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화
미친놈들
협회장이 잠적하든 말든 오늘은 월요일이었다. 즉 주말을 날린 직장인이 출근하는 날. 오늘부로 청일에서 근무하게 된 인턴, 차세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긴장감과 설렘을 안고 출근길에 올랐다. 그리고 청일의 문턱을 넘기도 전에 고역을 치러야만 했다.
“저 사람 어디서 봤는데….”
“어, 어! 그 누구야, 유선우 여자친구 아니야?”
“충신일보입니다! 한 말씀만 부탁드려도….”
차세정의 얼굴을 알아본 기자들이 달라붙었다. 그녀는 이따금 비슷한 일을 겪곤 했지만, 이 정도 규모는 처음이었다. 수십이 몰려들어 떠드니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때 동아줄이 내려왔다.
“당신들, 다 어디 기자예요? 남의 회사 앞에서 무슨 지랄이래. 머리 울리니까 꺼져요!”
박아연이 성을 부리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숙취로 고생하고 있는 그녀에게 거침은 없었다.
박아연은 실력이나 외모보다도 성깔로 유명했다. 그녀가 나타나자 태반의 기자들은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에나 미친놈은 있고, 기레기도 있는 법.
“이번에 협회장이 잠적했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혹시 유선우 씨가 관련되어 있지 않습니까?”
흔한 음모론이었다. 질문한 기자 본인이 봐도 우스운 말이었으나, 기사는 무릇 화제성이 중요하기 마련. 음모론은 기사가 되고, 돈이 된다.
가당치도 않은 말에 차세정이 울컥했다.
“이봐요, 지금 말 다 했…!”
호통치기도 전에 박아연이 차세정의 팔을 붙잡았다. 병신에게는 먹이 금지. 일일이 발끈해봤자 이미지만 나빠질 따름이다. 그리고 그런 일에 있어서 박아연은 면역이나 다름없었다.
“그쪽도 잠적하고 싶나 보죠?”
“지금 발언은 인정하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반 정도는 인정하죠. 유선우 씨 말고 제가 했거든요. 그러니까 같이 잠적하기 싫으면 꺼져요, 좀.”
그리 말한 박아연이 차세정을 끌고 사옥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끈질긴 기자의 추격이 멈췄다. 아무리 개념 없는 이라도 헌터 클랜 건물 내부에 흙발을 들이밀 수는 없었다.
소란에서 벗어나자 박아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세정 씨. 저런 거 신경 안 써도 돼요.”
“…제가 괜히 왔나 싶어요. 유선우한테도 안 좋을 텐데.”
차세정은 시무룩해져 말했다. 그녀는 유선우에겐 아무렇지 않게 말했었으나 수도 없이 고민을 해왔다.
자신의 행동이 유선우에게 누가 되는 게 아닐까.
차라리 집에만 박혀 있는 게 낫지 않을까.
별별 생각을 다 했고, 끝내 결론을 내렸다.
차라리 청일 내에서 입지를 다지자.
그럼으로써 조금이라도 유선우의 편의를 봐주자. 그녀는 일반인인 자신이 유선우를 도울 방법이란 이것뿐이라 판단했다.
그런데 첫날부터 이 모양 이 꼴이라니. 차세정은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잔뜩 침울해져 있자 돌연 박아연이 차세정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어, 언니?”
“선우 씨가 기사 때문에 기죽을 사람은 아니죠.”
“걔는 어떨지 몰라도 남들은 신경 쓰잖아요. 남 잘되는 거 못 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괜찮다니까요. 요즘은 선우 씨 까면 오히려 욕먹는 거 몰라요?”
농담조였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잇달아 터진 사건으로 유선우의 명성은 하늘까지 치솟은 상태. ‘한국 헌터의 자존심’ 소리까지 듣고 있으니 악플러가 몰매를 맞는 실정이었다.
“찌라시 한둘 터져봤자 기레기 소리만 듣겠죠.”
“…그래도 걱정되는 걸 어떡해요.”
위로해줘도 차세정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답답하기까지 한 모습에 박아연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지극정성이네요. 선우 씨는 좋겠네. 하여튼 주눅들 거 없어요.”
“고마워요. 아, 팀장님이라 부르는 게 맞겠죠?”
“아무래도 그게 좋을 거예요. 헌터 쪽은 어지간해선 말놓고 다니긴 하는데, 사무직은 다르더라고요. 그래도 다른 회사보단 훨씬 느슨하지만.”
박아연이 싱긋 웃었다. 그녀는 차세정의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의 말을 건넸다.
“일 힘내요. 헌터들 조심하고.”
“무슨 말이에요?”
“남자 헌터들이요. 직업 특성상 허세 부리는 놈들이 몇 있거든요.”
남녀를 떠나서 헌터라는 직종의 특징이다. 그러한 경향은 매력적인 이성 앞에서 두드러지기 마련이고. 박아연이 보기에, 차세정은 확실히 이목을 끄는 여자였다.
“세정 씨 건드리는 놈 분명 나올걸요. 어디 보통 예쁜가.”
“팀장님이 훨씬 예쁘신걸요.”
“빈말이라도 세정 씨한테 들으니까 기분 좋네요. 하여튼 집적대는 놈들 있으면 저한테 말해요.”
“괜찮아요. 알아서 무시할게요.”
“아니, 저한테 꼭 말해요.”
선우 씨가 조지기 전에.
박아연은 그 말을 목구멍에서 삼켰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미친놈이 없길 바랄 뿐이었다.
***
유선우는 오후가 되어서야 출근길에 올랐다.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창문을 통해 출근했고, 맞닥뜨리는 사람에게 사인을 해줬다. 그에 대한 일화는 청일 내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김 주임, 오늘은 누가 받았대?”
“아, 예. 옆 부서 장종현 대리님이 받았다던데요. 사진까지 찍었다고 자랑하고 다닌답니다.”
“쯥. 앞으로 창문 더 활짝 열어둬.”
“알겠습니다.”
오후만 되면 모든 사무실의 창문이 열리는 진풍경이 펼쳐지곤 했다. 단순히 기자를 피하려고 시작한 일이 작은 이벤트처럼 되어 있었다. 반응이 좋으니 이제는 유선우도 흥미를 붙였다.
‘이래서 내 이미지가 좋은 건가.’
그러고 보면 팬 앞에선 빛나는 모습밖에 보여주지 않은 듯했다.
피식거린 유선우는 오늘의 일터로 향했다. 정규 헌터들이 사용하는 지하 1층. 그곳에서 교육을 재개할 계획이었다.
모의전투실에 자리해 있는 헌터는 총 9명이었다. 일부는 서로 대련을 하고 있었고, 또 일부는 가만히 대기하고 있었다.
전자에는 강창민과 이성결이.
후자에는 박아연과 김완용이 속해 있었다.
이성결과 강창민은 뜨거운 일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승부는 강창민이 우세했지만, 쉽사리 결판이 나질 않았다. 이성결의 방어가 뛰어난 탓이었다.
이런 장기전은 보는 쪽에선 지루하기 마련. 유선우는 극도로 집중한 둘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타악!
“악!”
쏘아진 마력이 정확히 둘의 손을 가격했다. 난데없는 타격에 둘은 간단하게 창을 놓쳤다. 박아연은 그 모습을 보며 새삼스레 전율했다.
‘어떻게 지탄 하나로….’
그녀가 찾아본 무협지에서도 저런 고수는 한 작품에 몇 나오지 않았다. 유선우의 전력을 볼 날이 과연 오기나 할지. 만약 온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가까운 미래는 아닐 터였다.
유선우는 경외의 시선을 받으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꼴값 그만 떨고 페어 짜세요.”
“형, 꼴값이라뇨. 제가 다 이긴 건데.”
“그랬겠지. 잘했다, 인마. 하여튼 너랑 박아연 씨랑 짜고. 이성결 씨는 그, 이름 뭐였죠?”
“이완용입니다.”
“아, 잊을 이름은 아닌데 잊어먹었네. 미안해요. 하여튼 둘이 짜세요.”
유선우의 지시는 두서가 없었다. 하지만 얼 타는 건 박아연뿐. 그녀 외에는 당황하지도 않고 곧바로 수긍했다. 교육이 오랜만이긴 했으나, 그들은 여전히 유선우의 충실한 딸랑이였다.
이성결은 불만 없이 이완용에게 다가갔다. 손뼉까지 치는 훈훈한 둘과는 달리, 강창민은 초장부터 툴툴거렸다.
“누나. 방해하지만 마요.”
“뭐, 뭐라고요?”
“삽질만 하지 말라고요. 이 중에서 누나가 제일 약한 거 알잖아요.”
강창민은 숫제 혀까지 차댔다. 개념 없는 작태에 박아연은 이를 갈았다.
“…주의할게요.”
박아연은 속에서는 열불이 났지만 애써 억눌렀다. 반박하기엔 강창민의 말에 틀림은 없었다.
전부 지켜본 유선우는 한숨만 쉬었다.
‘나쁘진 않은데, 보기는 안 좋네.’
자신의 무능함을 아는 건 실력 향상의 기본이다. 거기서 꺾일지, 악착같이 올라갈지는 본인에게 달려 있지만.
‘문제는 저 새끼야. 언제 사람 되냐.’
유선우는 문제아를 보듯이 강창민을 응시했다. 눈이 마주치자 강창민이 히죽히죽 웃었다. 속 편한 모습에 유선우의 눈이 더욱 짜게 식었다.
‘솔직하고 활발하면 뭐해. 개념이 없는데.’
저 정도로 등신 같으면 교정하기도 힘들다. 유선우는 박아연의 훈련이나 물심양면으로 돕기로 마음먹었다. 한 성깔 하는 여자이니 강해지면 알아서 복수하겠지.
유선우가 크게 손뼉을 쳤다. 자연스레 그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자, 넷이 알아서 싸워요. 다칠 것 같으면 내가 손 쓸 테니까 조절하지 말고.”
“네? 그게 다예요?”
“네. 1시간 동안 휴식 없이 달립니다. 시작해요.”
“아니, 갑자기 그래도….”
“거참 답답하게. 시작!”
유선우의 외침이 실내를 뒤흔들었다. 박아연은 떨떠름하게 자세를 잡았다.
‘이런다고 느는 걸까.’
그녀는 대련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모의전투라 해도 결국은 동료끼리 싸우는 것. 그러니 필연적으로 손대중하게 되리라 여겼다. 실제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이게 스포츠도 아니고.’
박아연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녀는 5분도 지나지 않아 생각을 180도로 고쳐먹게 되었다.
부웅!
이완용이 쏘아낸 공기포가 박아연의 귓가를 스쳤다. 그녀는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것도 신경 쓰지 못했다. 목덜미에는 식은땀이 뻘뻘 흐르고 있었다.
“하아, 하아!”
박아연이 가쁜 숨을 토해냈다. 그러나 쉴 여유는커녕 천천히 적응할 시간도 없었다.
황급히 눈알을 굴리자 이성결이 보였다. 창을 앞세워 달려드는 모습이 맹수와도 같았다.
능력까지 전력으로 쓰고 있어 박아연이 피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녀가 숨을 삼키는 순간, 이성결의 창끝이 쏘아졌다.
타악!
“아오, 정신 좀 차리라고요!”
이성결의 창을 막아낸 강창민이 외쳤다. 강창민은 박아연 탓에 어쩔 수 없이 이성결과 힘을 겨뤄야만 했다.
“힘 X나 세네…! 누나, 뭐라도 해봐요!”
“네, 네!”
허둥거린 박아연은 지원하고자 위치를 잡았다. 발을 옮긴 순간 시선의 끝에 이완용이 포착됐다. 동선을 간파당한 것이었다.
박아연이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이완용이 선수를 쳤다. 그가 쏜 공기포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박아연이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통증은 닥쳐오지 않았다. 대신에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또 죽었네. 자리 다시 잡아요.”
눈 깜짝할 새 끼어든 유선우가 말했다. 어느새 공기의 일그러짐은 잠잠해져 있었다.
“벌써 3번이나 졌네. 누나, 똑바로 해요 제발.”
“강창민 씨, 소고기 내기 한 번 갑니까?”
“발릴 거 뻔한데 왜 해요. 하, 답답해.”
전투를 멈춘 강창민과 이성결이 잡담을 나눴다. 이완용도 긴장을 완전히 풀어낸 상태였다.
셋은 한없이 태연했으나 박아연은 다리가 풀릴 뻔했다. 그녀는 어안이 벙벙했다.
‘미쳤어….’
이 사람들은 머리가 정상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