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화
교육 방송
“일단은 그렇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바로 수료증을 드릴 순 없으니까요.”
박민상이 소곤거렸다. 유선우의 낯이 눈에 띄게 찌푸려졌다.
“혹시 수료증도 협회에서 내줘요?”
“아뇨, 아뇨. 클랜 권한이긴 합니다. 그런데 협회랑 아예 시비 붙지 않았습니까. 건드릴 구석 주지 않으려면 평소 이상으로 조심하셔야죠.”
“아, 이해했어요.”
김정수가 직접 내려줬다는 명예 고문의 직함.
당장 교육생 신분을 떼어줄 수는 없으니 감투를 씌워준 셈이다. 청일 전체에 영향력을 가지는 새로운 감투를.
‘케어 좋네.’
바쁜 와중에 여기까지 신경을 써주다니. 유선우가 흐뭇하게 웃자 박민상이 설명을 덧붙였다.
“형식적으로만 교육생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정식 헌터 활동은 아직 못하시겠지만, 지부 내에선 자유롭게 움직이셔도 괜찮습니다.”
“마냥 명예직인 건 아닌가 보네요. 그나저나 말씀 편하게 하세요. 하시던 대로.”
박민상이 똑바로 시선을 맞췄다. 예의상 하는 말인지 진심인지 알아보기 위함. 곧 그가 목청을 가다듬고는 멋쩍게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그, 그래. 하하, 티비 보고 어찌나 놀랐는지.”
박민상은 시시콜콜한 얘기를 한참이나 떠들었다.
지인에게서 부럽다는 전화를 받았다던가.
가족이 사인받아달라며 졸랐다던가.
말솜씨가 좋은 건지, 잘 모를 흡입력이 있었다.
유선우는 길고 긴 얘기를 전부 들은 뒤에야 지하로 내려갔다.
체력단련실에는 교육생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그새 헬스에도 익숙해졌는지 모양새가 자연스러웠다. 러닝머신을 쓰던 한강이 쪼르르 다가왔다.
“오빠, 지각했네요.”
“지부장님이랑 얘기하느라. 차세정이랑은 어떻게 됐어?”
“뭐가요?”
“주말에 만났다며.”
유선우는 차세정의 부탁을 받아 둘 사이에 다리를 놓아줬다. 한강도 흔쾌하게 받아들였고, 둘의 만남이 있었던 게 그저께의 일이었다.
“언니가 스테이크 사줬어요. 커피도 사줬고, 또….”
“그걸 다 받아먹어…?”
유선우가 떨떠름하게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들어보니 나름대로 친해진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교관님은?”
“모의전투실이요. 그냥 운동하라고만 말하고 나가시던데. 요즘 너무 막 나가시는 느낌이에요.”
“뭘 새삼스럽게. 혼자?”
한강이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그 오빠도 갔어요. 어, 강창?”
“아, 강창민. 알았어.”
유선우는 열심히 하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자리를 떴다. 모의전투실로 향하니 들었던 대로 두 남자가 보였다.
강창민과 이성결.
그들은 서로 창을 맞대고 있었다.
깡!
창대가 충돌하고 불똥이 튀었다. 밀려난 쪽은 강창민이었다. 신체 강화 계열인 이성결이 완력에서 뒤처질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성결의 창대에는 테이프 같은 것이 감겨 있었다. 강창민의 능력에 대비한 듯했다.
‘괜찮네.’
유선우가 보기에는 흡족한 장면이었다. 정정당당 엿 먹으라지. 강창민이야 열 받겠지만 전투란 무릇 상대를 빡치게 하는 쪽이 이기는 법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압도적인 차이가 나는 상대의 심기를 거스르면 낭패를 보기 마련. 뼛가루가 된 페이밍이 좋은 예다.
유선우는 둘의 대련을 말없이 지켜봤다. 그의 눈이 강창민을 포착했다.
‘하는 짓 좀 봐라.’
강창민이 옆으로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조롱인 줄 알았더니 얼굴이 꽤 심각하다. 능력까지 써가면서 무슨 개짓거리인지.
더 어이없는 점은 이성결이 현혹당했다는 거다.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려댄다. 여태까지 뭘 배웠는지 의심스럽다.
“흐읍!”
이윽고 강창민이 발을 비틀면서 창을 내질렀다. 버니합 죽어라 써놓고 하는 짓이 정면 찌르기. 대체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
이성결은 창대를 비스듬히 눕혀 가까스로 공격을 흘려냈다. 그에게는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방어마저 실패했다면 유선우에게 죽도록 맞았을 테니까.
대련은 갈수록 과열되었다.
전체적으로 강창민이 우세했지만 그의 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언제 이렇게 세졌어?’
속도는 느리고 공격도 위협적이진 않다.
하지만 방어가 뚫리질 않는다.
마지막으로 싸운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만큼이나 성장했는지. 그는 이성결이 유선우에게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지면 쪽팔리는데.’
초조함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그럴수록 강창민의 움직임은 부정확해졌다.
반면에 이성결은 빨라지고 날카로워졌다. 그는 다시 한번 무아지경의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보인다.’
생각하기에 앞서 몸이 움직인다. 창이 평소보다 친숙하게 느껴지고, 충돌음이 청아하다.
창끝이 강창민의 복부를 향해 내달렸다. 유선우는커녕 강창민보다도 느린 속도. 하지만 올곧았으며 타이밍이 완벽했다.
카앙!
어딘가에서 날아든 지탄(指彈)이 창을 튕겨냈다. 손아귀가 찢어질 듯한 반탄력에 이성결이 창을 놓쳤다.
강창민은 멍한 눈으로 자신의 복부를 내려다봤다. 하마터면 바람구멍이 뚫릴 뻔했다.
“잘하는 짓이다.”
끼어든 목소리에 둘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유선우가 태권도 사범처럼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대련하면서 왜 날붙이를 써? 그러다 골로 가지.”
“유선우 씨랑 훈련할 때도 쓰지 않았습니까.”
이성결이 받아치자 유선우가 콧방귀를 뀌었다.
“말을 잘못했네요. 허접들끼리 싸우는 데 왜 날붙이를 쓰냐는 소립니다.”
“형, 말이 너무 심한….”
“심하기는 개뿔. 약한 것도 서러운데 똑같은 것들끼리 싸우다 죽으면 안 억울해?”
강창민은 본전도 못 찾고 침묵했다. 원래는 실력 차가 제법 났었다. 그렇기에 봐주면서 싸울 수 있었으나, 이번은 확실히 과했다.
침울해하는 강창민을 두고, 유선우는 이성결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줬다.
“처음엔 때릴까 싶었는데 성과가 있긴 한가 봐요. 고생했어요.”
“아, 그렇습니까?”
이성결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유선우는 칭찬이 박한 스승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스스로도 성취가 느껴지고 있었다.
두 헌터의 얼굴에 희비가 교차했다.
그것을 보면서 유선우는 생각에 잠겼다.
던전을 드나들지 않고 영향력을 높이는 방법. 찬찬히 생각해보니 마냥 없지만은 않다.
‘교육 방송 좀 해야겠다.’
이전부터 고려해온 컨텐츠다.
아쉽지만 던전 방송은 최초 타이틀을 딴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애초에 D급이나 C급 돌아다녀서야 그다지 재미도 없다. 협회에서 자격 미달을 구실로 태클도 걸 테고.
그에 비해 교육 방송은 독특하지 않은가. 자신 외에 누가 현역 B급, A급 헌터들을 교육해줄 수 있으랴.
생각을 정리한 유선우가 말했다.
“이성결 씨. 다른 헌터들은 어디서 훈련해요?”
“바로 밑층입니다만….”
“갑시다. 오늘부턴 거기서 훈련 봐 드릴게요.”
“어, 형. 저는요?”
“넌 커피 들고 따라와. 블랙으로다가.”
강창민이 충성충성 소리를 내며 달려갔다. 그가 회사에 출근한 이유는 유선우를 만나기 위함. 잔심부름 따위에 불평할 리가 없었다.
***
“안녕하세요. 유선우입니다.”
유선우가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대고 인사했다. 스마트폰에 달린 소형 카메라가 아닌, 제대로 된 큰 놈. 회사 비품이었다.
노트북에 연결된 카메라는 모의전투실의 풍경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옹기종기 모인 아홉 명의 헌터. 이성결과 강창민을 포함한 숫자였다.
나머지 일곱 명은 한창 훈련하고 있던 헌터들이다. 유선우는 그들에게 촬영에 대한 양해를 구했고, 흔쾌한 승낙을 받아냈다.
최현석의 계정을 쓰지 않았음에도 곧바로 시청자들이 몰려들었다. 이전 스트리밍 영상에 댓글을 달아 구독자를 확보해둔 덕택이다.
- ㅎㅇㅎㅇㅎㅇ
- 뭐야뭐야 여기 어디예요?
- 여친 보여주세요^^^^
유선우는 문득 호기심이 들어 물어봤다.
“다들 직업이 뭔데 이 시간부터 들어와요? 신기하네.”
우리는... 우리느은...
- 앗, 아앗...
‘그 발언’ 조심해라
내가 뭘 했다고. 머쓱해진 유선우는 화제를 바꿔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던전 안 돌고 교육 방송 찍습니다. 게스트는 저분들이시고요. 카메라 좀.”
“예.”
C급 헌터 박성환이 카메라를 건네받았다. 저번 주부터 유선우의 팬이 된 그는 흔쾌하게 카메라맨 요청을 승낙했다.
카메라를 돌리자 헌터들의 면면이 화면에 담겼다. 유선우는 이번 방송의 취지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익숙한 얼굴도 보이시죠? 다들 저희 청일 소속 헌터예요. 제가 저분들의 훈련을 도울 겁니다.”
반응은 시원찮았다.
노잼이다, 여친 보여달라, 던전이나 가라.
이전보다 자극이 덜한 방송이니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예상대로였다.
“협회장이 그러더라고요. 정식 권한이 없으면 던전 가면 안 된다고.”
불만을 가라앉히기 어렵다면, 방향을 틀어주면 될 뿐. 거짓말도 아니니 죄책감도 없었다.
“그래서 실적으로도 안 쳐준대요. 개쉐끼들.”
문제가 될 소지가 큰 과격한 발언. 하지만 여론은 협회가 아닌 유선우에게 있었다.
- 씹ㅋㅋㅋ 오피셜이야?
협회가 협회했을 뿐
조선은 어쩔 수 없다 ㄹㅇ 그냥 이민 가자
금세 협회를 까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유선우는 공격적인 어투를 멈추고, 다른 방향으로 전환했다.
“에이, 한국 사람 아닙니까. 사람이 난 데서 자라야죠.”
우선 국뽕을 자극해주고,
“사람이 잘못한 거지 나라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정치질은 끝이다.
사실 유선우에게 애국심 따위는 없었다. 해봤자 축구 경기를 응원하는 정도일까. 5년간 타국은커녕 타 차원에서 살아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국뽕의 효과가 대단하다는 건 틀림없다. 아니나 다를까 시청자들이 “믿고 있었다구!”거리면서 장작을 태웠다.
‘딱 여기까지만.’
더 과열되면 방송 자체가 변질될 우려가 있다. 적당한 선은 지켜야지. 어차피 직접 떠들지 않아도 시청자들이 알아서 퍼뜨려줄 터다.
의심하는 시청자도 많았지만 개의치는 않았다.
‘믿든가 말든가.’
목적은 협회와 대립각을 세웠음을 밝히는 것.
이게 알려지면 협회에서 큰 움직임을 보였을 때, 대중은 받아들이기에 앞서 의심부터 하게 될 것이다.
속으로 웃은 유선우는 본격적으로 방송을 진행했다.
“하여튼 제가 이번에 청일 명예 고문이 됐어요. 명예직이긴 해도 고문은 고문이니까 일도 하려고요. 겸사겸사 방송도 하고.”
그렇게 말하고는 등을 돌려서 손뼉을 쳤다.
“아까 설명한 대로 하시면 됩니다. 창민아!”
“예!”
강창민이 유선우에게 선물 받은 창을 움켜쥐고 대답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어쨌든 가르침을 받게 될 터. 그로서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상황이었다.
유선우가 강창민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외쳤다.
“커피 가져와, 인마!”
“…아, 네.”
“타오라 했더니 왜 들고만 있어. 네가 마시게?”
“벌써 반 정도 마셨는데…. 다시 타올까요?”
“쯧. 됐어.”
유선우는 혀를 차고 컵을 받아들었다. 그는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를 변형시켰다. 손에 착 감기는 시커멓고 길쭉한 막대기. 효자손이었다.
효자손을 쭉 미끄러뜨려 길게 잡은 뒤.
벼락같이 강창민의 창대를 거세게 후려쳤다.
깡!
“악!”
강창민은 꼴사납게 창을 놓치지는 않았다. 가까스로 잡아내기는 했으나 손이 찢어질 듯했다. 그가 몸을 비틀거리고 있자 낮은 목소리가 흘렀다.
“다 들어와.”
참교육 방송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