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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52화 (52/179)

제 52화

헌터 협회장

“……못 들은 것으로 치겠습니다. 충분히 생각해보시고.”

“뭘 못 들은 것으로 쳐요? X 까라고요.”

욕설이 연달아 김한성의 귓가를 찔렀다. 김한성은 흥분하는 일 없이 한숨만 내뱉었다. 그의 눈에는 젊은이의 치기로만 보였다. 풍파를 겪고 나서야 만용을 삼가게 되리라.

“거절하시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욕심이 없는 건 아니신 듯한데, 그냥 굽히기가 싫으신 겁니까?”

“반쯤은요. 나머지 반도 알려드릴까요?”

김한성이 무언으로 끄덕거렸다. 유선우는 질질 끄는 일 없이 대답했다.

“댁이 줄 수 있는 거, 저한텐 개뿔도 의미가 없어요. 혼자서도 다 얻을 수 있으니까.”

오만하기까지 한 모습에 김한성의 한숨이 더욱 깊어졌다. 그를 보고 유선우가 피식거렸다.

“못 믿으시나 보네요.”

“유선우 씨, 충고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긴 숨소리가 테이블 위에 흘렀다.

“개인의 역량에는 한계가 있어요. 그 한계점은 상당히 낮습니다. 적어도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김한성이 한탄하듯 이어갔다.

“5년 전부터 한계가 늘어나긴 했습니다. 기존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요. 그런데 결국 개인이고, 사람입니다.”

유선우는 심드렁하게 팔짱을 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는 심산이었다. 아무런 대꾸가 없자 김한성이 자신의 미간을 쿡쿡 찔렀다.

“극단적인 예시입니다만, 아무리 잘난 헌터도 머리에 총 맞으면 죽는다, 이겁니다. 개인이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은 하나예요. 단체에 속하는 것. 큰 단체에 속할수록 영향력도 커지죠. 마지막 단계는 수장이 되는 겁니다.”

그리 말하고는 검지를 유선우 쪽으로 뻗는다.

“당신은 그렇게 될 테고요.”

“제가 협회장 자리에 앉을 거라고요?”

김한성은 말없이 긍정했다. 그는 누그러진 어조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늦어도 10년 안으로요. 이제 아시겠습니까? 이건 기회입니다. 남들은 꿈도 꾸지 못할 기회. 패기도 좋지만 기다릴 줄 알아야…….”

유선우가 헛웃음 치며 말허리를 잘랐다.

“시켜줘도 안 해요. 왜 해?”

“뭐라고요?”

“못 들은 척 좀 하지 마실래요? 안 한다고요. 협회장이 아니라 대통령 시켜준대도 안 해요.”

유선우는 진저리가 난다는 투로 말했다.

“개귀찮아.”

진심이 담긴 발언이었다. 어릴 적 맡았었던 반장조차도 귀찮아서 죽을 뻔했었는데. 몇 년이나 협회장 노릇을 하라고?

‘다 부숴버리고 말지.’

협회장의 피로에 절어버린 얼굴만 봐도 뻔하지. 수명이 10년은 줄어들 거다. 유선우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신분은 협회장이 아니라 돈 많은 백수였다.

“그리고 개인이니 뭐니 하셨는데, 변명으로밖에 안 들려요.”

“…….”

“김, 뭐였지. 아. 김한성 씨.”

유선우는 김한성을 지그시 쳐다봤다. 김한성의 낯은 어느덧 악귀처럼 찌푸려져 있었다. 이제 좀 사람 같다고 생각하며, 툭 던지듯 내뱉었다.

“자기 능력이 안 되는 걸 그딴 식으로 말하는 거. 되게 추해요.”

“…제 능력이 부족하다고요.”

김한성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꽉 쥔 손바닥이 땀으로 미끈거린다. 그가 으르렁거리듯 반박했다.

“당신도 다르진 않을 겁니다. 대중은 멋대로 기대할 거고, 이곳저곳에서 군침을 흘리겠죠.”

“실패하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녜요?”

“성공이냐 실패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S급이 괜히 S급인 것 같습니까?”

복잡한 눈빛이 유선우에게 향해졌다. 마치 타고 남은 잔불과도 같은 눈빛. 그건 세간에 알려진 협회장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성공하겠죠. 승승장구할 겁니다. 오르면 오를수록 다리가 무거워지고요. 유선우 씨는 저보다 조금 높은 계단에서 시작했을 뿐입니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유선우는 조용히 김한성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김한성은 그 시선이 너무나도 거북했다. 속이 훤히 드러난 듯한 감각. 성격부터 시작해 자신의 본질까지도 발가벗겨진 듯했다.

이윽고 유선우가 혀를 찼다.

“처음에는 좀 헷갈렸었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평범해 보였거든요. 듣던 거랑은 달리. 근데 지금 보니까 알겠네요. 진짜로 평범한 거였어.”

동정심마저 섞인 음성. 김한성은 저도 모르게 바지를 꽉 잡았다. 주름이 생기면서 허벅지의 살점마저 잡혀 아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맞춰볼까요? 어쩌다가 능력 얻어서 여기까지 온 거죠. 남들이 떠받들어 주니까 좋다고 활개 치다가, 윗사람 눈에 띄어서 한자리 얻어내고. 그때까진 좋았을 거예요.”

대답이 없다. 유선우가 옛날이야기라도 떠들 듯이 읊조렸다.

“근데 막상 해보니까 이상해. 생각하던 거랑 전혀 달라. 뇌물은 들어오지, 거절하려니 돈이 없지, 돈 없으니 클랜들이 말을 안 듣지.”

손톱이 일정한 리듬으로 유리 탁자를 때렸다. 소리가 이어질수록 유선우의 어조가 점차 연극톤으로 바뀌었다.

“점점 타협하게 됐겠죠. 눈 딱 감고서, 받아서는 안 될 걸 받았을 거예요. 그러니까 엄청 편해. 여기저기서 다 도와줘.”

근데, 하며 악센트를 넣는다.

“사람이 어디 받기만 하나요? 받았으면 줘야지. 정신 차려보니까 받은 만큼 빨대가 꽂혀 있어. 자존심 다 구겨지고, 이제 남은 건 자기가 이룬 업적밖에 없는 거죠. 틀린 거 있어요? 없죠?”

김한성은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말마따나 틀린 점은 하나도 없었다. 그로서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설을 억누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유선우는 반응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머지않아 김한성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말씀드렸을 텐데요. 당신이라고 다를 것 같습니까? 저는 제 최선을 다했습니다. 삐걱거리긴 해도 나라를 시궁창으로 만들지도 않았고요.”

“고생하셨네요. 하고 싶지도 않으셨을 건데.”

“그동안 당신은 뭘 했습니까? 5년 만에 나타나서 숟가락만 얹겠다? 속도 편하시군요. 아주 부럽습니다.”

김한성의 속이 낱낱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룩해낸 것을 보며 자위하고, 더러워진 채로 늙어가는 모습. 본인 스스로가 평가하기에 그러했다.

그러나 유선우는 어떠한가. 지금 한국은 나름대로 안정되어 있으며, 명성까지 단번에 얻어냈다. 앞서 말한 대로 시작점이 달랐다.

유선우는 아직도 젊다. 찬란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 반면 김한성에게 남은 것은 업적과 협회장이라는 위치뿐. 구정물처럼 탁한 질투가 김한성의 눈에 담겨 있었다.

무거운 공기 속에서 유선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회귀 같은 건 못하나? 할 수 있으면 저랑 한 번만 바꿔보시죠. 딱 5년만 돌아가서.”

쾅!

참다못한 김한성이 탁자를 내리쳤다. 유리 탁자가 산산이 조각나고, 그의 주먹에 파편이 박혀 피가 떨어졌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 하얀 바닥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어우, 위험하게.”

유선우는 여전히 태평했다. 그를 향해 쏘아진 파편은 얼어붙은 채로 허공에 멈춰 있었다.

김한성은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피를 닦을 생각조차 않고 유선우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네 머릿속이 훤하게 보여. 다 잘 되고 있으니 뵈는 게 없겠지. 안 그래?”

“그렇다고 치죠.”

대수롭지 않게 인정하자 김한성이 유선우의 어깨를 붙잡았다. 유선우는 멱살을 잡혔으면 쳐낼 생각이었으나 이쯤은 관대하게 참았다. 일부러 신경을 긁었으니 미안한 감정도 있었고.

“약속하지. 3개월. 3개월 안으로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거다.”

“애매하게 3개월이 뭐예요? 맘대로 하시든가.”

이죽거리는 모습에 김한성은 이를 악물었다. 당장 주먹을 휘두르고 싶었으나 참아내고 손을 떼어냈다.

협상은 결렬되었다. 김한성은 핏자국을 남기며 문밖으로 걸어갔다. 그의 등을 바라보던 유선우는 눈을 돌려 자신의 어깨를 살폈다.

터무니없는 악력이 가해진 어깨. 일반인이라면 뼈가 으스러졌겠지만 뻐근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유선우의 낯은 급속도로 굳어갔다.

“아오, 더럽게.”

옷에는 피가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얼려놓은 탁자에 대고 문지르니 핏자국이 번지기까지. 아끼는 옷인 만큼 상당히 화가 치밀었다.

한참을 닦아내다 포기하고 소파에 몸을 맡겼다. 이것으로 볼일은 전부 끝마쳤지만, 아직은 얌전히 있어야 했다.

‘나가다가 마주치면 어색하잖아.’

싸움은 언제든지 받아주겠으나 어색한 자리는 사양이다. 가만히 시간을 죽이고 있자니 다시 문이 열렸다.

들어온 인물은 김정수였다. 그의 입가에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왜 그렇게 기분 좋아 보이세요?”

“솔직히 좀 불안했었습니다. 혹하실까 봐.”

“지금은요?”

“하하. 협회장 얼굴만 봐도 답이 나오더군요.”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유선우가 히죽거리며 생색을 냈다.

“사람이 의리가 있어야죠. 대표님도 아시죠?”

“제대로 처리해드리겠습니다. 보석 대금도 하루빨리 전해드리죠.”

“역시 청일이 낫네요.”

당연하게도 유선우가 협회에 넘어가지 않은 것은 의리 때문이 아니었다. 김한성에게 말한 이유는 순전히 그럴싸한 구실. 마냥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해봤자 1할 정도일까.

나머지 9할은 단순히 귀찮을 것 같아서. 이곳저곳 싸돌아다니고 비위를 맞춘다니, 상상만 해봐도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그래도 생각하기에 따라 다른 법이지. 이런 착각은 쌓아둘수록 좋아.’

이대로 빚을 축적하면 어떻게 될까.

김정수를 지금보다 편하게 써먹을 수 있겠지.

유선우가 입꼬리를 씰룩였다.

***

“타시죠.”

“아, 고마워요.”

유선우는 청일의 비각성자 직원의 안내를 받아 차에 올라탔다. 조승우는 고급 인력인 만큼 매번 운전기사로 써먹을 수는 없었다.

시트에 등을 파묻은 채 기억을 되새겼다. 일을 끝마치는 데는 2시간도 걸리지 않았지만, 보낸 시간의 밀도는 높았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협회장의 말은 협박으로 끝나진 않을 터다. 오늘부터 유명인들의 은밀한 사건이 터져나갈지도. 그뿐만 아니라 협회에선 강남역 게이트 일을 유선우의 실적으로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다.

‘시기가 안 좋았어.’

헌터 등급의 평가는 분기마다 이루어지고, 3분기의 평가는 이미 이번 달 초에 끝났다. 4분기가 되면 대중의 관심도 지금보단 덜하리라.

‘실적은 날아갔다고 봐야 하나.’

지금부터 천천히 쌓아가도 언젠가 S급에 오르겠지만, 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A급 게이트가 흔하게 나타나진 않으니 눈에 띄는 공적을 쌓기는 어렵다.

‘관리자한테 말해서 열어달라고 하면… 이건 좀 아닌가.’

게이트를 여는 주체는 타 차원의 관리자다. 위치를 제멋대로 설정하는 것은 불가능. 유도쯤이야 할 수 있겠으나 관리자가 받아들이지 않겠지.

관리자는 따지자면 관측자인 셈이다. 정보를 얻는다는 면에선 편리해도 실질적인 도움을 구하기엔 영 시원치 않다.

‘그렇다고 이민 갈 수는 없으니.’

언어의 장벽과 더불어 인간관계까지. 현실적인 문제가 몇이나 있다. 계약도 한 마당에 국적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 아주 곤란한 상황은 아니야.’

범법자로 몰리지는 않았고, 그저 이름값이 올라갈 시기가 늦춰졌을 뿐이다.

길 위에 작은 돌부리가 생긴 정도의 문제.

무력보다는 사회적인 영향력이 중요한 시점이다.

우우웅!

문득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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