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비 받아라
멍청한 표정을 지은 유선우가 하늘을 올려봤다. 붉어진 하늘 아래에 새로이 나타난 다섯의 초월자. 그들
전부가 험악한 기세를 뿌려대고 있었다.
“손 떼라, 늙다리.”
갈색의 수염이 돋보이는 한 사내가 손을 펼쳤다. 그의 손바닥 위에서 녹색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모형처럼 작은 크기의 소용돌이. 그건 급속도로 커지더니 사내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마치 자멸이라도 한 듯했다.
그러나 유선우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초월자쯤 되는 존재가 자신의 힘을 주체하지 못한다니. 너무 낙관적인 관측이었다.
‘위험해.’
본능이 요란하게 경종을 울려댔다. 유선우는 직감에 따라 달아나려 했지만, 토노토가 손을 놓아주지 않
았다.
“나한테서 떨어지면 큰일 나. 꽉 잡아.”
토노토가 단단하게 손을 엮으며 말했다. 퍽 듬직한 언동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새빨간 거짓말.
초월자들이 신입에게 해를 입힐 리가 없었다.
초월자들의 칼끝은 오로지 토노토에게 향하고 있었다. 신입을 빼가려는 교활한 이를 응징하기 위함이었
다.
“아니, 잠깐만요. 무슨 상황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저 새끼들이 널 노리는 거야.”
“노린다니….”
댁이 가장 믿기 힘든데. 유선우는 불신의 말을 목구멍에서 억눌렀다. 기껏 보호해주겠다는데 투덜거려봤
자 긁어 부스럼이다.
“근데 저를 왜요?”
“다 미친놈들인데 이유가 어딨어. 바로 공격 안 하는 건 나한테 쫄아서 그런 거고. 그러니까 딱 붙어 있어.
알겠지?”
토노토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개소리는 초월자들의 귀에도 똑똑히 들어왔다. 그들 중 하나가 눈에
이채를 띠었다.
“저년이 웬일로 저렇게까지 한대. 신입이 그 정도로 싹수 있는 놈인가?”
토노토가 이토록 과욕을 부린 적은 과거에도 없었다. 해봤자 먼저 친분을 만들어놓는 게 전부였을 뿐. 그
런데 이번에는 명백하게 선을 넘고 있었다.
“보기엔 시원찮은데요. 저는 좀 관심 없을지도.”
“그럼 꺼져. 내가 데려갈게.”
“남 잘되는 꼴은 보기 싫고요. 배 아프잖아.”
“하여간 성격하고는. 일단 토노토부터 떼어놓자.”
“만현이 알아서 하겠죠.”
초월자들 사이에서 잡담이 오갔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소용돌이로 옮겨갔다.
착실히 제 몸을 불린 그것은 재앙이라고 할 만큼 거대해져 있었다. 크기가 한계에 다다르는 순간, 소용돌
이가 섬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아아!
압도적인 힘이 지면을 강타했다. 단단하던 땅이 쉽사리 갈라졌다. 즉각적으로 복구가 시작되었으나, 재
앙이 파고드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비켜, 못생긴 놈아!”
쩌렁쩌렁 외친 토노토가 한 손을 뻗었다. 그녀의 팔이 불꽃으로 변하며 비대하게 부풀었다.
정순하기까지 한 홍염. 맑은 불꽃이 악귀의 형상으로 빚어져 소용돌이에 맞섰다.
이윽고 두 격이 충돌했다.
승패는 순식간에 갈라졌다. 잠시간 호각을 이루나 싶더니 불길이 소용돌이를 먹어치웠다.
토노토가 특별히 강한 건 아니었다. 다만 그녀가 유선우와 가까이 있었기에 제대로 공격하지 못했을 뿐.
그런데도 사내가 구태여 달려든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신입은 받아간다.”
모습을 감췄던 사내가 유선우의 옆에서 튀어나왔다.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그는 손날을 세워 가차 없이
토노토의 팔을 향해 휘둘렀다.
“이익…!”
토노토는 이를 갈며 유선우의 손을 놓았다. 받아치는 것 정도야 가능했지만, 하지만 그래서야 유선우마
저도 타격을 입고 말 터.
상처 입히고 싶지는 않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만현, 이 개념 없는 새끼!”
“혼자 마음껏 짖어라.”
사내, 만현이 갈 곳 잃은 유선우의 손을 잡아챘다. 그가 흉수를 피해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너도 저런 방화범은 싫겠지. 따라와라.”
만현의 입가가 짙은 웃음을 그렸다. 제법 멋들어진 미소였다.
그러나 유선우는 개뿔도 웃기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슬슬 짜증이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진짜 미친 연놈들밖에 없냐.’
대체 나한테 왜 지랄이야. 그런 의문과 분노가 유선우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물론 만현의 말대로 토노토가 꺼림칙하긴 했다. 문제는 이 쿨내 풍기는 아저씨도 똑같이 비호감이라는
점.
‘이게 어딜 봐서 낙원이야.’
낙원은 얼어 죽을. 그냥 정신병동이다. 온순한 동물은 없고 힘만 센 정신병자들이 잔뜩이다.
‘집 가고 싶다….’
집으로 돌아가서 아이릴을 귀여워 해주고 싶다. 무릎 위에 앉혀서 같이 TV를 보는 것이다.
은은한 샴푸 향기가 풍겨오고, 자신은 킁카킁카 냄새를 맡으면서 얼굴을 비벼대겠지. 아이릴은 “TV 보잖
아요” 하고 투덜거리면서도 밀어내지는 않을 터다.
‘지구가 지상낙원이었구나.’
상상만 해도 힐링이 될 지경.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달았다. 유선우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그러는 사이에도 상황은 변해가고 있었다.
“새치기는 안 되죠.”
“만현, 이번만큼은 대화로 결정하자고 했을 텐데.”
“먼저 위반한 건 토노토다. 이미 깨진 규칙을 지킬 이유가 있나?”
오간 것은 말뿐만이 아니었다. 보이지도 않는 검격과 공간을 뭉개는 주먹이 날아들었다.
만현은 파편이 된 공간을 발판삼아 바쁘게 허공을 누볐다. 곧이어 화염의 장막이 그를 덮쳤다. 이제는 뺏
는 쪽이 된 토노토의 일격이었다.
“내가 침 발랐어! 돌려줘, 나쁜 새끼야!”
“아주 발광을 하는군.”
혀를 찬 만현의 손에 녹색의 파동이 어렸다. 손을 휘두르자 선풍이 불어 불길을 찢어발겼다.
하지만 몇 번을 막아내도 토노토는 끈질겼다. 악착같은 모습이 눈에 선했다.
“뭘 했길래 너한테 저렇게까지 집착하는 거지?”
호기심과 탐욕이 뒤섞인 질문. 그러나 만현이 기대하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너희들 대가리 속을 어떻게 알아.”
굉장히 언짢다는 목소리였다. 만현은 자기가 구해주겠다는 양 말했었지만, 유선우에겐 어느 놈이나 똑같
아 보였다.
‘다 싫어.’
유선우는 드디어 꼭지가 돌았다. 그가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 만현의 팔을 뿌리쳤다.
만현은 날아드는 맹공에 정신이 팔려있던 탓에 손을 놓치고 말았다.
유선우의 몸이 그대로 수직으로 떨어진다. 그러자 초월자들의 눈이 흉흉한 안광을 뿜어댔다.
흡사 먹잇감을 찾은 짐승과도 같은 기세. 뉴비라는 새로운 자극에 목마른 하이에나들이 경주를 벌이기 시
작했다.
‘좋아. 제발 이대로…!’
선두는 토노토였다.
수 싸움의 결과였다.
유선우와 가까이 있던 만현은 초월자들의 견제를 받았고, 그걸 예상한 토노토는 다른 넷의 발을 묶었다.
덕분에 그녀는 비교적 쉽게 유선우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끝내 토노토의 손끝이 유선우의 어깨에 닿았다.
눈물 나는 노력이 빛을 보기 직전,
“참 재밌게들 노는군.”
돌연 한 남자의 음성이 끼어들었다.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음색. 하지만 소란에도 묻히는
일 없이 초월자들의 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정적이 찾아왔다.
토노토는 손을, 다른 이들은 발을 멈췄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했다.
여전히 움직이는 것은 유선우뿐이었다.
‘갑자기 분위기 싸해지네.’
유선우는 난데없는 침묵이 당황스러웠으나 우선 착지자세부터 잡았다.
그는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이 변화가 적신호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대로 달아나자. 달아나서 평화롭게 수련하자.
그런 생각을 품고 있을 때였다.
“조심해라.”
바람처럼 나타난 한 중년인이 낙하하는 유선우를 받았다. 이른바 공주님 안기였다.
“…어?”
느껴지는 단단한 감촉에 유선우는 눈만 끔뻑거렸다. 아까부터 도저히 머리가 상황에 따라가지 못했다.
그러나 이성이 게을러진 와중에도 감정은 바쁘게 외쳐댔다.
이건 좀 아니라고.
“어딜 만… 아, 아니지. 이거 놔요!”
감정에 따라 발버둥을 쳐봤다. 성과는 없었다.
벗어나기는커녕 꼼짝도 하지 못했다. 완력과는 다른 무언가가 몸을 억죄고 있었다.
“내가 놓으면 또 방금처럼 끌려가겠지. 그게 좋으냐?”
“이대로 있어도 댁한테 끌려가겠죠.”
“저 치들보다는 내가 낫다. 그러니 참아라.”
그리 말한 중년인이 시선을 돌렸다. 반론은 듣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역시 젊은것들이 건강한가 보군. 신입 하나 들어왔다고 이 난리를 치니 말이야.”
“…젊다니요. 저희도 여기서 중간은 갑니다, 백명 어르신.”
한 초월자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자신만만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중년인, 백명은 명실상부 낙원의 최강자였으니까. 실력주의 사회인 낙원에서 백명을
경외하지 않는 이는 없다.
경외. 공경하며 두려워한다.
그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그 단어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아직 멀었다는 뜻이다. 이리도 점잖지 못하니. 쯧.”
백명이 초월자들과 하나하나 시선을 맞췄다. 그 무감정한 눈빛이 뜻하는 바는 명백했다. 유선우를 건드
리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다.
‘처음부터 헛수고였나.’
찰떡같이 알아들은 만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으로써 그는 신입에 관한 관심을 깨끗이 접었다.
백명의 눈이 낙원 구석구석에 닿아 있다는 건 이곳에선 상식이다. 그러니 신입이 특별하다면 진즉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리라.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고생하십쇼, 어르신.”
“하, 이번에도 공쳤네. 저도 가볼게요.”
“그래. 다음에는 볼 때는 철이 좀 들어 있었으면 좋겠군.”
“하하. 생각해보고요.”
초월자들은 순순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단 한 명, 토노토를 제외하고는.
“…제가 먼저였어요.”
“뭐가 말이냐.”
“제가 어르신보다 먼저 침 발랐다고요.”
토노토는 자신이 뱉는 말이 아이의 칭얼거림처럼 들렸다. 자괴감이 몰아쳤으나 그녀는 물러서지는 않았
다.
‘놓치기 싫어.’
뛰어난 제자.
그건 토노토가 바라마지 않던 것이었다.
이유는 그녀가 살아온 내력에 있었다.
비참하게 부모를 잃고 스승에게 거두어졌었던 삶. 스승과 함께 지냈던 시간은 행복했으나 너무도 짧았
다.
그렇기에 다시 원하게 되었지만, 새로운 스승을 찾을 수는 없었다. 추억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게 싫었
다.
그러니 제자를 들일 수밖에.
문제는 맘에 드는 인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 낙원에서 몇 들여보긴 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재능은 둘째치고서 온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관계에서 토노토는 그저 지식만 전수해주는 호구였다.
하지만 그들을 탓할 건 아니었다. 초월자들은 새로운 스승을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다. 토노토와 완전히
같은, 의리상의 이유로.
그랬기에 그녀는 화풀이할 곳도 없이 외로움을 곱씹어 왔다. 시간만 죽이던 나날이 지나 오늘이 찾아왔
다. 꿈꾸던 이상적인 인재가 눈앞에 있다.
‘내 거야.’
반드시 가지고 싶었다.
아무리 백명이 관심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토노토의 낯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흠.”
그녀를 보는 백명의 시선에 호기심이 서렸다.
“웬일이지? 무인을 제자로 삼은 적은 없던 걸로 아는데.”
“그냥 변덕이에요. 어르신이야말로 뭐 잘못 드셨어요? 마지막으로 제자 받으신 게 언제였더라.”
“글쎄. 늙어서 잘 기억이 안 나는군. 남 일이 아니니 너도 주의하거라. 젊을 때 실컷 놀아야지 않겠느냐.
이 아이는 내게 맡기고 말이다.”
“나이 얘기 좀 적당히 하세요. 매번 느끼는 건데 진짜 꼰대 같아.”
“……못 보던 새 싸가지가 없어졌어.”
분위기가 급속도로 험악해졌다.
토노토는 자기가 시비를 걸어놓고서 침을 꼴깍 삼켰다. 한마디 말 때문에 죽도록 처맞게 될 미래가 눈에
선했다.
“하아.”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백명은 손을 쓰지 않았다. 귀찮다는 듯이 뒷머리만 긁어댈 따름이었다.
“머리 좀 식혀둬라. 그리고 본인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았을 테지.”
“그건……. 네.”
백명이 어른스러운 태도로 대하자 토노토도 차분함을 되찾았다. 둘 다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화석들. 성
질을 죽이는 법 정도는 알았다.
“우선 자리를 옮기는 편이 좋겠군. 이런 주목은 그다지 달갑지 않아.”
“저도 마찬가지예요.”
백명과 토노토가 주변을 둘러봤다. 소란을 눈치챈 초월자들이 상황을 엿보고 있었다. 은밀한 시선이었으
나 그들의 감은 날카로웠다.
“그럼 내 무관으로 가지.”
***
백명의 거처는 외딴곳에 떨어져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섬의 수는 줄어들었고, 도착했을 땐 주변에 다른 섬은 보이지 않았다.
홀로 고고하게 떠올라 있는 섬.
그곳에 세워져 있는 건물은 마치 탑과도 같았다.
건물 자체는 낡아 보였으나 그 높이가 아득했다.
“와, 컨셉 봐라.”
“뭐라고 했나?”
“아니요. 딱히.”
유선우는 여전히 우스꽝스럽게 안긴 채였다. 놓아주지를 않으니 그도 반쯤 체념한 상태였다.
다시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된 건 무관의 내부로 들어간 뒤부터였다.
武神“새삼스럽지만 정식으로 인사하마. 본인은 백명이라 한다. 창피하게도 생전 별호는 무신( )이었지.”
말하는 것과는 달리 자부심이 넘치는 어조였다.
오히려 듣는 쪽이 쪽팔릴 정도로.
“안 그랬던 사람이 어디 있어요?”
토노토가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무신 같은 건 낙원에선 흔한 별호였다.
이외에도 천마나 검신, 하이랜더에 현자 등등.
죄다 거창한 수식어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자신의 별호를 싫어하는 이가 많아졌다. 토노토도 마찬가지였다.
생전에야 떠받들어주니 좋아했었지. 지금은 같은 이들이 다수 모여 있는 게 부끄럽기만 했다.
“난 넘어갈게. 내 이름은 안 까먹었겠지?”
“아, 네. 기억하고 있어요. 유선우입니다.”
유선우는 백명과 인사를 나눴다. 서로 이름은 알고 있었다만,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는 소개가 제격이었
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고개를 끄덕인 백명이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내 제자가 되어보지 않겠느냐.”
처음부터 직구.
그것은 유선우도 예상하던 말이었다.
상황을 전부 지켜보았으니 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대답 또한 정해져 있었다.
“네.”
“무슨…!”
“하하! 시원해서 좋군. 어디 구배지례부터 올려보아라.”
토노토는 경악한 듯했고, 백명은 흐뭇해 보였다.
미안하지만 오해다.
“아니, 않겠다고요.”
“…음?”
“초면부터 다짜고짜 생지랄 하는 사람들한테 배울 거 없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쇼.”
지랄도 유분수지.
나한테 먼저 예의부터 배워야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