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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59화 (59/179)

제 59화

소피아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 2시.

유선우는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을 몸소 체감하고 있었다.

차의 좌석이야 침대만큼이나 편안했다. 김정수가 최대한 신경을 써서 지원해준 차이기 때문. 게다가 청일의 힐러 둘이 각각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시트는 푹신하고 운전도 알아서 해주고.

다 좋은데, 문제는 소피아의 시선이었다.

‘부담스럽게 왜 이래.’

이동하는 내내 눈을 떼지 않는다. 온몸에 구멍을 뚫을 기세라 체라도 할 지경. 견디다 못한 유선우가 결국 입을 열었다.

“할 말 있으세요?”

“아무것도요.”

“그럼 앞 좀 보시지.”

“닳는 것도 아닌데 괜찮잖아요.”

퉁명스레 뱉은 말에 뻔뻔한 대답이 돌아왔다.

“닳게 생겼는데…. 목 안 아프신가.”

“지금 걱정해주는 거예요? 고마워라.”

“무슨 말을 못 하겠네.”

“잘생겨서 보는 건데. 안 되나요?”

“그냥 맘대로 하세요.”

“이미 그러고 있어요.”

“아, 네.”

뚱하게 대꾸하니 소피아가 키득키득 웃었다. 반항하는 고양이나 사춘기 애라도 보는 것처럼. 유선우의 입매가 더욱 일그러졌다.

“선우 씨. 몇 살이에요?”

“스물셋이요. 만으로는 21살. 말 안 했었나.”

“와, 되게 어리다. 전 스물여섯이에요. 만으로.”

“다행이네요.”

폭력을 쓰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었다는 의미다. 몇 살로 보이냐고 물으면 때릴 생각이었으니까.

“뭐가요?”

“아무것도요.”

“재미없어.”

소피아가 툴툴거리면서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잠시뿐이었다. 금세 또 방긋 웃더니 검지로 유선우를 쿡쿡 찌르기 시작했다.

“선우 씨, 선우 씨.”

“왜요 또.”

“누나라고 불러 봐요.”

“누나, 조용히 좀 하시죠.”

“와, 처음 들어봤어! 반말해도 돼?”

“벌써 하고 계신데요. 그리고 하지 마세요.”

단호하게 거절하자 소피아가 히죽거렸다.

“반말하면 싫어?”

“별로 좋진 않네요.”

“음, 그럼 생각해볼게.”

“성격 진짜….”

질색하던 유선우는 문득 기시감을 잡아챘다. 이계에서 만났던 황족 중 하나와 비슷한 성격. 차이점은 때려도 사형당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이후로도 소피아의 재잘거림은 끊이질 않았다.

괜히 말을 걸었나 싶어 후회하기를 한참.

오랜 주행 끝에 차가 통제구역에 들어섰다.

도착한 지역은 원주.

통제구역을 지난 뒤에는 인적이 보이지 않았다.

본래라면 담당 헌터가 돌아다녀야 할 터. 하지만 게이트 앞에 다다를 때까지도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사람이 없네요?”

소피아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그녀는 어느새 존댓말과 반말을 멋대로 바꿔가며 쓰고 있었다.

“제가 말해뒀어요. 없는 게 편하니까. 이쪽이 저희 클랜 담당 구역이라서 그냥 비워주더라고요.”

“그랬구나. 얼마나 기다려야 될까요?”

“글쎄요. 적어도 1시간은 걸리겠죠.”

유선우가 하품하며 대답했다. 게이트는 아직도 잠잠했다. 분석에 따르면 빨라도 5시는 넘어야 열린다나. 상당히 이르게 온 감이 있다.

“그러면 선우 씨, 우리 뭐라도 먹을까요?”

“아니요. 싸울 땐 굶는 게 버릇이라.”

“나랑 똑같네. 심심한데 얘기나 더 해요.”

시답잖은 잡담을 떠들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게이트에서 불쾌한 소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우, 언제 들어도 기분 더럽네.”

“우리 진짜 잘 맞는 것 같아.”

소피아의 말에 운전석에 앉은 힐러, 오경석이 움찔거렸다.

‘그럼 저랑도 잘 맞으시겠습니다.’

목구멍까지 튀어나온 말을 애써 억눌렀다. 오경석도 게이트 소리가 거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경석은 준비해온 장비들을 꺼냈다. 드론 카메라와 노트북. 그는 힐러 겸 운전기사 겸 카메라맨으로 이곳에 와 있었다.

방송은 둘이 동시에 하기로 말을 맞춰뒀다. 외국인 시청자야 소피아 쪽에 몰리겠지만, 중요한 것은 본인 채널이 아니라 전체 시청자의 수였다.

방송을 시작하면서 소피아가 물었다.

“나오는 몬스터는 누가 처리할래요?”

“맡길게요. 귀찮아.”

“앞으로 누나라 부르면 해줄게요.”

“그러시든가.”

“진짜죠?”

“알았으니까 일단 내려요.”

넷은 미리 말해뒀던 대로 행동을 개시했다.

유선우는 오경석과. 소피아는 또 다른 힐러 겸 카메라맨 천명수와 합을 맞춰 방송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유선우입니다.”

평소와 똑같은 멘트로 막을 열었다. 홍보의 효과인지 시청자 수가 빠르게 다섯 자리를 돌파했다.

- 이걸 진짜 하네ㅋㅋ

저장된 후원금은 충분한가?

- 총알 준비해뒀습니다 충성충성^^7

- 지면,,, 망신 지대로다,,, 이,,,기어검술이야~~

유선우는 설렘을 감추고 자연스럽게 진행했다.

옆에서는 마찬가지로 소피아가 영어를 떠들었다.

둘 사이에는 대화가 거의 오가지 않았다. 소통한답시고 통역하면서 얘기해봤자 복잡해질 뿐이니까. 긴장감을 연출하기 위해서도 말은 줄이는 편이 좋았다.

수만의 인원이 게이트가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카메라를 통해 흘러 들어가는 게이트의 소음.

그것은 흡사 전장의 북소리처럼 시청자들의 흥분을 고조시켰다.

15분이 즈음이 지났을 때. 게이트가 열렸다.

키에에엑!

찢어진 공간에서 나타난 몬스터는 고블린이었다. 근육이 발달한 홉고블린과, 지팡이를 쥔 고블린 주술사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후딱 잡아주세요.”

유선우의 말에 소피아가 발을 내디뎠다. 그녀가 쥔 검에 광채가 어렸다. 유물처럼 낡은 검에서는 신성함마저 감돌았다.

백색으로 물든 검이 허공에 선을 그렸다. 넘실거리는 빛무리가 고블린들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멎자 소피아가 먼지라도 털듯이 검을 휘둘렀다. 묻지도 않은 핏물 대신, 빛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갈까요.”

소피아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녀의 앞에는 고블린의 뼛조각조차 떨어져 있지 않았다.

다음 웨이브가 몰려오기도 전.

유선우와 소피아는 힐러 둘을 대동한 채 게이트를 넘었다.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브룩스 평원]

- 던전 난이도 : C+ Rank

- 클리어 목표 : 고블린의 대부족 소탕

- 클리어 조건 : 1. 던전 내 고블린 제거 2. 모든 네임드 고블린 처치

잔여 입장 시간 : 00:14:35

소피아는 입장하자마자 빛을 뿜어냈다. 벌레 쫓듯 고블린들을 처리한 그녀가 주변을 살폈다.

키가 작은 풀이 가득한 평원.

공기는 상쾌하고, 사방은 탁 트여 있다.

만족했는지 소피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잘 골랐네요.”

유선우도 같은 감상을 품었다. 청일 직원들이 유능하기는 한 모양. 김정수에게 감사할 일이 또 하나 생겼다.

그들은 악영향을 우려해 게이트에서 멀어졌다.

카메라맨 둘까지 멀찍이 떨어진 뒤.

평원 한복판에서, 유선우와 소피아는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유선우는 팔찌를 창으로 변형시켰다. 취향에 맞는 두께와 길이. 여태 조정을 해온 덕에 이상적인 수준을 맞출 수 있었다.

팔찌가 변하는 모습에 소피아가 눈을 빛냈다.

“혹시 그거 팔 생각 없어요? 편해 보이는데.”

“얘가 싫어해서요.”

“치. 그럼 어쩔 수 없고.”

정말로 욕심이 났는지 아쉬워하는 낌새다. 유선우가 피식거리며 웃었다.

“슬슬 시작하죠.”

“음… 그러기 전에 내기 하나 해요, 우리.”

“내기요?”

“이긴 쪽 말 하나 들어주기. 뻔하기는 해도 재밌잖아요.”

방금 떠올렸다는 듯 가벼운 말투. 반면에 목소리는 진지하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가.

“좀 불공평한데요.”

“자신 없나요?”

“그쪽이랑 달리 제가 딱히 받을 게 없는데.”

“빚 만들어둔다고 치면 되죠.”

“별로 내키지는 않네요.”

자존심 상할 법도 한데 소피아는 웃음만 지었다.

“이래 봬도 제가 인맥은 좀 돼요. 아니면 다른 방면으로도 괜찮고.”

“네?”

“가령 저랑 데이트라도 한다거나.”

“장난이에요, 진심이에요?”

“말이야 장난이지만 받아줄 의향은 있죠. 전 능력 있는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되돌릴 수 없는 상황까지 왔기 때문일까.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미국으로의 스카웃 얘기는 진실이었다.

“얼굴도 성격도 괜찮고. 완전 내 취향인데.”

“저기요, 누나. 카메라 돌고 있잖아요.”

“에이. 저 멀리 있는데 들릴 리가 없죠.”

소피아의 말대로 카메라는 꽤 먼 곳에 있었다.

가까이서 찍었다간 금세 가루가 될 테니까.

본전도 못 찾은 유선우는 괜스레 입맛을 다셨다.

“알았어요. 끝나고 딴소리나 하지 맙시다.”

“어머. 마음에 들었나 봐요?”

유선우는 대꾸하지 않고 한숨만 내쉬었다. 소피아와 어울릴 때면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다. 다른 사람 눈에는 자신이 저렇게 보일지도.

내심 반성하고는 자세를 잡았다.

‘S급이라.’

유선우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는 이번에 마나를 쓸 생각이 없었다. 핸디캡이 아닌 호승심의 발로였다.

상대는 8명뿐인 S급 헌터의 일각.

명실상부 최강자 중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런 대단한 사람을 제힘으로 꺾어내고 싶었다.

지금껏 흘린 피와 땀이 얼마나 가치가 있었는지.

남들은 알지도 못할 노력일지라도, 자신에게 증명하기를 원했다.

정적이 흘렀다. 말 없는 대화가 오갔다.

둘은 눈을 감지 않았다. 유선우가 근육을 꿈틀대면 소피아가 검을 쥔 손의 손목을 비틀었다.

고요한 공방이 섞였다.

머지않아 소피아의 호흡이 반 박자 급해졌고,

카앙!

일순간에 풍경이 뒤바뀌며 창과 검이 충돌했다.

불똥이 사납게 튀었다. 칼바람이 소피아의 뺨을 스쳤다.

‘이래야지.’

유선우는 몸이 달아오름을 느꼈다. 혹시나 싱거우면 어쩌나 싶었더니. 괜한 우려였다.

무기가 맞닿은 채로 힘을 겨룬다. 유선우의 팔이 양옆으로 흔들렸다. 검기를 두른 창날이 공간을 통째로 도려냈다.

소피아는 미련하게 막아내지 않았다. 백광이 갑옷처럼 그녀의 전신을 뒤덮었다. 그녀는 빛의 꼬리를 남기며 멀찍이 거리를 벌렸다.

도주는 아니다. 유선우의 간격에서 벗어났을 뿐. 소피아의 능력은 무식한 정면승부에 어울리지 않는다.

“조심해.”

검날에서 빛이 쏟아졌다. 원형으로 펼쳐진 백색의 커튼. 유선우의 사방을 봉한 광채가 너울너울 굽이쳤다.

‘범위 정신 나갔나.’

유선우는 불길에 휩싸인 착각마저 들었다. 칼만 들었지 거의 마법사가 아닌가. 마나 총량이 대체 어떻게 되어 먹었는지.

‘위로 피할 순 있겠지만… 뚫는 게 낫지.’

판단은 재빨랐다. 빛의 파도 속에서 마력이 요동친다. 창을 겨드랑이까지 당긴 유선우가 전방으로 달려들었다.

쐐애액!

내지른 창이 빛을 갈라냈다. 빛은 사그라질 듯이 바닥을 기었다가, 금세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나가 좋긴 하네.’

애초부터 관리자의 힘이기 때문일까. 능력으로 발현될 때만큼은 마나가 마력보다 뛰어나다.

반면에 마력의 장점은 범용성. 승기를 점하려면 접근전으로 끌고 가야 한다.

생각하는 와중에도 유선우의 발은 쉬지 않았다.

달아나는 빛의 꼬리를 맹수처럼 추격한다. 여섯으로 분열된 흑창이 소피아에게 쏘아졌다.

소피아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다섯의 창을 피해낸 순간, 우측에서 검광이 흘렀다.

소피아는 본능적으로 검을 곧추세웠다. 벼락같이 내달린 창이 검날을 후려쳤다.

“아윽!”

거센 충격에 소피아의 손바닥이 찢어졌다. 이만한 고통을 맛본 것이 얼마 만일까. 고통은 도리어 안심감을 안겨줬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옆구리가 꿰뚫렸으리라.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

식은땀이 등을 적셨다. 창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서늘하고, 핏줄기가 흐른 볼이 데인 듯이 뜨겁다.

콰드드득!

창칼이 맞부딪치고 마나와 마력이 뒤섞였다.

몰아치는 칼바람에 평원의 풀이 잘려나갔다. 지면이 갈라졌다. 뒤틀린 공기가 비명을 질렀다.

십여 합을 겨뤘을 때, 소피아의 손은 핏물로 미끈거렸다. 그녀는 힘겹게 유선우의 창을 쳐내고는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유선우는 곧바로 고개를 쳐올렸다. 올려다보자마자 뒤쫓을 생각을 버렸다.

“어우, 미친.”

빛의 검이 빗물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수백이 족히 넘는 숫자. 마나가 마르지를 않는 모양이다.

유선우는 꼬나쥔 창을 바라봤다. 페이밍이 그랬듯이 방패를 만들어 몸을 보호할 수는 있을 터. 그러나 주도권을 빼앗기고 만다.

그렇다면 잘라낼 수밖에. 유선우가 쥔 창의 길이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는 제자리에 서서 무아지경으로 단창을 휘둘렀다.

유성우처럼 떨어져 내리는 칼날을 벤다. 창의 궤적대로 검기가 쏘아진다.

쉰 번의 휘두름 후에는, 허공에 맺힌 검기가 유기적으로 얽혀 저 알아서 검을 잘라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군더더기 없이 아름답기까지 한 동작. 그것을 지켜본 소피아는 전율에 휩싸였다. 그리고 찰나의 방심은 실책으로 이어졌다.

‘뭐야. 언제 이렇게 됐지?’

공중에 짙푸른 기운이 떠다니고 있었다. 도화지에 그려 넣은 아지랑이처럼. 유선우가 흘린 검기가 잔류하는 것이었다.

끼기기긱!

검기가 일제히 날을 세웠다. 의지를 가진 듯이 빙빙 돌면서 하나로 합쳐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소용돌이가 쇳소리를 냈다.

‘뼈도 안 남겠어.’

소피아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맞설 엄두가 나지 않아 회피를 선택했다.

소용돌이가 천지를 휩쓸며 소피아를 쫓았다. 다행히도 속력이 빠르지 않았고, 그녀는 공중에서도 자유로운 운신이 가능했다.

소피아는 안도함과 동시에 실수를 깨달았다. 유선우에게서 시선을 떼어버렸음을. 알아차린 순간에, 유선우가 그녀의 눈앞에서 나타났다.

던지듯이 뻗은 창이 소피아의 옆구리를 스쳤다. 소피아가 비명을 삼켜내며 뒤로 물러났다.

“하아악!”

겨우겨우 거리를 벌린 소피아는 참았던 숨을 터뜨렸다. 벌써 두 번을 죽을 뻔했다. 그에 반해서 자신의 공격은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무력감이 소피아의 발목을 붙잡았다. 생소한 감각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녀는 무엇을 하든 두각을 드러냈고, 헌터 일에서도 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처음으로 벽에 맞닥뜨렸다.

‘애초에 능력이 뭐지?’

방송에서 보기에는 분명 빙결 관련 능력이었다. 그런데 얼음이라곤 조각조차 보이지 않는다. 한기는커녕 공기가 후끈거릴 지경이다.

‘능력이 둘인 걸까.’

어처구니없는 망상이었다. 능력을 둘이나 가진 각성자 따위는 여태까지 한 명도 없었다.

무수한 생각이 떠오르고 침잠했다.

깊은 고민 끝에 한 가지 감정만이 남았다.

모욕감이 소피아의 머리를 뜨겁게 달궜다.

유선우의 능력에 대해선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뿐.

“좋아.”

중얼거린 소피아가 등을 돌렸다. 시종일관 달아나기만 하던 그녀가 처음으로 유선우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서로의 무기가 격돌하며 불을 뿜었다.

창이 난도질하듯 소피아의 검을 쳐냈다.

일격을 막고, 이격과 삼격까지 막았다.

사격째에 검이 약간 밀려났다.

“윽…!”

손바닥에서 튄 피가 흩날리는 풀을 적셨다. 아릿한 고통에도 소피아는 검을 놓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지독한 투쟁심이 타올랐다.

그리고 여덟 번째에서, 유선우의 창이 휘었다.

뻐억!

“아으윽!”

타격음과 소피아의 비명이 뒤섞였다. 창대에 얻어맞은 팔이 덜렁거렸다. 그녀는 입술을 짓씹으며 칼자루를 고쳐잡았다.

‘이것만큼은 쓰기 싫었는데.’

소피아는 숨겨둔 패를 꺼내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뒤로 뛰고는 한계까지 숨을 들이쉬었다.

화아아악!

휘황한 섬광이 번쩍였다.

백색광은 서서히 구형으로 압축되기 시작했다.

변화가 심상찮아 유선우가 빛을 갈라냈다. 그러나 소피아의 모습은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저 빛이 흩어졌다가 도로 합쳐질 뿐이었다.

“어?”

유선우는 전투가 한창인 와중에 입을 헤 벌렸다.

사람이 어떻게 빛이 되고, 빛은 또 어떻게 때리는지. 산전수전 다 겪은 그조차도 이건 아니라 생각했다.

‘아니, 개사기잖아.’

불평한다고 사정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창의 궤적에서 벗어난 빛이 다시 모여들었다.

위험을 직감한 유선우가 황급히 땅을 박찼다.

도망치게 두지 않겠다는 듯 구체가 평원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속도로.

‘별 미친….’

유선우는 마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가속에 가속을 더했다. 달리면서도 발을 묶기 위해 검기의 다발을 남겼다.

그러나 시간 벌이조차 되지 못했다. 광채는 우회하지도 않고 무식하게 검기의 벽을 돌파했다.

빛이 팔에 닿기 직전, 유선우는 마력으로 호신강기를 펼쳤다. 부딪히자 호신강기가 처참하게 찢어졌지만, 궤적을 조금이나마 틀어낼 수 있었다.

‘큰일 날 뻔했네.’

빛은 어느새 시야 끝까지 달려가, 다시 되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와 정면으로 대치한 유선우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익숙한 자세를 잡는다. 초식이라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단순한 찌르기. 수없이 반복함으로써 갈고닦은 동작.

유선우가 다리를 뻗었다. 그의 몸이 삐걱거렸다. 마력을 한계까지 기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창과 빛이 격돌하려는 순간.

“응?”

돌연 구체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점차 희미해지더니, 전력이 동난 등불처럼 맥이 없어졌다.

유선우는 마력을 가라앉히고 창을 내팽개쳤다. 이내 구체가 힘없이 그의 품으로 들어왔다.

“저기요?”

빛이 사라지자 소피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필이면 발가벗은 채로.

땀으로 흠뻑 젖은 나신이 팔 안에 안겨들었다.

“누, 누나?”

“마….”

“마?”

“말 걸지 마. 죽을 것 같아…….”

입조차 열기 힘든지 발음이 어눌하다.

유선우는 황당해하다가도 쩌렁쩌렁 외쳤다.

“빨리 카메라 꺼요! 방송 끝났어!”

인턴이 S급 헌터를 꺾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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