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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님 뭐하세요-46화 (46/179)

제 46화

던전 방송

‘히든 던전이라니.’

공략과 관계가 없으니 안내해주지 않은 건지, 아니면 관리자도 몰랐던 건지. 후자라고 생각하니 괜스레 한숨이 나왔다.

정보를 살피는 와중에도 무너진 천장이 떨어져 내렸다. 먼지가 자욱하게 깔린 탓에 시야가 극도로 협소했다.

“콜록, 어우, 콜록!”

“오빠! 괜찮아요!?”

“저도 내려갈까요?”

위에서 걱정 어린 음성이 들려왔다. 둘뿐이다.

최현석이 조용해서 의아해하던 차에 바로 옆에서 기침 소리가 흘렀다.

“아오, 이것 좀 치워줘!”

“뭐야. 안 튀었네.”

“이제 와서 튀기는 무슨. 하여튼 도와줘.”

잔해에 다리를 깔린 최현석이 우는 소리를 냈다.

유선우가 다가가려는 순간, 먼지 속에서 붉은 안광이 흔들렸다. 섬뜩한 시선이 쏘아지고 덜그럭대는 소리가 낮게 깔렸다.

“мојот…….”

“뭐?”

“мојот роман е ебам.”

기괴한 목소리와 생소한 언어.

인상을 구긴 유선우가 짧은 기합을 내질렀다.

후우웅!

돌풍이 몰아치자 최현석이 질끈 눈을 감았다.

나부끼는 머리카락이 가라앉은 뒤에 다시 눈을 떠보니, 먼지가 전부 걷혀 있었다.

“진작부터 할 것이지….”

질렸다는 목소리에도 유선우는 대꾸하지 않았다.

단지 앞을 응시할 뿐. 시야가 선명해져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꽤 넓네.’

벽은 햇빛을 받아 광택을 띠었다.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으나 어둠을 밝혀줄 정도는 되었다.

‘무덤보단 무슨 알현실 같은데.’

아무래도 던전의 심장부로 들어온 듯했다. 입구부터 뚫었으면 귀찮았을 텐데, 무리하게 문을 부순 것이 정답이었다.

부서진 천장의 파편 사이로 조형물이 보였다.

검정 일색으로 이루어진 철의 의자.

의자엔 사기(邪氣)를 두른 해골이 앉아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해골의 입이 달싹거렸다.

“……熟悉的头发颜色.”

“응?”

어딘가 익숙한 발음이다.

유선우는 던전 정보를 재차 확인했다.

메시지는 희미해져 있었지만 알아볼 정도는 되었다.

클리어 목표에 적힌 이름. 구원자 페이밍.

독특한 언어 체계이지만 생소하지는 않다.

적어도 지구에서는.

생각이 미치자 유선우의 낯이 삽시간에 굳었다.

그러나 태평하게 떠들 여유는 없었다.

어떤 결론을 내렸건 그는 침입자였다.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 페이밍이 손을 뻗었다. 뼈를 둘러싼 사기가 넘실거린다. 철의 의자가 찌그러지더니 검의 형태로 압축되기 시작했다.

전투의 신호. 혀를 찬 유선우가 땅을 박찼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얼음의 창이 쥐어져 있었다.

부웅!

채찍처럼 휘어진 창이 페이밍의 상체를 노렸다.

찌르기보다 동작은 크고 리치는 짧다. 첫수로는 바람직하지 않으나 상대는 해골. 찌르기는 썩 유효한 수단이 아니다.

휘몰아치는 한기가 유선우의 창을 뒤따랐다.

그새 완성된 칠흑의 검이 궤도를 틀어막았다.

한기는 페이밍의 사기와 뱀처럼 뒤얽혔다.

카앙!

창과 검이 격돌하자 얼음 파편이 흩뿌려졌다. 얼음은 새파랗게 빛나면서도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반면에 검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양 소리 높여 울어댈 뿐이었다.

‘템빨 봐라.’

유선우의 뺨이 움찔거렸다. 싸우는 건 좋다.

좋은데, 이곳에서 무리하게 싸울 수는 없었다.

‘내 돈!’

실내 곳곳에 큼지막한 보석이 눈에 띄었다.

얼핏 보기에도 열 개가 족히 넘는 숫자.

보석들은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저게 다 돈이다.

침입자가 손대중해야만 하는 상황.

아이러니한 구도에도 유선우는 짙게 미소지었다.

금이 간 창을 복구하며 허공을 내려그었다. 공기가 비틀리고 수십의 검기가 날을 세웠다.

“후우.”

창을 낮게 잡은 유선우가 창끝을 흔들었다. 검기가 페이밍의 전신을 휘감았다.

“се шири.”

페이밍이 중얼거렸다. 말뜻은 알 수 없었으나 의도는 확실했다. 말에 반응하듯 검기가 연기처럼 흩어졌다.

‘언령 비슷한 건가.’

자주 겪어본 현상이다. 특히 고위 종족과의 전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기술. 페이밍의 골격은 인간으로만 보이지만, 어쨌든 충분한 강자라는 증거다.

유선우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흥분으로 몸이 달아올랐다.

유선우에게는 수많은 이름이 있었다.

어느 때는 신창(神槍)으로, 어느 때는 악귀로 불렸다. 이름은 달랐으나 이유는 같았다. 항상 선봉에 서서 적을 도륙했기 때문에.

유선우는 전장에 홀린 사람이었다. 귀환이라는 확고한 목표는 있었을지라도, 그것만으로는 몇 년이나 피를 뒤집어쓰며 살아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강창민을 속으로 비난했던 유선우 역시 같은 과에 속하는 인종이었다. 싸움을 즐기고 강자를 숭상하는 인종.

페이밍은 경의를 바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의 정체가 유선우의 짐작대로라면 더더욱.

둘의 시선이 교차했다.

정적 속에서 휘둘러진 창이 실선을 그린다. 거리는 멀었으나 둘에게 거리는 별 의미가 없었다. 검이 선을 잘라내는 순간, 유선우가 달려들었다.

창격이 휘몰아친다. 언뜻 보면 무차별적인 공격이었지만 노리는 부위가 전부 달랐다.

오른팔부터 정강이, 머리부터 왼발까지. 취약점을 탐색하기 위함이었다.

페이밍의 방어는 흐르는 냇물과도 같았다.

낭비 없는 효율적인 움직임. 펼쳐낸 검막이 공격을 완벽하게 파훼했다.

유선우는 무기가 부딪칠 때마다 창을 복구했다. 끈질기게 덮쳐오는 사기를 한기로 몰아냈다. 페이밍의 뼈와 유선우의 옷에 서리가 앉았다.

불리한 조건에도 맹공은 끊이질 않았다. 역량의 우위가 명백하게 드러났다.

페이밍이 물러나려 했으나 유선우는 틈을 주지 않았다. 추격하면서 공중에 창을 만들어냈다.

순수한 마나로 이루어진 창. 창날이 공중을 누비며 페이밍을 둘러쌌다.

“се шири.”

페이밍이 말했다. 하지만 언령은 통하지 않았다. 언령은 마력에 작용할 뿐이지, 관리자의 힘인 마나에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그는 다시 입을 열기도 전에 아홉 자루의 창에 노출되었다.

유선우의 어검술은 다채로웠다.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움직임을 선보였다. 마치 여럿의 창수(槍手)가 한자리에 있는 듯했다.

교묘함에 페이밍이 웃음을 흘렸다. 생기 없는 음성에는 열의가 스며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둘은 즐거움을 나누었다.

흑검이 기괴하게 부풀어 올랐다. 검이 창의 숫자에 맞게 분열되었다. 칼날이 회전하며 여덟의 창격을 맞받아쳤다.

아홉 번째의 공격은 유선우의 손으로 행해졌다. 그가 두개골을 겨누고 팔을 뻗었다.

유선우는 내심 명중을 확신했다.

전투의 템포를 뭉개듯이 재빨랐을뿐더러, 지금까지와는 다른 변초였기 때문이다. 고집스럽게 선만을 그리던 창이 처음으로 점을 찍었다.

웃었다는 건 티끌만큼이라도 지성이 있다는 뜻. 찰나의 동요가 생길 수밖에 없으니, 페이밍이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어긋났다.

두개골 대신에 얼음이 조각났다.

역량의 오인이 아니었다. 흑검이 제멋대로 방패로 변하더니 기어코 주인을 지켜냈다.

‘개사기잖아.’

유선우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번에는 그가 동요를 보였고, 페이밍이 공세를 잡았다.

“пирс.”

천 갈래로 날을 세운 사기가 덮쳐들었다. 삐뚤빼뚤하게 자른 장막과 흡사한 모양새. 동시에 일자로 눕힌 검을 찔러온다.

유선우는 상체를 틀어 회피하고 마력을 뿜어냈다. 허공을 난도질하는 이미지. 검기의 해일이 장막을 찢어발겼다.

검기가 뼈를 휘감기 직전, 페이밍이 입을 벌렸다.

“се шири.”

페이밍은 마나에 대해서는 무지했으나 마력과의 차이점은 눈에 드러났다. 유선우가 내뿜은 검기는 분명히 마력에 속하는 것. 언령으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아오, 진짜!”

이쯤 되니 유선우도 슬슬 이골이 났다. 머리채를 잡아서라도 이기는 건 올바른 자세다. 옳긴 한데, 실력 차는 확실하게 나고 있지 않나.

전투의 재미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순수한 실력으로 과금러를 때려잡는 기분이라고 할지.

쾅, 쾅!

일격에 담긴 힘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화를 내는 유선우를 보면서 최현석이 식겁했다.

혹시 자신을 잊어먹었을까 봐. 휘말려서 죽는 것만큼은 사양이었다.

“야, 적당히……!”

말을 끝맺기도 전에 유선우가 발을 굴렀다.

그는 보석을 몇 개 부숴버리는 출혈을 감수하기로 했다.

폭발적으로 분출된 마나가 무덤을 가득 채웠다. 페이밍의 뼈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그리고,

쿠웅!

지면에서 빙산을 떼어낸 듯한 기둥이 솟구쳤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곧바로 다음 타자가 밑에서부터 얼음을 부수면서 자리를 대체했다.

굉음이 이어지는 와중, 유선우는 이리저리 부딪혀서 날아다니는 새까만 형태를 포착했다. 페이밍의 몸을 감싼 고치. 보자마자 열불이 터졌다.

“어떻게, 이래도, 안 부서져, 대체!”

리듬을 맞추며 발을 구른다. 마나가 바닥을 보일 때가 되어서야 다리가 멈췄다.

“추, 추워…….”

아직도 깔려 있던 최현석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행히도 그가 개죽음을 당하는 일은 없었다.

캉!

곧 무언가가 바닥으로 낙하했다. 여기저기 흠집이 난 고치가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숨을 고른 유선우가 성큼성큼 다가갔다. 발걸음에 망설임은 없었지만 경계는 풀지 않았다.

뚫어지라 바라보기를 한참.

고치가 열리며 내부에서 사기가 뿜어졌다.

“에라이…!”

유선우는 목덜미를 잡으려다가 그만뒀다. 고치의 안에서 반쯤 부서진 두개골이 굴러왔다. 안쪽을 살펴보니 그 외의 부위는 죄다 으스러져 있었다.

‘좀 오바했나.’

머쓱함에 볼을 긁적거렸다.

그때 잔해에서 꺼림칙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被诅咒的神的使者….”

“뭐요?”

다시 들어봐도 억양이 중국어였다. 그러나 언어의 틀만 알 뿐이라 이해할 수는 없었다.

“请把我的骨头埋在这里.”

“아니, 뭐라는 거야.”

“终于和战友一起睡了…….”

그것으로 끝이었다.

핏빛 안광이 꺼지고 사기가 흩어졌다.

유선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을 고민했다.

뜻은 모르더라도 비슷한 경우라면 몇 번 있었다.

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고향에다 뼈를 뿌려 달라는 말이었겠지. 중국에 갈 일은 없겠지만 지구에 뿌려줄 수는 있다.

이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구원자 페이밍 처치 완료]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을 수령하세요.]

보상이라는 말에 유선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추가 보상이라도 따로 챙겨주나 싶어서.

두리번거리자 주변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의미 모를 현상에 고개를 기울이기를 잠시.

그가 주먹을 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아오, 양아치….’

전리품을 보상이랍시고 준다는 소리였다.

스스로 쟁취한 것에 보상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못마땅하게 혀를 찬 유선우가 고개를 저어 잡념을 비워냈다.

‘일단 털자.’

페이밍의 뼛가루를 지키는 고치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싸울 때는 개 같았어도 상관없다. 드디어 쓸 만한 무기가 손에 들어왔다.

몸을 굽히려 하자 최현석이 외쳤다.

“아니, 도와달라고!”

“아, 미안.”

유선우가 손을 휘저어 잔해더미를 들어 올렸다.

귀물에 눈이 멀었을 뿐이지, 최현석을 잊고 있던 것은 아니다. 싸울 때도 휘말리지 않게 신경 써서 싸웠고.

그제야 구출된 최현석이 몸을 가눴다.

“내가 뭐 하러 여기까지 왔대. 이제 어쩔 거야?”

“잠깐만.”

유선우는 페이밍의 유품에 손을 가져갔다. 손가락이 닿자 고치가 검의 형태로 되돌아갔다. 미친 듯이 들썩거리는 게 반항이라도 하는 모양.

칼자루를 잡고 상냥하게 말했다.

“깝칠 때마다 고블린 뒷구멍에 박아버린다.”

우웅!

오히려 반발이 거세졌다. 성격이 생각보다 도도한 듯하다. 유선우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득했다.

“박고 한 바퀴, 두 바퀴씩 돌리는 거야. 네 예쁜 몸에 똥이 덕지덕지 묻겠지. 피 냄새는 몰라도 똥 냄새는 잘 안 지워질걸.”

검의 기세가 약간 죽었다. 보아하니 말을 알아듣는 낌새다. 한국어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마음이라도 읽든가 하겠지.

“네가 어떻게 변하든 똑같아. 몽둥이로 변하면 변기 뚫는 데 쓸 거고, 네모나게 변하면 뭐. 빨래판으로 쓰지. 동그랗게 변하면 볼링공으로 딱이겠네.”

쾅!

유선우가 칼로 바닥을 후려치고 히죽거렸다.

“잘하자. 응?”

검이 잘게 떨더니 멋들어진 창으로 변했다. 벌써 굴복했을 리는 없으니 틈틈이 시비를 걸어올 터. 시간을 들여서 교육해주면 되는 일이다.

유선우가 만족스럽게 웃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반쯤 일어나자 머리가 무언가에 부딪혔다.

“응?”

고개를 들어보니 스마트폰이 떠다니고 있었다. 방금 모습을 전부 촬영한 걸까.

“하하.”

유선우는 메마른 웃음을 흘리고 폰을 잡았다. 채팅창이 키읔으로 시끌시끌했다.

- 혐성쉒ㅋㅋㅋㅋㅋㅋ

- 앗, 아앗... 나도 매도해줘

- 강이도 맞을 때 됐다ㄹㅇㅋㅋㅋ

폭풍같이 후원이 몰아친다. 유선우는 더 빨아먹으려다가 말고 방송을 종료했다.

‘까까나 사먹어라.’

그깟 푼돈, 페이밍의 집에는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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