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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113화 (113/179)

다음에 봅시다

유선우는 귀환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준비라고 해봐야 이삿짐을 싸는 것도 아

니었다.

필수적인 일을 꼽자면 단 한 가지.

엔라를 몸속에 챙겨가는 것이었다.

“근데 괜찮은 거 맞지?”

“괜찮아! 해본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좀 겁나는데.”

유선우가 불안한 시선으로 엔라를 쳐다봤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반죽음 상태가 된 원인은 강신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엔라를 온전히 그릇에 담으려 하고 있다. 여러모로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괜찮다니까는.”

반면에 엔라의 목소리에는 근심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녀는 유선우와의 연결을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 상성을 맞춰온 덕분이었다.

“후우, 알았어. 어떻게 하면 돼?”

“일단 자리 좀 비켜줄래?”

“왜? 구경하고 싶은데.”

이유를 묻자 엔라가 입을 달싹거리면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유선우는 말없이 그녀를 응시하기만 했

다. 경험상 머뭇거릴 때는 가만히 쳐다보는 게 가장 효과가 좋았다.

“……보여주기 싫어서.”

시선이 한참이나 쏘아지니 엔라도 견디지 못했다. 그녀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여 눈을 피했다.

‘대체 뭐가?’

유선우는 엔라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여태껏 할 거 다 해놓고 돌 되는 모습 보여주는 게 부끄럽나?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감성이었다. 아무리 상성이 좋아져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다.

“5분 있다가 들어와. 알았지?”

얼굴에 철판을 깐 엔라가 눈을 부릅뜨고 강조했다. 말을 어길 시에는 누구 하나 잡을 기세였다.

“참나. 알았어.”

수긍한 유선우는 등을 돌려 현관 밖으로 걸어갔다. 그러면서도 영 이상해서 고개를 기울였다.

철컥.

문밖으로 나서고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여전히 새파랗다. 낙원에 처음 왔던 때와 구름의 위치마저 똑같

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럴 터다.

밤도, 계절도 없어 풍경도 변함이 없다. 훗날 다시 낙원에 오게 된다면 그때도 여전할 것이다.

“저기….”

옆에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주춤거리는 토노토가 보였다. 아까는

조용히 있더니. 이제야 다가올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답지도 않게 왜 그래요?”

“아니, 그냥. 기분이 좀 이상해서.”

“뭐가요?”

“네가 진짜로 나간다는 게.”

토노토는 헤어짐이 거북하면서도 낯설었다. 생전에는 분명 몇 번이고 겪었던 일. 하지만 그녀는 까마득

한 세월을 낙원에서 살아온 인물이었다.

가장 최근의 헤어짐이라면 백명이 초월자들을 처형했던 것. 그나마도 수천 년 전의 사건이었고, 죽은 놈

들과는 별로 친하지도 않았다. 지금처럼 마음이 싱숭생숭한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어차피 금방 볼 텐데요 뭘. 아까도 말했잖아요.”

유선우는 어색해하면서도 싱긋 웃어주었다. 토노토가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달싹거렸다.

“…지금 말하긴 뭐한데, 난 좀 회의적이야.”

“어라. 여기서 나가기 싫어요?”

“그게 아니라 성공률 면에서. 가능할까?”

단순히 할 수 있겠냐는 뉘앙스가 아니었다. 정말로 그런 터무니없는 일을 해낼 수 있겠느냐. 도박에 나서

는 사람을 염려하는 듯한 어조였다.

“아까 싸우던 것만 안 끊겼으면 그런 말도 안 했을 텐데. 제가 이겼을 테니까요.”

“웃기고 있어. 뺨이나 대.”

“아, 싫어요.”

유선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떠한 예감이 강렬하게 들었다.

헤어질 때 뺨 대라, 눈 감으라. 숱한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야릇한 일이 벌어질 패턴이었다.

“시, 싫으면 말던가.”

매몰차게 거절당한 토노토가 머쓱하게 제 입술을 매만졌다.

거북한 침묵이 앉았다. 토노토는 불편해하면서도 유선우가 말을 꺼내는 것을 기다렸다.

머지않아 유선우의 입이 벌어졌다.

“아, 5분 됐다.”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발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간다. 토노토는 어이없다는 눈초리로 유선우의 등을 바

라볼 뿐이었다.

시간에 맞춰 돌아온 유선우는 집 내부를 살폈다. 엔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소파 위에 주먹만

한 돌 하나가 놓여 있었다.

“오우야.”

유선우는 돌을 바라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짙은 푸른색의 영롱한 돌. 보석과도 같은 자태였다.

‘근데 되게 크네.’

꿈에서 얻은 파편은 항상 새끼손가락 정도의 크기였다. 그 전부를 합쳐도 눈앞에 있는 돌의 반조차 되지

않을 터였다.

그만큼 엔라가 지닌 힘이 강대하다는 뜻이리라.

“…진짜 괜찮은 거 맞겠지.”

유선우가 혼잣말을 내뱉자 보석이 푸른빛을 뿜어냈다. 꾸물대지 말라고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그는 후우, 하고 숨을 토해내 각오를 다졌다. 돌에 손을 올리자 서늘한 감촉이 전해졌다.

‘어라.’

손바닥뿐만 아니라 머릿속까지 시원하다. 어째 기분이 좋았다. 긴장하던 자신이 바보 같아질 정도로. 그

감각에 몸을 맡기니 돌이 내부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과정은 의외로 별 탈 없이 진행되었다.

처음으로는 이전과 동일하게 머릿속에서 영상이 재생되었다. 눈으로 덮인 가파른 설산에서 엔라가 태어

나는 장면을 보았다.

그리고 몸속으로 빨려 들어간 돌은, 이전의 파편처럼 한 곳으로 이동했다. 머리인지 복부인지 가슴인지

스스로도 어렴풋한 장소. 돌이 그곳에 도착하자 유선우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확실히 차긴 한 거 같은데…….’

파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대한 힘. 엔라의 존재감은 지금까지 유선우가 쌓아온 격보다도 컸다.

그런데도 공간이 남아돌았다.

공책 한두 권만 챙겨 넣은 책가방처럼.

평생 답답함을 느끼지 못할 듯한 수용량이었다.

‘좋은 거지 뭐.’

유선우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는 몸을 풀었다. 가볍게 뜀뛰기만 하는데도 변화가 선명히 와닿았다.

전신에서 힘이 넘쳤다. 막 초월자가 되었을 때 느꼈던 기분과도 비슷했다.

‘그냥 이러고 살면 안 되나?’

걱정했을 때는 언제고 이제는 놓아주는 게 아까웠다. 제멋대로인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 당연히 안 되지!

“으, 뭐야.”

자신의 내부에서 들려온 음성에 유선우가 인상을 구겼다. 환청이 들리는 듯한 기분이 썩 껄끄러웠다.

- 때 봐서 나갈 거야. 솔직히 좀 기대했는데 그냥 답답하고 불편하고 그래.

“뭘 나가. 그러다가 또 걸리면 어쩌려고.”

- 그건 그렇지만….

“그냥 얌전히 있어.”

그게 도와주는 거야.

그 말은 속으로 삼켰다.

***

준비를 끝마친 유선우는 재차 밖으로 나섰다.

집 앞에는 백명과 한주가 자리해 있었다.

“…진짜로 했네. 처음 봤어.”

유선우를 뚫어지라 보던 한주가 혀를 내둘렀다. 그도 이전에 설명을 들었기에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그런

데 실제로 보니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한 존재의 안에 공존하는 두 개의 격. 저번처럼 죽여서 흡수한 것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서로 충돌하지 않았고, 완벽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독립적인 존재로서 유선우의 몸에 깃든 것이었다.

“별짓을 다 하는구나. 신기해.”

한주가 눈을 빛내며 유선우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한주 씨, 엔라가 눈 깔라는데요. 뭘 보냐고.”

- 어, 어? 내가 언제?

“눈깔 뽑아버리기 전에 꺼지랍니다.”

유선우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부렁을 내뱉었다. 난데없는 폭언에 한주의 고개가 푹 떨어졌다.

“……아, 응. 미안. 실례했네.”

“알았으면 됐다네요.”

제자를 쳐다보는 백명의 낯이 떫다. 그는 유선우의 말이 전부 개소리임을 눈치챘다. 협곡에서 30년간 붙

어 지냈으니 그 정도야 읽을 수 있었다.

“선우야.”

“예.”

백명의 진중한 음성에 분위기가 진지해졌다. 백명은 잠시간 웃음을 머금었다가, 표정을 굳혔다.

“혹시 모르니 하나 일러두마. 기억에 남는 곳을 둘러보거라.”

“집밖에 더 있나요.”

“네 업적이 생겨난 장소 말이다. 모자람을 조금이라도 보완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아까는 부족하지 않다셨으면서 그러십니까.”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능청스러운 대답에 유선우가 피식거렸다. 그가 알겠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명심해두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일순간 대화가 멈췄다.

백명은 복잡한 눈초리로 유선우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는 한참을 입만 달싹거리다가 울컥거리듯 웃었다.

평소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볼썽사나운 미소였다.

“……이걸 뭐라 할지. 어째 말이 잘 나오지 않는구나.”

“오글거리게 왜 그러십니까.”

“그러게나 말이다. 나답지 않은 일이야.”

백명도 이별에 익숙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비록 잠시뿐인 일이라지만, 그건 유선우가 거사에 성공했을

때의 얘기였다.

만약 실패한다면 유선우는 죽어서 낙원으로 돌아오거나 혹은 명계에 갇힐 것이다. 최악이라면 혼이 찢어

져서 소멸당할지도 모르고. 제자를 사지로 밀어 넣는 것과 다름없었다.

“나라지만 지독하군. 이제 와서 그만둬도 괜찮다는 말은 도저히 못 하겠구나.”

“들어도 안 그만둘 건데요 뭘. 저도 사정이 생겨서.”

“자신은 있고?”

“못할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언제 실패하는 거 본 적 있으십니까?”

“마냥 허풍이 아니라는 게 더 재수가 없어.”

한차례 웃음소리가 흘렀다.

백명이 가라앉은 눈으로 말을 이었다.

“……나는 어떠했느냐.”

“솔직히 앞뒤 다 잘라 말하는 건 고치셨으면 합니다.”

“너에게는 묘한 편견이 있었지. 스승이라는 건 죄다 사기꾼이며 쓰레기 놈들뿐이라는 이상한 편견이.”

“그렇게까지 과격하게 말하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유선우는 멋쩍게 볼을 긁적이며 말을 흐렸다.

“듣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게다.”

“잘 압니다.”

“나는 비록 사기꾼은 아니었으나 추했다. 네 성장을 달가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워했지. 치졸한 생

出藍각도 품었으며, 두려움마저도 느꼈다. 너는 언젠가 나마저도 발아래에 둘 테니까. 출람( )을 마냥 기

뻐할 수 있는 스승 따윈 세상에 없을 게다.”

“제가 어떻게 스승님을 이겨 먹습니까.”

유선우는 농담으로 받아넘기려다가 마른침을 삼켰다. 백명의 표정이 전에 없이 진지했다.

“정말로 그리 생각하십니까?”

“널 보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목소리가 잔잔하면서도 따스하다. 수련하던 때의 무심하던 음성과는 판이한 것이었다.

백명이 마지막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기대하던 스승이 되었느냐.”

“글쎄요….”

유선우는 숨을 길게 흘렸다.

말을 고르던 그가 장난스레 히죽거렸다.

“다음에 알려드리죠.”

그리 말하고는 한주에게 시선을 줬다. 한주는 어깨를 으쓱인 뒤 키보드 치듯 허공을 두드렸다.

곧이어 무수한 메시지가 유선우의 시야를 가렸다. 정상적인 절차가 아니기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문자가

대거 섞여 있었다.

그 끝에,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431-9 차원으로 이동합니다.]

“후딱 끝내고 뵙겠습니다, 스승님.”

유선우가 말을 끝맺었다.

동시에 그의 몸이 빛무리가 되어 흩어졌다.

***

바스락.

아이릴은 잠꼬대하며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그녀는 교회의 병실에서 유선우의 팔을 안은 채 잠들어 있

었다.

살얼음 낀 차가운 몸이 닿고 있음에도 아이릴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더욱 세게 끌어안으며 감촉을 즐

기기까지 했다.

“헤…. 히히….”

입에서 경박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무슨 꿈을 꾸는 건지, 행복에 겨운 모습이었다.

“헉!”

그러다가 문득 아이릴의 눈이 번쩍 뜨였다. 축축한 물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옷이 젖어가고 있었다.

“뭐, 뭐지?”

아이릴은 잠결에 고개를 휙휙 돌려댔다. 그러면서도 손으로는 유선우의 상태를 살폈다.

몸의 이곳저곳을 더듬자 차가운 수분의 감촉이 전해졌다. 전신에 끼어있던 서리가 녹은 것이다.

아이릴의 낯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유선우의 얼굴에 닿는 순간이었다.

“뭐하냐?”

“…….”

시선이 마주쳤다. 아이릴은 휘둥그레 뜬 눈을 깜빡거렸다. 본래부터 큼지막한 눈이 확장되니 눈깔괴물이

따로 없었다.

묘한 정적 끝에, 아이릴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녀가 전방을 향해 우렁찬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악!”

유선우가 눈을 감은지 3년하고도 1개월.

오랜 기다림이 끝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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