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화
피습
당황하는 차에 김광수의 몸에서 수많은 가시가 돋아났다. 유선우는 가볍게 발을 굴러 물러섰다.
“허억, 허억!”
김광수가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휘청거리면서도 도주를 시도했으나,
푸욱!
“끄으아아악!”
네 자루로 갈라진 창이 동시에 사지를 꿰었다. 반쯤 무너진 벽에 핏물이 튀었다. 유선우는 테러 때처럼 코앞에서 놓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너 맞잖아, 이 새끼야. 대답해.”
도망을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김광수는 한참이나 가쁜 호흡을 토해냈다. 이내 그의 입가가 휘어졌다.
“오, 오랜만입니다. 유선우 씨.”
김광수의 사지에서 마나가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회복이라도 하려는 듯 상처에 휘감긴다. 하지만 깊게 박힌 창을 밀어내지는 못했다.
“아파 죽겠습니다. 하.”
“시키는 말만 해. 네가 왜 여기 있어?”
“오히려 제가 묻고 싶지 말입니다. 왜 벌써부터 오셨습니까? 아직 오전….”
다시금 살이 뚫리는 소리가 흘렀다. 검기를 두른 손이 김광수의 허벅지를 찔렀다. 목놓아 지르는 비명을 들으며 유선우가 말했다.
“딱 두 개 묻는다. 왜 여기 있는지부터 읊어.”
대답은 곧장 돌아오지 않았다. 김광수가 폭소를 터뜨렸다. 미치광이의 웃음이었다.
“아…. 뒤지게 세네, 진짜. 알면서 왜 묻습니까? 저 여자 만나러 왔지.”
김광수의 시선은 밖을 향하고 있었다. 제법 먼 거리였지만 소피아의 모습은 눈에 띄었다.
“왜.”
“제가 좀 팬이라서 말입니다.”
김광수는 이번엔 왼쪽 눈알을 잃었다. 유선우의 손이 눈가를 통째로 도려냈다. 극심한 고통에도 놈은 기절조차 하지 않았다.
“다시.”
“흐, 어흐흐…. 오히려 왜 가만히 둘 거라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딱 봐도 기회인데.”
“다음. 언제부터 대리자였지?”
“아, 그렇게 부릅니까? 처음 알았네.”
김광수는 능청스럽게 말하곤 숨을 골랐다. 딱히 숨겨야 하는 정보도 아니었다.
“그 오크 던전에서 돌아온 뒤였죠, 아마.”
입가에 선명한 조소가 드리워진다.
“욕 좀 먹었다고 대뜸 일 그만둘 리가 있나.”
“…….”
“그걸 대체 왜 믿는지 이해가 안 되더랍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데.”
겁도 없는지 침까지 튀기면서 비웃는다. 김광수는 말을 거듭할수록 들뜨는 기색이었다. 반대로 유선우의 시선은 무기질적으로 변해갔다.
“그거 아십니까? 전에 몇 번 PC방 같이 가지 않았습니까. 그날 제가 뭐 했는지….”
“이제 됐어.”
유선우는 싸늘하게 내뱉고 손바닥을 펼쳤다. 투박한 손이 김광수의 머리를 쥐었다.
콰직!
그대로 힘을 가하자 머리통이 터져나갔다. 사정은 두지 않았다.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지인이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직접 손을 썼음에도 유선우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저 진작 못 알아본 자신이 한심할 따름. 그보다는 소피아가 걱정되어 눈을 돌리려 했다.
츠츠츠.
김광수의 시신이 잿더미로 변하기 시작했다. 핏물이 연기로 화하고 옷가지마저 사라졌다.
유선우가 눈살을 찌푸리자 뜻밖의 정보가 내려왔다.
[만년설의 수호자가 관리자의 권능이라고 말합니다.]
“몰라. 관심 없어. 네가 못 막아?”
5초가 지나도록 반응은 없었다. 잠시간의 지연. 그 자체가 답이나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더 흐르고서야 메시지가 나타났다.
[만년설의 수호자가 해당 관리자의 격이 손상되었음을 알립니다.]
화제의 탈선. 명백한 부정의 표현이다.
짜증을 내려던 유선우는 순간 눈을 빛냈다.
‘손상?’
김광수가 뭐라고 그만큼 싸고도는지는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고. 그러나 손상이라는 말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보았다.
예상치도 못했던 가능성.
유선우는 상황도 새까맣게 잊고 희열에 젖었다.
“관리자도 죽기는 한다, 이 소리 아니야.”
과한 비약일 수도 있다.
하지만 타격은 입힐 수 있다는 의미.
방금보다도 긴 침묵 끝에, 답이 돌아왔다.
[만년설의 수호자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유선우는 우두커니 서서 입가를 씰룩였다. 김광수의 시체는 이미 사라졌다. 그의 머릿속에서도.
오래간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숨을 골랐다. 어찌 되었건 지금은 소피아를 우선해야 할 때.
“다 비키세요.”
마력이 깃든 말에 인파가 저 알아서 물러섰다. 유선우는 구경꾼들을 곁눈질하곤 내심 혀를 찼다. 심지어 폰을 들이대는 정신병자도 있었다. 그는 혐오감을 억누르고 소피아의 상태를 살폈다.
“후우, 후우….”
아직도 떨리는 몸, 가쁜 호흡.
아무리 봐도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내 말 들려요? 말하지 말고 눈만 살짝 떠봐요.”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정신을 잃지는 않은 모양. 유선우는 안심하는 동시에 의문을 느꼈다.
‘아무리 약해졌어도 이건 아닌데.’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썩어도 준치라. 소피아가 쇠약해졌다 한들 김광수의 수준이 훨씬 낮다.
‘해봤자 창민이 정도였지.’
직접 머리까지 터뜨렸는데 잘못 봤을 리가 없다. 그런데 소피아가 저주에 저항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도 관리자의 소행일까.
‘저주 쪽으로 힘을 실어준 건가.’
대체 어떤 놈인지 김광수에게 꽂힌 모양이다. 이후엔 잘만 유도하면 관리자까지 끌어낼 수 있으리라.
“아까 말한 대로 마나 절대 쓰지 마시고요. 또… 하, 시발.”
유선우는 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의 장기는 싸움뿐이었다. 저주나 치유에 대해선 문외한에 가까웠다.
스마트폰을 꺼내 김정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의 간격이 유독 길게 느껴진다. 짜증이 치밀어 구경꾼들에게 소리쳤다.
“가만히 보지만 말고 아무나 불러와요! 병원에 치유 능력자가 하나도 없어?”
“제, 제가 보겠습니다!”
인파 속에서 한 남자가 뛰쳐나왔다. 남자는 주름 없는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부탁합니다. 외상이라도 치료해주세요.”
그리 말하자 남자가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이 소피아에게 닿은 순간, 전화가 연결됐다.
- 예. 무슨….
“여기 원주 정인대학병원이거든요? 최대한 빨리 힐러 불러주세요.”
- 유선우 씨?
“바로 보낼 수 있는 사람 보내주시고. 협회든 어디든 제일 괜찮은 힐러도 찾아주세요.”
다급한 말에 김정수의 목소리도 심각해졌다.
-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소피아 씨가 습격당했어요. 돈 몇백억이든 낼 테니까 와달라고 전해주세요.”
공수표를 던졌으나 부담은 없다. 어차피 소피아가 낼 돈이니.
- …알겠습니다. 원주 쪽에 바로 연락 돌리도록 하죠.
“최대한 서둘러주세요. 끊을게요.”
용건을 마치고 폰을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남자의 치유가 먹혀들고 있는 것일까. 소피아의 표정은 미세하게 느슨해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네.’
한참을 쳐다보던 유선우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먹구름이 드리워진 우중충한 날씨.
찬 빗방울이 얼굴의 선을 타며 흘러내린다.
그의 머릿속에 많은 얼굴이 지나쳐갔다.
일부는 흐릿한 윤곽만이 그려질 뿐. 하지만 몇몇은 이목구비와 더불어 작은 점마저도 선명했다. 그중에는 손수 묘비를 세워준 이도 있었다.
“하.”
뱉은 한숨이 입김으로 변해 떠다녔다.
***
“우웨에엑!”
비좁은 골목길.
김광수는 전봇대에 몸을 지탱하며 피를 토했다. 흩뿌려지는 피의 색은 검붉었다.
“하… 뒤지게 아파.”
김광수는 맹렬한 통증에 신음을 흘렸다. 사지에서 느껴지는 환상통. 마치 날을 세워 신경을 도려내는 듯했다. 곤죽이 되었던 머리는 더했다.
“죽겠다.”
토해낸 피 웅덩이에 주저앉았다. 발가벗은 몸이 더러워짐에도 개의치 않고 방금의 일을 회상했다.
‘운도 지지리도 없지.’
김광수는 나흘간 숨죽인 채 병원을 살펴봤다. 결행 시각을 정하기 위함이었다.
관리자는 병원의 위치를 알려줬으나, 유선우를 감시하지는 못했다. 다른 관리자의 비호를 받고 있다나 뭐라나. 자칫하다 걸리면 죽도 밥도 안 된다고.
그러니 스스로 알아봐야 했다. 지켜본 결과 유선우는 오후에만 병원을 드나들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 패턴이 어긋날 줄이야. 소피아가 완전히 회복하기 전에 과감히 결행했건만 이 꼴이다.
‘진짜 죽는 줄 알았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은 실패하진 않았다는 것. 모아둔 경험치를 전부 털어서 산 스크롤을 찢었으니, 제값은 톡톡히 해줄 터다.
“상점.”
김광수가 중얼거리자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잔고는 이미 텅텅 빈 상태. 살 수 있는 물품이라곤 에너지드링크뿐이다.
[활력수를 구매하시겠습니까?]
[Yes / No]
구매함과 동시에 나타난 용무늬가 새겨진 병. 반은 마시고, 반은 머리에 끼얹었다. 차가운 감각에 고통이 조금 가셨다. 김광수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보상은 언제 줍니까? 레벨 좀 올려야겠는데.”
혼잣말에 대답하듯 메시지가 허공을 장식했다.
[유희에 탐닉하는 자가 목표는 살아있다고 말합니다.]
즉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 김광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가 “스킬창” 하고 말하자 다른 문구가 떠올랐다.
‘이 고생하고 고통 내성밖에 안 올랐네.’
훑어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의 발소리가 빗속에서 울려 퍼졌다.
“저, 저기요. 괜찮으세요?”
김광수가 고개를 돌렸다. 30대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손에는 우산, 왼손에는 종량제 봉투. 흔한 주부의 모습이다.
돌연히 사라져도 아무 일 없을 사람이다. 동네에는 조금 소란이 생기겠지만 그뿐. 죽여도 상관없지만, 굳이 죽일 이유가 없는 사람인데…….
‘아니, 아니지.’
김광수는 내심 혀를 찼다. 자신이 나체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여자 옷 입기는 좀 변태 같은데.
***
소피아는 문득 지독한 추위를 느꼈다. 외부가 아닌 체내에서 한기가 몰아쳤다. 귀와 볼 대신에 뼈가 시렸다.
“하아, 하아….”
숨소리가 쇠 긁는 소리를 닮아 칼칼하다. 추위와는 반대로 몸은 흠뻑 젖어 있었다. 축축한 옷이 살에 달라붙어 불쾌감이 부풀었다.
“일어났어요?”
이제는 완전히 귀에 익어버린 목소리. 다만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어조가 온화했다.
“여기, 어디예요?”
“서울이에요. 청일 본사에 있는 병실.”
“…병원인 줄 알았어요.”
“어지간한 병원보단 훨씬 시설 좋더라고요. 헌터 클랜은 다 이런가?”
유선우가 소피아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뺨이 불덩이처럼 뜨겁다. 추위에 몸이 스스로 열을 내고 있음이라. 그러나 내부에 앉은 한기가 걷힐 리가 없어, 체력만 소진될 뿐이다.
소피아는 유선우의 손에 얼굴을 비볐다. 단단한 감촉이 안심감을 안겨줬다.
“고마워요. 여기서 죽겠구나 싶었거든요.”
유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입원하지 않았더라면 습격을 받지도 않았을 터다.
그렇다고 해서 사죄할 생각도 없었다. 제 발로 한국에 와서, 제 의지로 싸운 결과니까. 애당초 김광수를 놓고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우스울 따름이다.
“지금도 죽을 것 같긴 하지만요. 너무 추워. 추운 건 질색인데.”
“말 많이 하지 마세요.”
“심심하잖아요. 오늘 며칠이죠?”
“8일이요. 하루밖에 안 지났어요.”
“하루나 지난 거겠죠.”
소피아가 장난스레 대꾸했다. 덧없는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그려졌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됐어요?”
유선우는 잠시 멈칫거렸다. 이내 딱딱한 목소리로 사실을 말했다.
“미안해요. 못 죽였어요.”
“와, 살벌하다.”
작은 웃음이 피었다. 소피아가 유선우의 손등을 매만졌다.
“미안하긴. 차라리 다행이죠.”
“네?”
“제가 직접 죽일 거예요. 억울할 뻔했어.”
유선우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듣도 보도 못한 허접한테 얻어맞았으니 화날 법도 하지. 평소에 자신감 넘치는 소피아가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했어요. 미국에 유명한 힐러 있다던데. 내일이나 모레쯤 그쪽으로 가게 될 거예요.”
“당신은요?”
“저는 여기 있어야죠. 가족분들도 곧 오실 거고.”
소피아의 눈빛이 짙은 불안감을 띠었다. 충격을 받긴 했는지 전의 당당하던 모습과는 판이했다.
“왜 그렇게 봐요? 금방 괜찮아질 텐데.”
유선우는 말하면서도 큰 기대를 품지 않았다.
아마도, 회복은 바라기 힘들 것이다.
치유계 능력자의 비율은 상당히 저조하다. 그중에서 뛰어나다고 한들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다.
‘어떻게 힐러가 이렇게 없어.’
431-9 차원에선 썩어 넘치는 게 힐러였다. 교회의 세력이 워낙 강성했기 때문이다.
‘대주교, 아니. 주교 둘이나 셋 정도면 충분한데.’
성녀까지 갈 필요도 없다. 하지만 알기로 지구에 신성력 사용자는 전무했다.
골머리를 앓는 차에 미약한 악력이 느껴졌다.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되나요?”
“네, 안 돼요. 치료받아야죠.”
“왜 치료받으러 미국까지 가야 하죠?”
“그럼 이쪽으로 부르겠다고요? 올지 모르겠네. 자존심 더럽게 센 양반이라던데.”
“선우.”
나지막이 부른 소피아가 싱긋거렸다.
“돈이면 세상일은 대부분 해결돼요.”
옳은 소리였다.
다음날 치유 분야의 일인자인 리암 올드만이 학눅을 찾았다. 최대한 은밀히 와달라는 말에도 군말 없이 응하기까지. 이 정도 일은 ‘대부분’이라는 범주에 속했다.
병실로 들어가는 리암의 발걸음은 퍽 당당했다.
‘남는 장사지.’
입이 떡 벌어지는 거금.
무엇보다 젊은 S급 헌터 둘과의 인연.
한 명은 비공식이라고 하나 의미 없는 수식어다. 그러니 꼬장꼬장한 성격에도 발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30분도 지나지 않아 리암은 후회했다. 그는 참담한 소식을 전해야만 했다.
1개월.
리암이 진단한 소피아의 수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