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화
몰락
벌컥!
유선우는 노크도 없이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가 함박웃음을 지은 채 당당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난데없는 난입에 김한성의 낯이 어리벙벙해졌다. 그의 머릿속에선 오만가지 상상이 휘몰아쳤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유선우가 선수를 쳤다.
“협회장님, 이거 오랜만입니다. 하하.”
“……유선우?”
“어, 뭡니까? 왜 반말이지 말입니까.”
유선우는 김광수의 말투를 그대로 모방했다. 생각만 해도 열이 뻗치는 놈. 그놈에게서 사람 신경 긁는 방법을 몇 가지 배워뒀다.
제대로 먹히긴 했는지, 김한성이 인상을 악귀처럼 구겼다.
“이게 무슨…….”
“에이, 리액션이 영 별로네. 다시 할까요?”
김한성은 이를 악문 채로 눈알을 굴렸다. 그의 시선은 소피아에게 닿았다가, 유선우에게서 멈췄다.
진상을 알아차린 김한성이 눈을 질끈 감았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아내는 것이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이게 무례한 일이라는 건 알고 계실 텐데요.”
“뭐하기는요. 인터뷰하러 왔다니까요.”
“제가 허락한 건 소피아 씨뿐입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이다. 유선우가 쿡쿡 웃고는 능청스럽게 말을 받았다.
“아, 이건 못 들으셨나 보네. 사실 제 방송이거든요. 폰도 제 거예요. 화장실 다녀오느라 소피아 씨한테 맡겼거든요. 맞죠?”
“네, 네?”
토스를 받은 소피아가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대답하기에 앞서 김한성을 힐끗 곁눈질했다. 아니나 다를까, 김한성이 핏줄까지 세우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유선우 이 나쁜 새끼.’
소피아는 속으로 수도 없이 되뇌었다. 하필이면 이런 역할을 맡길 줄이야. 여기까지 왔으니 빠지지도 못한다. 한숨을 쉰 소피아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깜빡했네요. 같이 올라와도 된다고 하시길래 괜찮은 줄 알았는데. 실례였나요?”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
“협회장님.”
말을 자른 유선우가 멋대로 소파에 앉았다. 스스로 보기에도 버릇없기 짝이 없는 태도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싸움을 걸러 왔으니까.
정확히는 일방적으로 패줄 생각이다.
“인터뷰나 합시다. 제가 여태까지 참 섭섭한 게 많았어요. 아시죠?”
김한성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고민에 잠겼다.
축객령을 내릴까. 시치미를 뗄까.
어느 쪽이든 출혈은 크다. 그나마 전자가 낫겠으나, 문제는 가능할지 어떨지.
유선우와 소피아.
단 둘뿐이지만 강제적으로 끌어내릴 수는 없다. 하나를 감당하기에도 버거운 강자들. 애당초 시선을 생각하면 해서도 안 될 선택이다.
‘빌어먹을.’
김한성은 초조함에 입술을 짓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황이 좋지 않다. 무력적인 면을 제외해도 자리를 벗어나기엔 명분이 부족하다.
유선우가 무례하게 굴고는 있으나 불법 침입은 아니다. 이미 소피아의 요청을 승낙해버리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대로 대화를 피한다면 여론이 시궁창에 처박혀버릴 터다.
‘이게 말이나 되나?’
어처구니가 없는 흐름이다. 분명 그럴 텐데 김한성은 달아날 구석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에게 남은 선택지라곤 발뺌뿐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아, 그러시구나.”
유선우는 영혼 없는 맞장구를 치며 소피아를 바라봤다. 더는 끼고 싶지 않다는 듯 입을 다물고 있다. 그녀는 역할을 충분히 완수해줬기에 그도 더 바랄 것은 없었다.
대신에 스마트폰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잘 찍기나 하라고. 아이컨택이 오간 뒤에 유선우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일단 제 등급 가지고 불평할 생각은 없어요. 알아서 하겠죠, 뭐. 헌터 인정도 받은 마당에 실적이 날아가지는 않을 테고.”
“그 건에 대해선 아직 내부에서 의논 중입니다.”
“예, 의논 중이고 검토 중이고 협의 중이시겠죠.”
흔하면서도 효율적인 변명이다. 투덜대는 말에도 김한성은 담담하게 받아넘겼다.
“아무래도 전례가 없으니까요. 이런저런 일도 많이 터지니 일손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런저런 일이 정확히 뭐예요?”
김한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탓이다.
“다들 익히 알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네. 강남역 게이트부터 소피아 씨 피습, 용인 S급 게이트까지. 산에 틀어박혀 살지 않는 이상은 다들 알죠.”
“…….”
“공통점이 뭔지 알아요?”
“잠깐만요.”
잠깐만은 개뿔. 유선우가 그간의 감정을 담아 말했다.
“다 제가 혼자 해 먹었다는 겁니다. 사실 혼자서도 떡을 치긴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내가 좀 억울하잖아. 그동안 그쪽은 뭐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예전엔 아예 날아다니셨다고 들었거든요.”
“……협회 차원에서 대처가 적절치 못했다는 건 인정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손을 쓰기엔 인력이 부족했습니다.”
김한성은 면목 없다는 태도를 가장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공식적으로 발표를 마친바. 새삼스레 타격이 될 건 없었다.
“이번에 자유 헌터를 대거 채용해 예비전력으로 둘 예정이고요. 클랜들과의 연계도….”
“아니요. 제가 묻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라, 협회장님 본인이 뭘 하셨냐는 거예요.”
유선우는 뚱한 낯으로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에요? 막말로 그러다가 내가 한국 뜨면 어쩌려고.”
“좀 오해가 있으신 듯한데, 저는 협회의 지휘를….”
“그게 어이가 없다는 거예요. 댁이 지휘할 건 협회가 아니라 토벌대겠죠. 능력에 안 맞으면 내려놔야지.”
공격적인 어투에 김한성이 입술을 달싹였다. 그가 콧김을 내뿜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머리를 식히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바람이나 쐬고 오시죠.”
“저 방금 들어왔는데요.”
김한성은 무시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자존심이 발목을 잡기는 했으나 시간을 끌어 이익이 될 건 없었다.
“바쁘신가 보네. 그럼 이것만 듣고 가세요.”
유선우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협회장 지위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김현성 씨는 그 자리에 안 맞아요. 적폐는 청산해야죠.”
묵직한 발언에 소피아가 먼저 반응을 보였다. 그녀가 유선우의 팔을 쿡쿡 찌르며 소곤거렸다.
“이름 틀렸어요.”
유선우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 김현성 씨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머쓱하다는 태도를 연기한다. 고민하듯 말을 멈췄다가 키득키득 웃는다.
“근데 어쩔 수 없죠. 한 게 있어야 기억에 남지. 일일이 찾아보기엔 전 바쁘거든요. 김… 뭐 씨랑은 다르게.”
할 말 실컷 한 유선우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가 부들거리는 김한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고.”
유선우는 성큼성큼 문밖으로 걸어갔다. 경쾌함이 묻어나오는 발걸음이었다.
‘아, 꿀잼이다.’
***
유선우의 행동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기본적인 인성이 글러 먹었다는 연유에서였다. 상대가 훨씬 윗줄에 있는 연장자이니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그가 지적한 사안의 논점이 흐려지진 않았다. 예의가 없었을지언정 근거는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선우의 발언에 동조하는 이들이 속속들이 나타났다.
- 끼어들기 힘든 문제라 주저했습니다만, 이제는 말할 때라 판단했습니다. 한국은 변화를 맞이해야 합니다. 공정한 절차를 거쳐 합당한 인재를 뽑고, 재해에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디 한국 정부와 국민의 현명한 선택을 바라는 바입니다.
거대 금융 재벌가의 주인이자 능관부의 간부인 딜런 테일러의 발언. 개입의 의지는 드러내지 않았고, 능관부를 들먹이지도 않았다.
개인의 의사를 표현했을 뿐. 위치가 위치인 만큼 비난도 쏟아졌지만, 파급력은 대단했다.
그밖에도 여러 유명인이 유선우의 편을 들었다.
한창 호황을 누리고 있는 IT 기업 대표 오창훈.
종편 방송국의 대표 정재희.
해외 토크쇼 진행자로 이름 높은 제이크 필립스.
그들의 말이 유선우가 지른 불에 기름을 부었다. 덕분에 현재, 한국의 모든 커뮤니티가 들썩이고 있었다.
- 진짜 미친놈이다 ㄹㅇ
처음부터 막 나간다 싶었는데 기어코 터뜨리네
이러다 뮤튭 영상 조회수 억대 갈 듯
간땡이 부은 게 푸아그라임
┕ 붓기는 뭘. 어차피 싸우면 유선우가 이김
┕ 난 사이다 오지던데. 의논 중입니다우웨웽 ㅇㅈㄹ할 때 내가 다 빡쳤자너ㅋㅋ
- 난 좀 철렁했던 게
유선우가 그랬잖아. 지 한국 뜨면 어쩔 거냐고.
이번에 칼 갈고 나왔는데 이대로 유야무야되면 나 같아도 환멸감 느끼겠다.
요즘 꼴 보면 지옥불반도인데 리얼루다가;
┕ 그니까. 딱히 틀린 말 한 것 같지도 않고
┕ 우리 아버지가 A급 헌터인데 자주 그러심. 자기가 협회장 해도 더 잘하겠다고 ㅋㅋ
┕ 인증 없으면 뭐다?
┕ 이젠 아버지 직업도 인증해야 하냐?
유선우는 스마트폰을 보며 혼자 히죽거렸다. 기대대로의 반응이었다. 이대로만 가면 여론만으로도 찍어누를 수 있으리라.
‘그래도 낙관적으로 볼 수만은 없지.’
슬슬 정부가 나설 때다. 정부 입장에선 협회장을 버리기엔 망설일 수밖에 없을 터다. 여태 잘 써먹기도 했고, 이어져 있는 줄도 두꺼울 테니까.
김정수를 통해서 경고야 보내뒀다만 들어먹을 턱이 있나.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덮는 게 아주 불가능하진 않다. 대국민 사과 한두 번으로 퉁 칠 가능성도 있고.
그러나 유선우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아직 준비해둔 총알이 남아 있었다.
***
침묵이 내려앉은 헥터 클랜의 대표실.
김홍철은 말없이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 청일 대표 김정수 “유선우 의견 적극 지지… 헌터 협회장의 횡포 참을 생각 없어”
- S급 각성자 출신, 하랑 대표 장민수 “헌터 협회의 적폐 청산해야”
명확하면서도 파격적인 기사. 전부 유선우의 말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별다른 직책도 없는 헌터 하나가 이만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니. 김홍철은 실제로 보면서도 믿기가 힘들었다.
‘이런 거였군.’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처구니없다는 감정에서 비롯된 미소였다.
김홍철은 한 달도 더 된 과거를 회상했다. 뜬금없었던 유선우와의 만남. 그때는 시간 낭비라고만 생각했던 대화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협회장과 척을 지라는 게 이런 뜻이었어.’
헌터 협회장.
여태까진 한 명의 남자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어떻게 될까. 그 물음에 생각이 미치자 김홍철의 눈이 번뜩거렸다.
뛰어들기에 이보다 좋은 판은 없다.
“고 실장. 어떻게 생각해?”
김홍철이 멀뚱히 서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고영건 실장은 흠칫했으나 애써 태연한 척 대답했다.
“정부의 대처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선우나 협회장이나 하나는 무너지겠죠.”
“아니, 유선우는 안 무너져. 걘 그냥 다른 데로 가도 상관이 없거든. 지위는 없는데 능력이 있잖아. 그러니까 다들 안달하는 거고.”
“대표님께선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고영건이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그는 미래를 확신하기에 눈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러나 김홍철은 답을 주기는커녕 눈살만 찌푸렸다.
“그걸 네가 왜 물어봐? 넌 인마. 내가 물어볼 때 대답해야 할 사람이야. 네가 묻는 게 아니라.”
“죄, 죄송합니다.”
타박한 김홍철이 혀를 찼다. 그는 고영건의 어리벙벙한 모습을 볼 때마다 열불이 치밀었다.
누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지 3개월 만에 세상을 뒤집고 있건만. 아무리 봐도 고영건은 성장하는 게 없었다.
“안타까워서 이러는 거니까 고깝게 듣진 말고.”
“아껴주시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래.”
김홍철은 대답한 뒤에 제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하여튼 문제는 협회장이 무너질지, 버틸지야. 결정하는 건 클랜 대표들이고. 우리가 죄다 들고 일어서면 정부에서 뭐 어쩔 건데?”
“위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득은 크겠습니다만, 나눠 먹을 파이도 아니고요.”
“왜 못 나눠? 그야 협회장 자리는 하나뿐이긴 한데, 결국은 대형 클랜 대표 중 하나가 될 거 아니야.”
유선우는 직접 나서지 않는다. 김홍철은 그리 판단했다. 강자가 협회장을 맡을 필요가 없다고 피력한 게 바로 유선우였으니까. 본인이 발을 들이민다면 비난을 피할 수 없으리라.
“협회 간부들도 있지 않겠습니까?”
“일반인들은 걔들 이름도 잘 몰라. 게다가 적폐 청산한다는데 잘도 그러겠다.”
“그렇군요. 하긴, 원래부터 협회장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니까요.”
남는 건 대형 클랜의 대표뿐이다.
김홍철을 포함한 6명의 클랜장들.
그들의 이름은 일반인들 사이에도 알려져 있다.
어디 명성뿐이랴. 누구보다 업계 사정에 빠삭한 데다가 클랜을 만들어 키워낸 실적까지. 운영 능력에 관해서도 의심할 구석이 없다.
김홍철의 설명에 고영건이 고심에 빠졌다. 그에게도 슬슬 앞날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협회장의 권한이 대폭으로 축소되겠군요.”
“아마도. 비는 부분은 정부에서 알아서 채우겠지. 사실 원래부터 그래야 했어.”
특정 클랜의 대표 겸 헌터 협회장. 그 어떤 청렴한 인물일지라도 비리는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부에서 끼어들어 실질적인 운영을 맡게 될 터. 머리만을 갈아치우는 게 아니라, 대대적인 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협회는 필시 약해지리라.
결론을 낸 김홍철이 입가를 실룩였다.
“어쨌든 유선우 덕 좀 보겠군. 협회장 이름 들을 때마다 좀 짜증 나긴 했어. 왜 남의 애들 제멋대로 데려가고 지랄이야, 지랄은.”
대놓고 협회를 싫어하는 녹랑이나 청일만큼은 아니지만, 헥터로서도 협회는 눈엣가시였다. 이전부터 사소한 마찰을 빚어 왔기 때문. 강남역 게이트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토벌대에 참가했던 헥터의 헌터 태반이 PTSD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 심지어는 사망자도 몇 있었으니, 좋은 감정이 있을 수가 없었다.
“다른 클랜에도 연락 돌리겠습니다.”
군기가 바짝 든 고영건이 말했다. 김홍철은 그럴 필요 없다며 손을 휘적거렸다.
“알아서들 하겠지. 등신이 아니고서야.”
“그러면….”
“기자회견이나 준비해.”
이 거대한 흐름에 거스를 이유는 없다.
단지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