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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47화 (47/179)

제 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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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우는 보스방을 약탈하고도 만족하지 않았다.

뽕을 뽑으려고 던전 곳곳의 무덤까지 파헤친 것.

천벌 받아 마땅할 짓이었지만 유선우에게도 변명할 말은 있었다.

‘물건은 산 사람이 써야지.’

무덤에 보물을 넣어봐야 먼지만 먹을 뿐이다.

그는 보스방에서부터 입구로 역행하면서 모든 보상을 탈탈 털어냈다.

정리해보니 보석만 마흔 개에 달했다.

때깔 좋은 무구도 자그마치 14개.

고급스러운 항아리도 있었기에 페이밍의 뼛가루를 담았다.

‘납골당에 넣어줄게, 인마.’

던전 내로 차량을 들이고는 좌석에 보석을 꽉꽉 채워 넣었다. 트렁크에 넣어둔 몬스터 사체를 빼내면 공간이 남겠지만 버리긴 아까웠다.

파티원들은 졸지에 머슴이 됐다. 이마에 흐른 땀을 닦은 강창민은 문득 고풍스러운 창 하나에 시선을 사로잡혔다.

“혹시 이거 하나만 가져가도 돼요?”

“그러든가.”

흔쾌한 대답에 강창민이 눈을 크게 떴다. 말하면서도 실수했다 싶었는데 의외의 반응이었다.

“아니다, 이것도 가져가.”

웬일로 유선우가 보석까지 두어 개 내밀어줬다. 감동한 강창민은 평생 형으로 모시겠다며 속으로 다짐했다.

“형, 제가 진짜….”

“목숨값으론 싼 편이지. 안 그래?”

“죄송합니다.”

강창민은 곧장 창과 보석을 도로 내밀었다. 하지만 유선우는 회수하지 않고 등을 두드려주기만 했다.

“바, 받아도 돼요?”

“하루 이틀 볼 사이도 아닌데 뭘.”

“혀엉….”

“징그러우니까 꺼져.”

그가 달라붙는 강창민을 떼어냈다.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음흉하게 웃었다.

‘조금이라도 세져야 도움이 되지.’

애초에 한둘씩은 안겨줄 생각이었다. 반쯤은 선의지만 반쯤은 계산이다. 딱히 필요 없는 물건을 건네주고, 빚을 안기는 것.

이 정도면 남는 장사다.

‘먹튀하면 족치면 돼.’

강창민의 얼굴이야 널리 알려져 있다. 수소문하면 전국 팔도에 도망칠 곳은 없으리라.

한강 또한 넙죽 받아 들었다.

반면에 최현석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됐어. 필요한 건 벌써 받았고.”

“응?”

“아니야. 하여튼 나도 돈 많다.”

괜한 소리는 아니었다.

최현석의 목적은 진작에 달성된 상태였다.

방송을 통해 유선우는 이미 S급 헌터로 여겨지고 있다. 단숨에 협회장의 위치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셈. 그런 인물과 두터운 친분이 있다는 것을 널리 알렸다.

‘이 상황에 CHC가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지.’

가치 있는 사람의 곁에 있다는 것.

사회적으로 이만한 무기를 찾기도 힘들다.

최현석은 이번 일을 통해 재기할 기회를 얻었다.

자리가 정리된 후.

유선우는 전리품들을 바라보며 고민에 잠겼다.

‘이걸 어쩐대.’

문제는 다름 아닌 운반이다. 어떻게든 쑤셔 넣기는 했다만 차는 고물이 다 돼버렸다. 그냥 타도 탈탈거리는 터라 회사로 가져가기도 힘들 터.

‘어쩔 수 없네.’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결국 폰을 꺼냈다.

확인해보니 카톡이 쉴 새 없이 날아들고 있었다.

‘날파리 엄청 꼬이네.’

얼굴도 가물가물한 동창에 이름만 아는 친척.

심지어는 중학교 시절 담임까지 있다. 아마 귀환 후 연락했던 동창들이 번호를 퍼뜨렸겠지.

유선우는 확인조차 않고 이름을 검색했다.

찾아서 보이스톡을 걸으니 곧바로 통화가 이어졌다.

- …절 잊어먹진 않으셨나 봅니다.

요즘 자주 듣는 김정수의 목소리. 그동안 10년은 늙었는지 음성이 무겁기 그지없다.

“당연하죠. 많이 섭섭하셨나 봐요.”

미안하긴 했던 유선우가 머쓱하게 웃었다.

돌아온 것은 또 한 번의 한숨이었다.

- 뭐가 필요하십니까?

“왜 그러세요. 제가 뭐 필요할 때만 부르는 것 같잖아요.”

- 정말로 그냥 전화하셨다고요?

“아니, 뭐. 그건 아니고요. 겸사겸사.”

말하면서도 본인이 쓰레기같이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박아연보다도 편리한 도구처럼 생각하는 감이 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더니. 앞으로는 자제해야 할 듯싶다.

지금은 어쩔 수 없지만.

“짐차 한 대만 부탁드릴게요.”

- 그 정도야 괜찮습니다.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

김정수의 질문에 유선우가 먼 곳을 바라봤다.

몬스터들이 한창 싸우고 있을 오아시스 방향을.

잠깐 거리를 가늠해보곤 담담하게 대답했다.

“준비하는 데 얼마나 걸려요?”

- 예?

“맞춰서 갈게요. 몇 분?”

- …20분쯤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길게 잡아서 20분이죠?”

유선우는 자신의 복부를 쓰다듬었다.

“15분 안에 부탁드릴게요. 슬슬 배고파서.”

전화를 끊고는 모래를 한 움큼 쥐었다. 던전은 무너졌으나 스며 있는 사기는 여전하다.

몬스터들이 알아서 피해갈 환경. 셋을 두고 가도 안전은 보장될 터다.

멍하니 있는 셋에게 말했다.

“후딱 깨고 올게. 앞으로 쭉 가면 되지?”

“네. 근데 어떻게 돌아가려고요? 귀환 게이트는 하나만 나오는데.”

“데려와서 죽이면 되잖아. 혹시 모르니까 두 마리 잡아 올게.”

“와, 천재시네. 방송은 더 안 해요?”

깨고 온다. 뜬금없었지만 강창민은 헛소리로 치부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유선우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어 있었다.

“분량 많이 뽑았어. 돌아가서 국밥이나 먹자.”

“국밥 좋죠.”

시원시원한 대답에 유선우가 실실 웃었다. 그가 발을 구르자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달라졌다.

오아시스로 달려가는 등을 바라보며 강창민이 입을 헤 벌렸다.

“승차감 오져.”

평생 이렇게 버스를 타 본 적이 없다. 그는 멍청하게 서 있다가 최현석을 불렀다.

“형. 폰 좀 빌려주세요.”

“응? 뭐 하려고.”

“스톱워치 재 보게요.”

최현석이 피식거리면서 폰을 건네줬다. 그 역시 제법 흥미가 있었다.

스톱워치를 켜놓고 잡담을 나눴다.

그러기를 10분이 조금 넘은 시점.

웬 고깃덩이를 든 유선우가 바람처럼 돌아왔다.

“…이거 살아 있는 거 맞아?”

데려온 몬스터를 보자마자 최현석이 질겁했다.

이곳저곳이 토막 난 송장들. 한 놈은 그나마 늑대의 형체가 남아 있었다.

반면에 다른 놈은 비행종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 꿈틀거리는 꼴이 꺼림칙했다.

유선우는 아무렇지 않게 두 놈을 터뜨렸다.

[클리어 조건 달성]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만년설의 수호자가 기립박수를 칩니다.]

[어둠에 숨어드는 자가 분통을 터뜨립니다.]

[귀환 게이트가 열립니다.]

‘색욕, 걔가 없네.’

의외였지만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쌍수 들고 환영할 일.

마음의 짐을 덜어낸 기분으로 말했다.

“돌아가자.”

***

“유선우 씨 맞으십니까!”

“현재 교육생이라고 들었네. 혹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면….”

“가져오신 재료가 있으시면 매입하고 싶습니다. 여기 제 명함….”

유선우는 귀환하자마자 쌍욕을 뱉을 뻔했다. 오십 가량의 인원이 몰려들었기 때문. 많다고는 할 수 없으나 거리가 너무도 가까웠다.

‘카메라가 없네. 기자는 아닌 것 같은데.’

전부 멋들어진 정장을 입고 있다. 거르고 거른 인물들이라는 얘긴데, 어째 죄다 철이 없다.

“헬릭스에서 왔습니다! 얘기 좀 들어주십시오!”

“비켜! 어디 허접한 클랜에서…! 유선우 씨!”

자기 이름을 부르는 외침은 짜증이 나기 마련.

소란에 유선우의 표정은 시시각각 구겨졌다.

반면, 차량을 끌고 온 최현석은 눈을 의심했다.

‘클랜장만 몇 명이야.’

잘 나가는 중소 클랜의 대표. 협회의 고위 간부. 심지어는 대형 클랜의 대표도 하나 끼어 있다.

헌터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알 법한 인물들. 이곳을 테러라도 할 시에는 국내에 비상이 걸릴 것은 명백했다.

‘CHC에선 안 나왔네.’

비벼봤자 씨알도 안 먹힐 것을 알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자존심 때문일지도.

최현석은 클랜장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차 잘 썼다.’

싱겁게 웃고는 유선우를 쳐다봤다.

뺨이 움찔거리는 게,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는 유선우의 어깨를 두드려주곤 자리를 정리했다.

“죄송한데, 길 좀 비켜주시죠. 저희가 많이 피곤해서.”

“유선우 씨! 저희 회장님께서 보고 싶어 하십니다.”

“드라마 찍으세요? 얘네 클랜에다가 연락하시고, 오늘은 이만 물러나 주세요. 저희 지금 던전 나왔습니다. 잘 아시는 분들이 왜 그러십니까?”

무례한 말투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유선우에게 맡겼다가는 앞날이 훤하다.

‘내가 무슨 매니저도 아니고.’

CHC에서 붙여준 매니저 형은 잘 지내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뒤에서 강창민이 말했다.

“오우야. 웬 연예인도 왔나 본데요.”

“뭐?”

“저기 봐요. 저 누나.”

강창민이 손가락을 뻗어 한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빼어난 미모의 여성이 서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과는 딴판으로 분위기부터가 차분했다.

하지만 최현석은 조금 다른 이유로 당황했다.

“차세정?”

유선우 또한 묘한 낌새를 눈치챘다. 이내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멀찍이 떨어진 거리였지만 차세정은 줄곧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쟤가 왜 여기 있어?”

“너 보러 왔겠지. 가봐.”

“마중 불러뒀는데.”

“내가 정리할게. 쟤 좀 거북해서.”

떫은 목소리에 유선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 보니 이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었다.

“그래, 뭐. 차 도착하면 따라가 줘.”

“어디로?”

“청일 본사.”

“겸사겸사 대표님도 봬야겠네. 처리는 어쩌게?”

최현석이 저거, 하면서 걸레짝이 된 벤츠를 지목했다. 차 안에 든 돈뭉치를 뜻하는 것이었다.

“대표님한테 맡기려고.”

“저걸 다? 그래도 돼?”

“비전문가가 직접 팔아봤자 호구밖에 더 잡히나. 이런 건 인맥 쓰는 게 맞아.”

수수료도 좀 챙겨주면 서로 기분도 좋아진다.

시간은 시간대로 절약하니 말 그대로 윈윈.

유선우는 애초에 발품을 팔 생각이 없었다.

“아니, 먹튀라도 하면 어쩌게.”

“그럴 리가 있나. 간땡이가 붓지 않고서야.”

“아.”

“그래도 보험은 들어놔야겠네.”

차량으로 이동한 유선우가 전리품의 사진을 하나하나 촬영했다. 자신의 얼굴이 나오도록 영상을 찍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과정을 마쳤을 때는 짐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인파에 길이 턱턱 막혔으나 잠시뿐. 유선우가 고함을 질러 사람들을 치워냈다.

다음으론 차에서 내린 남자의 신원을 철저하게 알아내고. 김정수에게 화상 통화를 걸어 확인절차를 거치고. 차 번호판을 찍고 전화번호도 교환했다.

편집증적으로 보이긴 해도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 돈은 자기가 지켜야 하는 법이니까.

혹시 몰라 다른 세 명도 차에 태우고 나서야 환하게 미소지었다.

“형, 국밥 먹자면서요!”

“배달시켜 먹어. 아, 맞다. 번호 줘봐.”

강창민과도 번호를 교환한 뒤에 말했다.

“이번 주는 쉬고. 월요일부터 회사 나와.”

“엥, 회사요? 귀찮은데.”

“훈련 봐줄게.”

“충성충성!”

쉰에 달하는 인파는 어느덧 병풍 신세가 되었다.

게이트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짐차까지 떠나자 일행 중에는 유선우만이 남았다.

줄을 대기에는 이상적인 구도. 식었던 분위기가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헥터에서 나왔습니다!”

“지원이 필요하시면….”

“됐고요.”

유선우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그는 좌중을 한차례 둘러보고는 씨익 웃었다.

“명함이나 하나씩 주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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