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6화
생일에 이래야겠냐
경악한 강창민이 입을 떡 벌렸다.
“설마 던전 들어가게요? 진짜로?”
“던전은 생각해봐야지. 뭐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그, 그렇죠. 토벌대도 안 짜인 모양이고.”
그 말대로 협회에서도 토벌을 지시하진 않았다. A급 때도 도박이나 다름없었으니 당연한 일. 게다가 협회를 향한 여론이 암담한 수준이니 안일하게 행동할 순 없었다.
“하여튼 카메라 부탁할게.”
“엥, 제가요?”
“싫어? 전엔 잘만 하더니.
“싫은 건 아니고요. 맡겨주시면 고맙죠.”
이윽고 게이트의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때가 되어서야 유선우는 방송을 켰다. 평소와는 달리 인사조차 하지 않고 강창민에게 바통을 넘겼다.
“잘 찍어줘.”
“넵. 근데 안 도와도 돼요?”
“이게 돕는 거야, 인마.”
“그것도 그러네요. 힘내십쇼!”
유선우는 강창민의 응원을 받으며 게이트 앞으로 다가갔다.
전열에 자리 잡은 헌터는 스물 안팎.
그중에는 이지현과 장민수, 이성결도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돌처럼 딱딱했다. 아니, 강창민과 유선우 외에 모든 헌터가 그러했다.
유선우는 최선두까지 가서야 발을 멈췄다. 등을 찌르는 기백의 시선. 무거운 기대가 섞여 있는 눈빛이었다.
‘이런 것도 오랜만이네.’
위축되기는커녕 친숙하게만 다가왔다. 그는 수만의 군대의 선봉에 서던 맹장이었다.
게이트의 소음이 커지자 자리를 뜨는 헌터가 속출했다. 의지가 약한 이들이다. 걸러지고 걸러져서, 끝에는 정예만이 남았다.
그리고 게이트가 열리려 할 때.
유선우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선물을 보냈습니다.]
[잔여 시간 : 00:00:10]
“참나.”
유선우는 실소와 함께 손을 뻗었다. 손아귀에 들어오는 먹빛의 창. 철의 감촉이 선명하다.
10초, 9초. 카운트가 이어진다. 줄어드는 숫자를 바라보며 마력의 고삐를 놓았다. 유선우의 주위로 새파란 연기의 끈이 일렁였다.
숫자가 0으로 변한 순간.
새로운 메시지가 허공을 장식했다.
[익명의 관리자가 이름을 밝힙니다.]
[색욕의 지배자가 보낸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누구?”
유선우의 눈이 화등잔만치 커졌다.
평생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은 이름.
지금 이 자리에 튀어나와서는 안 되는 이름.
하지만 깊게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소음이 멎고 게이트가 단숨에 공간을 찢었다. 헌터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공간의 틈새를 주시했다.
뜻밖에도 한참이 지나도록 변화는 없었다. 흉측한 괴수는커녕 포효도 들려오지 않았다. 정적 속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렀다.
“아,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
“뭐지?”
깊은 의문이 주위에 퍼져나갔다.
유선우의 옆에 있던 장민수가 말을 걸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
유선우는 꾹 다문 입을 열지 않았다. 무엇이 나올지는 그조차 알 수 없었다. 저 게이트가 자신이 다녀온 이계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만 알 뿐.
‘이 미친년이…!’
유선우는 고개를 번쩍 들어 하늘을 올려봤다. 관리자 하나 잡을 듯한 눈빛. 곧 메시지가 떠올랐다.
[만년설의 수호자가 무릎꿇고 싹싹 빕니다!]
[사죄를 받아들이겠습니까?]
[Yes / Yes ]
‘죽여버리고 싶어!’
창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유선우가 흉흉한 안광을 내뿜을 때였다.
게이트 너머에서, 인간의 다리가 튀어나왔다.
“하아.”
한 여자가 긴 숨을 흘리며 아스팔트를 밟았다.
하양 일색의 기다란 의복, 짙은 파란색의 눈. 갈색 머리카락은 종아리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아무리 봐도 특이한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인간과 똑닮은 외형. 그것이 되레 이질적이었다.
‘뭐지?’
장민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계를 굳혔다. 드래곤이라도 나올 것이라 예상했건만. 정작 여자의 모습은 흉측하기는커녕 신성함마저 감돌았다.
이토록 인간에 가까운 몬스터는 처음이었다.
아니, 애초에 몬스터라고 할 수 있을까.
‘혹시 말이 통한다면….’
현재 인류의 숙원이나 마찬가지인 문제.
게이트에 대해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장민수가 손바닥에 땀을 쥐었다.
그때 여자가 제 손으로 코와 입을 가렸다.
“숨이 턱턱 막히네요.”
바다색 눈동자가 느긋하게 굴러간다. 시선으 자연스레 선두에 있던 유선우에게 닿았다.
여자의 뺨이 경련하듯 움찔거렸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여자는 주위의 헌터들을 살펴보곤 인상을 찡그렸다.
그들의 안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힘.
사이한 기운이 그녀의 심기를 거슬렀다.
“이, 이, 이……!”
이내 이까지 바득바득 갈기 시작했다. 급격한 변화에 헌터들의 경계심이 짙어졌다.
묘한 대치 중에, 돌연 여자가 목 놓아 외쳤다.
“이단자들 같으니! 모조리 화형입니다!”
소리친 여자가 두 팔을 벌렸다. 그녀의 몸에서 찬란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가장 먼저 대응한 것은 유선우였다.
“하지 마, 미친년아!”
고함과 함께 칼날의 폭풍이 몰아쳤다. 사나운 격류에 여자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살의에 노출된 여자의 반응은 단출했다. 달아나지도 않고 손을 내밀 뿐.
카앙!
황금색의 빛이 그녀의 몸을 둘러쌌다. 두께가 종잇장만큼이나 얇았으나, 창끝은 막에 금조차 내지 못했다.
뒤이어 푸른 검기가 막을 강타했다. 맹렬하게 물어뜯는 기세에 막이 서서히 깨져갔다.
끝에는 실낱같은 검기만이 남아 여자의 팔을 베어냈다.
핏물이 튀었으나 의미는 없었다. 환상이었다는 듯이 상처가 곧바로 아물었다.
기이한 현상에도 여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녀에겐 당연하기까지 한 일이었다. 고통이야 있었지만, 그녀는 당당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선우. 오랜만이에요.”
“닥쳐. 아무 말도 하지 마.”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다, 당신 보러 온 건 아니지만.”
새침한 모습이 진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유선우는 흐뭇해하기는커녕 윽박지를 따름이었다.
“닥치라고, 미친년아! 싸우는 척해!”
싸우는 척이라니.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선우를 지그시 바라보던 그녀는 문득 무언가를 감지했다.
유선우의 안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힘.
마력과는 다르다. 가져선 안 될 이질적인 기운.
자세히 볼 것도 없이 이단의 흔적이었다.
그녀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당신. 타락했군요.”
“뭐?”
“아브나바 님의 사도로서 간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정화해드리도록 하지요.”
여자의 손에 빛무리가 모여들었다. 빛은 머지않아 거대한 십자가를 빚어냈다. 아브나바가 차원에 종교를 만들 때, 엔라가 건넸던 조언. 그중 하나가 십자가였다.
십자가를 쥔 여자가 싸늘하게 뱉었다.
“그리고 저, 미친년 아니거든요. 성녀 모욕죄예요.”
교회의 성녀, 아이릴이 이교의 배척에 나섰다.
그녀가 발을 높이 들어 올렸다. 옷 사이로 드러난 얇디얇은 다리. 발을 구르자 굉음과 함께 아스팔트가 갈라졌다.
지축이 흔들린다. 발을 도로에 파묻어 몸을 지탱한 아이릴이 십자가를 휘둘렀다.
“아브나바 님. 지금 한 놈 보내겠습니다!”
“보내면 안 되지!”
유선우는 외치면서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십자가의 궤적에 따라 불어오는 강풍. 묵직한 소리를 통해 실린 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창을 옆으로 비스듬히 눕힌다. 미끄러지듯이 공격을 흘려낸다. 그대로 주도권을 틀어잡으려는 순간,
“유선우 씨, 물러나세요!”
뒤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헌터들이 유의미한 도움을 줄 수는 없을 터. 하지만 호흡을 맞춘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아무리 급해도 방송은 신경 써야지.
빠르게 판단한 유선우가 뒤로 땅을 박찼다. 멀어지자마자 하늘에서부터 빛의 화살이 쏟아졌다. 청일 A급 헌터, 조승우의 능력이었다.
뒤따라 맹공이 퍼부어진다. 아이릴은 십자가를 지면에 꽂았다.
화아아악!
광채와 함께 허공에 투명한 벽이 나타났다. 벽은 모든 공격을 간단하게 막아냈다.
마나라는 힘이 상성 측에서 우위일지언정 실력의 차이가 나기 마련. 뚫어내기엔 양은 물론이고 질적으로도 한참 모자랐다.
아이릴이 손짓하자 벽의 형태가 바뀌었다. 길쭉한 원기둥이 되어 그녀를 감싼다. 빛의 기둥 속에서, 그녀가 십자가를 붙잡고 무릎 꿇었다.
“라 에스타 투르비라….”
아이릴이 떨기라도 하듯이 입술을 달싹였다. 어릴 적부터 성녀로 살아온 그녀의 영창은 기예에 가까웠다.
유선우도 익히 알고 있는 재주였다. 내버려 뒀다가는 실제로 누군가가 화형당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유선우가 몸을 던졌다. 창끝에 어린 맺힌 검기가 고밀도로 압축되었다.
꽈아아앙!
충돌과 함께 기둥이 무너져내린다. 그러고도 창은 기세를 잃지 않았다. 쏘아진 창이 아이릴의 가슴을 꿰뚫었다.
“커흑!”
아이릴은 피를 토하면서도 입을 멈추지 않았다. 유선우가 입안에 주먹을 박아넣기 직전,
“리브라 루 페로 페스토.”
영창이 완성되었다. 아이릴이 음흉하게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에라이…!”
십자가가 녹아내린다. 노란빛의 물결이 아이릴의 온몸을 휘감았다.
유선우가 창을 내질러봤으나 통하지 않았다. 어느새 나타난 길쭉한 망치가 창대를 밀어냈다.
섬광이 멎는다. 가라앉은 빛 속에서 아이릴의 몸이 드러났다.
뚫린 가슴은 핏자국도 없이 멀쩡했다. 그녀는 흰색의 갑주에 둘러싸여 있었다.
“얌전히 정화되세요.”
노란색으로 물든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났다. 아이릴은 계속되는 창격을 간단하게 받아쳤다. 그녀는 고향에서도 손꼽히는 근접전의 달인이었다.
창과 망치가 맞닿을 때마다 충격파가 퍼졌다. 파랗고 노란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뒤섞였다. 마력과 신성력의 충돌이었다.
“저게 무슨….”
헌터들은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전투의 여파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고되었다.
충격만으로도 땅거죽이 뒤집히는데 어떻게 끼어들 수 있을까. 인간이 자아내는 광경이라곤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멍하니 바라보던 장민수가 이를 악물었다.
“유선우 씨, 가세하겠습니다!”
“남들이나 잘 챙겨요! 죽는 사람 없게!”
그리 말하는 유선우의 얼굴엔 땀이 가득했다. 깔끔하던 옷은 바람에 찢겨 넝마가 되어 있었다.
장민수는 주먹을 움켜쥔 채 몸을 떨었다. 울컥해질 정도로 고결한 희생정신. 그는 끝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둘의 전투에 도움이 될 거라는 자신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됐으니까 빨리!”
유선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는 아이릴과의 친분을 절대로 알리고 싶지 않았다.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년이랑 아는 사이다?
그런 소문이 퍼지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빼박 빌런이잖아!’
여태까지의 행보마저도 재평가되고 말리라.
본래는 기득권에 맞서는 소신 있는 젊은이.
좀 바꿔 말하면 협회장을 끌어내리려는 간사한 새끼다.
가장 큰 문제는 소피아의 사건.
‘소피아를 습격한 범인과 유선우가 공범이 아닐까?’ 반드시 이딴 소리가 나올 터다.
아이릴을 구슬려 치료한다 해도 다를 바는 없다. 세상엔 뒤틀린 사람이 썩어 넘친다. 주작이라는 소리가 나오면 끝이다.
정황상 물러날 구석도 없다.
범인의 시체는 없지, CCTV도 부서졌지.
하필이면 습격 날에 평소와 다른 시간에 찾아갔었다. 결과적으론 행운이었지만 수상쩍어 보일 수밖에 없다.
‘킹리적 갓심이야.’
자칫하다간 범세계적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그래서는 별수 없이 431-9 차원에서 여생을 보내게 되리라.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 노리진 않았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무서울 지경이다. 색욕의 지배자의 집념이.
‘아니, 잠깐만.’
유선우는 게이트를 힐끔 곁눈질했다. 아이릴이 넘어온 통로. 431-9 차원으로 이어지는 문.
아마 관리자 두 년이 짜고 쳤겠지. 언제부터 꾸미고 있던 일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돌이킬 수단은 존재한다.
‘다시 집어넣자.’
유선우가 창을 하늘 높게 집어던졌다. 뜬금없는 행동에 아이릴이 주춤거렸다,
틈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찰나의 순간. 그러나 유선우에게는 충분했다. 그가 우악스레 뻗은 손이 아이릴의 멱살을 붙잡았다.
“꺄악!”
듣기 좋은 비명이다. 유선우는 속으로 꺼지라고 외치며 아이릴을 던져버렸다. 게이트를 향해 일직선으로.
그러자,
퍽!
아이릴의 몸이 게이트에 부딪혔다. 어이없는 광경에 유선우가 말을 잃었다.
‘가지가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