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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101화 (101/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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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았다는 표현이 불길하기는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유선우의 생명은 유지되고 있었다.

빈말로도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일지라도 말이다.

‘아침부터 우울하네.’

시간은 낮이었지만 본디 사람은 자기가 일어나는 시간이 아침인 법. 박아연은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서 몸

을 일으켰다.

스르륵.

옷감이 스치는 소리가 조용한 실내에 흘렀다. 박아연은 한 벌뿐인 와이셔츠를 벗었다.

본래는 차원을 넘으면서 지구의 옷을 압수당해야 했지만, 아브나바가 편의를 봐주었다. 물론 이런 뒷사

정을 박아연 본인은 알지 못했다.

박아연은 수녀복을 연상케 하는 교회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후로도 그녀는 한동안 몸가짐을 정돈하고

방을 나섰다. 귀찮긴 했으나 지구에서 매일 화장하던 걸 생각하면 별 수고도 아니었다.

“아연 씨, 좋은 아침입니다.”

“아, 바르트 씨. 안녕하세요.”

박아연은 교회의 복도를 걸으며 몇 번의 인사를 나눴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평화로워, 그녀의 히스테릭

한 성질도 죽어가고 있었다.

물론 완전히 사라질 전망은 보이지 않지마는. 어쨌건 장족의 발전이었다.

‘여기도 익숙해졌네.’

자신이 교회 생활을 하게 될 줄이야. 평생 무교로 살아온 그녀로서는 꿈에도 몰랐던 일이었다.

그래도 그다지 불만은 없었다. 호화롭진 않아도 궁핍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직접 선택한 것이니까.

‘약간 아쉽기도 하지만.’

박아연은 3달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게이트를 넘었을 때, 그녀가 도착했던 장소가 바로 이 교회였다. 선행했던 아이릴은 모든 사제를 불러모

아 유선우를 치료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소식은 각지로 퍼져 온갖 유명인사가 병문안을 오게 되었다. 일개 기사부터 저명한 용병과

현자, 고귀한 귀족과 황족까지.

유선우의 인맥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대단했다.

그 영향력은 본인에게만 한정되는 수준으로 그치지 않았다. 덕분에 그의 주변인인 박아연은 황성이나 저

택 따위의 호화로운 장소에 초대받았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교회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유선우가 깨어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게 이유였

다.

행운을 걷어차면서까지 굳힌 의지는 아직도 물러지지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유선우의 곁으로 향하고 있

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그녀가 병실에 가까워졌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윽, 흑!”

“그만 울어라. 어떻게 올 때마다 질질 짜. 체면이 엉망이다.”

“체면이요? 당신은 슬프지도 않으신가요? 냉혈한 같으니…! 흐윽!”

젊은 남녀의 음성. 그것은 요 3달간 박아연의 귀를 지겹도록 괴롭혀온 것이었다.

‘병실 앞에서 떠들지 좀 말라니까 제발.’

몰상식한 놈들이 말도 더럽게 못 알아처먹는다. 속으로 한숨을 내쉰 그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복도의 오른편으로 몸을 돌리자 한 쌍의 남녀가 보였다. 눈부신 금발의 소유자. 유선우의 제2 출신지인

아르테 제국의 황자와 황녀였다.

“오늘도 와주셨네요. 카일 님, 라일라 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박아연이 말을 건넸다. 둘의 신분을 떠올려 보면 문제시될 만한 태도.

하지만 유선우의 친구라는 위치는 어지간한 직함보다 높았다. 황족에 비비지는 못하더라도 존중을 받을

정도는 되었다.

“아, 그대인가.”

“아연 씨…. 소란피워서 죄송해요.”

“소란이라뇨. 바쁘실 텐데도 매번 이렇게 찾아와 주시는데. 선우 씨도 좋아할 거예요.”

배배 꼬인 유선우라도 쾌차를 바라주는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을 터. 하지만 박아연은 그가 마냥 좋아하지

도 않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병문안 와서 펑펑 울어 젖히는 것도 한두 번이지. 1절 2절 뇌절까지 해대니 슬슬 성가시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걱정이 눈앞의 둘과 공유되는 일은 없었다.

“당연하지. 나랑 그놈 사이이니 말이야.”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잖아요. 저랑은 다르게.”

두 황족은 저들 입으로 유선우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유선우는 둘도 없는 절친이었

다.

“여자가 어디 남자의 우정을 재려 드느냐.”

“우정은 무슨. 선우 입버릇이 뭐였는지 아시나요? 카일은 그거만 큰 골 빈 놈이다, 이거였어요.”

“그건 또 처음 듣는군.”

카일은 비하 발언에도 딱히 개의치 않았다. 유선우가 귀환하기 직전에 뱉었던 쌍소리에 비하면 별것도 아

니었다. 그보다 크다는 쪽이 더 신경 쓰였다.

“그런데 그거라니, 그게 뭐지?”

“글쎄요. 뭔지는 저도 못 들었어요. 아연 씨는 아시나요?”

“네, 물론이죠.”

“정말인가요? 계속 궁금했는데!”

흔쾌한 대답에 라일라가 흥미를 보였다. 그녀의 얼굴에 조금 전까지의 울적하던 기색은 온데간데없었다.

‘이쯤 되면 연기 연습하러 오는 게 아닐까.’

박아연이 합리적 의심을 품었다. 혹시나 그렇다면 어마어마한 미친년이다.

그녀는 속으로 전율하면서도 적당한 대답을 골랐다. 어차피 그거야 ‘그거’이겠다만, 황족에게 그딴 상스

러운 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

“당연히 도량이겠죠.”

“도량? 그러한가?”

“예. 교회에만 있어도 카일 님의 평판이 들려오는걸요. 제국민을 위해서 밤낮없이 일하신다고.”

그러니까 밤낮없이 일하러 꺼져라.

이번에는 속내가 조금 노골적이었다. 하지만 카일은 그저 기뻐 보이기만 했다.

“으음. 내 하루가 남들보다 짧은 편이기는 하지.”

“정무에 지장이 간다면 선우 씨도 미안해할….”

“그렇다 한들 친우를 보러 올 시간도 없겠는가. 개인적으로 그런 인생은 실패한 삶이라고 본다.”

“그, 그러시군요.”

제법 훌륭한 가치관이기는 했다. 카일이 병문안을 구실로 정무를 빼먹지 않았다면 말이다.

아쉽게도 카일은 쓰레기였다.

“전하, 전하! 또 여기 계셨습니까!”

다급한 외침과 함께 기사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기사는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며 연신 머리를 숙인

뒤에 카일과 라일라를 데려갔다.

하나부터 열까지 여느 때와 같은 흐름. 오히려 기사 쪽이 가장 요란했다는 것마저도 똑같았다.

일상적인 소동이 지나간 후에, 박아연은 병실로 들어갔다. 널따란 실내는 신성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방안에 널브러져 있는 수십 가지의 장신구가 뿜어내는 빛이었다.

그 장신구들은 하나하나가 저택만큼 값진 귀물들이었다. 단순한 장식물이 아닌, 값어치를 하는 아티팩

트.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면 나라 한둘쯤 지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막상 필요해지니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 낭비하다시피 사용해도 유선우의 몸을 고치고 생

명을 유지하는 게 한계였다.

‘…진짜 언제 일어나는 거야.’

박아연은 침울한 표정으로 유선우를 쳐다봤다. 세상 편히 잠들어 있는 모습이 당장이라도 눈을 뜰 것만

같았다.

“둘은 갔나요?”

“네. 끌려갔죠.”

“하, 짜증 나서 때릴 뻔했어요.”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던 아이릴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녀는 박아연과는 반대로 차츰차츰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매일매일 신성력을 한계까지 불어넣고 있으니 당연한 변화였다.

“도움도 안 되는 것들이 허구한 날 찾아와서 지랄지랄 지랄지랄…. 진짜 자리 옮겨버릴까.”

“참아요. 이젠 농담인지도 모르겠어.”

“그야 진심이니까요. 아무도 모르는 데로 병실 옮겨서 둘이 조용하게 살 거야.”

고생이 심한지 아이릴은 한참이나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녀는 콧김을 뿜고는 자기 얼굴을 찰싹찰싹 때렸

다.

“미안해요. 이상한 소리 했네.”

“…이상한 걸 알면 그나마 다행이지만요.”

“그보다 언니, 요즘 좀 어때요?”

생긋 미소지은 아이릴이 친근한 투로 물었다. 둘은 유선우의 옆에 붙어사는 탓에 자연스레 친밀해져 있었

다.

“저야 뭐, 다를 게 있나요. 그냥 사는 거지. 심심한 거 빼면 마음에 들어요. 훈련할 장소도 있고.”

박아연은 가감 없이 대답했다. 그녀가 가장 좋게 생각하는 점은 가만히 있어도 밥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홀로 살아온 그녀에겐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래도 기분전환은 하는 게 좋아요.”

“그쪽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저는 어쩔 수 없어요. 선우랑 있어야 하니까.”

“잠깐은 괜찮지 않아요?”

가볍게 묻자 아이릴이 진지한 낯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갑작스레 조성된 심각한 분위기에 박아연이 마

른침을 삼켰다.

모르는 사이에 유선우의 상태가 악화된 것일까. 그런 걱정을 하고 있자니 아이릴의 입이 열렸다.

“괜찮기는요. 맨날 어디 집 영애에 마탑주에 여기사에 황녀에 뾰족귀녀에 똥파리녀에…. 여자가 한 트럭

인데. 한눈팔았다간 어떻게 될지 몰라요.”

“아, 그게 문제였구나.”

“저 심각해요. 장난 아니야. 언니도 아까 봤어야 했어요. 그 미친년이 환자한테 뽀뽀하려 했다고요! 발랑

까진 년 같으니.”

아이릴은 욕설마저 내뱉으며 씩씩거렸다. 정신을 환기한 게 불과 몇 초 전의 일이건만. 또 흥분한 그녀의

모습에 박아연이 쓴웃음을 삼켰다.

‘이런 성격일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까면 깔수록 애 같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귀찮기는 해도 미워하긴 힘들다고나 할까. 그리고 이 상황의 책

임은 순전히 유선우에게 있었다.

‘대체 여자를 얼마나 후리고 다녔던 거야.’

박아연이 본 것만 해도 유선우의 손을 눈물로 적신 여자가 반백은 넘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녀들 전부와

진한 관계였던 건 아니겠지만.

참으로 쓰레기 같다는 감상만은 변함이 없었다.

‘이런 사람 쫓아서 여기까지 왔으니. 나도 나지.’

입꼬리를 들어 올린 박아연이 유선우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살얼음이 잔뜩 낀 그의 손은 차가웠지만, 그

녀의 표정은 따스했다.

꽤 애정 어린 얼굴이었다.

“언니?”

“왜요?”

“……아니에요.”

아이릴은 입술을 비죽거리면서도 군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박아연이 내렸던 선택이 가볍지 않았음을

알았다. 연고도 없는 차원으로 향한다는 건 그러한 일이었다.

괜스레 무안해진 아이릴은 다른 화제를 입에 올렸다.

“그러고 보니 똥파리녀가 언니한테 볼일 있다는데요.”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그 똥파리녀가 누구예요?”

상세를 묻는 순간,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똥파리는 아니지만.”

“어, 어라?”

난데없는 음성에 박아연은 주변을 휙휙 둘러봤다. 하지만 어딜 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환각을

들은 기분이었다.

“혹시 들었어요? 아무도 없는데…….”

“나라니까!”

못 알아본 게 심기에 거슬렸는지 언성이 높아졌다. 그리고는 수십의 아티팩트 중 반지 한 개가 둥실 떠올

랐다.

오컬트적인 현상이었다. 멀뚱멀뚱 쳐다보던 박아연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엄마!”

“뭐니. 왜 쫄아. 나 아무것도 안 했어.”

억울하다는 어조였다. 결백을 증명하듯 반지가 허공을 붕붕 돌아다녔다. 하지만 격한 움직임은 역효과일

뿐이었다.

“이, 이거 귀신 들린 거 아니에요? 아이릴 씨! 그거 해줘요, 그거! 정화!”

“저도 그러고 싶어요. 근데 안타깝게도 잘 안 먹혀요. 먹힌다 쳐도 그랬다가는 선우가 콱 죽을걸요.”

“네? 혹시 이게 선우 씨예요? 선우 씨!”

이상한 오해를 한 박아연의 눈이 홱 돌아갔다. 그녀가 허공을 휘적거리자 반지가 거머리처럼 천장에 달라

붙었다.

“얘 지금 뭐라는 거니? 바퀴벌레, 네가 설명 좀 해줘!”

“그딴 식으로 부르지 말라고요. 진짜 죽여버릴 거야.”

“혼자 못 버티면서 센 척은. 내가 죽으면 선우도 죽을 텐데?”

“그럼 나도 죽어버릴 거야. 얘도 죽고 너도 죽고 나도 죽으면 돼.”

“정신 나간 것들…….”

반지가 질렸다는 듯 말했다.

환자 곁을 지키는 게 이딴 것들이라니.

통탄할 노릇이었다.

***

시간이 흘러 자연스레 소동은 가라앉았다.

아이릴은 투덜대면서도 반지에 대한 설명을 읊었다. 상세를 듣자 박아연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요정이요? 여왕?”

아이릴 왈, 저 반지가 요정여왕이라는 높으신 분이란다. 신뢰할 만한 인물이 말했지만 아무래도 개소리

같았다.

“체나라고 불러. 선우는 그렇게 불렀거든.”

“아, 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반지잖아요.”

“몸은 다른 곳에 있고, 이건 잠깐 빌린 거야. 잠깐이라기엔 시기가 길어지고 있지만 어쨌든. 자세하게 설

명하려면 복잡해. 도와주러 왔다는 것만 알면 돼.”

복잡하다기보단 그냥 귀찮아 보였다. 그래도 설명은 충분했다.

체나는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유선우를 돕고 있었다. 박아연의 호감을 사는 데는 그 이상의 요소가 필요

하지 않았다.

“이해했어요. 그럼 여태껏 왜 조용히 계셨는지.”

“난 인간이랑 잘 안 맞거든. 아, 비하하는 게 아니고 우리는 태생적으로 그래.”

“…제가 여기 있는 게 불편하세요?”

“그랬으면 계속 다물고 있었겠지. 우리라고 전부 꺼리는 건 아니야. 드물게 파장이 맞는 사람이 있어.”

이 둘처럼. 덧붙인 체나가 날아다니며 아이릴과 유선우를 가리켰다. 그런데 뜻밖으로 그녀의 행동은 멈

추지 않았다.

“그리고 너도.”

체나는 박아연에게 다가가더니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썩 친근감 어린 태도였다. 그래봤자 반지였지만.

“저 말씀이세요?”

“그래, 너. 얘네 외에는 오랜만이라 신기했지.”

떨떠름한 반응에도 체나는 태연하게 수긍했다. 그리곤 다시 아이릴에게 날아가 그녀의 머리를 툭툭 건드

렸다.

“오히려 네가 이 바퀴벌레보다 괜찮아. 선우한테는 못 비비지만.”

“또 바퀴벌레….”

“선우랑 똑같이 부르는 건데.”

“이제 그렇게 안 부르거든요? 똑바로 이름으로 불러주거든요? 아마 댁 이름은 알지도 못할걸요. 더럽게

길어서는. 아무도 몰라줘서 슬프겠어요? 어우, 불쌍해서 어떡해.”

둘은 또 쓸데없는 말다툼을 시작했다.

그러는 한편, 박아연은 솔직히 믿어지지 않았다. 유선우를 만난 뒤로는 자신이 평범하다고만 생각해왔으

니까.

지금에 와서는 확신하기까지 했다. 이 특별한 곳에서 B급 헌터란 직함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런데 체나는 아니라고 한다. 물론 별것도 아닌, 의미 없는 일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박아연은 가슴이 설렜다. 무언가 달라질 듯한 예감이 들었다.

어느새 다툼을 끝낸 체나가 말했다.

“하여튼 그래서 말이야. 내 땅으로 와보지 않을래? 너한테도 나쁜 일은 아닐걸. 소질은 있으니까.”

“왜 지금 말씀하시는 건지. 여태 보고 계셨던 거 아닌가요?”

“네가 하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길래 관심 없을 줄 알았어. 근데 벌써 3달이야. 선우가 깨어난 뒤도 걱정

해야지.”

“깨어난 뒤…….”

박아연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건 그녀가 평소에 외면해오던 것이었다.

유선우가 쓰러진 지금은 곁을 지키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비록 아무런 도움이 안 될지라도.

그러나 앞으로는 아니었다. 그가 병상에서 일어난다면 이전처럼 가끔 편의나 봐주는 관계로 돌아가게 되

겠지.

박아연은 그게 조금 싫었다.

“…정말로 제가 소질이 있나요?”

“응. 선우보단 아니지만.”

“근데 정작 선우한텐 도움도 안 됐었잖아요.”

아이릴의 말에 체나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도움이 안 됐었다기보단 안 줬었다는 게 맞지. 얘는 옛날엔 좀… 무서웠었잖아.”

“그야 그런 느낌은 있었지만요. 장난은 많이 치지 않았나요?”

“겉으로만 말이지. 우리 애들은 예민해.”

“자기는 좋다고 따라 다녀놓고.”

“내 취향이 그런 걸 어떡해?”

“어련하시겠어.”

아이릴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를 무시한 체나가 다시 박아연에게 날아갔다.

“어쨌건 천천히 생각해봐. 강요는 안 할….”

“아니요.”

박아연이 말꼬리를 잘랐다. 고민할 시간 따윈 필요 없었다.

“무조건 갈게요.”

자신이 쓸모없다는 건 인정하는 바였다. 그러니 내일의 자신을 쓸모 있게 만들어야만 했다.

유선우가 일어날 때까지, 어떻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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