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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55화 (55/179)

제 55화

교육 방송

꿀꺽.

목울대를 출렁인 강창민이 발을 내디뎠다. 평소에 앞뒤 재지 않고 덤벼드는 그도 지금만큼은 조심스러웠다.

두 걸음을 뻗어 창을 휘두르려는 순간,

뻐억!

“억!”

채찍처럼 휘어진 효자손이 강창민의 복부를 후려쳤다. 목구멍으로 넘긴 침이 그대로 역류했다.

강창민은 이를 악물어 고통을 참아냈다.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마음가짐을 떠나서, 또 처맞고 말 테니까.

짐작대로 어느새 효자손이 눈앞까지 다가왔다. 강창민은 짐승 같은 반응속도로 창대를 세웠다.

거센 충격과 함께 깡통 치는 소리가 퍼진다. 눈썹을 찡그리고 있자니 호통이 날아들었다.

“창이 방패인 줄 알아, 이 새끼야! 부러져봐야 정신 차리지!”

고압적인 말투에도 무어라 반박할 수 없었다.

강창민은 지금, 유선우와의 격차를 몸소 느끼고 있었다.

유선우의 모습은 기괴했다. 한 손에는 종이컵이, 한 손에는 효자손이 들려 있는 상태. 그러면서도 헌터 여덟 명의 맹공을 막아내고 흘려내며, 공격까지 섞는다.

‘어이가 없네.’

심지어 컵의 내용물이 한 방울도 튀지 않았다. 처음엔 망설이던 헌터들도 차이를 실감하곤 주저 없이 능력을 사용했다.

피어오르는 불길조차 유선우의 옷깃을 스치지 못했다. 닿기도 전에 마나로 간섭받아 상쇄되어버리니. 진기명기가 따로 없었다.

시큰둥하던 시청자들의 태도도 180도 변했다. 그들은 유선우가 입을 열 때마다 후원을 퍼붓고 있었다.

- 창은... 잘 부러진다... 메모...

- 공짜영화치곤 ㅆㅅㅌㅊ

능력을 보일수록 협회를 향한 비난도 거세졌다. 이만큼 강한데도 정식 권한이 없느니 뭐니 지껄이냐면서. 협회장이 견제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간간이 튀어나왔다.

명백히 유선우가 조장한 분위기였지만, 정작 본인은 떠들지 않고 교육에만 집중했다. 그는 이성결의 등을 후려갈기며 옅게 웃었다.

‘많이 늘긴 했네.’

강창민을 꺾었다는 것부터가 성장의 증거다. 수강 기간은 짧았더라도 피지컬이 남다르니 성장도 빨랐다.

‘달리 싹수 있는 사람도 보이고.’

유선우의 시선이 한 남자에게 닿았다.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 인상은 유약해 보이는 데 반해 행동이 계산적이다.

동선은 파악해서 교묘하게 틈을 찔러오고. 다른 헌터들의 무차별한 공격에도 연계를 맞춰주고.

지금도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른 사람의 몸으로 자신을 가린다. 약삭빠르다고나 할지. 방송의 재미를 위해 일부러 다대일의 구도를 만들었는데, 뜻밖의 수확이다.

유선우는 흡족한 마음으로 교육을 이어나갔다. 칼날을 힘의 방향대로 흘려낸다. 허공에 얼음을 만들어 투사체를 막아낸다. 효자손을 망나니처럼 휘둘러 등을 긁어준다.

“어, 어! 아저씨, 조심 좀 해요!”

정신 놓고 동료의 뒤통수를 치는 놈도 막아줬다.

유선우의 매타작에는 남녀의 차별이 없었다.

엄한 데 때리지만 않도록 신경 썼을 뿐.

이곳저곳에서 꺅 소리와 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헌터들은 금세 진이 빠졌다.

유선우가 조절한 덕에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았으나, 자존심이 짓밟혀갔다.

“안 해, 안 한다고. 다 때려치워!”

“재능충 다 죽었으면…….”

머잖아 탈주하는 이들이 하나씩 나타났다. 유선우는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강압적으로 훈련을 시켜봐야 무의미한 일. 절박한 놈이 살아남는 법이다.

‘쓸 만한 놈들은 빠지지도 않지.’

이윽고 자리에는 네 명의 헌터만이 남았다. 강창민과 이성결. 그리고 눈여겨본 청년과 팔다리가 늘씬한 여성.

인원이 추려지자 유선우는 효자손을 팔찌로 되돌리고, 종이컵을 입으로 물었다.

자유로워진 양손이 벼락같이 뻗어졌다. 왼손으로는 강창민의 창끝을, 오른손으로는 이름 모를 여성의 칼날을. 검지와 엄지로 무기를 잡아내자 둘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휴식합시다.”

“…아, 네.”

칼을 쥔 여성이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한편으로 강창민은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허억, 허억!”

말할 기력도 없는지 축 늘어져 숨을 몰아쉰다. 한심스러운 모습에도 유선우는 무어라 타박하지 않았다.

‘너무 많이 팼나.’

집중적으로 괴롭힌 감이 있다. 기껏 선물해준 창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니 짜증이 나더라. 마치 창이 아니라 칼이라도 쓰는 듯했다.

‘재능은 있는데. 여러모로 아쉽네.’

내심 혀를 차고는 제자 후보들을 바라봤다.

“저기요. 두 분,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저요?”

“네. 누나랑 형이요.”

유선우가 청년과 여성을 번갈아 가리켰다. 지목된 둘 중 먼저 대답한 것은 여성이었다.

“이한솔이에요.”

“그쪽은요?”

“그… 이완용입니다.”

“이름 때문에 고생 좀 하셨겠네요.”

“네, 뭐.”

이완용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가느다란 체구와 조심스러운 행동거지. 소심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를 응시하며 유선우가 심각한 고민에 잠겼다.

‘어쩐지 통수 맞을 것 같은데.’

이름 때문인지 선입견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과한 생각임은 알지만 꺼림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유선우는 일단 조심해두기로만 하고, 넷에게 제안을 건넸다.

“혹시 앞으로도 이렇게 훈련받을 생각 있어요?”

“그야 당연….”

“너 말고. 넌 빠지면 뒤진다. 받은 값은 해야지.”

군기가 바짝 들은 강창민이 연신 끄덕거렸다. 다른 셋도 곧바로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하루에 인재 두 명을 건졌다.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하면 이후에는 대여섯 팀을 굴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방송하면서 가끔 야외활동도 해주면 되겠네.’

현재로선 꾸준한 대중 노출이 협회에 묻히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발판이 나타날 때까지의 인내.

날아오를 날을 위해 추진력을 얻어둬야만 한다.

***

유선우의 일상은 갈수록 떠들썩해졌다.

개인적으론 매일 같이 김정수와 얘기를 나눴다. 농담 따먹기를 한 것은 아니었고, 전부 일에 관련된 대화였다.

10월 19일, 금요일의 점심시간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김정수가 직접 발걸음을 옮겼다는 것. 지부장인 박민상에게는 한없이 불편한 일이었다.

지부장실, 유선우와 마주 앉은 김정수가 물었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네. 사실 계약한 것도 반의반쯤은 밥 때문이었거든요.”

“그거 다행이군요.”

김정수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하면서도 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주방장에게 인센티브를 두둑이 챙겨주기로.

“근데 오늘은 직접 오셨네요.”

“아, 예. 일단 경매 일정이 잡혔습니다.”

“오. 그래요?”

“물건이 물건인지라 인터넷으로 진행되지는 않을 거고요. 22일 오전에 시작될 예정인데, 혹시 참여하실 겁니까?”

유선우는 짧은 고민 끝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맡길게요. 귀찮아서.”

“그럼 결과만 전해드리죠.”

“다른 건 어떻게 됐어요?”

“보석은 아무래도 생소한 게 많더군요. 구매자를 찾고 있는데, 시간이 꽤 걸릴 거라 예상됩니다.”

하기야 이계의 보석이다.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지는 미지수. 원하는 사람은 많겠다만 가격 책정이 힘들겠지.

“몬스터 시체는요?”

“절차는 전부 끝났고, 근시일 내로 입금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혹시 액수가?”

유선우가 기대감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통장에 천만 원 이상을 들고 다닌 적이 없었다. 유년 시기야 유복했었으나 용돈을 백만 원씩 타서 쓰진 않았으니까.

“세금 떼고 17억가량입니다.”

“콜록! 별로 안 나올 거라시더니.”

“딱히 복잡한 상황은 아닙니다. 비싸게 쳐줄 테니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이거죠. 매입가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듣고 나니까 좀 불편한데요.”

“어차피 전리품이나 무구에 관해선 한철 외에 갈 곳도 없습니다. 그냥 성의라 보시면 됩니다.”

유선우는 그러려니 머리를 주억거렸다. 앞으로도 연을 맺게 될 테니 서로 좋게좋게 가자는 뜻. 거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거래에 관해 브리핑을 마친 뒤.

김정수가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그리고 이쪽이 본론입니다만….”

“말씀하시죠.”

“CHC에서 먼저 선을 넘었더군요.”

“…아, 저도 봤어요.”

유선우의 목소리 또한 덩달아 심각해졌다.

바로 어제의 일. 유선우의 화제로 들뜨던 포털사이트에 다른 불길이 더해졌다.

다름 아닌 최현석에 관한 화제.

일방적인 계약 파기 건에 더불어 인성 논란까지 불거지기 시작했다. 친분 있는 연예인의 폭로라는 형태로.

“여배우 A양이 누구예요? 그냥 가공인물인가?”

“그건 아니겠죠. CHC나 협회 측과 연줄이 있는 사람일 겁니다.”

“그래서 어쩌시려고요?”

김정수는 잠시간 말을 멈췄다. 안 그래도 그는 대처 방안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아예 있는 말 없는 말 다 터뜨렸으면 모르겠지만, 솔직히 애매한 상황입니다.”

계약 파기는 어떻게 포장해도 실제 상황이다.

물론 헌터 업계 관련자라면 CHC의 악명에 대해 알고 있을 터. 그러나 일반적인 대중의 지식이 그렇게까지 자세하지는 않다.

대중의 눈에는 최현석이 CHC를 걷어찼다고 보일 수밖에. 청일마저 싸잡아 비난당하는 구도다.

“일단 적극적으로 해명하긴 할 겁니다. 유선우 씨 방송 덕에 비난이 거세진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죠.”

현재 유선우의 방송에서, 최현석은 유선우의 절친이라는 포지션이다. 그들과 협회 사이의 불화를 아는 시청자들은 작금의 상황에 의문을 품고 있다.

평소의 선한 이미지와 맞물려서 적절하게 실드가 쳐진 것. 다행히도 최현석이 던전에 따라간 이유가 무색해지지는 않았다.

“합방해서 물타기 몇 번 하는 게 좋을까요?”

“너무 노골적인 편 들기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최대한 지금처럼 하시는 게 낫겠죠.”

“씁. 앞으로가 문제네요.”

김정수는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론 조작은 협회와 CHC의 장기다. 진흙탕 싸움으로 들어가면 이쪽의 타격이 훨씬 크다.

‘유선우 씨 이미지를 깎으려 하겠지.’

능력만큼은 불가침에 가까운 수준이니. 깎아내릴 수 있는 요소는 인성뿐이다.

침묵이 오간 뒤, 유선우가 한숨을 토했다.

“CHC랑 협회 쪽 커넥션 입증할만한 건 없죠?”

“있더라도 찾기는 힘들 겁니다. 그런 건 윗선에서 찾기 마련이니까요.”

“그 윗선이 나서서 개 같이 구니까 뭐 방법이 없네. 그래도 계속해서 알아봐 주세요.”

“그럴 생각입니다. 유선우 씨는 어쩌시겠습니까?”

유선우가 어깨를 으쓱였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다.

“이대로 가야죠. 어쨌든 제 몸집만 불리면 이기는 거니까.”

협회장을 찍어 누를 정도의 영향력을 갖추는 것이 승리의 조건이다. 단기전이 되느냐, 장기전이 되느냐의 문제.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리고 자료 하나 부탁드릴게요.”

“무슨 자료 말씀이신지.”

“협회랑 다른 클랜들 관계를 좀 알고 싶어서. 괜찮을까요?”

“그거라면 정리해둔 게 있습니다. 보완해서 보내드리죠.”

“다행이네요. 현석이 일은 본인이랑 조율해주시고.”

“알겠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유선우는 문득 떠오른 의문을 입에 올렸다.

“요즘 이상한 일은 없나요?”

“이상한 일이요?”

뜬구름 잡는 발언. 김정수가 반문하자 유선우가 말에 살을 붙였다.

“눈에 띄는 불법 각성자라던가 하는 놈들이요.”

“……테러 일 말씀이시군요.”

“네. 굳이 게이트가 아니더라도 좀 특출한 놈들.”

“글쎄요. 귀에 들어오는 건 딱히 없습니다.”

아직은 잠잠한가. 유선우는 안심하면서도 단단히 주의했다.

“묘하다 싶은 정보 들어오면 바로 연락 주세요. 제가 직접 조지러 갈 테니까.”

“그러도록 하죠.”

흔쾌히 대답한 것치곤 김정수는 내심 의아해하고 있었다. 큰일이기는 해도 유선우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않나 싶어서. 대리자에 대해 무지한 그로서는 당연한 의문이었다.

‘아니, 됐다.’

김정수는 복잡한 생각을 치워냈다.

맡아준다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니까.

직접 움직이겠다는 말이 무척이나 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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