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화
아이릴
게이트가 나타났던 사거리.
그곳에는 아직 남아 있는 인원이 제법 되었다.
부상자와 그들을 치료하는 힐러.
휴대폰을 붙잡고 바쁘게 입을 움직이는 이들.
단순히 무언가를 기다리는 이들도 있었다. 현상 파악을 위해 뒤늦게나마 달려간 헌터의 소식을. 그게 아니라면 유선우의 생환을.
후자에 속하는 최현석은 아스팔트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의 다리엔 핏자국이 자욱했다. 치료는 받았지만 아직 고통이 가시지 않았다.
‘난….’
대체 뭘 했지?
그 물음이 최현석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절친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말리지도 못했다.
아니, 순간적으로 다행이라고도 생각했었다. 여느 때처럼 유선우가 해결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자책감과 무력감.
두 감정이 최현석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아직도 소식 없네요. 아무 소리도 안 나고.”
강창민이 다가가며 말했다.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들려오던 폭음. 그것이 어느 순간부터 뚝 멈췄다. 그 후로 적막은 십여 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강창민은 가장 먼저 유선우를 쫓아가려 했었다. 반쯤은 방송을 위함이었고, 또 반쯤은 걱정 탓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여전히 이 자리에 있는 이유. 그건 장민수의 말에 정신이 바짝 들었기 때문이다.
‘그 형이 왜 혼자 갔을까.’
유선우는 방송을 나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방송을 맡겼음에도 자리를 피했다. 그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둘.
‘그 정도로 위험했거나, 보여주기 싫었거나.’
다른 이들은 전자라고 생각했으나 강창민으로선 영 아리송했다. 그게 그가 남들보다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였다.
강창민은 최현석을 격려해주고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저, 저거! 유선우 씨 아니야?”
들려온 이름에 강창민과 최현석의 눈이 돌아갔다. 그러자 털레털레 걸어오고 있는 유선우의 모습이 보였다.
‘미친.’
강창민은 순간 숨이 덜컥 멎는 듯했다.
온몸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마른 피.
곳곳에 서리가 맺혀 있는 흑색의 창.
어째선지 오른팔 부분이 뜯겨나간 셔츠.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개멋있어….’
강창민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잠시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이건 방송감이야.’
강창민은 조금 전의 일을 전부 찍었다. 유선우가 적을 유도해서 떠나는 모습까지 모조리.
그 후에는 예기치 못한 방종을 해버렸다. 많은 이가 유선우의 생환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터. 그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강창민의 손이 바빠진 한편. 다른 헌터들은 유선우에게 쉬이 다가가지 못했다.
최현석만이 예외였다.
정적 속에서 그가 유선우에게 달려갔다.
“이 미친놈…! 힐러, 뭐해요!”
“아, 예!”
유선우는 군말 없이 치료를 받았다. 사실 상처는 몇 있지도 않았다. 굳이 꼽자면 오른팔이 아주 약간 까진 것 정도. 그마저도 아이릴 탓은 아니었고, 마력 운용의 반동이었다.
그는 치료를 받으면서 느릿하게 눈알을 굴렸다. 무감정한 눈초리에 헌터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어쩐지 자신을 탓하는 것처럼 느껴진 탓이었다.
정작 유선우는 속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욕먹는 줄 알았네.’
컨셉이 먹혀들기는 한 모양. 하기야 일부러 씻지도 않고 찝찝함을 참기까지 했다. 아무런 효과도 없으면 억울했을 터였다.
전투 후에, 유선우는 은밀하게 집에 들렀었다. 다름 아닌 아이릴을 숨겨두기 위함. 걸렸다간 성가셔질 게 뻔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둘이었다. 이동하면서 남길 대량의 혈흔과 도처에 가득한 CCTV.
고심 끝에 유선우는 묘수를 떠올렸다.
첫 번째로는 흑철의 피를 털어내 캐리어로 만들었다. 아이릴을 꽁꽁 얼려 캐리어에 넣고 끌고 간 것. 시체를 운반하는 기분이었으나 걸리는 것보단 나았다.
다음으론 비좁은 골목길을 다니며, CCTV를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하나하나 부쉈다. 전투가 일어났던 장소는 진작 개판이 되어 있던 상황. 과하게 날뛴 게 행운으로 작용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뒤처리뿐. 그를 위해 유선우는 귀찮음도 무릅쓰고 돌아왔다.
그런데 상태가 어째 이상했다.
‘분위기 왜 이래.’
너무 숙연하다.
최현석은 숫제 눈물까지 훔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태연해 보이는 건 강창민뿐.
그 손에는 유선우가 맡긴 폰이 들려 있었다.
그것을 본 유선우가 속으로 헛웃음을 쳤다.
‘쟤도 진짜 미친놈이네.’
이 와중에도 방송을 놓지 않는 꼴이란. 어이가 없기는 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예뻐 보였다.
그는 강창민에게 눈짓으로 지시했다.
빨리 오라고. 와서 뭐라도 물어보라고.
찰떡같이 알아들은 강창민이 쪼르르 달려왔다.
“형, 괜찮으세요?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
“그래.”
“구급차라도…….”
“아니, 됐어.”
유선우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진지했다.
자리의 분위기에 편승해 무게를 잡는 것이었다.
그러는 한편, 속으로는 시끄럽게 외치고 있었다.
‘그거 말고!’
가장 먼저 받아야 할 질문이 들려오지를 않았다. 자고로 헌터라면 몬스터가 어떻게 됐는지부터 물어봐야지. 헌터가 이 모양이니까 지구도 이 꼴인 거다.
유선우가 내심 한숨을 내쉴 때, 최현석이 말했다.
“야. 폰 치워. 너는 씨, 눈치도 없어?”
“역시 좀 그렇죠?”
“그걸 말이라고 해?”
“괜찮아. 내가 부탁한 건데. 다른 사람들은?”
“아니, 하….”
한숨을 쉰 최현석이 대답했다.
“반쯤은 너 따라갔어. 거기서 반쯤은 튀었을 거고. 오다가 못 봤어?”
“그래? 엇갈렸나 보네.”
유선우는 능청스럽게 시치미를 뗐다. 그는 집으로 가면서 헌터들을 피하느라 진땀을 흘렸었다.
먼발치에서 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해봤자 한둘일 터. 증거가 없으면 입증도 할 수 없다.
곧 상처를 치료해준 사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저, 혹시 어떻게 되었는지….”
원하던 질문이 이제야 나왔다.
유선우는 대답하기 이전에 강창민을 곁눈질했다.
정신 못 차리고 폰을 드는 모습. 모르는 새 스트리머 본능이라도 생긴 모양이었다.
유선우는 찍히는 각도까지 조절하고, 짐짓 근엄한 낯을 지은 채 선언했다.
“전투는 끝났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허어억!”
아이릴은 몸을 어루만지는 온기에 눈을 떴다. 그녀의 눈앞에는 이상한 기구가 있었다.
온수가 뿜어져 나오는 기구. 대체 무슨 원리일까. 당황보다는 호기심이 먼저 피어올랐다.
‘마법 도구인가? 신기하게 생겼네.’
주변을 둘러봐 상황을 파악했다.
밀폐된 좁은 공간과 몸을 적시는 뜨거운 물.
그녀의 머릿속에선 금세 결론이 내려졌다.
“저, 저를 고문할 셈인가요?”
“뭐?”
“미지근하군요. 불가마에 들어가더라도 제 신심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쪼그려 앉아 있던 유선우가 입매를 비틀었다.
샤워기 틀어놓은 게 전부인데 고문은 무슨.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고문이 끝난 참이다.
지금 막 냉동인간 신세를 벗어난 아이릴이 물었다.
“이곳은 어디죠?”
“우리 집. 뭐 건드리면 맞는다. 이제 알아서 씻어.”
“네?”
그 말에 아이릴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자신의 나신이었다. 제 상태를 확인하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다, 다, 다, 당신…!”
아이릴의 눈가에 뜨거운 물기가 가득 차올랐다.
그녀는 한국 나이로 스물둘 먹은 처녀였다.
외간 남자 앞에서 몸을 드러내다니. 그녀로선 혀를 깨물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아이릴이 몸을 가리며 유선우를 노려봤다. 하지만 유선우는 시큰둥할 따름이었다.
“그러니까 직접 씻으라고. 받아.”
유선우는 태연하게 샤워기를 건네줬다. 맨몸을 봐도 그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원인은 아이릴의 유별난 정조 관념이었다.
입맞춤 이상은 무조건 결혼한 뒤에.
그녀는 그런 걸 자랑스럽게 외치는 여자였다.
최소 연인이 아니라면 어쩌다 손만 닿아도 소리를 질러대니. 유선우는 언젠가부터 아이릴을 돌처럼 보게 됐다.
“적당히 씻고 나와. 옷 가져다줄게.”
“잠깐만요.”
화장실을 나가려는 유선우를 아이릴이 제지했다.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제 몸에 뭘 한 건 아니겠죠?”
유선우가 헛웃음을 쳤다. 기껏 숨겨줬더니 하는 말이라곤. 그는 문을 열면서 지나가듯 말했다.
“이것저것 하긴 했지.”
머리통 빼고는 다 터뜨렸다.
“처, 처음이었는데….”
아이릴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유선우가 이렇게까지 타락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전에도 성격이 개판이고 무례하긴 했었다.
그래도 영웅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거늘.
이제는 사특한 기운을 쓰는 데다 여인을 희롱하기까지.
‘내가 이러려고 왔나.’
아이릴은 자괴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고개를 푹 떨구는 모습에 유선우가 킬킬거렸다.
“밖에 있을게. 이따가 얘기하자.”
할 말도, 들을 말도 아주 많았다.
유선우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화장실을 나왔다.
시간을 확인하니 이미 3시가 넘은 상태.
일차적인 뒷수습은 끝마쳤다. 대피했던 차세정도 집으로 돌려보냈고, 어떤 헌터에게선 자세한 보고를 올려달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협회 측의 요청이었다. 피곤함을 내비치니 다행히도 발목을 붙잡히진 않았다.
유선우가 가장 고역을 치렀던 건 주변인을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전화를 돌리는 것만 해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피곤해서 당장 쉬고 싶었으나 아직 일이 남아 있었다.
“옷 앞에 둔다.”
유선우는 셔츠를 화장실 앞에 놓아두곤, 거실에서 인터넷을 확인했다.
게이트 자체가 출현한 것은 오전 9시경.
6시간 정도면 소식이 퍼지기에는 차고 넘쳤다.
그리고 현재, 인터넷은 이와 관련된 화제로 도배되어 있었다. 커뮤니티 사이트는 물론, 포털사이트의 검색어마저 휩쓴 것이다.
놀랍게도 1위가 ‘유선우’였다.
확실히 반응만 보면 선물처럼 느껴졌다.
태워 먹으라고 집 앞까지 장작을 배달해줬으니.
덕분에 제대로 타오르고 있기는 했다.
‘사실 S급도 추정 상 그렇다는 거지.’
그 너머로 들어가지 않았기에 확인할 순 없었다. 애초에 던전이 아니니까 관리자가 던전 정보를 주지도 않았을 테고.
확실한 정보가 없으니 판별할 방법이라곤 게이트의 규모뿐이었다.
A급의 다섯 배는 되는 크기.
최소 S급으로 여기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타난 최초의 인간형 몬스터. 방송에 찍힌 그 무력은 경탄할 만했다. 아니, 인간의 입장에선 절망할 만했다.
걱정이 깊어질 즈음, 유선우가 승전보를 울렸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둘째치고 파장은 거대했다.
협회는 침묵했고, 정부에선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청일의 헌터 유선우가 적을 단신으로 사살했다. 그러니 안 그래도 폭등하던 가치가 정점을 찍었다.
정작 유선우는 말의 내용보다 두 단어에 집중했다.
헌터, 단신.
국가 측에서 공식으로 헌터라는 이름을 씌워준 것이었다. 게다가 홀로 활약했다는 말로 금칠을 해주기까지. 협회의 방침과는 180도 다른 행보였다.
물론 등급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그건 오로지 협회의 권한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대적으로 발표된 만큼, 협회도 이전처럼 유선우의 실적을 무시할 수는 없게 되었다.
현재, 협회장에게 남은 건 알량한 자존심뿐이었다. 그리고 유선우는 협회장이 굽히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슬슬 엎을 때도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