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화
소피아
- 빨리 카메라 꺼요! 방송 끝났어!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온 음성이 동굴의 벽을 타고 울렸다. 카메라가 멀찍이 떨어져 있음에도 음량이 상당했다.
“오지게 세네, 진짜.”
동굴 안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남자의 차림은 후줄근했다.
칙칙한 쥐색 후드티와 줄 두 개가 새겨진 바지.
마지막으로 거멓게 때가 탄 운동화.
남자의 발밑엔 누군가의 손이 꿈틀대고 있었다.
“방금 보셨습니까? 아주 번쩍번쩍 쾅쾅! 이게 어딜 봐서 사람이야. 그냥 괴물 새끼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게 신경에 거슬렸는지 남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가 담배를 끄듯이 아래에 깔린 손을 거칠게 짓밟았다.
“끄으윽…!”
“그 좀비 나오는 드라마 있잖아요. 거기 첫 화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데, 아십니까?”
“살려, 허억!”
“사람이 물어보면 대답을 해야지. 그게 예의입니다. 엄청 뻔한 말이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뉘앙스가 기억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태평한 모습이 도리어 괴기스러웠다.
아저씨라 불린 사내, 성종철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성종철의 눈앞에는 시체가 가득했다.
그에게는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같은 토벌대로서 오래간 손발을 맞춰온 동료들.
익숙해야 할 터인데, 지금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전부 핏기없이 창백한 얼굴이었으므로. 초점 없이 흐린 눈동자엔 이성이 깃들어 있지 않았다.
성종철은 보기가 괴로워 눈마저 질끈 감았다. 터지는 울음을 집어삼키기가 어려웠다.
콰직!
“끄아아악!”
남자가 뒤꿈치로 성종철의 손을 내리찍었다. 그가 다시 한번 목청을 울렸다.
“대답하라니까. 말이 말 같지 않습니까?”
“죄송, 죄송합니다. 흐으윽….”
반항할 의지조차 없는지 성종철은 땅바닥에 이마를 문질러댔다. 실금까지 하는 꼬락서니에 남자가 혀를 찼다.
“씁. 재미없게.”
남자는 발을 치우곤 고개를 돌렸다. 바라본 곳에는 한 헌터의 시체가 서 있었다. 목에 새겨진 칼자국만 제외하면 상태가 양호했다.
남자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시체가 제 발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으아, 으, 흐으으으…….”
발소리를 들은 성종철이 실성한 듯이 흐느꼈다.
그는 달아나기는커녕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두 다리가 진작에 잘려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시체에게 처리를 맡기고 폰을 바라봤다.
“아, 뭐야. 방송 꺼졌네.”
기껏 후원하려 했더니. 돈을 준대도 안 받아 처먹겠단다. 남자가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이었다.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es / No]
돌연히 떠오른 메시지에 남자가 헛웃음을 쳤다. 안 봐도 내용을 알 듯했다.
“저걸 제가 무슨 수로 잡습니까?”
불평하면서도 손은 Yes 버튼을 향해 움직였다. 힘을 건네준 관리자의 말을 거슬러서 좋을 게 있을까. 있으나 마나 한 선택권이다.
버튼을 누르자 퀘스트의 내용이 나타났다.
[S급 헌터, 소피아 테일러를 암살하라!]
[상세 내용 : 소피아 테일러는 마나의 무리한 사용으로 크게 쇠약해져 있습니다. 당신과 극상성의 힘을 지닌 그녀를 제거한다면, 숙원을 달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보상 : Exp 70.000]
“오?”
남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제거라는 점은 똑같았으나 목표가 달랐다.
남자는 머릿속으로 주판을 튀겼다. 방금 B급 헌터를 위시한 토벌대를 처리하고 얻은 경험치가 고작 3천이다. 7만이면 보상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다.
문제는 가능할지 어떨지.
S급 헌터는 지금으로선 꺾을 수 없는 괴물이다. 방금 방송을 통해 확실하게 깨달았다.
하지만.
‘쇠약해졌다고.’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도 마지막은 썩 미묘했다. 부상이야 금방 회복하겠으나 능력 사용의 반동이라면…….
결론을 내린 남자가 혀를 찼다.
‘팬이었는데. 아쉽네.’
***
유선우와 소피아의 일전이 끝난 후.
인터넷에는 말 그대로 불이 붙었다.
A급 던전 때와도 비교할 수 없는 열기였다.
사실 어찌 보면 예정되어 있던 일이었다.
S급 헌터들이 공식적으로 겨룬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햇병아리 시절의 기록이야 남아 있지만, 완숙해지기 이전의 실력을 비교해봐야 의미는 없다.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카더라만 난무하던 상황.
그런 때에 소피아의 패배는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 국뽕 터졌다 KIA ㅋㅋㅋㅋㅋㅋㅋ
아직도 빤스 축축하네 ㅎㄷㄷ
윾선우 발린다던 누렁이들 다 어디 갔누?
얜 그냥 다음 분기 S급 예약이다
청일 클랜장 ㄹㅇ 하루 세 번씩 그랜절해야 됨
┕ 협회 : 본 건은 공식 기록에 남지 않아서......
┕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웃을 얘기가 아님.
┕ 협회장 참교육 ㄱㄴㅇ?
┕ 윾선우라면 킹능성 있음. 노빠꾸자너
- 근데 유선우 쓰레기 아님?
여자를 그렇게 때리냐
진짜 인성 되바라진 새끼;
┕ 와 이걸 깐다고? 너도 대단한 새끼다ㅋㅋ
┕ 원래 한국인은 한국에서 제일 까임
한국인들이 국뽕에 취해 있을 때.
해외에서는 뒤늦게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 저 한국인 헌터 말인데.
왜 여태까지 몰랐던 거지?
보통 S급 달면 국가에서 공지하잖아.
작년에 중국에서도 한참 떠들어 댔었고.
그런데 저 헌터는 아무리 찾아봐도 뮤튜브 채널밖에 나오지를 않아.
내가 이름을 잘못 검색한 건가?
┕ 한국에서 감춰뒀던 게 아닐까?
┕ 한국 능관부에서 유를 싫어한다더라.
그래서 소피아가 트윗으로 경고 날렸던 거고.
평가를 미루고 있다는 말도 들었어.
그들의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영어 좀 한다고 자부하는 한국인들이 직접 핫산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21세기 정보화 시대.
유선우의 행보가 세계로 퍼지는 건 금방이었다.
- 정리해보면 이거네.
1. 유가 A급 던전을 공략해서 실력을 입증했다.
2. 기관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
이건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어. 누가 추가 좀 해줘.
3. 소피아가 스카웃하려고 한국에 찾아갔다.
4. 실력 좀 보려 했는데 유가 이겨버렸다? :(
틀린 거 없지?
┕ 5. 유가 소피아 누드를 봤다!
┕ 6. 유가 미국으로 온다 :D
소피아에 대해선 불쌍하다는 의견이 태반이었다.
S급 헌터들은 모두가 휘황찬란한 실적을 가지고 있어, 자국에서 그들의 이미지는 불가침의 영역에 가깝다. 협회장이 여태 강짜를 부릴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게다가 소피아가 유선우를 스카웃하려 애썼다는 정황도 있으니. 패배한 축구선수들처럼 뭇매를 맞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하루가 지나고.
유선우는 깨어나자마자 한숨부터 쉬었다.
‘뒈지게 피곤해.’
간만에 싸움다운 싸움을 해서인지 전신이 물 먹인 솜처럼 무거웠다. 한참이나 꿈틀거리다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선물을 보냈습니다.]
[잔여 시간 : 14일]
‘아, 맞다.’
불과 어제 본 메시지였는데 까먹고 있었다. 관리자의 얼굴을 봤다면 기억이 났을 터. 하지만 이번엔 불려가는 일 없이 숙면을 취했다.
‘당일까지 잠적할 것 같은데.’
이후 전개를 쉽사리 예상할 수 있다. “선물은 맘에 들었느냐” 하면서 의기양양하게 웃겠지. 그때가 오면 솔직하게 고맙다고 말해줄 예정이다.
돌연 무언가가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의식하고 나서야 팔에 온기가 닿고 있음을 깨달았다.
“뭐야.”
고개를 돌리자 한 쌍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소피아의 푸른 눈이 유선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 잤어?”
“별로요. 피곤하네.”
유선우는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차림새부터 살폈다. 다행히도 옷은 잘 입고 있었다. 안도감에 괜스레 한숨이 나왔다. 기억조차 없는데 뒷감당을 해야 한다면 불합리하지 않은가.
다음으론 소피아의 차림을 살폈다. 줄무늬가 그어진 촌스러운 옷. 환자복을 보니 어제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전투 후에 유선우는 곧바로 던전을 정리했다.
소피아의 부상은 힐러 덕에 금세 나았다. 그런데 어째선지 깨어나지를 않아, 호들갑을 떨며 병원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유선우는 침대 옆을 지키다 잠들었다. 누워 있는 것은 소피아의 소행일 터. 덕분에 편하게 자기는 했다.
“몸 괜찮아요?”
예의 반 걱정 반으로 묻자 소피아가 도리질했다.
“으으응. 힘들어 죽을 것 같아. 못 일어나겠어.”
“이젠 그냥 반말하시네.”
“싫어요? 우리 사이에.”
“이기고 진 사이죠. 저는 생채기도 안 났는데.”
“……짜증 나.”
소피아가 부루퉁한 낯으로 팔을 찰싹 쳤다. 장난스러워 보여도 분하기는 한 듯했다.
“이렇게 될 줄은 진짜 몰랐어요.”
“전 알았는데. 머리 좋은 줄 알았더니 아닌가?”
“와, 얄미운 거 봐.”
숨결이 유선우의 얼굴에 닿았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많은 정보가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 높은 체온. 경련하는 속눈썹. 힘들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다.
“누나, 그거 알아요?”
“뭘요?”
“입 냄새 오져요, 지금.”
장난기 담백하게 빼고 진심만을 담아서 말했다. 소피아가 쓰러져 있던 시간이 원체 길었어야지. 침 냄새가 고약하다.
분위기 다 깨는 말에 소피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선우 혹시 고자예요?”
“아니, 진짜로 난다니까.”
“하아아아.”
얼굴에 끼얹어지는 뜨거운 입김. 유선우는 피곤함도 잊고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의 정색한 표정을 본 소피아가 머쓱하게 웃었다.
“그, 그렇게 심한가?”
“거의 하루를 처잤는데 당연히 심하지. 지가 무슨 엘프인 줄 아나.”
“그냥 튕기는 줄 알았지….”
“업어다 주고 간병까지 해줬더니만. 은혜를 이렇게 갚아요?”
듣다 보니 그녀도 기가 찼다.
“제 팔 부러뜨려놓고 할 소리예요? 진짜로 죽이려 했으면서!”
“그건 피차일반이죠. 마지막에 안 막았으면 나 납골당도 못 갔어.”
“피치일반?”
소피아는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국어가 능숙해도 모르는 단어 정도는 있었다.
“쌤쌤이라고요.”
“쌤쌤이 뭐예요?”
“세임 세임.”
“아, 세임 세임.”
싱거운 웃음이 흘렀다. 수척해진 안색 탓일까. 유선우에겐 소피아의 미소가 덧없어 보였다.
잡담이 끊기고 정적이 앉았다.
분위기가 어색해 자리를 비키려는 때였다.
“유선우 씨.”
나직하게 부른 소피아가 팔을 붙잡아왔다. 유선우는 침묵을 유지한 채 시선만 맞췄다.
어떤 얘기를 꺼내올지는 대강 알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는 예상 그대로의 말이 튀어나왔다.
“미국으로 올 생각은 없나요?”
“네. 전혀.”
유선우로서는 고민할 필요도 없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의 단호함이 소피아에겐 미련하게만 느껴졌다.
“왜죠? 이곳이 고향이라서?”
“굳이 말하자면 그렇겠죠.”
“이해가 안 돼요. 부당한 대우까지 받으면서 한국에 붙어 있는 이유가 고작 그런 거라니.”
공격적인 어투에도 유선우는 귀담아들었다.
자신을 영입함으로 소피아가 얻어낼 이익. 그런 것을 따진 계산적인 말이었지만, 기저에는 안타깝다는 감정도 깔려 있었다. 그게 가식이 아님은 훤히 알고 있었다.
“뭐 하러 이 좁은 곳에서 편협한 기관이랑 기 싸움해가면서 고생하죠?”
“딱히 고생하고 있진 않은데.”
“어쨌든 괜한 수고는 맞잖아요. 말 돌리지 말고 솔직하게 대답해줬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뭐, 애국심이 걸리나요?”
유선우는 볼을 긁적거렸다. 애국심은 개뿔도 없었다.
“그건 아니고요.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냥 조금 멀리 이사 간다고 생각하면 돼요. 능관부가 아니라 저희 집안 지원만 받아도 여기보단 훨씬 나을 거예요.”
꺼낼 변명이라면 몇 있었다.
예를 들어 가족. 이를테면 언어.
다만 소피아가 납득하지는 않을 듯해, 솔직하게 속내를 밝혔다.
“말했다시피 고향이니까. 그게 다예요.”
“그게 애국심이랑 뭐가 다르죠?”
“나라에는 별로 관심 없어요. 땅이 중요한 거지.”
“아니, 그러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기회를 버린다는 게….”
“저한텐 고작이 아니에요.”
유선우가 싸늘한 어조로 내뱉었다. 이내 정반대로 온화하게 웃기 시작했다.
“익숙한 걸 보면 안심이 돼요. 걷다 보면 내가 여기 있구나, 하는 소속감도 들고.”
“무슨 소리예요?”
“백날 설명해봤자 모를걸요. 하여튼 전 더 이상 새로운 걸 받아들이고 싶지가 않아요.”
“그런 것치곤 하는 일이 다 파격적이던데요.”
협회와 대립하는 것부터가 그렇다.
유선우의 행동은 전혀 보수적이지 않았다.
그는 말 그대로 패기로 똘똘 뭉친 젊은이였다.
하지만 유선우의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게 협회는 ‘새로운 것’이란 범주에 속했으므로, 부수는 행위에 있어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부숴버릴 생각도 없지만.
“파격적이라. 음.”
유선우는 잠시간 말을 골랐다.
“몇 년 동안 인터넷이나 신문 다 끊고 집에만 박혀 있다 나온다고 생각해 봐요.”
“난 상상력이 좋은 편은 아니에요.”
소피아가 뚱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진지한 대화 중에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게 느껴진 탓이다. 그나마 화를 내지 않은 건 유선우가 속내를 털어놓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지가 않아. 그냥 무슨 이야기 속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이죠.”
“…….”
소피아는 침묵한 채로 고민을 거듭했다. 몇 번을 곱씹어 봐도 그녀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것처럼 유선우가 직관적으로 설명했다.
“현실감이 별로 안 들어. 그러니까 깽판 치는 데 망설이지를 않는다 이거예요.”
“협회도 그렇고요?”
“네. 열 받게 구니까 싸워야죠. 병먹금은 저랑 안 맞아요.”
“변먹금?”
생소한 용어에 소피아가 의문을 표했다.
변먹금이라니, 어감이 좀 더러웠다.
“병신한테 먹이 금지라고요. 똥은 피하라는 말이죠. 근데 전 열 받으면 안 피하고, 그냥….”
“그냥?”
유선우가 씨익 웃었다.
“때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