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화
헌터 협회장
“설교면 되도록 짧게 해주세요. 제가 멘탈이 좀 약해서.”
“그래 보이지는 않으십니다만…….”
손짓으로 소파에 착석을 권하고는 말을 잇는다.
“불평하진 않겠습니다. 종합적으로 보면 충분하리만치 긍정적인 상황이니까요. 하아….”
“그래 보이지는 않으신데요.”
옅게 웃은 유선우가 자리에 앉았다. 마주 앉은 김정수는 졸음을 쫓듯이 눈을 크게 떴다.
“먼저 전리품부터 정리하죠. 특별히 원하시는 판매 루트라도 있으십니까?”
“딱히 그런 건 없어요. 가능한 한 확실하고 투명하게. 기간도 빠르면 좋겠네요.”
“투명성에 대해선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최현석 씨가 그러더군요. 유선우 씨가 동의하시면 법조계 인맥의 도움을 받겠다고.”
“해주겠다는데 받아야죠.”
유선우가 흔쾌하게 수긍했다. 수임료가 공짜는 아니겠으나 구태여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청일에 내는 수수료까지 제외하고. 실수령액이 얼마쯤 나올까요?”
“그… 정말로 수수료를 받아도 괜찮은지.”
“에이, 절차 다 맡아주시는데 내야죠.”
어제 일로 여러모로 규정도 위반했을 터. 수습을 맡아주는데 뭐라도 챙겨주는 게 도리에 맞다. 김정수도 두 번 거절할 생각은 없는지 머리를 끄덕였다.
“보석은 글쎄요. 문외한인지라 말씀드리기가 힘들고, 몬스터 사체나 무구만으로도 충분한 값이 나올 겁니다.”
“어느 정도요?”
“50억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재료는 파손이 심한 게 많아도 무구는 최상에 가깝더군요. 경매의 형태로 판매할 예정입니다.”
“오우야….”
커피도 자기 돈으로 못 사 먹고 다니는데 50억이란다. 현실감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페이밍 무덤 털길 잘했어.’
손목에 껴둔 흑철 염주마저 팔고 싶어진다. 욕망 그득한 눈초리를 감지했는지 놈이 부르르 떨어댔다.
‘안 팔아, 인마.’
유선우가 입가를 들썩이며 염주를 톡 건드렸다. 혹했을 뿐이지 실제로 팔 생각은 없었다. 얼마를 받아야 할지도 감이 안 잡히고.
“경매 좋죠. 보석이랑 재료는 되도록 빨리 부탁드려요. 돈이 필요해서.”
“무슨 일이라도?”
“별 건 아니고 집 좀 구하려고요. 서울에 하나, 용인에 하나.”
뜬금없었는지 김정수의 표정에 의아함이 스쳤다. 한편으로 그의 입에선 대답이 술술 흘러나왔다.
“그러시군요. 헌터 거주구가 있는데, 그쪽으로 가시면 혜택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다만….”
“득보다는 실이 커 보이네요. 청일 전용 구역이라면 몰라도.”
“예. 피곤해지시겠죠. 온갖 클랜에 협회 인원까지 거주하고 있으니까요.”
유선우는 잠시간 입을 다물고 시선을 떨궜다. 소파 사이에 놓인 유리 탁자. 매끄러운 표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협회라.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이번에는 김정수도 고민이 필요했다. 그는 유선우의 존재가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지 이해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였다면 좀 나았겠다만….’
헌터를 관리하는 방법은 국가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미국에는 클랜이 없고, 모든 헌터가 능력자 관리부 소속으로 되어 있다. 이는 게이트 발생 초기에 정부에서 발 빠른 대응을 보인 결과다.
한편 일본은 미국과는 정반대의 구조다. 정부는 완전히 배제되어, 여러 클랜의 연합에서 중대사를 결정한다.
한국은 두 방식의 중간을 택하고 있다. 클랜이 헌터를 관리하면 협회가 클랜을 관리하는 구조.
안정적으로도 보이지만 협회장이 몰락하면 한순간에 허물어질 모래성이다. 실질적인 힘은 협회보다는 클랜에 있고, 클랜은 협회가 약해지면 언제든지 물어뜯을 것이다.
그리고 협회의 힘의 절반은 협회장. 국내 유일한 S급 헌터에게서 나온다. 유선우는 존재만으로도 협회장의 상징성을 위협하는 사람이고.
“그쪽에서 유선우 씨를 인정한다면 큰 혼란이 생기진 않을 겁니다. 당장 내년까지는 괜찮겠죠.”
“제가 협회 방침을 잘 모르는데. 인정할까요?”
“적어도 제가 보기엔 아니겠더군요. 시간이 지날수록 유선우 씨에게 힘이 실릴 테니까요.”
김정수가 장담하듯이 말했다. 뻔한 일이다. 유선우는 앞으로도 현역으로 활약하겠지만 협회장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하기야 그렇겠죠. 제가 집에서 놀고먹지 않는 이상은. 실적 쌓이면 여론도 쏠리고. 끝에는….”
“협회의 위상이 바닥으로 떨어지겠죠. 그걸 두고 보지는 않을 거고요.”
유선우는 긴가민가해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의견은 같았으나 속단하긴 이르다고 생각했다.
“좀 극단적이지 않나요? 그렇게까지 되려나.”
“됩니다. 협회장을 두고 말이 많아지겠죠. 투표로 결정된 자리도 아니고, 정부에서 임명한 것이니까요. S급 꼬리표가 정당성을 부여해줬을 뿐입니다.”
상세를 듣자 유선우도 확신을 얻었다. 그는 처음부터 이 체계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웃기긴 해요. 제일 세다고 꼭대기에 앉아 있으니. 21세기에 이게 뭔 소린가 싶기도 하고.”
클랜과 협회의 발족을 지켜보지 않은 입장에선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협회장이 멍청했다면 진작 개판이 났겠지.
언젠가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 불가피하게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면 다음 협회장은 또 어떻게 뽑을까.
“지금껏 이런 주먹구구식으로 잘도 돌아갔네요. 아니면 협회장이 너무 믿음직스러워서 발전이 더뎠던 건가. 본인은 얼마나 복잡할지.”
“이제부터 많이 달라지긴 할 겁니다. 유선우 씨의 선택에 따라서요.”
의미심장하게 말한 김정수가 스마트폰을 꺼내서 내밀었다. 화면에는 통화기록이 나타나 있었다. 기록을 보자마자 유선우가 탄성을 질렀다.
“맨 위랑 맨 밑이랑 1시간 차이도 안 나네요. 진짜 바쁘신가 보다.”
“……덕분에 말입니다. 하여튼 그런 뜻입니다.”
밑도 끝도 없었으나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액정의 한 중앙에 떠오른 발신 기록. 저장된 이름은 헌터 협회장.
“뭐래요?”
그리 묻자 김정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묘하다는 낌새다.
“알아들으셨을 텐데요. 유선우 씨를 만나고 싶다고 하더군요.”
“아니, 그러니까요. 어쩌겠대요?”
“예?”
알아듣지 못한 것은 김정수 쪽이었다. 상체를 굽힌 유선우가 답답하다는 투로 채근했다.
“언제, 어디서, 이런 거 있잖아요. 일대일로?”
“아, 최대한 빠르게 방문하라 하더군요.”
“개소리 말라 해요.”
유선우가 같잖다는 양 코웃음 쳤다. 그의 상식과는 영 맞물리지 않는 얘기였다.
“싫으십니까?”
“아니요. 만나기는 할 거예요.”
근데, 하고 말을 잇는다.
“아쉬운 쪽이 와야죠. 누구보고 오라 가라 명령한대. 정신 못 차리나?”
당돌한 발언. 김정수의 낯에 당혹감이 스쳤다. 하지만 그는 무어라 반박할 수 없었다.
‘설득력 있군.’
아쉬운 쪽은 단연코 협회다. 협회장의 이름값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잃을 게 많은 사람 아닌가. 유선우로서는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가는 편이 나을지도.
‘신기한 사람이야.’
미소를 머금은 김정수가 유선우를 응시했다. 때로는 생각 없어 보여도 실제론 이성적이며 계산인 사람이다. 넘치는 자신감 역시 상식 밖의 무력과 어울리고.
김정수는 새삼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청년은 호구 잡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처럼 대하는 게 맞겠지.’
뒤탈 없는 계산. 잡다한 편의의 제공. 그것만으로 유선우를 청일에 잡아둘 수 있다면 싼값이다.
상념에서 깨어난 김정수가 입을 열었다.
“그럼 그렇게 전해드리죠. 받아들이기는 할 겁니다. 일시와 장소는 언제가 좋으신지.”
“그야 뭐….”
유선우가 히죽거리며 유리 탁자를 두드렸다.
“지금, 여기요.”
***
헌터 협회의 협회장실.
방의 주인인 김한성은 한숨을 거듭했다. 그의 얼굴에는 생기가 없었고, 머리카락도 푸석푸석했다. 심적인 괴로움이 그를 지치게 했다.
“협회장님. 어쩌시겠습니까?”
들려온 목소리에 김한성이 머리를 들었다. 그가 앉은 소파에는 달리 두 명의 남자가 자리해 있었다.
교활한 인상의 중년과, 사무적인 태도의 장년.
김한성은 중년의 물음에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봐야지 않겠습니까.”
“그 어린놈한테 너무 휘둘리는 건 아니신지.”
“어리죠. 능력이 있으면서 어리기까지 합니다.”
“크흠….”
중년 사내도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구긴 표정을 더욱 찌푸리기만 할 뿐. 유선우를 탐탁잖게 여기는 그도 능력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CHC의 대표 장재원.
장재원은 사건이 터지자마자 협회에 줄을 댔다. 유선우에게 당한 모욕 때문이었다. 감정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실리를 따져봐도 협력자를 찾을 필요가 있었다.
“우선 회유하는 가닥으로 가야겠죠. 저희 쪽에서도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장년 사내, 신주호가 침묵을 끊었다. 협회를 후원해주는 세한 그룹 회장의 측근. 그의 눈을 유심하게 들여다본 김한성이 말을 받았다.
“권한은 있으신지요.”
“이에 대해선 회장님께 일임받았습니다. 확인해보셔도 괜찮고요.”
“뭐 하러 그럽니까. 그냥 묻어버리면 되지. 협회에서 몇 번이나 하던 일이잖습니까.”
장재원의 말에 김한성의 낯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허언도 아니었기에 굳이 변명하지도 않았다.
현 A급 헌터 장민수가 좋은 예다. 그가 이끄는 하랑 클랜이 죽을 쑤는 것은 협회의 뒷공작이 원인이었다.
협회에선 헌터나 클랜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렇기에 성장 가능성이 큰 하랑의 앞길을 막았다. 이번에는 공적을 미끼로 삼아서 장민수를 토벌대장으로 써먹기도 했고.
한국 헌터 사회엔 이와 같은 부조리가 넘쳐난다. CHC의 대표쯤 되는 인물이 모를 리가 없는 일. 시치미를 뗄 수야 있겠다만, 같은 배를 탄 지금은 우스울 뿐이다.
“아시다시피 언론이야 저희 쪽에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번에 최현석, 그놈도 같이 담가버릴 생각이고요.”
장재원의 발언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멍청한 소리다. 김한성이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인터넷도 안 보시나 봅니다.”
“예?”
“강창민이 제멋대로 떠든 탓에 대중이 눈을 부릅뜨고 있습니다. 갑자기 악성 루머가 돈다?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몇 없겠죠.”
“……그렇다고 매번 어르고 달래줄 수는 없을 거 아닙니까. 막말로 유선우한테 계속 끌려다니실 겁니까?”
하여간 똥고집은. 김한성은 속으로 욕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직접 오라고 한 게 전부입니다. 무시한 것도 아니고요. 무슨 어르고 달래고 소리가 나오는지.”
“양보하다 보면 더 건방져진다는 말입니다.”
“양보도 CHC가 아니라 저희 쪽에서 하는 겁니다. 너무 감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 멀리 보십시오.”
대화가 과열되자 신주호가 말을 끊었다.
“일단 결론부터 내야지 않겠습니까. 마음 같아선 저도 동석하고 싶습니다만…. 조건이 독대였죠.”
“당연하다면 당연한 조건입니다. 최대한 회유해보고 결과는 회장님께 직접 전해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신주호는 유감도 없다는 듯 흔쾌하게 수긍했다. 장재원은 투덜대진 않았으나 마땅찮다는 태도를 풀지도 않았다.
‘앞길이 막막하군.’
협회장도 할 일이 못 된다. 김한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