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화
주변인
용인에 도착한 뒤.
유선우와 차세정은 곧장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에게도 그녀에게도 아쉬움은 남아 있었어도, 관계에 있어서 아쉬움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락과도 마찬가지다. 자극적인 놀이도 인생을 갈아 넣다 보면 질려버리기 마련이다.
9시가 넘은 시각에 유선우는 현관문을 열었다. 거실의 전등이 어둑한 신발장을 비추고 있었다. 그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자 초조한 목소리가 흘렀다.
“늦었구나.”
“밥은 먹고 왔니?”
거실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었다.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유선우는 목이 타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먹었는데 배고프네요. 밥 있어요?”
“제육볶음 해뒀다. 알아서 데워 먹어.”
아버지가 무뚝뚝하게 말하곤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쓴웃음을 짓더니 유선우에게 다가와 몸을 이리저리 더듬었다.
“다친 데는 없고?”
“네. 전화로 그랬잖아요.”
“그냥 하는 소린 줄 알았지.”
유선우는 머쓱하게 웃다가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어요? 그, 음.”
“TV에서 떠드는 데 모를 수가 있니. 너희 회사 가고 나면 맨날 TV만 보거든.”
강남역 게이트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였다. 그 관심을 그대로 가져왔으니 시선이 유선우에게도 집중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돌연 어머니가 유선우를 꽉 끌어안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캐묻지 않고 등만 토닥였다.
그것이 의아해 유선우는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왜 아무런 말도 안 하시냐고. 대답은 간결했다.
“네 아빠가 그냥 조용히 있자더라. 다 컸다고.”
“아버지가요?”
“그래. 선혜는… 돌아오면 잘 말해둘게.”
“아뇨, 제가 해야죠.”
“전에도 싸워놓고 무슨. 꽁해 있던 거 겨우 풀렸는데 또 어색해지면 안 되지.”
유선우가 실실 웃었다. 헌터 일을 시작한다고 말했을 때도 불같이 화를 냈었지.
“알았어요.”
“배고프지? 밥 차려줄게.”
“제가 해먹을….”
“엄마가 하고 싶어서 그래. 앉아 있어.”
유선우는 멋쩍게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그는 부엌의 의자에 앉아서는 집안을 둘러봤다.
살기에 문제는 없는 집.
다만 빈말로도 풍족하다고는 할 수 없고, 무엇보다 이 동네는 위험하다. 대리자가 언제 노려올지도 모르는 일이니.
한숨이 무겁게 내리깔렸다.
‘서울 집값은 얼마쯤 하려나.’
***
피곤했는지 눕자마자 의식이 날아갔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관리자의 공간에 발을 딛고 있었다.
‘이상한 느낌이야.’
의식을 놓자마자 다른 곳에서 눈을 뜬다. 엔딩 크레딧을 보다가 도중에 다른 영화로 교체되는 기분이라고 할지. 이젠 익숙해졌지만 기묘하다는 것은 틀림없다.
“오늘은 왜? 칭찬이라도 해주려고 불렀나.”
“그, 그런 셈이지. 수고했다.”
왜 또 더듬거려. 유선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세히 보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우물쭈물하기까지 한다. 어릴 적에 과자를 훔쳐 먹었다가 걸렸던 동생처럼.
“그새 사고를 쳤다고?”
목소리가 사나워질 수밖에 없다. 유선우가 관리자와 마주 앉고 추궁하듯 시선을 맞췄다.
“딱히 일을 벌인 건 아니다.”
“그럼 일을 안 했나? 뭐였더라. 간섭력? 그것도 받았다며.”
“농땡이도 안 부렸다. 지금도 하고 있느니라.”
거짓말은 아닌지 말투가 당당하다. 한시름 놓은 유선우가 누그러진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왜 그래. 의심되게.”
“아니, 그냥 화났나 해서….”
“내가?”
끄덕끄덕. 관리자가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맥락을 알 수가 없어 유선우는 탁자에 턱을 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몰라서 묻는 건데, 왜?”
“그 아이 말이다.”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알아.”
“아까 만난 해골 있지 않으냐.”
“아, 페이밍.”
그제야 유선우가 작게 중얼거렸다. 관리자는 그가 페이밍과의 만남 탓에 고민이 많으리라 여겼고, 죄책감도 들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네가 짐작하고 있는 대로다.”
페이밍은 유선우처럼 이계에 보내져서 실패했다. 죽어서도 편히 눕지 못한, 처참하기 짝이 없는 꼴이 되어서.
선배 격인 사람의 말로를 보고 유선우의 마음이 평온할 리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관리자의 걱정과는 달리 그가 역정을 내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태평하게 콧방귀만 뀔 따름.
“그게 뭐 어때서?”
“…아무렇지도 않나? 내가 말할 입장은 아니다만 너도 그렇게 될 수 있었다. 운이 좋았을 뿐이지.”
이어진 말에 유선우의 표정에 불쾌함이 어렸다.
“운은 무슨. 그냥 내가 노력했고, 잘 났으니까 잘 된 거야. 그걸 운이라 치부하는 쪽이 훨씬 맘에 안 들어.”
“……미안.”
“그보다 운은 더럽게 없지 않았나? 동료란 놈들은 하나같이 개 같지, 동맹은 통수치지, 감금까지 당해봤지. 지금 생각해도 빡이 쳐.”
한탄할수록 관리자의 낯빛이 어둡게 변했다. 그가 그다지도 고생한 이유는 그녀에게 있었으니.
유선우도 굳이 관리자에게 마음을 쓰진 않았다. 다만 그녀에 대한 원망은 불식된 지 오래였다.
“하여튼 내가 페이밍 보고 겁먹거나 짜증 낼 필요가 없다 이거야. 뭐 하러 그래? 난 벌써 성공했고, 제대로 돌아왔는데.”
지구 꼴 보면 제대로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사족은 입안에서 삼켰다.
“너 처음 봤을 때야 화나긴 했지. 지금은 별 유감없어.”
저번에도 고민해본 주제였다. 애초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정말로 운이 좋아서 헌터가 됐을지도 모르지. 그게 아니라면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라도 들어가서 악착같이 돈을 벌었을지도.
만일 운이 나빴다면 진작 죽었을 터다. 집이 3번이나 무너졌는데 편하게 대학이나 다닐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반면에 지금은 어떤가. 고생은 지나갔다. 명성을 얻었고, 던전으로 산책만 다녀와도 돈이 벌린다. 군대도 안 가고 앞날의 걱정이라곤 사소한 것들뿐이다.
‘그래도 뭐. 얘가 저자세로 나오니까 다행이지.’
지구의 안정화를 조건으로 거래한 게 1개월 전. 그동안 유선우가 공략한 던전이라곤 둘뿐이다.
하나는 관리자를 만나기도 전에 공략했으니 실질적으론 단 하나. 그마저도 관리자의 지시를 받아서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강요받은 적도 없고. 이번 일론 도움도 받았고.
‘애증의 대상이라고 할지. 어떻게 대해야 하나 잘 모르겠단 말이야.’
감정으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성으로 판단할 뿐이다. 이렇게 관대함을 보여주면 관리자와의 친분도 긴밀해지리라. 그녀와 친해져서 나쁠 것은 없다.
‘너무 잘해주면 호구 잡힌다지만 글쎄. 내 성격은 알 테니 마냥 편하게 생각하진 못하겠지.’
빚으로 여겨주면 좋을 텐데. 그는 의미심장하게 웃고는 화제를 전환했다.
“맞다. 까먹을 뻔했네.”
“무얼 말이냐.”
“던전 있잖아. 431-9 그쪽이랑은 다르더라?”
담담하게 넘어가자 관리자의 낯이 밝아졌다. 그녀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설명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미 망한 차원이라고 보면 된다.”
“응?”
“단계별로 설명하마. 몬스터는 인간이 없어지면 동식물을 먹느니라. 그런데 원체 식욕이 왕성한 놈들이라 금세 씨가 마르지. 그럼 뭘 먹게 될 것 같으냐.”
오아시스에서의 기억이 유선우의 머리를 스쳤다.
서로 먹어치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그쯤 되면 손 쓸 도리도 없어서 간섭력이 남아돌게 된다. 손을 놓는 대신에, 다른 차원을 건드리는 것이니라.”
“근데 그게 다 네 탓이라는 거잖아. 대체 뭔 실수를 했길래 그따위로 될 수가 있지?”
“으음…….”
변명할 말이 없다는 양 고개를 푹 숙인다. 이것만큼은 커버해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거긴? 그 이상한… 이름이 뭐였지. 어디 마계? 테러 때 갔다 온 데 있잖아.”
조리 없는 질문이었음에도 관리자는 잘만 알아들었다. 그녀가 진지한 음색으로 말을 받았다.
“끝나기 직전인 차원이지. 약한 종은 멸종되고, 굶고 굶다 보면 아가미가 생긴다.”
“아가미?”
“그냥 비유다. 몸에 변화가 생긴다는 뜻이니라. 식물처럼 광합성을 할 수는 없으니 마력으로 어느 정도 영양을 보충하게 된다. 그걸로는 부족하니 자기들끼리 뜯어먹겠지만.”
“내 마력을 먹었다는 건가. 신기하네.”
위키라도 뒤져보는 기분이다. 유선우는 정보를 간결하게 정리해서 기억해뒀다.
“게이트는 왜 안 연대? 그쪽이랑 연결되면 헌터로는 절대 못 막을 텐데.”
“그래서 내가 다 막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 대단하지?”
“아, 응.”
관리자가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폈다. 침울했던 모습은 또 어디 갔는지. 아이처럼 감정 변화가 들쭉날쭉하다.
“대리자는? 위치라던가 숫자라던가.”
“그건 내가 확인하기가 좀…. 비유하자면, 그래. VPN 같은 것이다. 우회해서 접근하니 알 방도가 없지. 직접 보면 눈치는 채겠다만.”
“그래. 별로 기대도 안 했어.”
타박하진 않는다. 만회하겠답시고 삽질이라도 하면 곤란해지니까.
‘궁금했던 건 다 알아냈고.’
당장 유익한 정보는 없어도 확신은 얻었다. 한동안 게이트나 대리자 문제로 일이 터지진 않겠지. 여러 방면에서 준비할 시간은 있다.
‘창민이 좀 굴려야겠네.’
가능성은 충분한 놈이니 금세 성장할 터다. 가르치는 김에 교육 방송을 해도 흥하지 않을까.
흡족하게 웃은 유선우는 의자에 몸을 맡겼다. 그가 멀뚱멀뚱 눈만 깜빡대는 관리자에게 말했다.
“여기만 오면 배는 안 고픈데 입이 심심해진단 말이야. 라면 좀 끓여봐.”
“…어, 내가?”
“그럼 내가 끓일까?”
“내, 내가 할게. 응.”
관리자가 가스레인지와 라면 두 봉지를 꺼냈다. 자기도 먹으려는 모양이다. 냄비까지 드는 그녀를 보면서 유선우는 문득 한 가지를 떠올렸다.
“이렇게 본 지 꽤 됐는데 이름도 못 들었네.”
“듣고 싶으냐?”
주눅 들어 있던 관리자가 해맑게 웃었다. 자신에 관해서 관심을 보여줘서 기쁘다는 듯이.
꽤 보기 좋은 웃음이었는데, 미안하지만…….
“아니, 별로.”
그렇게까지 궁금하진 않았다.
***
해가 완전히 떠오르지도 않은 이른 아침.
유선우는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회사였지만 여느 때와는 달랐다. 용인 지부가 아니라 서울의 본사로 향할 예정이었다.
“조승우 씨. 또 보네요.”
“…좋은 아침입니다.”
마중을 나온 조승우는 떠름하게 인사를 받았다. 어제 일은 그의 뇌리에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돌발행동에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대표에게 전화해 한참을 횡설수설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는 내심 한숨을 쉬고 유선우의 차림을 살폈다. 오버핏 셔츠에 검은 슬랙스. 평범하나 옷걸이가 남달라서 주변마저 확 사는 듯하다.
평하자면 굉장히 눈에 띈다는 얘기다. 조승우가 두리번거리면서 차 문을 열었다.
“얼른 타세요. 안에 마스크랑 다 챙겨왔으니까 얼굴 가리시고요.”
“마스크요?”
“인기인이시잖습니까.”
봉고차 안에는 각종 액세서리가 마련돼 있었다. 특색 없는 마스크와 모자에 선글라스. 연예인의 단골 아이템이다.
‘기분 이상하네.’
확인만 해두고 좌석에 앉아 폰을 만지작댔다. 카톡엔 속 보이는 안부 인사가 가득했다. 잘 지냈냐. 나 기억하냐. 옛적에 희미해진 이름뿐이다.
전부 차단했다. 다음으론 한강에게 차세정의 부탁을 전해두고, 다른 메시지를 살폈다.
- 선우 씨 진짜 미쳤어요?
박아연이 한창 방송 중에 보낸 메시지다. 읽었을 뿐인데 음성재생마저 되는 기분.
인터넷에 나도는 자신의 사진을 한 장 첨부해서 ‘잘 찍혔죠?’하고 답장했다.
한 시간가량이 지나 청일에 도착했다.
조승우와 함께 로비를 넘자 유선우에게 시선이 쏠렸지만 과하지는 않았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착용한 덕분이었다.
“변장 좀 했다고 못 알아보나?”
“그건 아닙니다. 제가 옆에 있으니 둔한 사람이 아니면 다 알아보겠죠. 이 시점에 꽁꽁 싸매고 찾아올 사람이 유선우 씨 외에 누가 있겠어요.”
“그럼… 아. 의사 표현은 된다는 얘기네요.”
“눈치 빠르시네요.”
정체야 뻔하더라도 변장 자체가 귀찮게 굴지 말라는 의사 표현이다. 머리가 어느 정도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섣불리 다가오지는 않을 터다.
덕분에 유선우는 나름대로 쾌적하게 최상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제야 그는 답답한 액세서리를 벗어던졌다.
“유선우 씨 맞으시죠?”
“아, 네.”
“실물이 더 나으시네요.”
안내역을 이어받은 비서가 유선우를 대표실로 이끌었다.
대표실은 호화롭기보단 깔끔한 방이었다. 좋게 말하면 여백의 미. 나쁘게 말하면 공간의 낭비. 가볍게 둘러본 유선우가 감상을 내뱉었다.
“의외네요. 뭐 잔뜩 있을 줄 알았는데.”
“차분한 걸 좋아하는 편입니다. 간밤엔 잘 주무셨는지.”
“대표님보다는요.”
김정수의 눈 밑에 드리워진 기미가 짙다. 죽도록 피곤한지 웃음소리마저 어둡다.
“전 안 잤습니다. 일단 앉으시죠.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