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0화
잠적
저녁에도 청일의 구내식당은 붐비고 있었다. 회사에서 숙식하는 직원이 많기도 하고, 레스토랑만큼 음식의 질이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유선우 또한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한강이, 앞에는 박아연이 자리해 있었다.
“오빠, 오빠. 요즘 뭐해요?”
“TV 봐.”
“근데 카톡은 왜 씹어요?”
“귀찮아서.”
“오늘 오빠 집에서 자도 돼요?”
“아니.”
“왜요?”
“다물고 밥이나 먹지?”
“히잉….”
질문 세례를 한 한강이 시무룩한 소리를 냈다. 유선우는 그녀의 뇌 구조가 심히 궁금했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뭔 깡으로 오겠대.’
정확히는 남자 혼자가 아니지만 중요치는 않다. 한강이 아이릴에 대해 알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러고 보니 얘 굶고 있겠네.’
문득 걱정이 들었다. 식재료는 있으나 아이릴은 요리가 젬병이었다. 배달 어플을 쓰기에도 그녀에겐 스마트폰이 없었다.
‘에이, 좀 굶는다고 죽진 않겠지.’
걱정은 잠시뿐이었다. 애초에 아이릴 정도 되면 닷새 정도는 굶어도 큰 지장은 없다. 유선우는 잡념을 치워내고 젓가락을 움직였다.
“선우 씨, 그거 알아요?”
“뭐가요?”
“한강 씨 지금 러브콜 되게 받고 있거든요. 저도 눈독 들이고 있고.”
“아까 들었어요. 헛고생들 한다, 싶더라고요.”
“…헛고생이요? 한강 씨가 열심히 한 건데.”
박아연이 살짝 언짢은 기색으로 물었다. 유선우의 발언은 여러모로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그게 아니고. 어차피 제가 데려갈 거라서요.”
“저를요?”
갈비를 입에 욱여넣은 한강이 대화에 꼈다. 유선우는 여전하다 싶으면서도 자기 물컵을 건네줬다.
“어. 나도 팀 하나 짜려고.”
“팀이라니… 선우 씨가 직접요?”
“강남역 게이트 때부터 생각해뒀었거든요. 아직은 멀었지만.”
처음엔 단독으로 활동할까 싶기도 했었다. 다만 그래서야 심심할 테고, 방송 면에서도 좋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한강은 썩 마음에 드는 인재였다.
카메라 잘 들지, 성실하지, 귀엽지.
카메라맨 겸 마스코트로 딱이다.
“왜 오빠가 멋대로 정해요? 저보고 또 카메라우먼 하라 이거예요?”
“뭐야. 싫어?”
“아뇨, 좋은데요!”
“근데 말투 왜 그래.”
“컨셉이에요오.”
한강이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히죽거렸다. 유선우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또 이상한 거 배워왔네. 박아연 씨, 애 앞에서 조심 좀 해요.”
“이거 제 탓이에요?”
“아니에요?”
“…아니지 않을까요.”
박아연이 긴가민가하게 말했다. 요즘 한강과 같이 다니는지라 영향을 주긴 했을 터였다.
“근데 오빠. 오빠는 시험 안 봐요?”
“시험? 아, 그런 게 있었지.”
유선우가 아는 체를 했다. 차세정에게서 얼핏 들은 얘기였다. 그가 박아연에게 상세를 물었다.
“시험이면 뭐 하는데요?”
“선우 씨도 보려고요?”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
“교육 3개월 차에 접어들면 중간 평가 보거든요. 4개월 차부터는 실전으로 넘어가니 평가 결과로 조를 짜는 거죠. 아주 뛰어나면 바로 수료고.”
“처음에 교육 기간 단축 가능하다던 게 그거였구나.”
9월, 박아연과 김정수가 유선우의 집에 방문했을 때였다. 당시를 떠올린 박아연이 싱겁게 웃었다.
“네. 선우 씨한텐 이제 의미도 없어졌지만.”
“음….”
“왜요? 이번엔 시험관이라도 하려고요?”
“됐어요. 별로 재미도 없어 보이고.”
딱 잘라 말하자 박아연은 속으로 안도했다. 유선우가 시험관을 맡는다면 교육생들에겐 영광이겠지만, 어떤 깽판을 칠지가 걱정됐다.
그녀의 걱정과는 달리, 유선우가 관심을 가진 건 다른 쪽이었다.
“시험이라니까 생각난 건데, 오랜만에 검사 좀 받아보고 싶네요.”
“검사라뇨?”
“그거 있잖아요. 마나 수치.”
각성자 심사 때 단 한 번 확인했었던 수치. 유선우는 그게 지금 얼마나 늘어났는지 알고 싶었다.
당연히 S급 헌터에 비하면 떨어지겠으나 수치는 궁금하기 마련이다. 게임 할 때 딜량을 체크 하는 것처럼.
“근데 지금 받을 수나 있으려나 모르겠네. 협회 꼴이 그 모양이라서.”
폭탄을 던진 장본인이 할 말은 아니었다. 박아연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착실하게 대답했다.
“괜찮을 거예요. 뭐 그쪽 공무원이 다 잘린 것도 아니고.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요. 제가 예약해드릴까요?”
“어, 괜찮아요? 대표님한테 부탁하려 했는데.”
“…그쪽이 더 안 괜찮은데요. 하여튼 저랑 가요.”
박아연 또한 궁금하긴 매한가지였다. 열등감에 시달리게 될지도 몰랐지만, 아마 괜찮을 터였다. 그녀는 유선우에게만큼은 그런 감정을 가지지 않았다.
물론 한때는 질투한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유선우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재능도, 성격도, 과거까지도. 그녀는 그 사실에 어떠한 자부심마저 느끼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잡을까요?”
“아무래도 협회까지 가야 하니까 귀찮아질 거 같은데. 그냥 천천히 해줘요. 다다음 주도 괜찮고.”
“알았어요.”
***
헌터 협회의 지하 주차장.
힘없는 발소리가 울려 퍼진다. 터덜터덜 걷는 김한성의 눈 밑에는 검은 기미가 앉아 있었다.
‘제기랄.’
최근 김한성은 환청에 시달리고 있었다. 헌터 협회의 앞에서 매일같이 시위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 계속 듣다 보니 물러나라, 하는 음성이 머릿속에서 울리는 듯했다.
‘은혜도 모르는 잡것들….’
자기들 목이 붙어 있는 게 누구 덕분인데. 그러한 생각이 끊이지를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혀를 찬 그가 차에 오르려는 순간이었다.
“협회장님 되십니까?”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의 두 칸 옆에 있는 기둥. 김한성은 대답하기에 앞서 속으로 한숨을 토해냈다.
‘하여간 기자 새끼가 문제야.’
꼭 이렇게 선을 넘는 놈이 종종 나타난다. 대체 보안은 어떻게 뚫었는지. 김한성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도 않고 고개를 돌렸다.
“…누구시죠?”
김한성의 눈에 들어온 건 후드티 차림의 남자였다. 남자는 모자를 덮어쓰고 있어 얼굴을 확인하기가 힘들었다.
밤길에 만나면 섬뜩하게 느껴질 차림새지만, 김한성은 경계하지 않았다. S급 헌터인 그가 위기감을 느낄 대상은 세상에 몇 없었다.
“기자는 아니신 듯한데.”
“예에. 백수라서 뭐라 소개하기도 창피하지 말입니다.”
가볍게 대꾸한 남자가 느긋하게 거리를 좁혔다.
“김광수라고 합니다.”
김한성은 눈살을 찌푸린 채 머리를 굴렸다. 김광수. 흔하지만 기억에는 없는 이름이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 그보다 보안도 있었을 텐데요.”
“잔재주가 여럿 있어서 말입니다. 그 정도야 관대하게 넘어가 주십시다.”
장난스레 말한 김광수가 차 위에 엉덩이를 깔았다. 누군가를 떠오르게 만드는 무례한 행동. 김한성은 위협을 하려다가 꾹 참아냈다.
“예의부터 차리고 다시 오시죠. 그럼.”
그는 김광수를 무시한 채 차 문을 열었다. 이대로 시동을 걸면 알아서 비키리라 생각했다. 그때 김광수가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열 많이 받으셨나 봅니다. 하긴, 저도 방송 봤는데 웃기긴 하더랍니다.”
“…뭐요?”
“맞말이잖습니까. 협회장님 정도 되시는 분이 새파란 신인한테 처발리고 있으니. 사실 저도 5만 원 후원했거든요. 하하.”
탁!
차 문이 거칠게 닫혔다. 김한성이 김광수의 멱살을 붙잡았다.
“개나 소나 다 지랄이군. 내가 우스워 보이나?”
“오. 성질 사나우시네. 유선우 씨보단 못하지만.”
“이런 싸가지 없는…!”
김한성이 주먹을 휘두르려는 순간이었다. 김광수의 몸에서 새까만 기운이 일렁거렸다. 기운은 스멀스멀 김한성의 팔을 타고 올라 옷을 녹여냈다.
“각성자였군.”
김한성은 당황하는 일 없이 곧바로 대응했다. 그가 뿜어낸 샛노란 마나가 검은 마나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사방에서 튀어 오른 스파크가 김광수를 위협했다.
“누가 보냈는진 몰라도 답도 없는 놈이겠어. 너 같은 새끼들은 한 트럭으로 와도 모자랄 텐데.”
“한 트럭은 좀 허세가 심하지 않습니까?”
유들유들하게 받아친 김광수가 손을 휘적거렸다. 허공에 수십의 구슬이 나타났다.
먹물로 만든 비눗방울 같은 형태였다. 검고 작은 구슬들은 포위하듯 김한성을 둘러쌌다.
“제가 이 정도는 합니다.”
김광수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구슬에서 일제히 송곳이 튀어나왔다. 뾰족하게 벼려진 끄트머리가 김한성의 전신을 향해 쏘아졌다.
‘별 이상한 능력도 다 있군.’
김한성은 신기해하면서도 크게 경계하진 않았다. 송곳에 찔리기 직전, 전류가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전류는 순식간에 송곳을 불사르곤 김광수의 몸마저 태워냈다. 살이 지져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귀찮아지겠어.’
김한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각성자가 고작 이걸로 죽지는 않겠지만, 병원행은 확정이었다. 정당방위였다고는 하나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김한성은 행동한 뒤에야 자신이 경솔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황은 그의 생각과 다르게 돌아갔다.
“아…. 찌릿찌릿하네. 근데 별로 아프진 않네요.”
김광수가 태평하게 말했다. 발음은 어눌했지만 듣기에 지장은 없었다.
김한성은 의심에 찬 눈으로 김광수를 쳐다봤다. 놈의 옷은 불타 있었으나 살갗은 그을린 곳 하나 없이 말끔했다. 믿기 힘든 광경이다. 김한성이 낯을 찌푸렸다.
“네놈, 뭐 하는 새끼지?”
“일단 여기까지 합시다. 관리자님들, 이제 됐습니까?”
“…뭐?”
“이쪽 얘기지 말입니다.”
그리 말한 김광수가 눈알을 굴렸다.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를 읽는 것이었다.
“협회장님. 한 가지만 묻고 싶은데….”
김광수는 말을 흐린 뒤에 눈만 바쁘게 움직였다.
흡사 정신병자와도 같은 모습. 김한성은 김광수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김광수의 입이 열렸다.
“유선우 그 새끼. 죽이고 싶지 않습니까?”
***
12월 17일, 월요일.
유선우는 뜻밖의 소식과 함께 아침을 맞이했다. 그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인터넷 기사가 하나 떠올라 있었다.
- 헌터 협회장 김한성, 기자회견 불참… 떠도는 잠적설
기사의 내용은 간단했다. 제목 그대로, 예정되어 있던 기자회견에 일언반구 없이 불참했다는 것.
연락이 끊어졌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도 있었다. 이에 대해서 협회 측에선 대답을 보류하고 있다고.
‘뭐야. 튀었어?’
기사를 본 유선우는 살짝 어이가 없었다. 버티려고 안간힘을 쓸 때는 언제고 뒤늦게 잠적이라니. 아무래도 멍청하다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쓸데없이 힘 빼다가 빤스런을 해버리네.’
진작 물러났더라면 명예는 챙길 수 있었을 텐데. 이쯤 되면 미련하기까지 했다.
‘어쨌든 자기 인생이지.’
유선우는 혀를 차곤 생각의 방향을 전환했다.
‘그럼 슬슬 다음 협회장 뽑겠구나.’
예상보다는 확신에 가까웠다. 협회장의 잠적이야 불확실하지만, 지금은 여론이 한창 들끓고 있다.
이 시기에 기자회견을 내팽개치고 숨어버린다?
자신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이다.
‘이제야 정부가 뭐라도 하겠네.’
머리가 사라진 몸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협회는 새로운 수장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에 대해 발표하는 건 정부가 될 터. 그리고 결정하는 건 국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