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님 뭐하세요-134화 (134/179)

서울

“한영아, 꽉 잡아라.”

유선우는 김한영을 안은 채로 수십 미터를 단번에 도약했다. 키 낮은 바리게이트는 장해물조차 되지 않았

다.

“으, 으아아아악!”

품에 안긴 김한영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다. 도로를 봉쇄하던 군인들의 시선이 유선

우에게 집중되었다.

“거기 멈추십시오!”

“어떤 새끼야, 저거?”

투두두두!

무장한 군인들 중 한 명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과격했지만 어쩔 수 없는 행동이기도 했다. 현재 유선우는

마치 민간인을 납치하는 테러리스트로 보였다.

“쏘지 마, 등신아! 인질 맞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하, 하지만!”

그들은 돌발 상황에 우왕좌왕하며 소란을 피웠다. 그러는 와중에도 유선우의 뒤를 쫓아 네 명이 바리게이

트를 넘었다.

일행은 빗발치는 총탄을 피하며 서울로 진입했다. 군인들은 차마 추격하지 못하고 곳곳에 통신을 넣을 뿐

이었다.

“저런 미친 새끼들…. 싸그리 잡아 족쳐야 되는데.”

한 군인이 사나운 눈빛으로 바리게이트 너머를 노려봤다. 그는 서울에 도사리는 테러리스트들이 미친놈

들임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한편 내부로 들어온 유선우의 일행은 적당히 이동한 뒤에 발을 멈췄다. 도착했으니 슬슬 흩어져 행동할

때였다.

“일단 이거 하나씩 받아.”

유선우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세 개의 구를 꺼냈다. 크기는 손바닥의 반 정도. 적당한 휴대성을 가진 통신

기였다.

“문제 생기면 말해. 좌표도 나오는 놈이니까 바로 찾아갈게.”

“좌표까지 나온다고요? 이런 귀한 걸 어디서….”

“이게 귀해? 펠리스 창고에 널렸던데.”

유선우는 구체를 던지고 받으며 손장난을 쳤다. 험한 취급이었지만 그에겐 그냥 GPS 기능이 달린 통신

기일 뿐이었다.

“그냥 폰 쓰는 게 낫지. 하여튼-”

유선우가 산개를 지시하려는 순간이었다.

“으음…….”

쉬발이 인상을 찌푸린 채로 불쾌하다는 듯이 숨을 흘렸다. 그는 바지에 손을 넣어 엉덩이를 북북 긁어댔

다. 긴장감 없는 행동을 아이릴이 질책했다.

“갑자기 거길 왜 긁어요?”

“엉덩이에 뭐가 박혔다.”

“…총알 아니야?”

“총알이 뭡니까? 조금 길고 딱딱한 느낌입니다만. 반쯤 파고들었습니다.”

감상이 제법 생생했다. 아이릴이 질색하며 쉬발과 거리를 벌렸다.

“더러워! 저리 꺼져요!”

“더럽지 않다! 용족이 미개한 인간과 똑같은 줄 아나? 우린 항문으로 배설하지 않는다.”

“그럼 어디로 싸는 겁니까?”

흥미가 있었는지 리디가 호기심 깊은 어조로 물었다. 쉬발은 얼굴만 부분적으로 폴리모프를 해제하며 대

답했다.

“음식물의 영양을 전부 흡수하면 다시 입으로 배출한다.”

“입으로 똥을 싼다고?”

“변이 아닙니다. 무색무취의 쓰레기가 나올 뿐이죠.”

“그럼 냄새 안 나는 똥이겠지. 아오, 더럽게.”

유선우는 펠리스와 입을 맞췄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는 급속도로 입맛이 떫어져 바닥에 침을 뱉

었다.

“개소리 그만하고. 빨리 끝내자. 박아연 씨, 한영이 데리고 가요. 둘이니까 손 좀 남겠지.”

“상관은 없는데… 애초에 왜 데려온 거예요?”

박아연이 못마땅한 기색으로 말하며 김한영을 쳐다봤다. 이곳은 아이가 올 장소가 아니었다.

“제가 오고 싶다고 했어요. 이래야 정리가 될 거 같아요.”

김한영이 결의에 찬 얼굴로 대답했다. 그의 태도에 박아연은 눈매를 찌푸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쉬발 씨, 엉덩이 그만 긁고 가요.”

“너무 가려운데. 빼주면 안 되나?”

“직접 해요, 제발.”

박아연과 쉬발은 기억해둔 동선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정령을 이용하는 박아연은 쉬발의 속도에도

크게 뒤지지 않았다.

그들이 맡은 서부는 비교적으로 세력이 약한 편이니 정리에 문제는 없을 터였다.

“선우, 오늘 일값 톡톡히 받아낼 거예요.”

“저도입니다. 제 전용 리모컨을 갖고 싶습니다.”

“TV를 달라 그러지 왜.”

“두 개나 있으면 가지는 기분이 덜하지 않습니까. 저는 독점하고 싶습니다.”

리디의 탐욕적인 발언에 유선우가 쿡쿡 웃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알았어. 일단 빨리 끝내기나 해.”

“약속하신 겁니다.”

“저는 데이트가 좋아요.”

한 마디씩 덧붙인 아이릴과 리디가 자리를 벗어났다. 홀로 남자 유선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대학교. 그 부지 안에는 약 50명의 집단이 자리해 있었다.

주변은 옛모습을 찾아볼 수도 없이 지저분했다. 곳곳에 사람의 피와 살점이 즐비했다. 이름 모를 누군가

의 시체가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토악질이 나오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이들의 얼굴에 동요의 기색은 없었다.

반은 몰골이 초췌하고 눈은 공허했다. 한편으로 다른 반은 무료함만이 가득했다.

“왜 이렇게 할 게 없냐.”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던 한 남자가 말했다. 그러자 몇몇의 인원들이 몸을 흠칫거렸다.

두려움이 묻어나오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게, 남자가 입을 열면 항상 피가 튀고는 했다. 특히나 그가

심심해할 때면 더더욱. 이번 역시 다를 바는 없을 터였다.

‘제발 나만 아니길.’

비각성자들은 대항할 의지도 갖지 못하고 벌벌 떨었다. 옷조차 입지 못한 그들은 말 그대로 가축이었다.

놀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 몸을 움츠릴 따름이었다.

“너, 이리 와봐.”

남자, 장현의 뱀 눈깔이 한 여자의 얼굴에서 멈췄다. 핏자국이 들러붙고 때가 탔어도 꽤 이쁘장했다.

“…….”

“와보라니까? 내 말 씹는 거야?”

“형님. 요즘 너무 풀어주신 거 아닙니까?”

한 뱃살 나온 사내가 장현에게 친한 척 말을 건넸다. 장현의 시선이 여자에게서 사내에게 옮겨갔다.

“넌 뭔데 훈수야.”

“예? 아니, 훈수는 아니고….”

“그럼 뭐.”

장현이 낯을 사납게 구기고는 느슨하게 주먹을 쥐었다. 그의 손에 선명한 갈색의 광채가 어렸다.

“내가 갈까, 네가 올래.”

“혀, 형님! 그게 아니고요. 제가 잠시 미쳤나 봅니다.”

“두 번 말 안 한다.”

장현이 몸을 일으키려는 때였다.

콰아아앙!

대학의 정문에 쌓아두었던 돌무더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거센 충격이 가해진 듯했다.

“형님, 조심하십쇼!”

“아아아아악!”

각성자들은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반면에 비각성자들은 땅에 달라붙듯 몸을 수그렸다.

장현만이 움직이지 않았다. 작은 돌파편이 그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나하나 별 잡놈들이….”

장현의 뺨이 쉴 새 없이 움찔거렸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는 증거였다. 그에게는 만성적인 분노조

절 장애가 있었다.

“어떤 새끼가 남의 구역에서 지랄이야!”

장현이 가늘게 뜬 눈으로 정문을 살펴봤다. 먼지 속에서 인영 하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붉은색의 반투

명한 창을 한 손에 쥔 여성이었다.

“피아식별이 간단해서 좋네.”

부지를 한눈에 훑어본 리디가 독백했다. 얼굴 상태와 옷차림새만 봐도 적을 구별할 수 있었다.

“뭐 하는 년이야, 이거.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나도 너 처음 본다.”

태평한 대답에 장현의 낯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가 눈을 리디에게 고정한 채로 주변의 각성자들에게

일갈했다.

“내가 잡는다. 건드리면 눈알에 칼 꼽힐 줄 알아!”

“어디서 많이 본 타입인데.”

리디는 기억을 되짚었다. 전장에서 저렇게 나서는 타입의 지휘관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럴 때면 리디는 항상 가만히 있기만 했었다. 유선우가 손수 때려잡았었기 때문이다.

‘아군이면 조용하게 묻어버리고, 적군이면 놀리면서 죽여라.’

유선우의 가르침을 떠올린 리디가 입맛을 다셨다. 조롱할 여유는 없었지만 데리고 다닐 필요성은 있었

다.

‘길 좀 가르쳐달라 하자.’

리디는 길치였다.

파앗!

리디의 신형이 대포알처럼 쏘아져 부지를 누볐다. 이곳의 각성자들은 장현을 제외하곤 전부 B급 이하의

잡배들이었다. 그들은 리디의 움직임을 시인할 수조차 없었다.

“끄어억…!”

“혀, 형님! 살려-”

푸확!

붉은 창이 일렁거릴 때마다 머리가 터지거나 굴러떨어졌다. 순식간에 열 명의 인원이 핏물을 뿜어내며 침

묵했다. 단말마의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어?”

장현은 눈만 끔뻑거렸다. 웬만한 A급 헌터를 쌈 싸 먹는 그도 리디를 막을 수 없었다.

막기는커녕 눈 깜짝할 사이에 동료가 죽어 나갔다. 지금도 죽고 있었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으니 장현으

로서는 손 쓸 방도가 없었다.

“끝났다.”

수 초가 지난 뒤에 장현의 귓가에 무감정한 음성이 닿았다. 그 외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

는 맹수에 노출된 토끼처럼 파들파들 떨었다.

“사, 살려, 아아아악!”

장현은 머리채를 잡아당겨지는 고통에 비명을 토해냈다. 리디가 그를 질질 끌며 말했다.

“다음으로 안내해라.”

리모컨을 얻으려면 빨리 움직여야 했다.

***

푸욱!

“꺼어억….”

순백의 창이 중년 여성의 주름진 목을 꿰뚫었다. 여성의 입에서 핏물이 울컥 흘러나와 입술을 벌겋게 물

들였다.

유선우는 창을 뽑아내고는 작게 휘둘러 피를 털어냈다. 그는 무심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수많은 시체와 인질들이 보였다.

지하철역에서 생활하던 이들이었다.

인질들은 유선우와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그들은 달아나지도 않고 거북이처럼 웅크리기만 했다. 가축

으로서의 삶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맥 빠지네.”

유선우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는 서울의 중부로 이동하며 이미 네 개의 거점을 부순 상태였다.

그 과정에 막힘은 전혀 없었다. 그의 눈으로는 상대의 수준이 A급이든 D급이든 똑같이 하찮아 보였다.

- 애초에 이럴 줄 알고 시작한 거잖아.

“근데 너무 긴장감 없다 싶어서.”

- 당연하지. 그냥 인간인데.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돼. 나도 사람이야, 사람.”

엔라의 말에 유선우가 장난스레 대꾸했다. 하지만 엔라는 동의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 내가 보기엔 글쎄… 좀 애매하지 않나 싶은데.

“응?”

유선우가 말뜻을 물었다. 그러나 정말로 의아하다는 기색은 아니었다.

- 무슨 말인지 알잖아. 나나 아브나바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너도 마찬가지야.

“에이, 다를 게 뭐 있어.”

- 많이 다르지. 가장 눈에 띄는 건 노화겠는데, 솔직히 어떨지는 모르겠어.

유선우 같은 케이스는 전 차원을 뒤져봐도 존재하지 않았다. 전례가 없으니 앞으로의 일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 만약 늙는다 쳐도 아주 천천히 늙을걸. 천 년은 족히 살 거야.

“내 나이가 스물일곱인데. 좀 상상이 안 가네.”

그는 손주들이 늙어 죽어도 변함없이 팔팔할 것이다. 100년을 내다볼 것도 없이 10년만 지나도 괴물 취

급을 받을 게 분명했다.

- 남들을 보는 눈도 바뀌겠지. 지금도 조금 달라졌고.

“어떻게?”

- 네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증거지 뭐야. 안 해도 될 짓을 굳이 하고 있잖아.

“이게 왜 안 해도 될 짓이야? 얘네 안 잡으면 5년도 안 가서 한국이 망할걸.”

유선우는 콧방귀를 뀌며 반박했다. 그러자 엔라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 너, 그런 거 관심도 없잖아. 까먹었어? 네가 직접 말했던 건데.

“…….”

유선우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침묵한 채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주저앉은 남성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으, 으아아아, 오지 마…!”

앳된 외모의 남성이었다. 추측건대 고등학생 정도의 어린 나이로 보였다. 그의 목에는 웬 손가락이 줄줄

이 매달려 있었다. 별 고약한 취미를 가진 놈이었다.

“살려, 살려주세요. 그래, 감옥! 감옥 갈 테니까 !”

유선우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남성은 패닉에 빠져 바닥을 미친 듯이 짚으며 달아나려 애썼다.

털썩!

“아윽!”

남성이 지하철의 선로에 꼴사납게 떨어졌다.

“으, 아으…….”

그는 통증을 참아내며 몸을 추스르고자 했다. 유선우는 무기질적인 눈빛으로 지켜보다가 창을 작살처럼

쥐었다.

그 모습을 보는 남성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가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창이 손을 떠났다.

푸욱!

창이 눈알을 꿰뚫고 뇌를 헤집었다.

그리고 지하철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구석에 박힌 인질들이 흐느끼는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유선우는 태연하게 창을 회수했다. 그의 얼굴에 미세한 불쾌감이 어렸다.

‘찝찝하네.’

피 묻은 창대가 끈적거렸다.

그 감촉이 조금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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