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님 뭐하세요-128화 (128/179)

돌아왔다

- X나 센데 ㄷㄷ

- 이거 옛날에 봄ㅋㅋ 강남역 때랑 똑같다. hoxy...?

- 청일 관계자입니다. 찐 맞고요. 제가 실제로 봤어요.

- 사칭이지 몇 번을 속냐. 얼굴도 제대로 안 찍혔구만

처음에는 믿지 못하는 이도 수두룩했다. 영상이라는 증거가 있음에도 제멋대로 떠들어댔다.

대중들은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여태껏 유선우를 사칭하는 치들은 몇이나 있었다. 그들은 항상 대중들

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럴 때마다 유선우의 죽음은 확실시되어갔다. 대대적으로 장례식까지 치른 마당에 영상 하나로 불신감

을 걷어내기는 힘들었다.

본인이 맞다, 아니다로 갑론을박을 벌이던 때.

불씨에 기름이 부어졌다.

- 윾선우 인증 뜸ㅋㅋㅋㅋㅋㅋㅋ.official

청일 공식 페이지에 사진 한 장이 업로드되었다.

유선우가 청일 사옥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그의 손에는 큼지막한 글씨를 적은 스케치북이 들려 있었

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겠냐 새끼드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여전히 주작을 외치는 이들은 있었으나 극소수였다.

네티즌의 대다수가 찐 감자처럼 달아올라 소식을 퍼 날랐다. 유선우의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이 전 세계로

팔려나갔다.

- 찐이라고? ㄹㅇ루?

- 앗, 아앗... 제가 감히 당신을 의심했습니다...

- 얘 이런 놈이었지ㅋㅋㅋㅋㅋ

- 이쯤에서 다시 보는 윾선우 어록.txt

유선우가 공식적으로 복귀하게 된 순간이었다.

인터넷은 고작 몇 시간 만에 뜨겁게 불타올랐다. 3년 전, 유선우가 활동하던 시기와 비슷할 정도의 열기

였다.

세상이 한창 떠들썩해지는 와중. 화제에 화제를 몰고 다니는 유선우답게 장작 하나가 더해졌다.

- 지금 만나러 갑니다.

반듯한 한국어로 적힌 문장.

S급 헌터, 소피아가 트윗에 올린 게시글이었다.

낄 때 끼라는 식의 부정적인 반응은 거의 없었다. 소피아는 유선우와 친분이 깊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

만큼 그녀의 말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애태웠다.

룸카페에서 유선우와 데이트를 즐기던 차세정을 제외하고.

“유선우. 얜 또 뭐야?”

“응?”

유선우는 차세정이 내민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소피아의 게시글이 떡하니 떠올라 있었다.

“아, 맞다. 연락하는 거 까먹었네.”

“연락? 나한테도 안 해놓고.”

“너는 직접 만나러 왔잖아.”

“그건 잘했어. 바로 나한테 온 거야?”

“아니. 부모님 뵈고 왔지. 동생도 보고.”

솔직한 말에 차세정의 눈가가 풀어졌다.

“잘했어.”

“어째 취급이 이상한데.”

유선우는 괜스레 몸이 근질거렸다. 애완견을 대하는 듯하달지. 입맛을 다신 그가 스무디 잔에 꽂힌 빨대

를 물었다.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차세정이 몸을 일으켰다.

“안쪽으로 들어가.”

차세정은 유선우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몸이 찰싹 붙도록 밀착한 채로 그를 쿡쿡 찔러댔다. 손가

락부터 입술까지 온갖 부위를 건드렸다.

“뭐야. 왜 이래.”

“진짜 안 같아서. 신기해.”

“또 뭐가?”

“하나도 안 늙었어. 얼굴도 그대로고. 난 늙었는데.”

요모조모 뜯어보던 차세정이 시무룩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나이에 민감한 누가 들으면 경을 칠 소리였

다.

“늙기는. 예쁘기만 한데.”

낯부끄러운 말이었지만 사실이었다. 27살의 차세정은 눈에 띄게 성숙해져 있었다.

풋풋함이 조금 사라진 대신 차가운 인상에 농염함이 앉았다. 학생 티를 완전히 벗어 사회인 느낌이 물씬

났다.

“으, 오글거려.”

“칭찬해줘도 뭔.”

“싫다고는 안 했어. 고마워.”

차세정이 유선우를 안고 옆구리에 얼굴을 문질렀다. 머리가 흐트러지는 것도 안중에 없었다.

“근데 아직 못 들었어. 소피아, 그 사람이랑 무슨 사이야?”

“지금은 글쎄. 만나봐야 알걸.”

유선우는 자신의 복잡한 이성 관계를 숨길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 포장해도 불성실한 일임은 변함없으니

솔직하게 밝히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소피아의 마음이 여전할지는 불확실했다.

“지금은?”

“전에 만난다 했었던 게 그 사람이야.”

“……그래.”

차세정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녀는 4년 전의 크리스마스이브를 떠올렸다.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뇌

리에 선명했다.

그러나 차세정은 유선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꽉 끌어안았다.

“너 진짜 나쁜 새끼야. 알아?”

“알지.”

“생각 엄청 많이 했어. 화 나서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근데 막상 못 보게 되니까 그냥 아무 생각도 안 나더

라.”

겪어본 일이라고 익숙해질 수는 없었다. 익숙해지긴커녕 절망이 더 커졌을 뿐이었다.

한 번 돌아왔으니 두 번째도 있지 않겠느냐. 차세정이 이따금 듣곤 했던 위로였다. 그때마다 그녀는 상대

의 얼굴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자기 얼굴도 갈기갈기 찢고 싶었다. 이전처럼 관계를 망가뜨린 채로 보냈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내가 그랬잖아. 네 장례식 두 번 가게 하지 말라고.”

유선우는 조용히 들었다. 스무디의 단맛만이 입안에 퍼졌다.

“사람 되게 많았었는데. 네가 봤어야 했어.”

“나도 좀 보고 싶더라고.”

담담한 목소리에 차세정이 키득거렸다. 그녀가 물기 젖은 음색으로 말했다.

“나, 살면서 너밖에 안 만나봤어. 근데 어떻게 1년도 못 갔네. 말이 돼?”

“합치면 1년 되지 않나?”

“조금 안 되더라.”

차세정이 파묻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입술이 유선우의 얼굴에 다가갔다.

“앞으론 이런 거 세게 하지 마.”

“응.”

“그럼 됐어. 나쁜 새끼.”

입술이 맞닿았다. 스무디가 묻어 단맛이 진하게 배였다.

차세정이 유선우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자국을 남기듯 수차례 물다가 입을 떼어냈다.

“한 명이 다야?”

“그게, 으음…….”

“똑바로 말해.”

차세정이 눈을 흘겼다. 유선우는 그녀의 요구대로 똑바로 말했다.

“아니, 몇 명 더.”

“개나쁜 새끼.”

***

3년 만의 데이트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유선우에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는 카톡으로 한강과 연락해 박아연의 위치를 전달받았다.

넷과 합류한 뒤에는 박아연이 이탈했다. 그녀도 사망자로 여겨졌기에 귀찮은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유선우는 집으로 돌아왔다.

새 식구를 셋이나 데리고서.

“오, 오오오…. 신기합니다.”

현관으로 들어선 리디가 고개를 홱홱 돌렸다. 흰색 바탕의 세련된 인테리어가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하나하나 놀라면 끝도 없어요. TV라도 보면 자지러지겠어.”

“티부이가 뭡니까?”

“하, 어쩔 수 없네요. 이리 와보세요.”

아이릴이 리디를 이끌고 거실로 향했다. 그녀의 행동거지에서 들뜬 티가 팍팍 났다. 선배 행세하는 게 마

음에 든 모양이었다.

“호오. 이곳이 선우 님의 둥지군요.”

쉬발도 흥미가 동했는지 눈알을 쉴 새 없이 굴려댔다. 그가 입에 담은 호칭에 유선우가 눈썹을 꿈틀거렸

다.

“네가 그렇게 부르니까 좀 기분 나쁘다.”

“그럼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글쎄다. 반말 듣기는 더 싫고. 그냥 형님이라 불러.”

쉬발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저희 나이 차를 생각하면 제 쪽이….”

“뭐?”

“아우입니다. 예. 나이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하하.”

별말도 안 했는데 알아서 꼬리를 내린다. 유선우가 싱겁다며 피식거리고는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푹신한 감각이 여전히 익숙하다. 낙원에서의 생활 탓인지 그리움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근데 깨끗하네.’

3년간이나 비워뒀는데도 집안은 청결했다. 거미줄이 쳐진 곳도 없었고, 먼지가 쌓이지도 않았다. 누가 정

기적으로 청소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돌아오고 나면 할 게 많아서 탈이란 말이야.’

지인들에게 얼굴을 비추는 일은 거의 끝마쳤다. 동생과는 사옥에서 만나 부둥켜안고 눈물을 짜냈다.

한편 최현석과 이성결은 회사에 없었다. 한창 던전 토벌에 참여하고 있다나. 엔라가 뚫어둔 회선이 건재

한지 던전 내에서도 연락은 가능했다.

‘아, 소피아 씨한테도 보내둬야 하는데.’

유선우는 스마트폰을 꺼내 카톡을 켰다. 소피아의 위치를 물어볼 셈이었다. 하지만 메시지를 보내지는

못했다.

‘와이파이도 안 터지네.’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다. 이곳을 관리하는 이도 인터넷 비까진 안 내는 듯했다.

“이게 티부이입니까?”

“하아. 그리웠어요. 이게 맨날 생각나더라고요.”

“그거 지금 안 나온다.”

“……뭐라고요?”

아이릴의 표정이 드라마 속 배신당한 캐릭터처럼 굳었다.

“인터넷 안 돼.”

“그, 그러면 대체 무슨 낙으로 살죠?”

쉬발과 리디 때문에 마음껏 유선우와 달라붙지도 못하는 실정. TV도 안 나온다면 먹고 싸고 자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인생이라기보단 축생이었다.

“기도나 하던가.”

“사람이 어떻게 기도만 하고 사나요. 요즘 잘 하지도 않는데!”

“성녀가 기도를 안 합니까? 직무 태만입니다.”

“당신은 아예 일 다 빼먹고 왔잖아요.”

“스승님 옆에 있는 게 제 일입니다.”

“나만 끌려온 건가? 망할….”

사람이 많으니 입도 많다. 소란에 유선우가 짜증스레 미간을 좁혔다.

“조용히 좀 해라.”

“심심하다고요, 심심해!”

“스승님. 밖에도 나가보고 싶은데 괜찮습니까?”

“저도 슬슬 날고 싶습니다만.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맞다, 옛날에 데이트하기로 약속했잖아요. 지금 해요!”

지랄지랄 지랄지랄.

앞으로 한동안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상상만 해도 정신이 아득했다.

***

431-9 차원 촌놈들도 밤에는 잠들었다. 간신히 평화를 되찾은 유선우도 소파에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새하얀 공간에 서 있었다.

“어라.”

유선우가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그의 말에 새가 지저귀는 듯한 미성이 돌아왔다.

“부를 줄 몰랐어?”

“아니, 부를 건 알았는데 여기는 아닐 줄 알았지. 이거 엔라 취향이잖아.”

엔라의 공간에는 아브나바가 자리해 있었다. 그녀는 마주 선 유선우를 지그시 응시했다.

“멋대로 바꾸기는 뭐해서. 익숙해지니까 괜찮더라. 근데….”

아브나바가 황당하다는 낯으로 말을 흐렸다.

“말도 안 되네.”

감탄과 허탈함이 섞인 음성이었다. 그녀에게도 유선우의 격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가만히만 있어도 살갗

이 따끔따끔한 감각이었다.

“대체 뭘 하다 왔길래 그래?”

“그러게 말이야. 너한테 여러모로 당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렇지?”

몇 년 전엔 유선우의 머리 꼭대기에 있던 아브나바. 그녀는 어느새 그의 발밑까지 내려와 있었다.

“마, 말을 왜 그렇게 하니.”

흠칫거린 아브나바가 입꼬리를 애써 들어 올렸다. 그녀의 어색한 반응에 유선우가 조소를 흘렸다.

“저번에는 다짜고짜 매혹 걸고 달려들더니만. 언제 철들었어?”

“너무 반가워서 그랬던 거지. 솔직히 같이 즐겼잖아.”

살랑거리는 음성이 유선우의 귀를 간지럽혔다. 가만히 듣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한 미성이다.

아니, 실제로 조금씩 끌리는 기분이 들었다. 남성 본연의 정욕이 부글부글 끓는다.

유선우가 입을 다물었다. 침묵한 그에게 아브나바가 느릿하게 다가갔다. 걸음걸이마저도 남성을 애간장

태우게 했다.

벚꽃 같은 분홍색 머리카락에서 희미한 단내가 풍겨 나온다. 곱고 가녀린 손이 슬며시 어깨에 올라간다.

“진짜 보고 싶었는데. 오랜만에… 어때?”

아브나바가 유선우의 귓가에 속삭였다. 뜨거운 입김이 귓구멍을 자극했다.

‘얘는 또 수작질이네.’

유선우는 매혹의 낌새를 눈치챘다. 그가 가볍게 주먹을 쥐는 순간이었다.

후우우웅!

“꺄악!”

맹렬한 한기가 뿜어져 아브나바를 덮쳤다. 얼굴을 제외한 전신이 꽁꽁 얼어붙었다.

그녀는 당황한 낯으로 유선우를 바라봤다. 그 속의 엔라를 응시했다.

“서, 선배?”

- 야. 눈 깔아.

엔라가 말했다.

어째선지 몹시 열 받은 듯한 목소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