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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127화 (127/179)

돌아왔다

달그락.

꽃무늬가 아로새겨진 커피잔이 테이블에 앉았다. 유선우는 유리 테이블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잔을

쥐었다.

“가구 취향 여전하시네요. 대표님.”

“……허어.”

소파에 앉은 김정수는 유선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의 눈꺼풀이 닫혔다가 열리기를 반복했다. 실

제로 보면서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 유선우 씨군요.”

“그럼 누구겠어요. 오랜만입니다.”

“…읍. 잠시만요.”

김정수는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렸다. 눈가를 잡아당겨 울컥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나이 든 남

자의 눈물을 꼴불견이라고 여겼다.

“잘 돌아오셨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미소짓는다. 일그러진 웃음도 꼴사납긴 매한가지였다.

“눈물 쏙 빼고 싶긴 한데, 상황이 여의치가 않네요.”

“예.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 정말로요.”

“많이 고생하셨다고 들었어요.”

“고생이랄 게 뭐 있겠… 냐고는 못하겠군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유선우는 커피를 홀짝이면서 김정수의 상태를 살폈다. 눈가가 먹물 바른 듯 거멓고, 이마의 주름이 깊다.

심신이 지쳐 보였다. 사실 그의 기억 속 김정수는 언제나 피곤해 보였지마는.

“하긴, 서울이 망했으니 당연하죠.”

“아, 들으셨습니까.”

서울이 망했다. 쉬이 와닿지 않는 비현실적인 말이지만 이어진 여파는 현실적이었다. 대형 클랜의 수장

인 김정수에게도 크게 작용했다.

주로 수면 시간 면에서.

그에겐 하루 4시간의 수면도 사치였다.

“강이한테 들었어요. 지 자랑 오지게 하던데.”

“한강 씨 말씀이시군요. 하하. 자랑할 만도 합니다. 저희 클랜 주전력이니까요.”

“그래요?”

“예. 강창민 씨와 이성결 씨, 한강 씨와 최현석 씨. 기존 용인 지부 인원들이 일취월장했죠. 청일이 무너지

지 않은 것도 제 능력이라기보단 소속 헌터들 덕분입니다.”

겸손은 아니었다. 현재 김정수가 말한 인물들은 전부 A+ 등급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들이 헌터 사회에서 가지는 영향력이 청일의 재건에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강창민 씨와 한강 씨는 S급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도 듣곤 합니다.”

“세상이 바뀌긴 했네요. 확 실감 나네.”

강창민은 어쨌든 한강은 솔직히 의외였다. 3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교육생이었건만. 병아리 시절의 모

습밖에 모르던 유선우로선 놀랍기 그지없었다.

“유선우 씨 얘기도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 숨기려는 건 아닌데 설명하기 복잡해서.”

“간략하게라도 괜찮습니다. 박아연 씨와 같이 오신 것도 궁금하고요.”

“아, 맞다. 만나보셨어요?”

그리 묻자 김정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통화만 잠깐 했습니다. 지금은 신변 문제로 바쁘다더군요. 인사나 나눌 겸 사무실로 부르려 했습니다만,

묘하게 횡설수설했었죠. 혹시 무슨 일 있었습니까?”

“에이, 일은요. 그냥 안 내키는 거겠죠.”

유선우가 태연하게 시치미를 뗐다. 현재 박아연은 호기심 넘치는 밀입국자들을 데리고 있다.

셋만 내버려 두면 어딜 싸돌아다닐지 모르는 일이었다.

“음, 제 얘기였죠.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유선우는 적당히 날조해 그동안의 일을 읊조렸다. 게이트 안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생활했고, 가까스로

던전을 클리어해 돌아왔다고.

조잡한 설명이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려면 꺼내야 할 얘기가 너무도 많았다.

예를 들어 사람 사는 땅인 431-9 차원 얘기를 밝힐 경우. 납득시키려면 다른 게이트와의 차이점을 구구절

절 설명해야만 했다.

그렇게 한 10분쯤 떠들다 보면 말하는 쪽이 먼저 빡친다. 결국에는 짜증을 내면서 그만둘 게 뻔했다.

“…그러셨군요.”

건성인 설명에도 김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석연찮은 점을 발견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유선우가 숨겼다 하더라도 본인의 판단하에 숨긴 것이다. 끈덕지게 물고 늘어질 생각은 없었다.

“잘 돌아오셨습니다.”

“아까도 들었어요. 혹시 그 뭐야. 게이트 집단 발생 외에 제가 알아둘 게 있나요?”

“꼽자면 끝도 없습니다. 협회 구조도 상당히 달라졌고, 국내외 상황도 파악해두셔야겠죠.”

“협회장은 누군데요?”

“헥터 대표 김홍철 씨입니다. 3년 차쯤 되니 관록도 붙었는지 훌륭하게 맡고 있습니다. 협회 건물은 수원

으로 이전해 나름 잘 돌아가고 있고요. 헥터는 거의 망했습니다만.”

헥터는 대형 클랜이라고 부르기에도 무색할 지경으로 쇠퇴했다. 주 활동 지역인 서울과 강원도에 게이트

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탓이다.

현재 김홍철은 협회장 직을 맡으면서 헥터의 재건에도 심력을 쏟고 있다. 피로에 매일같이 코피를 흘려대

는 일상이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새옹지마네요. 다른 곳은요?”

“CHC도 반쯤은 무너졌습니다. 헌터들 개개인은 강해져도 전체 인원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죠. 그리

고…….”

김정수는 말을 흐리며 낯을 딱딱하게 굳혔다. 게이트 외에도 암운은 드리워져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몬

스터보다도 골치 아픈 문제였다.

“불법 각성자 조직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건달이나 불량배 같은 거요?”

유선우가 의아하게 물었다. 그는 그러한 조직에 관해 아는 바가 없었다. 3년 전에 협회를 습격했던 이들

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그런 놈들보단 테러범에 가깝습니다. 폐쇄된 서울을 근거지로 삼아 활동하고 있죠. 게이트 집단 발생 장

소는 피하면서요.”

“가끔 새는 몬스터는 자기들이 직접 잡으면 되니까 적당하겠네요. 활동이 정확히 뭔데요?”

“여러 가지입니다. 절도나 폭행 따위는 숨 쉬듯이 벌이고, 감금에 살인은 밥 먹듯이 벌이죠. 아예 국내에

무법지대를 만들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별 미친. 그냥 무차별적으로요?”

“아니요. 피해자는 대부분이 비각성자입니다. 거의 노예처럼 부려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흉흉한 말에 유선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대충 알겠네. 선민의식 같은 건가요?”

“예. 이전에도 그런 사상을 가진 놈들이 있긴 했습니다만, 행동하는 숫자는 적었죠.”

“그런데 갑자기 세력이 성장했다고요.”

김정수가 무언으로 수긍했다. 유선우는 낮게 숨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럴 줄 알았다. 씹새들.’

충격적인 소식이었으나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그는 예전부터 각성자와 비각성자의 마찰을 우려하고 있

었다.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고, 실제로 터졌을 뿐이다. 문제는 예상보다도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쯤 되면 정부가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닌가. 군대 다 꼬라박아 버리지. 인권 뭐시기 할 때는 아니지 않나

요?”

“인권이 문제가 아닙니다. 말투가 좀 그렇습니다만, 인질이 걸림돌이죠.”

“인질… 폐쇄 지역에 남은 비각성자들이겠네요.”

“그걸로도 모자라 놈들이 인근 지역으로 넘어가 납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봉쇄를 뚫어서요.”

언제나 그렇듯이 범죄자의 방패는 민간인이다. 놈들의 밑에 인질이 많아질수록 강제적인 진압에도 차질

이 생긴다.

“군대도 처음에는 미온적으로 대처하다가, 이젠 보이는 즉시 사살하고 있습니다. 헌터에게도 정식으로

사살 지시가 떨어졌고요.”

“헌터도 민간인 아니에요? 사살 지시는 너무 간 거 같은데.”

“아니요. 협회의 조직적 개편 이후에 완전히 공직자로 전환됐습니다. 군인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되겠

죠.”

세상이 확실히 바뀌긴 바뀐 모양이다. 유선우는 신기해하면서도 다시 본제로 말을 돌렸다.

“테러범들 규모는요?”

“저희가 확인한 바로는 이름 있는 조직만 서넛은 되더군요. 그중 하나는 대형 클랜에 버금가는 수준입니

다.”

“성장 정도가 아닌데요. 하늘에서 뚝 떨어졌나.”

“절반가량은 허수입니다. 인질들을 강제적으로 동원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유선우의 질문에 김정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골치 아프다는 기색이 뚜렷했다.

“각성자 쪽이 비정상적으로 강합니다. 대부분은 잔챙이이긴 한데, 우두머리 격 되는 놈들이 문제입니다.

S급으로 판단되는 놈마저 있으니까요.”

“부담스러울 만하네요.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S급은요? 아직도 없나?”

“딱 한 명이 있었습니다.”

뉘앙스가 묘하다. 유선우가 시선으로 뒷말을 재촉했다.

“서울에 파견되어 4시간 만에 죽었습니다.”

“허이고. 가관이네.”

“찍어누르려다가 더 큰 영향력을 쥐여준 셈이 됐죠. 사실 S급에는 모자랐다는 평가가 파다합니다.”

“그럼 협회에서 밀어준 건가요?”

“협회보단 정부에서였죠.”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들만의 힘으로 수습하기엔 터진 일이 너무도 많았다.

불법 각성자 조직에 의한 협회 피습.

한국 헌터의 지주였던 김한성에 의한 청일 본부 테러와 그 본인의 사망.

더해서 명실상부 최강자로 떠오르던 유선우의 실종까지.

고작 하루 만에 비보가 연달아 쏟아졌다. 한국은 2019년의 첫날부터 불안감의 구렁텅이에 놓여야 했다.

악영향은 여론의 악화뿐이 아니었다.

국제적인 영향력마저도 큰 폭으로 깎여나갔다.

손실을 회복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부랴부랴 타개책을 꺼내 들었다. 그 수단이 바로 새로운 기둥을 세우는

것이었다.

‘개죽음이지.’

유선우는 속으로 혀를 찼다. 고인에 대한 예의는 아니었으나 모로 봐도 개죽음이었다.

‘줬다 뺏는 게 제일 나쁜 짓인데.’

희망이랍시고 S급으로 밀어줬건만 발려서 죽었단다. 여론이 미쳐 날뛰었을 게 분명했다. 그 여파는 지금

도 이어지고 있을 터였다.

“그게 언제 일이죠?”

“작년 7월이었습니다. 지금이 4월이니… 벌써 꽤 지났군요.”

“그럼 협회장은 어떻게 안 잘렸대요. 비난이 심했을 건데.”

“김홍철 씨는 극구반대했었으니까요. S급 승격도, 서울 파견도. 정부에서 개입해 잇달아 실패하니 오히

려 협회의 발언력이 강해졌습니다.”

상세를 들은 유선우는 고심에 잠겼다. 침묵한 채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린다. 톡톡거리는 소리만이

울리다가 그가 푸, 하고 숨을 토했다.

“결론은 게이트랑 테러범들이 가장 큰 문제다 이거죠.”

“현재로서는 말입니다.”

“일단 알겠어요.”

대화가 일단락되자 유선우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잘 마셨습니다. 내일도 올 테니까 말씀하신 놈들 정보 준비해주세요.”

“어쩌실 생각입니까?”

“쓰레기는 치워둬야죠.”

“의욕이 넘치시는 건 저도 환영할 일입니다만. 개인적으론 좀 쉬셨으면 좋겠군요. 이제 막 돌아오셨으니

까요.”

“거울부터 보고 그러시는 건 어때요?”

농담조에 김정수가 머쓱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천천히 활동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게이트는 어쨌든 서울은 저희 쪽에서도 협회와 대응을 짜고

있고요.”

“우선은 그냥 둘러보기나 할까 싶어서요.”

뒤따라 일어난 김정수가 유선우와 시선을 맞췄다. 그는 속내를 파악하듯 눈동자를 응시하다가 안도의 한

숨을 흘렸다.

“알겠습니다. 제 연락처는 기억하고 계십니까?”

“아뇨. 그러고 보니 저 지금 폰도 없는데. 계좌는 막혔나?”

“여러모로 처리할 일이 많으시겠죠. 복잡한 절차는 제 쪽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집도 그대로이니 불편

함은 없으실 겁니다.”

“오, 그래요? 또 날아간 줄 알았네.”

대화하며 김정수가 옷을 뒤적거려 스마트폰을 꺼냈다.

“공기계입니다. 제 번호는 등록해뒀습니다.”

“이런 건 또 언제 구하셨대.”

“개인적으로 다섯 개는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 필요해질지 모르니까요.”

“준비성이 뭔… 일단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유선우는 스마트폰을 요목조목 살펴보곤 주머니에 넣었다.

“복귀 공표는 어쩌시겠습니까?”

“아까 찍은 영상으론 부족한가요?”

“불씨는 되겠죠. 하지만 대중들은 본인이 여태 많이 속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고요.

쉬이 믿지는 못할 겁니다.”

참 귀찮은 사람들이었다.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마는.

“사진이나 하나 올리면 되겠죠 뭐.”

“사진이라. 그럼 저희 공식 SNS가 있습니다. 그 계정을 쓰시면 되겠죠.”

“네. 찍으면 보내드릴게요.”

“이젠 어디로 가시는지.”

김정수의 질문에 유선우가 환하게 웃었다.

“데이트요.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어서.”

“여자친구….”

곰곰이 생각하던 김정수가 아, 하고 탄성을 뱉었다. 유선우의 연인으로 유명한 차세정. 그녀는 유능한 인

재이기도 해 김정수의 기억에도 남아 있었다.

“그럼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짧게 인사한 유선우가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등을 보며 김정수가 쓰게 웃었다.

“여자친구분, 아직 근무 시간일 텐데…….”

***

2022년 4월 8일의 정오 무렵.

강남대로에서 게이트가 발생한 직후, 한국의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불씨가 떨어졌다.

유선우의 귀환.

무수한 누리꾼이 하나의 화제로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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