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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117화 (117/179)

화려한 휴가

유선우는 황성의 아티팩트를 빌려 용왕에게 통신을 걸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전화였는데, 처음부터 목소리가 어색하더라.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반가워서 안부를

물었더니 뺀질뺀질. 좀 도와달라니까 아예 통신을 끊어버리는 게 아닌가.

산행을 결심하게 된 순간이었다.

유선우는 흐릿한 용왕의 얼굴을 떠올리며 산의 중턱을 걸었다. 그때 커다란 그림자가 그의 주변에 드리워

졌다.

펄럭!

“인간, 경고하지. 그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험한 꼴을 보게 될 것이다.”

어느새 나타난 거대한 용이 날갯짓하며 상투적인 경고를 내뱉었다. 목소리에 담긴 웅혼한 마력이 용의 존

재감을 드높인다.

유선우는 한쪽 눈을 찌푸리며 위를 올려다 봤다.

“야, 내려와.”

“무어라?”

“내려오라고. 얘기 좀 하게.”

“제 목숨을 챙길 줄도 모르는가. 이래서 인간은….”

“지금만 봐준다. 얘기하기 싫으면 펠리스 불러와.”

“펠리스…?”

용왕을 칭하는 이름에 용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본래였다면 불경하다며 부른 인간을 갈기갈기 찢어

발겨야 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랐다.

우선 용왕의 본명은 펠릭시르 라우리스트였다.

‘펠리스’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사람은 한 명뿐.

용은 그것이 뜻하는 바를 잘 알았다.

화아아악!

용의 거체가 시꺼먼 빛으로 휘감기더니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빛이 사그라지자 용은 중년의 사내가 되어

있었다. 그는 황급하게 낙하해 바닥에 무릎 꿇고는 머리를 조아렸다.

“오셨습니까!”

“그래. 이름이 뭐였지?”

“쉬, 쉬발라 하르미온입니다.”

“맞다, 쉬발. 오랜만이다.”

유선우가 뚱한 낯으로 쉬발을 응시했다. 쉬발은 시선이 따갑고 두려워 식은땀을 뻘뻘 흘려댔다.

유선우는 용들 사이에서 ‘그분’이라고 불렸다. 용왕 이외에는 그의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오

만한 용들도 그의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해졌다.

전적으로 유선우의 행동 때문이었다.

‘내 비늘…!’

인간은 용의 신체를 보물로 여기고는 한다. 유선우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비늘을 빼앗기지 않은 용이

단 한 개체도 없었다.

지구 출신의, 몬스터로 분류되는 드래곤들도 있기야 했었다만 그들의 재료는 품질이 떨어졌다.

무엇보다 놈들은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감을 가지고 있어 그냥 죽이는 편이 나았다.

반면에 431-9 차원 토종 용들에겐 말과 주먹이 통했다. 즉, 때리고 협박하면 보물을 토해내는 보물창고

였다.

‘이번엔 뭘 뺏어가려고.’

쉬발은 침을 삼키며 고개를 살짝 들었다. 유선우의 심드렁한 눈빛이 어째 서늘했다.

“요즘 눈 나빠졌나 보다. 날 못 알아보고.”

“나, 나이가 들어서 말입니다. 저도 슬슬 갈 때가 되었습니다.”

“에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오래오래 살아서 손주도 보고, 증손도 봐야지.”

쉬발이 입술을 잘근잘근 짓씹었다.

‘손주는 갑옷으로 써먹고 증손주는 무기로 써먹겠지. 개새끼…….’

쉬발의 딸만 해도 대량의 혈액을 착취당했었다. 어린 용의 피는 마력 친화도를 높여주기 때문이었다. 그

러고도 손주를 보란다. 둘도 없는 악마였다.

“소, 손주는요. 딸내미가 아직 많이 어립니다. 하하.”

쉬발은 그 어린 것의 피를 처먹어야 했었느냐는 한을 담았다. 유선우가 자신을 부끄러워하기를 바랐다.

“…그래?”

기대와는 정반대로 유선우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탐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눈빛이었다.

‘미안하다, 우리 딸…!’

심경 변화를 알아챈 쉬발이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유선우의 탐욕은 금세 자취를 감췄

다. 그는 이제 어린 용의 피 따윈 필요치 않았다.

“일단 안내해줘. 펠리스 보러 왔어.”

“죄송합니다만 용왕께선 요새 두문불출하고 계십니다.”

“엉? 왜?”

“아주 복잡하고 섬세한 이유가 있는데…….”

쉬발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는 말할까 말까 고민하며 입을 달싹거렸다.

“이것 참. 제가 말씀드리기가 좀.”

“흐음.”

“이, 이해해주십쇼!”

“나 아무 말도 안 했다.”

유선우가 떠름하게 입가를 일그러트렸다. 쉬발이 저 혼자 겁먹는 모습이 불쌍하면서도 찜찜했다.

“내가 한 번 볼게. 괜찮지?”

“그으게 말입니다. 이게 진짜.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나랑 걔 사이 알잖아, 왜 그래.”

“이해해주셔야 하는데….”

쉬발이 땅이 꺼지라 한숨을 토해냈다. 그 태도를 보니 유선우도 펠리스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안내해. 문제 있으면 내가 도와줄 테니까.”

거절은 용납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어조였다. 쉬발은 재차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십시오.”

***

“흑, 흐윽!”

산맥의 정상에 있는 거대한 규모의 둥지. 그 깊은 곳에서는 훌쩍거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

었다.

둥지의 내부로 들어서자 유선우의 귓가에도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듣는 쪽의

가슴이 미어질 정도였다.

“왜 저래?”

유선우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용왕의 오감은 뛰어나니 혹여나 들릴까 싶었다.

“보시면 압니다.”

“그야 그렇겠지만….”

유선우가 말을 흐렸다. 쉬발이 굳은 낯으로 유선우를 응시했다.

“절대로 웃으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야, 우는 사람 보고 어떻게 웃냐. 날 너무 쓰레기로 보네.”

“저랑 약속하신 겁니다.”

“…괜히 긴장되게 그래.”

유선우는 이유 모를 긴장감에 침을 삼켰다. 그는 발소리를 죽인 채로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이동했다.

5분쯤을 걷자 용왕의 거체가 눈에 들어왔다.

“……어?”

드러난 것은 선홍색의 반들반들한 살이었다. 인간의 형태였다면 별로 특이한 일도 아니었다. 그냥 혈액

순환이 잘 되나 싶었겠지.

하지만 상대는 용이었다.

살은 비늘로 가려져 있어야 정상이었다.

물론 비늘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듬성듬성 나 있어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비늘이 왜 저렇게 없어?”

“왜겠습니까?”

“나 때문이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까진 안 뽑았어.”

“저희는 짜증이나 화가 쌓이면 비늘이 떨어집니다.”

“……미안.”

유선우는 솔직하게 사죄했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면 틀림없이 자신이 원흉이었다. 마취도 안 하고 온몸

을 다 뽑았었으니 열 받을 만도 했지.

그래도 다행인 점은 쥐뿔도 웃기지 않았다는 것.

그저 처참하고 불쌍할 뿐이었다.

“누, 누구시죠?”

말소리를 들은 펠리스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녀의 큼지막한 금색 눈동자에 유선우와 쉬발이 담겼다.

“꺄, 꺄아아아악!”

찢어지는 비명을 지른 펠리스가 강렬한 빛무리에 휘감겼다. 그녀는 비늘이 벗겨진 본체를 보이는 게 너무

도 쪽팔렸다.

빛의 기세는 수 초도 안 되어 완전히 죽었다. 거체가 있던 자리를 대신한 것은 가녀린 여성이었다.

여성은 등을 돌린 채 주저앉아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뒤태만으로도 그녀가 미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머리카락이 반쯤 벗겨진 것만 빼면.

“프흡!”

돌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리를 낸 것은 유선우가 아니었다. 쉬발이었다.

“…….”

“으흡! 으흐흫흫!”

쉬발이 제 입을 틀어막았다. 소용없었다.

놈의 손가락 사이에서 폭소가 새어 나왔다.

웃음보가 제대로 터진 모양이었다.

“흐윽, 흐어어엉….”

웃을수록 펠리스의 고개가 푹 떨어진다. 푸른색의 윤기 없는 머리카락도 후두둑 떨어진다. 빠지는 모발

을 보자 그녀의 울음에 설움이 깊어졌다.

“아흐흐흐, 푸흐허허허!”

웃는 목소리가 경박하기 그지없다. 유선우는 서릿발처럼 차가운 눈으로 쉬발을 바라봤다. 쉬발은 시선이

마주쳤음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웃으면 안, 흫, 되는, 어흐흐!”

“저게 웃겨?”

“그럼 안 웃깁니까?”

“너 진짜 나쁜 새끼다.”

“스읍, 하아. 스읍!”

웃음을 참아내려는지 쉬발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곧 실패하고 으허허, 하며 배꼽이 빠지라 웃는다.

쉬발의 눈가가 글썽거렸다. 너무 웃어서 운다.

유선우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펠리스의 슬픔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흐윽, 나가, 나가요!”

“미안하다. 진짜로.”

“꺼지라고요! 아무도 들어오지 마!”

펠리스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빽 소리쳤다. 갈라지는 음성에서 그녀의 고통이 낱낱이 드러났다.

“알았어. 지금 나갈게.”

짜악!

“억!”

유선우는 쉬발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가 놈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미안.”

쉬발이 맞고 펠리스가 사과를 받았다.

유선우는 등을 돌리고 개새끼를 질질 끌었다. 그는 방금 걸었던 길을 되돌아가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

늘이 펠리스의 머리칼처럼 푸르르다.

‘이해한다.’

유선우도 한때 머리카락으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

후우우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묵직하다. 널따란 등 위에 올라탄 유선우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야, 너 은근히 빠르네.”

“뿔 잡지 마십쇼. 제발.”

“미안. 핸들 같아서.”

“그게 뭡니까?”

“고삐.”

유선우는 결국 쉬발을 자가용으로 삼았다. 데리고 다니면서 올바른 인성을 교육해줄 셈이었다.

“근데 저걸 어떻게 도와주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는데도 감 잡히는 게 없더군요.”

“신성 마법으로도 힘들 텐데. 너희한텐 잘 안 먹히잖아.”

“예. 아마 어려울 겁니다.”

용은 마법의 종주이면서도 마법에 대해 강력한 저항력을 가진다. 디버프가 거의 통하지 않기에 회복도 마

찬가지. 펠리스의 탈모증세가 쉽게는 고쳐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단 나도 생각해볼게.”

“떠오르시면 꼭 말씀해주시죠. 정말로.”

“알아, 알아. 너 새끼 때문에라도 해결해야지.”

“크흠!”

유선우는 혀를 끌끌 차며 비늘 위에 엉덩이를 깔았다. 새로운 문제가 생기긴 했어도 용을 얻었으니 산행

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그런데 어디로 가십니까?”

“우선 브뤼켈.”

“거긴 딱히 내릴 데가 없습니다만. 보는 눈이 많아서요.”

“그냥 광장으로 가면 돼.”

“저 죽습니다.”

브뤼켈은 제국의 수도인 만큼 요격 능력도 뛰어나다. 운이 좋더라도 날개 한 짝은 날아갈 게 뻔했다.

“당연히 미리 말해뒀지. 최대한 화려하게 가.”

“뭘 어떻게 말씀하셨길래…….”

“퍼레이드.”

“제가 인간의 볼거리가 되는 겁니까? 솔직히 좀 불쾌….”

“어떤 퍼레이드가 될지는 나한테 달려 있고. 용 피는 술로 만들어도 맛있는 거 알지?”

“불도 뿜어보겠습니다. 너무 신납니다, 하하!”

유선우는 431-9 차원에선 누구보다 자유로운 인물이었다. 그의 이름이면 황제도 껌뻑 죽고, 실력이면 용

마저도 굴복한다. 오히려 지구에서보다 편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자주 와야겠어.”

“뭐라 하셨습니까?”

“응? 별거 아니야.”

그토록 탈출하고 싶었던 장소였건만.

이제는 못 오면 허전할 지경이었다.

- 언제는 여기서 살기 싫다더니.

“아브나바 때문에 무서워서 그랬지.”

- 지금은 안 무섭고?

갑작스레 들려온 엔라의 말에 유선우가 코웃음을 쳤다.

“이젠 내가 이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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