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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125화 (125/179)

돌아왔다

“어쩌실 겁니까?”

리디는 질문하면서도 자연스레 창을 휘둘렀다. 몬스터의 종류를 불문하고 일격에 급소를 찔러낸다. 괴수

들을 도륙하는 손놀림은 확실히 유선우와 닮아 있었다.

“글쎄다. 애들 어디 갔대.”

유선우의 눈이 몬스터의 사이사이를 유심히 살폈다. 성가시다는 낯빛의 아이릴과 박아연이 보였다. 쉬발

은 여전히 좌절해 있었다. 오자마자 몬스터를 봐서 더욱 심한 듯했다.

유선우는 셋에게 다가갔다. 몬스터들의 밀집도가 상당해 도로가 복작거렸다. 그가 발을 디딜 때마다 짐

승들이 서너 마리씩 덮쳐들었다.

굳이 걸음을 멈출 필요도 없었다. 유선우를 엄호하듯 창이 휘둘러졌다. 리디가 장애물을 전부 걷으며 길

을 뚫어냈다.

“어라. 데리고 왔어요?”

리디를 포착한 아이릴이 의아한 목소리를 흘렸다. 말하면서도 손은 바쁘게 움직여 몬스터를 쥐어팼다.

그녀의 자그마한 주먹이 피와 살점으로 지저분했다.

“내가 억지 좀 부렸지.”

“억지… 뭐, 올 거라고는 생각했어요.”

“그보다 선우 씨, 어쩔 거예요?”

박아연의 물음에 유선우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다 잡아야지 뭘 어째요. 개판이 따로 없어.”

“그럼 제가 할게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곧바로 말을 받는다. 박아연이 능란하게 엄지와 검지를 마찰시켰다.

그러자 손 위로 정령이 깃든 불꽃이 피어올랐다. 용솟음치는 화염이 마치 생물처럼 보였다.

화르르륵!

불길이 원을 그리며 몬스터들을 관통해 지나갔다. 꿰뚫린 상처 부위부터 불길이 급속도로 번졌다. 흡사

독이 퍼져나가는 듯했다.

모양새가 썩 화려했다. 신난 박아연을 지켜보던 유선우의 귓가에 고함이 들려왔다.

“게이트 하나가 닫혔다. 밀어붙여!”

“저거 뭐야, 누가 들어갔어?”

“개인행동은 삼가라!”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야 끝에서 온갖 능력들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원거리 공격이 일제히 쏘아졌다. 전열의 몬스터를 처리한 뒤에는 무장한 이들이 방벽을 세워 천천히 전진

했다.

‘어째 소극적인데.’

착실하게 밀어붙이는 추세였으나 유선우가 알던 헌터와는 달랐다. 툭 튀어나오는 인원도 없어 군대를 보

는 듯했다.

“선우, 저 사람들….”

“어. 잠깐 봐야겠다.”

유선우는 리디를 아이릴에게 맡기곤 발을 떼었다. 그의 어깨 위에서 한기가 스멀스멀 일렁거렸다.

다섯 보의 반경으로 간섭력이 퍼져나갔다. 다가오는 몬스터들의 전신이 얼어붙었다. 소란 통에도 유선우

의 주변만은 정적으로 휩싸였다.

“아오, 길 좀 진짜.”

유선우가 동상으로 변한 오크의 머리를 부쉈다. 막힌 길을 쉽사리 돌파하는 그에게 헌터들의 시선이 집중

되었다.

“저거 누구야?”

“피 때문에 헷갈리는데… 좀 익숙한 얼굴인데요.”

가까워질수록 분위기가 떠들썩해졌다. 당혹감과 함께 경계심이 짙게 깔렸다.

“비켜요, 비켜!”

돌연 젊은 여성이 인파를 헤치며 뛰쳐나왔다. 그녀가 휘청거리다가 발을 강하게 디뎌 균형을 잡았다.

“오, 오빠?”

여성, 한강의 동공에 유선우의 모습이 담겼다. 그녀의 눈동자와 목소리가 세차게 흔들렸다.

“뭐야. 강이네. 지금 이거….”

“오빠!”

빽 외친 한강이 유선우의 품으로 몸을 던졌다. 와락 안긴 그녀가 탄탄한 가슴팍에 고개를 파묻고 문질러

댔다. 그녀의 얼굴과 옷에 진한 핏자국이 들러붙었다.

“얼굴 더러워진다. 잠깐 비켜봐.”

“으으으응!”

한강이 불만 어린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유선우는 배려해 말했으나 그녀에겐 매정하게만 들렸다.

“아니, 비켜보라니까.”

유선우는 양어깨를 잡아 몸을 강제로 떼어냈다. 그도 환영받는 것은 싫지 않았지만 때와 장소를 구별할

필요가 있었다.

“흑, 흐윽, 흐어엉….”

“뭐 보자마자 울어. 콧물 난다.”

유선우는 훌쩍거리는 한강을 보며 쓰게 웃었다. 오랜만에 만난 한강은 여전히 고등학생 같았다. 모로 봐

도 스물네 살 얼굴이 아니었다.

“아오, 미친년아! 나서지 좀 마!”

그때 한 청년이 정지한 인파를 뚫고 나왔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 처먹어? 네가 탱커야? 이런 개…!”

험악하게 소리치던 청년이 입을 다물었다. 그의 시선이 한강에게 닿았다가 유선우에게로 향했다. 사납던

낯에 경악스러움이 번지며 입이 함지박만치 벌어졌다.

“……형?”

“너도 있었네. 입버릇 아직도 험하다?”

“혀어어엉!”

강창민은 애지중지하던 창마저 내팽개치고 유선우에게 달려들었다. 어째 둘이 반응이 똑같다.

유선우가 떫은 낯으로 둘을 밀어냈다.

“어떻게 된 거예요? 형이 왜 여기 있어요? 아니, 안 죽었어요?”

“‘안 죽었어요’가 뭐냐. 말 가려서 해.”

“왜 이렇게 쌀쌀맞아요? 오빠 아닌 거 아니에요?”

얼싸안고는 새처럼 쫑알거린다. 유선우가 흐뭇한 웃음을 흘렸다.

“아닌 거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야.”

“그, 그러면, 으으음….”

한강이 갸웃거리면서 중얼중얼 혼자 떠들었다. 동안뿐만 아니라 하는 짓도 여전했다.

“그보다 지금 뭔 상황인데?”

유선우는 근처에서 멍하니 있는 헌터들에게 시선을 줬다. 귀신 보듯 바라보던 그들의 표정에 조금씩 환희

가 깃들었다.

한국 헌터계에서 유선우는 거인이었다. 활동 기간이 짧았을지라도 행보 하나하나가 큼직했다.

“제,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헌터들의 선두에 있던 남성이 다가와 말을 받았다. 그의 걸음걸이와 목소리에서 짙은 긴장감이 드러났

다.

“아, 네. 일단 누구신지?”

“녹랑 소속 정한서입니다. 유선우 씨 맞으십니까?”

“보시다시피요. 신분증은 없지만. 게이트에 끌려갔다가 이제 돌아왔습니다.”

유선우는 즉석에서 떠올린 변명을 뱉었다. 조잡하긴 해도 마냥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러셨군요. 생환 축하드립니다.”

엉성한 설명이었기에 파고들 구석은 많았다. 그러나 정한서는 굳이 캐묻지 않았다.

유선우의 생환은 누구라도 환영할 경사였다. 특히나 시국이 혼란스러운 지금이라면 더더욱.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는 없었다.

“감사하긴 한데 와보니 꼴이 말이 아니네요. 설명부터 들어야겠는데요.”

“예. 간단히 말씀드리면 게이트 집단 발생입니다.”

“집단 발생?”

“말 그대로라고 보시면 됩니다. 3년 전부터 특정 위치에서 정기적으로 일어나고 있죠.”

“정기적으로요? 제가 알던 게이트랑은 좀 다른데요.”

게이트는 내버려 두면 점차 확장되는 특성을 가진다. 발생 빈도도 갈수록 늘어나 끝에는 던전과 연결되고

만다.

그런데 이 현상이 3년간이나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유선우가 아는 바와는 상당히 달랐다.

“우연이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확장되는 속도는 느리고, 열리는 간격도 줄어들질 않죠.”

“이유는 모르는 거고요?”

“누가 알겠습니까. 날짜에 맞춰서 대응할 뿐이에요.”

“오늘이 딱 그 날짜다, 이 말이죠.”

정한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유선우는 쓰읍, 하고 숨을 들이쉬며 고심에 잠겼다.

‘수상쩍긴 한데, 애매하네.’

게이트의 변화는 덮어두고, 집단 발생의 원인엔 짐작 가는 바가 몇 있었다.

신계의 개입이나 관리자들의 작당. 또는 엔라의 부재로 인한 자연스러운 변화일지도 몰랐다.

모두 확신이 부족했다. 아브나바에게 듣기 전까지는 깊게 생각지 않는 편이 나았다.

“말세네, 말세야.”

혀를 끌끌 찬 유선우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공중에는 웬 헬기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카메라가 눈에 띄는

게, 상황을 방송으로 중계하는 모양이었다.

“창민아. 저거 카메라 뭐냐?”

“이거 다 뉴스로 나가거든요. 숨길 수도 없으니 아예 공개하기로 한 거죠.”

게이트 집단 발생 지역은 이곳만이 아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대규모의 재앙. 당연

하게도 덮는 것은 불가능했고, 대중들은 큰 관심과 우려를 보였다.

정부에선 처음은 촬영을 금지했었다. 그러나 정보가 부족한 만큼 국민의 위기감이 깊어지게 되었다. 헌

터들이 막아냈다는 발표를 들어도 많은 이들이 의심하며 두려워했다.

점차 불안해지는 민심에 정부도 방침을 바꿔야만 했다. 그 결과가 허공을 누비는 방송국 헬기였다.

“잘됐네.”

렌즈를 뚫어지라 보던 유선우가 흡족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한강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뒤쪽을 가

리켰다.

“일단 뒤로 가 있어.”

“오빠는요?”

“가만히 있으려 했는데 어쩔 수 없네. 방송 나간다잖아.”

3년 만의 복귀다. 방송을 탄다면 최대한 화려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 퇴물이다 뭐다 제멋대로 떠들지 못

하도록 확실하게.

유선우는 허리춤의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내부를 뒤적거렸다. 딱딱한 창대를 쥐고 그대로 뽑아낸다. 때

묻지 않은 새하얀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 찍으라 해.”

유선우가 계단을 오르듯 허공을 밟았다. 보이지 않는 계단의 폭과 높이는 일정하지 않았다. 불규칙한 보

폭으로 하늘을 걷는 모습은 얼핏 불안정해 보였다.

하지만 그만큼 자유로워 보이기도 했다. 복잡하게 얽힌 몬스터들을 조소하는 듯했다.

“허, 허공답보?”

강창민이 무협지 용어를 내뱉고는 숨을 삼켰다. 그도 3년간 눈부신 성취를 이뤘으나 저만한 경지는 꿈도

꾸지 못했다. 염력으로 자신의 몸을 띄우는 흔한 기술과는 근본부터가 달랐다.

‘근데 더럽게 많네, 진짜.’

유선우는 걸으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한가운데에서 박아연이 날뛰고 있었으나 아직 반은 남아 있었다.

주변에 가득한 잔해 탓에 더욱 수선스럽게 보였다.

‘빨리 샤워하고 싶다.’

시답잖은 생각을 품은 유선우가 밟던 공간에서 의식을 거뒀다. 무형의 계단이 사라진 것처럼 그의 몸이

수직으로 낙하했다.

쿠웅!

유선우는 지면에서 손을 휘적거리던 트롤의 머리를 내리찍으며 지면에 착지했다.

몬스터들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달려든다. 유선우의 몸을 휘감은 칼바람에 놈들의 전신이 베여 아스팔

트 위에 흩뿌려졌다.

“키에에엑!”

미세하게 발출된 격에 모든 몬스터의 시선이 유선우에게 집중됐다.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짐승들의 낯에

공포심이 어렸다.

놈들의 발이 달달 떨리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주춤한 순간, 은은한 광을 흘리는 창이 휘둘러졌다. 허공을

가른 창이 일대의 공간을 잘라냈다.

공간이 단층되자 수백 마리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엇갈려 바닥에 떨어졌다.

“어라.”

아이릴의 시야를 가리던 골렘이 양단되어 몸체가 우르르 무너졌다. 아이릴은 갈 곳을 잃은 주먹을 내리곤

유선우를 쳐다봤다.

창대가 미세하게 흔들려 잔상을 만들어낸다. 잔상이 일렁거릴 때마다 소란이 잦아들었다.

괴상한 울음소리가 멎고 쿵쾅거리던 발소리도 멎었다. 네 번의 휘두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대로에는

프로펠러 소음만이 울려 퍼졌다.

“……허.”

몬스터를 학살하던 박아연이 허탈하게 숨을 토했다. 그녀의 시선이 유선우에게 닿았다가 활기차게 뛰어

다니는 정령에게 옮겨갔다. 어째 정령이 초라해 보이고 자괴감마저 느껴졌다.

“더 안 나오죠?”

유선우가 창대를 어깨에 올린 채로 헌터들에게 눈길을 줬다. 그와 눈이 마주친 정한서가 목울대를 넘겼

다. 순백의 창에 묻은 핏방울이 섬찟했다.

“그, 글쎄요…. 아시다시피 게이트가 닫힐 때까지는 불확실합니다.”

“맞다. 괜한 거 물어봤네요. 감 떨어졌나.”

태평한 투로 말한 유선우는 고개를 돌려 대로를 훑어봤다. 길 한복판에 열댓의 게이트가 밀집되어 있었

다.

집단 발생이라더니만, 확실히 말 그대로의 현상이었다. 방금 같은 징그러운 숫자가 모인 것도 이해가 됐

다.

- 어쩔 거야? 들어가게?

엔라가 물었다. 현재 유선우는 게이트에 진입해 관리자들을 죽이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고도 남을 힘이 있었다.

무엇보다 애초부터 계획해둔 일이기도 했고.

“나중에.”

하지만 유선우는 행동을 보류했다. 무엇이 합리적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이럴 때는 감정이 우선이었다.

“부모님이 내 얘길 뉴스로 먼저 듣는 건 좀 그렇잖아.”

생방송이면 벌써 보고 있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만나야 할 사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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