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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90화 (90/179)

제 90화

그가 사라진 뒤

‘어떻게 된 거야.’

아이릴은 떨리는 눈으로 하늘을 쳐다봤다. 불길하던 태양은 온데간데없었다. 연달아 울리던 굉음마저 멎어 있었다.

분명히 좋은 징조일 텐데.

그런데도 그녀는 이유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선우, 제발 살아만 있어요.’

사지가 찢어져도 자신이라면 고쳐낼 수 있다. 그러니 이번에도 별일은 없으리라.

불안감을 외면한 아이릴이 건물 위를 달렸다. 남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그녀의 발을 묶지 못했다.

달리기를 5분 정도가 지났을까.

아이릴은 나타난 광경에 눈을 의심했다.

‘대체 무슨 일이…….’

어느 경계를 기점으로, 아무것도 없는 빙판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그곳만 다른 세계인 것처럼. 아이릴은 추위에 몸을 떨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지형이 달라졌다. 구덩이가 수도 없이 파여 있었다. 그 모두가 서로의 깊이를 경쟁하는 듯했다.

한기도 점점 짙어져 아이릴이 코를 훌쩍거렸다. 머지않아 그녀는 중심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애타게 찾던 유선우가 있었다. 김한성의 시체 또한 있었지만, 아이릴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았다. 유선우를 발견한 그녀의 낯에는 기쁨이 아닌, 절망이 드리워졌다.

“선우…?”

떨리는 목소리로 이름을 부른다. 대답은 없다. 유선우는 얼어붙은 채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그의 몸에는 사지가 달려 있지도 않았다.

“선우, 정신 차려요! 선우!”

아이릴이 기함하며 유선우에게 달려갔다. 이미 죽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아니, 아니야.’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유선우가 죽었다니. 고향에서 말했다간 모든 지인이 콧방귀를 뀔 게 분명했다.

아이릴은 빙판에 무릎을 꿇었다. 신성력으로 칼날을 빚어 자신의 허벅지를 찔렀다. 피가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그녀가 영창을 내뱉었다.

화아아악!

신성력이 담긴 피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피는 저 스스로 움직여 유선우의 발밑에 원을 그려냈다.

“프레뒤르 루밀라 쉬르 아브리오…….”

아이릴의 입이 쉴 새 없이 달싹거렸다. 10분이 넘도록 이어진 긴 영창 끝에, 원에서 빛의 기둥이 솟구쳤다.

“제발, 제발.”

아이릴이 애원하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차도는 없었다. 오히려 맹렬한 냉기가 날뛰어 빛의 기둥을 찢었다.

그녀의 표정이 허망함으로 물들었다. 그러다가도 눈을 표독스럽게 빛내며 자신의 허벅지를 더욱 깊게 찔렀다.

10여 분이 지나 빛줄기가 다시금 하늘에 쏘아졌다. 박아연은 그것을 목적지로 삼아 차를 몰았다. 세 번째 빛이 뿜어질 무렵에 그녀가 현장에 도착했다.

“서, 선우 씨!”

박아연이 유선우에게 다가가려 하자 아이릴이 고개를 돌렸다. 아이릴은 죽일 듯 노려보면서도 입을 멈추지 않았다. 울먹이는 중얼거림이 한참이나 이어졌다.

박아연은 그게 건드리지 말라는 신호임을 눈치챘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시선이 떨어졌다. 그녀는 둘을 지켜보며 입술만 깨물었다.

‘나는 또 아무것도 못 하는구나.’

한 일이라곤 차를 몰은 게 전부였다. 그건 굳이 자신이 아니었어도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도무지 박아연이라는 사람의 가치가 보이지를 않았다. 그녀는 무력감에 주먹만 쥘 따름이었다.

아무런 성과 없이 시간만이 흘러갔다.

아이릴은 눈썹을 파들파들 떨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박아연이 황급하게 말문을 열었다.

“선우 씨는 어떻게 됐죠?”

“당신은 눈도 없나요?”

아이릴이 날 선 말투로 반문했다.

“그럼 주, 죽은…….”

“입 다물어요. 안 죽었으니까.”

아이릴은 장담하듯 말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좌절했느냐면 그것은 아니었다.

죽었다면 어떻게든 살려내리라.

뾰족한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아니, 자신이 없더라도 해내야만 했다.

“아브나바 님. 그쪽으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나지막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에 반응하듯 허공에 거대한 금이 갈라졌다.

박아연은 그 현상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잠깐만요. 게이트가 왜…!”

그 규모가 그녀의 눈을 의심케 했다. 아이릴이 넘어왔을 때보다도 몇 배는 되는 크기였다.

“말했을 텐데요. 데려가겠다고. 여기서는 아무것도 못 해요.”

딱딱한 말투에 박아연이 침을 삼켰다. 바짝 굳은 그녀를 무시하고 아이릴이 말을 이었다.

“지금 바로 넘어가겠습니다.”

끼기기긱!

게이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그것을 잠시간 쳐다본 아이릴이 유선우의 몸을 들었다. 그녀는 차가운 감각에 눈썹을 찡그리면서도 재빨리 게이트를 넘었다.

적막이 내려앉았다.

박아연은 하염없이 게이트를 너머를 주시할 따름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게이트는 닫히지 않았다. 마치 통행인을 기다리는 듯했다.

‘넘어가라는 뜻일까.’

따라갈지, 남아 있을지의 양자택일.

그뿐이지만 쉽사리 결정할 수는 없었다.

‘내가 뭐라고.’

자신이 유선우의 가족이거나 연인이었다면 고민조차 않고 넘어갔을 터. 하지만 실상은 직장 동료일 뿐이었다.

직장 동료를 위해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향한다니. 어떻게 봐도 냉정한 선택은 아니었다.

박아연의 이성은 등을 돌리라고 외쳤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녀의 발은 이미 게이트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냉정은 개뿔. 무슨 상관이야.’

지금은 이성이 나설 대목이 아니었다. 박아연은 게이트에 몸을 던졌다.

도로에는 김한성의 시체만이 남게 되었다.

그제야 게이트가 소리 없이 입을 닫았다.

***

“윽…….”

김정수는 신음하며 눈을 떴다. 최악의 기상이었다. 온몸이 근육통이라도 난 듯이 아팠고, 햇빛이 따가웠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일어나셨습니까.”

말을 걸어온 인물은 A급 헌터, 조승우였다. 그는 김정수의 측근으로서 병상을 지키고 있었다.

“여기는….”

“은밀하게 연락해 녹랑 병실을 빌렸습니다. 바깥은 시끄러워질 듯해서.”

“그래. 고맙다.”

그 말을 끝으로 정적이 흘렀다.

단순한 악몽이 아니었음을 깨닫자 김정수의 머릿속에선 의문이 피어올랐다. 회사는 어떻게 되었는지, 김한성과 유선우는 살아 있는지.

묻고 싶은 게 산더미처럼 많았다.

그러나 그의 입은 한동안 벌어지지 않았다.

그 어떤 소식도 듣기가 두려웠다.

조승우는 심정을 헤아려 침묵을 유지했다. 김정수가 입을 연 것은 10분이 넘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시간은 얼마나 지났지?”

“꼬박 하루가 지났습니다. 부상보다는 피로가 누적된 탓이라고 하더군요. 금세 퇴원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살아남은 건?”

“아직 인원파악이 확실치 않습니다. 지금까진 대표님을 합해 열한 명이고요.”

11명. 김정수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뼈마저도 잿더미로 만들던 김한성을 떠올렸다. 실종과 사망을 구별하기가 힘들 터다.

“유선우 씨는.”

“그게…….”

조승우가 말을 흐렸다. 김정수의 동공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가 재촉하려는 순간, 조승우가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실종됐습니다.”

“…뭐라고?”

“김한성의 시체는 발견됐습니다만, 유선우 씨는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조승우의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전투가 일어났던 땅이 얼어붙어 화염계 능력으로도 녹지 않고 있다. 협회가 불법 각성자 조직에 의해 습격을 당했다.

이런저런 말이 들려왔음에도 김정수는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엔 유선우가 실종되었다는 말만이 맴돌고 있었다.

‘내 탓이다.’

유선우를 너무 의지해버렸다.

차라리 부르지 않았더라면.

아니, 아예 협회장과 대적하지 말거나 진작 죽였었더라면.

의미 없는 가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대표님.”

나직한 부름이 상념을 끊었다. 김정수는 피가 나도록 주먹을 쥐었다.

그는 청일의 대표라는 자신의 본분을 떠올렸다. 넋이 나가 있을 때가 아니었다.

“여기 대표는?”

“깨어나시면 바로 연락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만나봐야겠어. 고맙다.”

김정수는 이렇게 주저앉을 인물이 아니었다.

***

병상에서 일어난 김정수는 대대적으로 유선우의 수색을 시작했다. 본래라면 조용하게 이루어져야 했을 터. 하지만 그가 누워 있던 사이에 정보는 새어나가 있었다.

유선우의 실종, 헌터 협회의 피습.

그리고 김한성의 청일 습격과 그의 죽음.

새해 첫날에 터진 대형 사건들은 모든 언론에서 대서특필로 게재되었다.

화제는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새로운 협회장이 뽑혔다.

헥터의 대표, 김홍철이었다.

그는 어부지리나 다름없이 협회장의 자리를 얻어냈다.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김정수가 큰 타격을 입었으니. 고만고만한 이들 중에 김홍철이 선택된 것이었다.

김홍철로서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공정한 선거를 통해 뽑혔음에도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여론이 제법 누그러져 있었다. 그의 수완은 확실히 이전 협회장보단 뛰어났다.

“잠은 주무셨습니까? 눈가가 아주 퀭하신데.”

김홍철이 김정수를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사흘 전에 잤습니다. 아마도.”

“…고생하십니다.”

김정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청일의 본사가 하루아침에 날아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말도 안 되는 사람이야.’

김정수의 행보를 익히 아는 김홍철은 감탄의 시선을 보낼 따름이었다. 그만한 타격을 받았음에도 청일은 몰락하지 않았다.

과감하게 보금자리를 옮겨 흔들리는 입지를 바로잡은 것. 이에는 딜런과 소피아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피해자 유가족에 대한 보상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김정수는 유선우의 실종마저도 참담한 결과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지금, 김정수와 김홍철은 유선우의 화제로 만나고 있는 것이었다.

“등급 외 헌터라. 이건 저희가 멋대로 처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만.”

김홍철이 턱을 매만지며 문서를 살폈다. 유선우를 등급 외 헌터로 책정하자는 의견이 적힌 문서였다.

등급 외.

그것은 절대로 가볍지 않은 말이다.

현재 그 수식어를 달고 있는 인물은 능관부의 수장뿐이다.

“힘들겠습니까?”

“애매하군요. 테일러 쪽 도움을 받으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시간은 제법 걸리겠죠.”

“시간은 상관없습니다.”

대쪽같은 태도에 김홍철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 비벼는 볼 생각이었다.

“…소식은 아직 없나 봅니다. 같이 사라졌다던 부하는 어떻게 됐습니까?”

“마찬가지로 감감무소식입니다.”

김홍철이 안타깝다는 듯 침음성을 흘렸다. 그가 진중한 눈으로 김정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런 말씀 드리기가 참 뭣한데….”

“말씀하시죠.”

“슬슬 장례식도 생각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

“안 좋은 시선이 모이고 있어요. 고인에 대한 모욕이라나 뭐라나. 사실 이건 김 대표님께서 하신 일의 반동이죠.”

“알고 있습니다.”

김정수는 병상에서 일어나자마자 1월 1일에 있었던 일을 언론에 알렸다. 어차피 숨길 수도 없으니 거리낄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유선우의 영웅적인 행보에 많은 이가 찬사를 보냈다. 그게 시간이 흘러 이러한 반동을 가져온 것이었다.

“딱히 탓하는 건 아닙니다.”

김홍철이 헛기침하고 말을 이었다.

“그러지 않으셨으면 유선우 씨를 음해할 놈들도 많았을 테니까요. 적어도 지금만큼 호평을 받지는 못했겠죠. 문제는 앞으로의 일입니다.”

대중들은 대부분이 유선우가 죽었다고 여기고 있다. 그들은 장례식이 치러지면 기꺼이 눈물을 흘려주리라.

“앞으로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유선우의 주변인뿐이었다. 그건 김정수뿐만 아니라, 차세정도 마찬가지였다.

***

“이 주임님. 말씀하셨던 삼가동 부근 게이트 기록 정리 끝냈습니다.”

“어, 어. 고마워.”

“혹시 틀린 부분 있는지 검토 부탁드릴게요.”

“에이. 세정 씨가 틀리는 거 본 적이 없는데. 내 눈이 틀린 적은 있어도. 답례로 말인데….”

“괜찮습니다. 그럼.”

차세정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쌀쌀맞은 태도에 이태일 주임이 한숨을 흘렸다.

“집적대지 말라니까는. 말했잖아.”

“집적대기는, 인마. 고마워서 밥 한 끼 하자고 했던 거지.”

“그럴 거면 애초에 시키지를 마. 등신아.”

“아니…….”

떠드는 목소리가 나직하다. 자연스레 차세정의 귀에도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신경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기계처럼 업무를 처리할 뿐.

요즘은 항상 그랬다.

남이 일을 떠넘겨도 싫은 소리 않고 전부 받아들였다. 바쁘면 바쁠수록 좋았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

차세정은 퇴근할 때까지 웃음 한 번을 짓지 않았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습관적으로 가족과 어울렸고, 침대에 누웠다.

일과를 마친 뒤.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금요일이었다.

남들이 바라마지않는 금요일 밤.

그건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시간이었다.

‘내일은 뭐 하지.’

사람을 만나는 건 싫었다. 누굴 만나든 결국은 유선우의 얘기를 하게 되기 때문에.

TV를 보는 것도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유선우의 화제는 떠들썩했다.

‘일어나서 생각하자.’

스마트폰을 내려놨다.

빛이 사라지자 한 장면이 환각처럼 펼쳐졌다.

주변은 호텔의 라운지. 자신은 유선우에게 화를 내고 있다. 유선우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다.

차세정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응?”

유선우는 생소한 공간에서 눈을 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초원. 풀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지만, 허전하다는 감상은 들지 않았다.

하늘에 무수한 섬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궁전. 중세 양식의 성.

똑같은 놈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긴 또 어디야.’

유선우는 고개를 휙휙 돌리다가 문득 생각했다.

혹시 자신은 죽은 게 아닐까.

죽어서 천국이나 지옥에 떨어진 게 아닐까.

하지만 그 추론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부족했다.

‘둘 다 아닌 것 같은데. 아니, 둘 다 맞나?’

섬마다 천차만별. 천국처럼 보이는 섬도 있었고, 지옥처럼 보이는 섬도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섬은 명백하게 후자에 속했다.

유선우가 멀뚱멀뚱 서 있을 때였다.

“거기서 뭐 해요? 얼른 오세요. 자리 배정받으셔야지.”

천진난만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한 인물은 턱수염을 잔뜩 기른 소년. 1m도 되지 않는 신장이 퍽 인상적이었다.

“누구세요?”

“안내인인데요.”

“안내인은 또 뭐야.”

유선우가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소년이 아리송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어라, 혹시 설명 못 들으셨어요?”

“네. 못 들은 거 같은데.”

“하. 개새끼들 진짜. 일 좀 똑바로 하지.”

소년이 자기 수염을 콱 잡고는 옆으로 흔들어댔다. 짜증을 표현하는 몸짓인 모양이었다.

“그럼 제가 설명해드릴게요. 아오. 귀찮은데.”

투덜거린 소년이 통통 소리를 내며 걸어왔다. 그는 수염을 매만지며 유선우를 스캔하듯 훑어봤다. 이내 만족했다는 듯 함박웃음을 짓는다.

“일단 인사부터 드리겠습니다. 안내를 맡은 말랑입니다.”

“이름이 말랑이에요?”

“넵. 그쪽은요?”

“……유선우인데요.”

유선우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말랑이 키득키득 웃었다.

“특이한 이름이시네요.”

“댁한테 들을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뭐, 사실 여긴 다들 특이해요. 서로 다른 차원에서 모인 거니까 당연하죠.”

대수롭지 않게 말한 말랑이 가볍게 발을 굴렀다. 그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마법은 아닌데. 신기하네.’

유선우는 내심 감탄을 흘렸다. 그가 허공을 밟으며 나아가는 말랑에게 물었다.

“기다려봐요. 여기가 어딘데요?”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이죠.”

“아니, 뭔…….”

도통 맥락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유선우가 인상을 찌푸리자 말랑이 손을 펼쳐 섬들을 가리켰다.

“초월자의 낙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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