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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67화 (67/179)

제 67화

생일에 이래야겠냐

황당해하는 와중에도 머리는 잘만 돌아갔다. 아무래도 이번에 열린 게이트는 일방통행인 모양.

즉 아이릴은 반품이 안 되는 선물이라는 뜻이다.

전부 색욕의 지배자의 소행이었다.

유선우는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되면 방향을 수정해야만 했다. 지금 상황을 수습할 방법이 있다면 단 한 가지뿐.

‘속이면 돼.’

모조리 속인다. 헌터뿐만 아니라 시청자들까지.

아이릴에게 수없이 목숨을 구원받았지만. 종종 열 받게 굴어서 뺨도 몇 번 때렸지만. 우여곡절이 많았을 뿐이지, 괜찮은 동료였지만.

남들은 모른다.

대중이 알아야 할 것은 둘.

처음으로 나타난 인간형 몬스터.

그리고 처절하게 싸워서 승리를 거둔 젊은 헌터.

이게 진실이다.

유선우는 떨어지는 창을 붙잡았다. 자세를 다잡았다. 창끝을 들이밀자 보호막을 두른 아이릴이 달려들었다.

콰앙!

다시금 두 색깔의 파도가 겹쳤다. 방금과는 궤를 달리하는 규모. 마력이 신성력을 잡아먹고, 잡아먹힌다.

비주얼은 챙겼다. 이제는 다음 스텝이다.

유선우가 마나를 끌어 올렸다. 마력에 냉기가 섞인다. 마나가 가세하자 검기의 파도가 응고되기 시작했다. 샛노란 장막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이런 간악한 자 같으니…!”

사이한 기운을 감지한 아이릴이 목청을 울렸다. 얼어붙은 검기가 그녀에게 덮쳐든다. 상성의 우위는 명백하다. 그녀는 별수 없이 거리를 벌렸다.

아이릴이 피를 마실 기세로 입술을 짓씹었다. 이단의 힘에 물러섰음이 부끄러웠기에. 자존심과 신심이 쿡쿡 아려왔다.

“라비에 그라시아.”

나지막한 음성이 흘렀다. 유선우의 발아래에서 빛의 작살이 솟구쳤다. 수십의 작살이 연달아 튀어나오며 그의 추격을 방해했다.

유선우는 정면을 뚫지 않고 발로 공중을 밟았다. 창에 마나를 불어넣자 표면이 얼음으로 뒤덮였다. 그는 적당히 힘을 불어넣어, 창을 던졌다.

쐐애액!

아이릴이 눈을 부릅뜨며 몸을 비틀었다. 벼락같이 내달린 창이 그녀의 팔을 꿰뚫었다. 완벽히 피해내진 못했으나 충분한 선방이다. 그녀는 유선우의 무위를 익히 알고 있었다.

“으, 으으…!”

고통보단 불쾌감이 짙은 신음. 아이릴은 더럽다는 표정으로 창을 뽑아냈다. 냉기의 마나가 닿자 혐오감과 함께 살결에 오돌토돌 소름이 돋았다.

유선우의 눈빛에도 만족감은 없었다. 복부를 뚫어 땅에 처박을 셈이었건만. 팔에 난 구멍 따윈 의미가 없다. 창이 뽑히자마자 메워졌으니까.

“아오, 이래서 맘에 안 들어. 바퀴벌레 같으니.”

“바, 바퀴벌레라고 부르지 말라고요!”

빽 소리친 아이릴이 무어라 중얼거렸다. 속박의 영창에 신성력이 반응했다. 금색 사슬이 유선우의 팔다리를 묶으려 들었다.

아이릴은 결과를 확인하지도 않았다. 단 1초라도 벌 수 있다면 행운일 터다.

그녀가 쥔 망치가 부풀었다. 비대해진 망치를 내려찍으면서 입을 쉴 새 없이 여닫는다.

쿠웅!

망치가 떨어지자 땅이 격하게 흔들렸다. 아스팔트가 갈라진 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왔다. 빛은 촉수처럼 꿈틀거리며 사방으로 쏘아졌다.

헌터들은 대경실색하며 더욱 거리를 벌렸다. 미처 피하지 못해 부상을 입은 이가 속출했다. 몇 년간 몬스터와 굴러먹은 베테랑에게도 천재지변이나 다름없었다.

박아연은 손이 꿰뚫렸음에도 고통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하염없이 유선우의 등을 바라볼 뿐.

그녀가 알기로 유선우가 지금껏 고전한 상대는 없었다. 그 소피아마저도 생채기 하나 없이 쓰러뜨리지 않았었나.

‘그런데 저 여자는….’

아무리 베어도, 찔러도 죽지를 않는다.

대체 어떻게 돼먹은 몸인지. 너무도 불합리하지 않은가.

박아연은 전투의 향방을 똑바로 볼 수도 없었다. 다만 유선우가 곤란해하고 있음은 알았다. 그야말로 이례적일 정도로. 그녀의 걱정은 깊어지기만 할 따름이었다.

유선우가 호신강기를 펼쳤다. 망치가 마력의 껍질을 두드린다. 몸이 흔들리며 속이 울렁거린다. 그는 손상된 호신강기를 보수하다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이걸 어쩌냐.’

지금보다 힘을 끌어낼 수는 없다. 휘말리는 헌터가 나올 테니까. 개죽음을 당할 확률이 높다.

유선우는 마력의 실을 뽑아내 창을 회수했다. 창을 가볍게 잡아챈 그가 아이릴에게 접근했다.

“이제 그만하자. 응?”

“저더러 이단을 용서하라는 말인가요?”

“용서고 나발이고. 우리 사이에 이래야겠어?”

“신앙에 개인적인 관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오….”

여전히 꽉 막힌 성격이다. 유선우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는 결국 자리를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게이트 소식이 알려졌다면 대피 범위도 확장됐을 터. 근방은 전부 한산할 것이다. 인적 없는 곳까지 끌고 가서 뺨 한 대 때려주면 되겠지.

건물이 좀 무너질 수 있겠지만… 알 바 아니다.

“야, 따라와.”

“도망가지 말아요! 정화, 정화예요!”

유선우가 도로를 가로지르고, 아이릴이 성을 내며 뒤를 따랐다.

거리가 멀어지자 게이트가 환상처럼 사라졌다.

애초에 아이릴을 위한 통로. 관리자들도 더는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유선우와 아이릴이 떠나간 뒤.

반파된 사거리는 금세 정적에 휩싸였다.

숨소리만이 울려 퍼지다,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쪼, 쫓아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박아연의 목소리였다. 대답은 한동안 들려오지 않았다. 이곳의 헌터들은 제 주제를 잘 알았다.

태반이 이도 저도 못 하고 머뭇거렸다.

이내 이성결이 침묵을 깼다.

“그래야죠. 저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유선우와 친밀한 이들은 헐떡대면서도 동조했다. 가세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갈 때였다.

장민수가 앞으로 나섰다.

“잠깐만요. 쫓아가서 뭘 어쩌실 겁니까?”

“그럼 저대로 두겠다고요?”

“아니요. 가는 건 좋습니다.”

그는 하지만, 하고 말을 덧붙였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지켜보는 것뿐입니다. 만약에라도 유선우 씨가 잘못되면… 그 여자의 동선이라도 파악할 수 있도록.”

“당신, 지금 말 다 했어요?”

불길한 발언에 박아연이 눈을 부라렸다. 장민수는 맞서듯이 낯을 찌푸렸다. 그도 원해서 뱉는 말이 아니었다.

“유선우 씨가 어째서 혼자 갔는지, 정말 모르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현실을 보십시오.”

박아연은 반박하지 못하고 입술을 떨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명약관화했다. 그녀도 억지임을 알았지만, 속이 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장민수의 음성이 무겁게 깔렸다.

“인원을 나누죠. 부상자 외에도 남으실 분은 협회에 상황 전달 부탁드립니다. 지원 요청하고, 피난 구역도 넓혀야 합니다.”

유선우의 패배. 최악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타국에의 헌터 파견 요청. 봉쇄구역의 확장.

그밖에도 해야만 하는 일은 산재해 있다.

깊은 날숨과 함께, 장민수가 발을 내디뎠다.

“전 가겠습니다. 지원자는 따라오십시오.”

사거리의 분위기는 어느덧 숙연해져 있었다.

***

콰앙!

유선우는 앞을 가로막는 벽을 몸으로 돌파했다. 공을 들여 전개한 호신강기 덕에 뚫어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아오, 머리 울려.’

그는 신음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처음의 사거리보단 좁지만 충분한 너비. 건물도 드문드문하다.

슬슬 응징할 때가 됐다.

입가를 실룩인 유선우가 발을 멈췄다. 뒤따라 아이릴도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 섰다.

“하아, 하아. 슬슬 단념했나요? 걱정할 필요 없어요. 안 아프게 해줄게요.”

아이릴이 생글거렸다. 그녀를 보는 유선우의 눈에 짜증이 일렁였다.

‘이 기회에 버릇 좀 고쳐줘야겠어.’

죽일 생각은 없다. 아이릴이 꼴통이긴 해도 여태까지 그녀에게 받은 은혜가 많다. 다만 자기 쪽에서 기어오르니 패주긴 해야겠지.

성녀가 431-9 차원에서도 한 손에 드는 강자라지만 그게 뭐라고. 유선우는 모든 강자를 짓밟고 정점에 올라선 인물이었다. 아이릴 역시도 꺾어낸 전적이 있었다.

“이빨 악물어라.”

유선우가 길게 숨을 뽑아냈다. 전신이 삐걱거린다. 흘러나오는 푸른 연기가 선명해졌다. 한 호흡에 접근한 그가 창끝을 흔들었다.

눈을 현혹하는 동작에 아이릴은 크게 몸을 던졌다. 본능에 따른 행동이었다. 탁월한 감각은 여태껏 수도 없이 그녀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이번 역시 그럴 터였다. 그래야 했다.

그러나 아이릴은 문득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시선을 떨궈 보니 가슴에 두 개의 구멍이 나 있었다.

‘대체 언제?’

보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다. 방금 동작이 페이크였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자신의 직감을 의도적으로 자극한 것일까.

솜털이 삐죽 선다. 등골에 한기가 달렸다.

‘여전하네.’

신창神槍.

그의 창끝은 머나먼 곳에서도 무뎌지지 않았다.

아이릴은 유선우의 눈을 들여다봤다.

낯익은 눈이다. 햇빛을 받아 갈색을 띤다.

낯선 눈이다. 보는 이의 가슴을 죄게 만들던 절박함이 없다. 시리도록 차갑게 불타던 독기가 없다.

사람이 다르게 보일 만큼의 변화. 하지만 싫지 않다. 절박함과 독기가 없어도 공허하지는 않다.

걱정을 덜었다. 목적을 잃었어도 그는 그였다. 다 버리고 떠나놓고 잘만 산다는 건 맘에 안 들지만.

복잡한 심경으로 웃자 유선우가 말했다.

“뭘 웃어.”

흥이 깨진 기분에 아이릴이 한숨을 흘렸다. 그녀의 입술이 벌어졌다.

“라 프리실….”

영창은 완성되지 못했다.

선혈을 머금은 창이 번쩍였다.

바람을 타고 풍겨오는 혈향이 희미하다. 멀찍이 떨어진 거리다. 그럴진대 아이릴의 가슴이 터져나갔다.

콰아아앙!

한 번의 찌르기가 폭격처럼 굉음을 냈다.

반파된 도로. 건물의 잔해. 일격이 지나가고 아이릴은 쇄골 아래의 모든 부위를 잃었다. 머리가 공중을 날았다.

머리는 지면에 닿지 않았다. 바닥을 구르기 직전에 전신이 재생되었다. 그것은 회복의 범주를 넘어, 기적과도 다름없었다.

“허억, 허어억!”

아이릴은 휘청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정신이 아득하고 시야는 불분명하다. 아니, 과하게 선명하다. 통증이 오감을 증폭시켰다.

꿈틀거리는 유선우의 팔이 보였다. 그것을 시인하자마자 아이릴이 공중으로 도약했다. 회피와 동시에 보호의 영창을 읊기 시작했다.

콰아앙!

“아으윽!”

영창은 늦었다. 복부 아래가 날아갔다.

육체의 고통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무언가가 흔들리는 감각. 이대로는 신성력마저 거덜 나고 만다.

“자, 잠깐만 기다…!”

“응. 안 돼.”

유선우는 자비 없이 창을 휘둘렀다.

세 번, 다섯 번.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그제야 그가 창끝을 내렸다.

도로에는 깊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운석이 떨어진 흔적이라도 보는 듯했다.

‘좀 심했나.’

볼을 긁적인 유선우가 창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그는 구덩이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회복을 마친 아이릴이 한복판에 널브러져 있었다.

갑주는 일격째에 산산이 조각났다. 그런데도 하얀 살결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온몸이 피로 뒤덮여서 새빨간 옷이라도 입은 것처럼 보였다.

유선우는 기절한 아이릴을 어깨에 들쳐 멨다. 그의 입에서는 나직한 한숨이 흘렀다.

“그러게 적당히 설쳤어야지. 괜히 미안하네.”

화풀이가 약간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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