

‘선우 씨 결정이 옳았어.’

조금만 늦었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박아연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다행히도 토벌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파죽지세로 층을 올라가 4층의 무리까지 깔끔하게 소탕했다. 그러

나 여전히 갈 길은 멀었다.

“아직도 많이 남았네요.”

박아연이 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걸으며 말했다. 그때 돌연 쉬발이 발걸음을 멈췄다.

“후우.”

“쉬발 씨?”

“짜증 나는군.”

쉬발이 얼굴을 흉악하게 일그러뜨렸다.

“내가 왜 이런 잡일에 어울려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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