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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85화 (85/179)

제 85화

조금 나쁜 새해

“갑자기 웬….”

두서없는 말에 의아함을 표하려는 순간이었다.

쾅!

“뭐야. 지금 무슨 소리예요?”

- 부탁드립니다. 김한성이…!

재차 이어진 폭음에 김정수의 말소리가 묻혔다. 끝까지 듣지는 못했으나, 유선우는 곧바로 말귀를 알아들었다.

서울로 와달라는 말. 요란한 굉음.

무엇보다 전 협회장의 이름.

사건을 파악하기엔 충분한 정보였다.

“회사 건물 맞으시죠.”

김정수가 예, 하고 짧게 대답했다. 거친 숨소리를 듣자 하니 상처를 입은 모양이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아니다.”

이동 중에 인터넷으로 확인하면 되는 정보다. 한가하게 물어볼 시간에 당장 출발하는 편이 옳다.

“바로 갈게요. 시간 좀 걸리니까 최대한 몸 사리고 있으세요.”

-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버텨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유선우가 전화를 끊었다. 그의 표정이 굳자 테이블에 가득하던 웃음도 멈췄다.

“갑자기 왜 그래요?”

“박아연 씨. 술 안 마셨죠.”

박아연이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금주한다니까요.”

“그럼 운전할 수 있겠네요. 빨리 나와요.”

유선우가 몸을 일으켜 박아연의 팔을 붙잡았다. 제법 힘이 들어가 있었기에 박아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 무슨 일이에요? 아픈데.”

“협회장이 우리 본사 습격했답니다. 지금 가야 돼요.”

뜬금없는 발언. 다섯은 귀를 의심하다가도 금세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들이 아는 유선우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협회장이라니. 잠적했다면서.”

“미쳤나 보지. 현석아, 강이 좀 잘 챙겨줘.”

“그래.”

“그리고 쟤도. 많이 마시더라.”

유선우가 차세정이 있는 방향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최현석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 저도 갈게요.”

“됐어. 따라와봤자 너 할 거 없다.”

“아니, 그래도.”

“방해된다고, 인마.”

강창민이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한 사내가 헐레벌떡 테이블 앞으로 달려왔다. 의아한 시선이 모였으나, 사내는 그에 신경조차 쓰지 못했다.

“유선우 씨, 큰일 났습니다!”

“알아요. 방금 대표님한테 전화 받았….”

“협회가 테러당했답니다!”

예상치도 못한 말에 유선우가 낯을 구겼다.

“뭐 어디요?”

“협회요! 지금 인터넷 난리 났습니다. 이거 보세요.”

사내가 황급하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유선우는 홱 잡아채 화면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한 영상이 떠올라 있었다. 협회 건물을 찍은 영상이었다. 다른 건물에서 촬영했는지, 시점이 높아 그 주변이 훤히 보였다.

그곳에는 피가 진득하게 묻은 시체 수십 구가 걸어 다니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웠으나 가로등 불 덕에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이게 뭐예요?”

머리를 들이밀어 영상을 보던 박아연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짙은 꺼림칙함이 드러났다.

“언데드 같은데요.”

“언데드요?”

“그냥 좀비라고 보면 돼요.”

유선우가 짤막하게 말했다. 그는 소식을 가져온 사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거 지금 올라온 거예요?”

“원본은 올라온 지 좀 됐을 겁니다. SNS로 퍼지고 있어요.”

“아오, 망할.”

유선우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대리자의 소행임은 일목요연하다.

즉 어지간한 헌터로는 막을 수가 없다는 것.

애초에 막을 수 있다면 영상처럼 되지도 않았으리라.

‘이걸 어떻게 한다.’

유선우의 감정은 청일 쪽에 쏠려 있었다. 하지만 위혐도는 협회 쪽이 더 심각했다. 언데드는 점차 수를 불려가니까. 늦기 전에 어떻게든 두 쪽을 전부 처리해야만 했다.

잠시간의 고민 끝에, 유선우는 결정을 내렸다.

다행히도 방도가 없지는 않았다.

단 하나뿐이지만, 확실한 패가 수중에 있었다.

“박아연 씨. 저희 집 어딘지 알죠?”

“당연히 알긴 하는데…. 어쩌려고요?”

“아이릴 데리고 협회로 가주세요.”

그 이름에 박아연이 눈매를 좁혔다.

“아이릴이라니, 그 사람이요?”

“걔 떨궈두면 알아서 다 할 거예요. 자고 있을 건데, 비밀번호 톡으로 알려드릴 테니까 깨워서 데려가요. 빨리 정리하고 그대로 제 쪽으로 와주시고요.”

유선우는 의자에 걸어뒀던 코트를 챙겼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전 본사로 갑니다.”

***

도심에 우뚝 서 위용을 자랑하던 청일 본사.

지금, 그 건물은 옛적의 모습이 무색하게도 처참하게 반파되어 있었다. 건물의 주변엔 어둠과 흐느낌이 가득했다.

“아파, 흐으윽…. 도와주세요….”

“천호 씨, 살려주세요. 천호 씨….”

상주하던 헌터들은 제법 많았다. 그러나 건물의 잔해에 짓눌려 대부분이 무력화된 상태였다.

그건 김정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허억, 허억.”

김정수는 바닥에 엎어진 채로 눈알만 굴렸다. 의지할 건 달빛뿐이었으나 그는 밤눈이 밝았다.

당연하게도 주위엔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면 잔뜩 긴장하던 사원, 성실하게 경비를 맡아주던 헌터.

기억에 또렷한 사람들. 하지만 이만큼이나 절망에 빠진 낯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끄윽……!”

5년. 자그마치 5년 동안 쌓아 올린 보금자리가 이렇게 간단히 무너지는가. 있어서는 안 될 일.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김정수의 정신은 차츰 흔들려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한 사내가 잔해를 헤치며 몸을 일으켰다.

사내는 청일 내에서도 열 손가락에 꼽히는 A급 헌터였다. 그는 통증도 무시한 채 한 방향을 쏘아봤다.

“김한성, 이 미친 새끼…!”

그곳에는 이 참상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있었다. 묘하게도 김한성의 태도는 느긋할 따름이었다. 생존자를 하나하나 죽이지 않았고, 그저 잔해에 앉아 있기만 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김한성은 무감정한 눈으로 사내를 쳐다봤다.

“할 말 있나?”

“뭐?”

“없으면 닥치고 있어라.”

“이런 씹어 죽일…!”

인상을 사납게 구긴 사내가 달려들었다. 찢어진 옷 사이로 근육이 비대하게 부풀었다. 그가 주먹을 날리려는 찰나, 혀 차는 소리가 작게 깔렸다.

파직!

사내의 발밑에서 두 줄기의 전류가 흘렀다. 이전에는 선명한 노란색이었으나, 지금은 먹물처럼 시꺼멨다.

불길함을 머금은 전류가 수직으로 튀어 올랐다. 사내의 몸이 발밑부터 머리까지 단번에 꿰어졌다. 피와 뇌수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전기가 아니라 날카로운 무언가가 관통한 듯했다.

지켜보던 김정수의 동공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저게 뭐지?’

김정수는 저러한 능력 따윈 본 적도 없었다. 그의 잣대로는 김한성이 이전보다 강해졌는지 어떤지는 판단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한없이 불길했다. 부하의 죽음에 대한 슬픔보다도 두려움이 앞섰다.

그때, 김한성이 시선을 돌려 김정수와 눈을 마주쳤다.

“기분이 어떻지?”

그리 묻는 목소리가 나직하다. 김정수는 눈살만 찌푸릴 뿐 대답을 주지 않았다. 김한성이 재촉하듯 덧붙였다.

“이렇게 어이없게 무너지는 거야. 네가 뼈 빠지게 고생해 만든 게, 나 하나 때문에.”

“복수입니까? 고작 그딴 이유로…!”

김정수의 어조엔 원망이 묻어 있었다. 사사로운 원한으로 이 많은 사람을 휘말리게 했다니. 도무지 용납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 네 입장에선 억울하겠지.”

김한성은 이게 번지수가 틀린 원한임을 알았다. 그러니 반쯤은 화풀이였고, 또 반쯤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심연의 인도자가 피를 보고 싶어 합니다.]

[심연의 인도자가 저 인간을 죽이라고 말합니다.]

‘정신 사납군.’

김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김정수를 죽일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그래서야 재미도, 청일을 부순 보람도 없으니까.

이대로 유선우까지 죽인다면 김정수의 앞길은 어두울 터. 죽이는 것보다는 그편이 훨씬 흡족했다.

‘그래도 이대로 기다리는 건 심심하겠어.’

자극이 필요했다. 관리자에게나, 자신에게나.

둘러보니 무대는 훌륭했고, 배우와 관객도 있었다.

김한성은 잔해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이들을 향해서. 그러자 김정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김한성, 멈춰. 김한성!”

절규가 주위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힘없는 말은 김한성의 발목을 붙잡지 못했다. 김한성은 오히려 반응을 즐기듯 더욱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이내 엎어져 있는 한 여성의 앞에서 발걸음이 뚝 멈췄다. 여성의 시선은 김한성이 아니라, 김정수에게 닿아 있었다.

“대, 대표님……!”

파지직!

검은빛이 번쩍였다. 방금과는 규모부터 달랐다.

과시라도 하는 듯한 강렬한 빛. 그것이 점멸할 때마다 사람이 건물의 잔해와 함께 먼지로 변했다.

“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대표님, 살려주세요. 대표님!”

“천호 씨. 사랑해요….”

하나씩 소리가 사라져갔다.

금세 수십의 소리가 지워졌다.

모든 것을 지켜본 김정수의 눈에서 뜨거운 물줄기가 흘렀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쥔 채, 머릿속으로 한 인물을 그렸다.

‘유선우 씨.’

속으로 수도 없이 되뇌었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사람은 빠르게 죽어갔다. 신고를 받고 찾아온 소방대원마저도 김한성의 손에 재가 되었다.

김정수에겐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그는 차라리 정신을 놓고 싶었다. 5년 전에도 이 정도의 비극은 없었다. 이러한 무력감은 몬스터 앞에서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유선우 씨.”

김정수가 목이 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흡사 기도라도 올리는 듯했다.

그리고 유선우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았다.

“이제 왔나.”

김한성이 고개를 돌렸다. 그가 바라볼 곳은 정해져 있었다. 누군가가 강대한 존재감을 숨김없이 흩뿌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선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이미 새까만 창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늦었군.”

김한성의 눈빛에 질척한 감정이 어렸다.

원망과 분노, 통쾌함과 투쟁심.

여럿이 한 데 섞인 복잡한 감정은 적의로 귀결되었다.

마찬가지로 유선우의 눈에도 깊은 적의가 담겼다. 그러나 김한성과는 달리, 오로지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입 다물어.”

목이 끓는 듯한 목소리. 그에 반응하듯 건물더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선우의 주위로 강풍이 몰아쳤다. 새파란 기운이 일렁거렸다.

유선우와 김한성의 시선이 교차했다. 마주 보고 있을 뿐인데도 김한성은 살갗이 베이는 듯했다. 잘 벼려진 칼날 같은 예기가 그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게….’

이게 유선우였다.

여태까지 보아왔던 장난기 가득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가면을 벗어냈다는 사실이 김한성으로선 썩 유쾌했다.

“안타깝게 됐어. 네가 조금만 일찍 왔다면 몇몇은 더 살아남았을 텐데 말이야.”

“…….”

유선우는 눈알을 굴려 주변을 확인했다.

파손된 응급차, 발밑에 널려 있는 유리 조각.

복잡하기 짝이 없었으나, 막상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동안 대피했을 리는 없겠고.’

아마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죽였을 터. 김한성의 말대로 상당히 늦은 모양이었다.

혀를 찬 유선우는 계속해서 상황을 살폈다. 이내 김정수와 눈이 마주쳤다.

김정수는 건물더미에 깔려 눈물을 죽죽 흘리고 있었다. 항상 진중하던 모습과는 영 어울리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네.’

속을 쓸어내린 유선우가 다시금 김한성을 쳐다봤다. 김한성이 입가를 들썩거렸다.

“어때. 마음에 드나?”

김한성이 한껏 이죽거렸으나 유선우는 담담했다. 오히려 이글거리던 분노가 급속도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빈 자리를 채운 건, 차가운 경멸의 감정이었다.

“못 보던 사이에 개가 다 됐네.”

“뭐라고?”

“맞잖아, 개. 관리자한테 제멋대로 휘둘리는.”

“……관리자라.”

김한성이 실소를 흘렸다.

“그래. 역시 그랬어.”

그는 여태까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유선우 같은 강자가 소리소문없이 튀어나온 이유에 대해서. 아무리 고민해도 알 수가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대리자가 된 지금은 짚이는 바가 있었다.

“남에게 받은 힘으로 으스대고 다니니 재밌던가?”

이제야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심연의 인도자에게서 설명은 듣지 못했으나, 정황상 틀림없었다.

“누가 뭘 받아?”

“여기까지 와서도 발뺌할 셈인가. 쓸데없는 일을 하는군.”

그리 말한 김한성이 주먹을 쥐었다. 그의 주변으로 흑색의 전류가 넘실거렸다.

“어차피 피차일반인데 말이야.”

자조 섞인 말이었다. 그는 자신이 꼭두각시가 되었음을 알았고, 유선우도 같은 처지라고 생각했다. 본인이 듣기엔 어처구니없는 소리였지만.

“피차일반? 날로 먹은 건 내가 아니라 너희지. 그러고도 약해 빠져서 내가 고생하는 거고.”

관리자에게 힘을 받긴 했지만, 유선우의 무력은 창술과 마력에 근간을 두고 있었다.

전부 고통을 감내하며 얻어낸 것이었다. 그걸 어쩌다가 얻은 힘이라 치부하는 건 모욕과도 다름없었다.

“하여튼 넌 네가 죽여온 몬스터 같은 새끼가 된 거야. 오히려 그보다도 못할 수도 있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김한성이 입술을 비죽거렸다.

“내가 이뤄낸 건 다 사라졌다. 네놈 때문에, 은혜도 모르는 놈들 때문에! 그래서 되돌릴 뿐이야. 죄다 되돌려서 다시 쌓아가는 거지.”

그의 목적은 간단했다.

다수에게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소수를 이끌고 갈 따름. 그리고 보호받는 주제에 입으로만 떠드는 치들은 탄압받을 것이다.

두 번 다시 이러한 하극상이 벌어지지 않도록.

“네놈을 죽이는 게 그 시작이다.”

“야.”

온도 차가 뚜렷한 음성이었다. 유선우가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그만 짖어. X밥아.”

그가 손목을 비틀었다. 달빛이 내려앉은 창끝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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