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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58화 (58/179)

제 58화

소피아

‘금수저라더니 머리도 좋나 보네.’

유선우는 다시 한번 관리자의 능력을 의심했다. 이런 사람을 보냈으면 페이밍보단 잘 해냈을 텐데. 고인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불쑥 찾아와서 미안해요. 놀랐나요?”

“조금요. 화면으로 보다가 실제로 보니까 기분 이상하네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선우 씨 방송 자주 보거든요. 가끔은 후원도 하고.”

“와, 신기하네. 저도 후원 몇 번 했는데.”

“그래요? 고마워라.”

소피아가 살며시 웃음을 흘렸다. 여유가 드러나는 웃음이었다. 몇 마디 대화 끝에 유선우는 묘한 감상을 품었다.

‘돌아온 뒤로 이런 적 처음인 것 같은데.’

유선우가 겪어온 만남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되기 일쑤였다. 엿 먹으라고 욕하거나, 초면부터 등신짓 한 탓에 미쳤냐고 욕먹거나.

이만큼 훈훈한 첫 대면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자연스레 유선우의 목소리에도 온기가 어렸다.

“어쩐 일로 오셨어요? 인터넷엔 별말 없던데.”

“몰래 왔어요. 선우 씨 보려고.”

“그럼 이제 돌아가시는 거예요?”

“튕기지 말고요.”

소피아가 농담조로 말하며 거리를 좁혔다.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을 정도의 간격. 싱그러운 향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뭐야.’

유선우는 동요하는 대신에 감각을 곤두세웠다. 대뜸 칼질을 해오진 않겠지만, 소피아는 그를 위협하기에 모자람 없는 강자였다.

이내 그녀가 시선을 맞추며 용건을 꺼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제안이 하나 있어요.”

“…말씀하세요.”

“저희 있잖아요. 합방 한 번 하지 않을래요?”

“합방이요?”

뜻밖의 제안이었다.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먼지를 치워주듯 유선우의 어깨를 살살 털었다.

“합동 방송 말하는 거예요.”

“한국어 진짜 잘하시네.”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공부도 좀 더 하고 왔죠.”

유선우가 몸을 슬쩍 밀어내며 대꾸했다.

“일단 앉아서 얘기하실까요.”

“좋아요. 근데, 음….”

소피아가 박민상에게 눈치를 줬다. 병풍처럼 존재감을 죽이고 있던 박민상이 급히 폰을 꺼냈다.

“허, 허허. 갑자기 전화가 왔네요.”

실제로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남들은 타이밍이 좋다고만 생각했으나 실상은 박민상이 능력을 쓴 결과였다. 지금처럼 자리가 불편해졌을 때 유용한 능력이었다.

“선우 씨, 잘 부탁해. 제발 실례하지 말고!”

“실례라뇨. 저를 뭐로 보시고.”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럼 대화 잘 나누십쇼.”

박민상이 달려가듯 자리를 떴다. 졸지에 독대하게 된 유선우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는 어색해지기 전에 소파에 엉덩이를 깔았다.

“합방이라 하셨죠.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음… 자세히 설명할 것도 없는데. 말씀드린 그대로예요.”

“그러니까 준비해온 콘텐츠가 있으실 거 아녜요. 하다못해 먹방이라도.”

“먹방도 재밌겠다. 해볼까요?”

농담처럼 던진 예시를 소피아가 덥석 물었다. 내숭인지 어떤지 겉으론 흥미가 동한 기색이었다.

“그러려고 여기까지 오셨어요?

“그건 아니지만 뭐든 할 시간은 있어요. 한 2주 정도 한국에서 지낼 생각이라서.”

“어울려드리겠다고는 한마디도 안 했는데.”

“바람맞힐 거예요? 정말로?”

질문하면서도 진심으로 그렇게 여기지는 않는 낌새다. 거절당하지 않는다는 확신에 차 있다고나 할지. 여유를 넘어서 제멋대로인 느낌이다.

그야 실제로 거절하지는 않겠지마는.

“합방은 괜찮긴 합니다. 저야 환영할 일이죠.”

“그럼 수락하신 걸로 알면 되나요?”

“아니, 막 넘어가지 마시고. 정확히 뭐 하러 오셨냐고요.”

끈덕진 물음에 소피아가 진솔하게 답변했다.

“궁금해서 왔어요. 선우 씨가 얼마나 강한지. 저희 쪽 최대 관심사거든요.”

“‘저희’가 어딘지는 모르겠고, 별로 관심도 없고요. 그래서 뭐 저랑 싸우자고요?”

“네. 어때요?”

반문한 소피아가 새파란 눈을 반짝거렸다. 노골적으로 일렁이는 투쟁심. 그렇다면 대답은 정해져 있다. 강해진 후로 유선우는 도전을 피한 적이 없었다.

“좋아요. 좋긴 한데, 어디서요?”

“장소라면 생각해둔 게 있어요.”

“…어디 섬이라도 가지고 있으신가.”

“섬이요? 몇 있긴 하죠.”

유선우는 기가 질렸다. 자랑은커녕 아무렇지 않은 투로 긍정하니 더 어이가 없었다. 이내 소피아가 뒷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멋대로 훼손시킬 순 없고, 섬보다 훨씬 제격인 곳이 있는데.”

“어디요?”

“던전.”

“……아.”

매끄러운 발음으로 들려온 단어에 절로 머리가 끄덕여졌다. 그쪽 관리자는 억울하겠지만 무슨 상관이랴. 꼬우면 게이트 닫으라지.

“의견은 냈으니 자세한 위치 선정은 선우 씨한테 맡겨도 될까요? 핸디캡이 될지 몰라도 남의 나라 던전 돌아다니는 건 그림이 안 좋거든요.”

“그쯤이야… 음.”

유선우는 쉽사리 수긍하려다가 말을 삼켰다. 제안 자체는 맘에 들었고, 장소 물색쯤이야 김정수에게 맡기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어차피 할 거라면 이득은 더 뽑아내야지.’

유선우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반면에 겉으로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연기했다.

“좀 곤란하겠는데요.”

“왜죠? 막상 해보려니 겁이라도 먹었나요?”

“기대되긴 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개인적으로 소피아 씨 팬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가 던전에 막 드나들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서.”

“헌터인데도요? 어째서?”

“한국 헌터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세요?”

“뭐… 남들 아는 만큼은 알죠.”

헌터에게는 상식이나 다름없다. 한국이 특별한 게 아니라 여러 국가의 구조를 두루두루 익히는 것이 기본 소양이다.

“그럼 협회도 아실 텐데, 그쪽에서 저를 싫어해서 말이죠.”

“아, 그런 얘기구나.”

퇴짜라도 맞을까 전전긍긍하던 소피아가 몸에 힘을 축 풀었다. 그녀가 느긋하게 다리를 꼬며 말했다.

“알겠어요. 한 번쯤은 이용당해주죠.”

“들켰네. 괜찮으시겠어요?”

“무조건 편들어주겠다는 뜻 아니에요. 몇 마디 말만 할 뿐이지. 사실 이것도 값이 비싸지만….”

소피아가 턱을 괴고 눈웃음쳤다.

“나한테 떡이 되도록 맞을 텐데. 하나쯤은 안겨줘야죠.”

유선우는 동그랗게 뜬 눈을 끔뻑거렸다.

하도 오랜만에 듣기 때문일까. 신선하게까지 느껴지는 선언이었다.

‘나한테 저랬던 사람이 다 어떻게 됐더라.’

***

합동 방송은 하루 이틀 만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피아는 의욕이 넘쳤지만, 유선우가 일정을 미뤘기 때문이다.

유선우는 이번 합방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서로의 뮤튜브 채널 공지는 물론이고, 인생의 낭비라 생각하던 페북까지. 온갖 방식으로 홍보를 하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열기는 예상보다도 뜨거웠다. 지금껏 쌓아온 사회적인 영향력이 하찮지 않다는 증거였다.

필연적으로 주변인들에게도 알려졌고, 지금도 강창민이 달려와 호들갑을 떨어댔다.

“형, 실화예요?”

“응?”

“소피아랑 싸운다면서요. 저보고 자기나 잘하라고 해놓고서. 형도 궁금하긴 했나 봐요?”

어째선지 의기양양한 모습이다. 유선우는 마시던 음료수 캔을 비워내고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강창민을 바라봤다.

“지가 싸우자는데 어떡해?”

“에이, 싫었으면 거절하면 됐잖아요.”

“내가?”

코웃음 치자 강창민이 “그럴 리가 없죠” 하며 히죽거렸다.

“근데 어떻게 구슬렸길래 이렇게 된 거예요?”

그리 말한 강창민이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줬다.

- 소피아 테일러, “방해하지 말라” 누구를 향한 일침?

별 것 없음에도 자극적인 기사 제목.

유선우가 간섭에 대해 우려를 표한 결과였다.

정확히 협회를 겨냥하지는 않았으나 대중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불 보듯 뻔했다.

“구슬리기는. 그냥 말이 잘 통하더라고.”

“저도 말 잘 통해 보고 싶은데.”

“사인받아줄 테니까 그걸로 만족해.”

“어, 진짜죠?”

“그 정도 사이는 돼.”

실제로 유선우는 소피아와 비교적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있었다. 먹방도 찍고, 교육 방송에도 섭외하고. 주목도를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유선우의 배려이기도 했다. 타국까지 와서 기회를 던져준 사람이니 체류하는 동안 놀아주긴 할 셈이었다.

“근데 직접 말하지 왜.”

“말 걸기 어렵잖아요. 외국인이라 그런가.”

“웬만한 한국인보다 한국말 잘해.”

강창민이 끙끙거리다 말했다.

“그게 아니라… 분위기가 좀 불편해요. 쌀쌀맞은 건 아닌데, 그냥 건드리면 안 될 것 같고.”

“그래? 제멋대로긴 해도 성격 밝던데.”

“형 앞에서나 그러죠. 언제 그렇게 가까워졌어요? 그새 눈 맞았나 싶더라고요.”

유선우의 표정이 대번에 떠름해졌다. 최근에 시청자들이 자주 떠드는 화제. 방송 중에도 은근슬쩍 스킨십을 해오니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나쁘진 않은데 참….”

“나쁘면 안 되죠. 고자도 아니고.”

“아니, 방송적으로 말이야. 덕분에 불판 다됐어.”

개인적인 곤란함을 제외하면 바람직한 상황이다. 소피아의 태도가 계산적인 행동이라고 외치는 시청자가 수두룩하다.

유선우라는 인재를 미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작이라는 것. 우스갯소리로 말하던 이민이 현실성을 된 셈이다.

덕분에 헌터 갤러리는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 윾선우가 모의전 가망 없는 이유.jpg

한남은 백마에 약하다...

- 한국대생 분석) 윾선우는 일부러 깝치고 있다

17학번 한국대 사회학과 다닌다.

믿든가 말든가 ㅗ

킹국대생 시선으로 보기에 이민 각 재는 거다.

아마 실력 검증하는? 그런 식으로 진행될 거임.

그러다가 적당히 졌잘싸하고 끝나겠지

왜냐면 윾선우가 조선에 남을 이유가 없음.

협회에서 시비 거는데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킹리적 갓심 인정합니까?

┕ 졌잘싸가 뭐야

┕ 졌지만 잘 싸웠다

┕ ㅏ가 왜 ㅣ로 보이냐 음란마귀 씹ㅋㅋㅋㅋ

┕ 졌지만... ㅎㅎ?

대중들은 유선우의 패배를 점치고 있었다.

아무리 비공식적인 S급 헌터로 여겨지고 있긴 하나, 소피아에겐 역부족이라는 관점이었다.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떠들었고, 모의전 자체의 의도를 파악하려 애썼다.

유선우에게는 달가운 흐름이었다. 예상을 뒤엎으면 충격도 막대할 테니까. 소피아의 이미지가 손상될 우려가 있지만 그가 알 바는 아니었다.

‘봐주는 게 더 실례지.’

***

어느덧 11월의 셋째 날이 찾아왔다.

축제와도 같은 열기와는 반대로 사람들의 옷차림은 두꺼워졌다.

유선우는 회사에서 주말의 아침을 맞았다. 그는 집에 돌아가기 귀찮은 날이면 숙직실을 이용하고는 했다.

사원 복지가 뛰어난 회사답게 침대는 고급품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기상은 상쾌하진 못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선물을 보냈습니다.]

[잔여 시간 : 15일]

‘이게 뭐야.’

눈앞에 떠오른 의미심장한 메시지.

유선우는 눈을 비비고 세수까지 해봤지만 글자가 바뀌진 않았다. 게임의 로그가 사라지듯이 희미해져만 갈 뿐이었다.

‘선물이라니.’

쥐뿔도 기대되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감이 밀물처럼 차올랐다. 익명으로 다짜고짜 선물? 폭탄이 아니면 다행이겠다.

‘15일 뒤라면 18일인데. 뭐지?’

기억하기로 역사적인 큰일이 있던 날은 아니다. 찾아보면 있겠다만 일반 상식선에선 벗어난 일. 도대체 11월 18일에 무슨 의미가…….

‘아, 내 생일이네.’

이제야 눈치챘다. 틀을 잡으니 알맹이가 머릿속에서 알아서 채워졌다. 관리자가 서프라이즈라도 해줄 셈이겠지.

‘하기야 다른 차원 관리자는 아닐 거고.’

아까운 간섭력을 털어서 선물을 줄 리가 있나. 줄 의지가 있다고 한들 가능하진 않을 터다. 지구의 관리자가 자기 선에서 차단할 테니까.

‘하다 하다 생일선물까지 챙겨주네.’

유선우는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사이가 친밀해지니 하는 짓도 귀여워지는구나. 아침부터 흐뭇한 웃음이 비집어 나왔다.

유선우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의 발걸음은 자연히 훈련실로 향했다.

‘준비운동 좀 하자.’

예정대로 자웅을 가릴 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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