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화
던전 방송
“몰랐어요?”
“허.”
사실 431-9 차원에서도 다를 바는 없었다. 어디서나 몬스터 사체는 돈이 된다.
다만 유선우가 몰랐을 뿐. 그는 산더미 같은 금화를 지원받고, 국보급 무구로 떡칠했었기에 루팅 따위를 해본 적이 없었다.
“창민아, 혹시….”
강창민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선수를 쳤다.
“10퍼센트.”
“뭐?”
“10퍼센트 떼달라고요. 창값 안 물을 테니까.”
“이 양아치 샊….”
“그럼 혼자 하시든가.”
유들유들한 태도에 유선우는 뒤늦게 알아차렸다.
‘이러려고 말 꺼냈구나.’
올라오는 짜증을 꾹 눌러 참았다. 여태까지 험하게 굴렸을뿐더러 도움도 많이 받아왔다. 무기를 못 쓰게 만든 것도 미안하고.
한숨을 내쉬고 오른손을 활짝 펼쳤다.
“5퍼센트.”
“플러스 늑대 이빨 두 개.”
“그 정도야 뭐.”
“잡놈 말고 까만 놈으로다가요. 여기 오는 도중에 잡았던 걔. 제가 직접 챙기러 갈게요.”
유선우는 퇴짜 놓으려다 말고 차분히 고민했다. 주기엔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만 뽑으러 가기는 솔직히 귀찮았다.
“딜.”
“딜.”
거래가 성사되자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정확하게 얼마를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다만 강창민의 반응으로 보건대 억 소리는 나오지 않을까.
‘하기야 한국 최초 A급 던전이라는데. 전리품 정도는 받아가야지.’
뜻밖의 행운이다. 희희낙락해진 유선우가 속으로 외쳤다.
‘꽃길만 걷자!’
둘은 옷도 입지 않은 채 작업에 착수했다. 입어봤자 금세 다시 더러워질 터였다.
늑대의 송곳니와 와이번의 발톱.
오우거의 힘줄에 트롤의 피.
별의별 재료를 다 뽑아냈다.
시간은 의외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쓸 만한 재료만 뽑았고, 무엇보다 온전한 시체가 많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트렁크에 대충 쑤셔 넣고는 다시 몸을 씻었다. 그러고 나서야 최현석이 준비해온 여분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최현석은 애초부터 던전 탐방 기간을 길게 잡고 있었다. 초코바 따위의 식량에 거울까지 가져왔는데 옷 서너 벌 정도야 당연했다.
준비를 마친 유선우가 뒷좌석으로 들어가자 최현석이 말했다.
“지금 반응 보고 있거든? 진짜 미쳤다.”
“어떤데?”
“실검 1위부터 싹 다 먹었어. 해외에선 던전 내 인터넷 가지고 뜨겁고. 나도 솔직히 궁금한데. 말해줄 생각 없어?”
“음….”
유선우는 개인적으론 말해도 상관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방법 자체를 아는 건 아니고, 이해시키려면 관리자에 관해서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전부 설명할까 싶던 참에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만년설의 수호자가 재고를 요청합니다.]
[해당 사항은 혼란을 불러올 우려가 있습니다.]
‘하긴, 당연한가.’
431-9 차원에서, 관리자는 유일신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지구는 환경부터 다르다. 관리자의 정보가 알려지면 난리가 나겠지.
“다음에 따로 말하자. 근데 해외라니, 직접 알아봤어?”
“나는 아니고, 강이가 그러더라. 직접 들어가서 확인했대.”
유선우의 눈이 화등잔만치 커졌다.
한강과 외국어. 개뿔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한강이 들고 있는 폰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화면에는 웬 영어가 잔뜩 쓰여 있었다.
“이게 다 뭔 소리야?”
“음….”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영어로 된 글을 요약했다.
“한국 사람 방송 봤냐, 영화 같다, 능관부에서 접촉해야 한다, 던전 내 변화에 대해서 한국 정부에 발표를 요청해야 한다. 이 정도예요.”
“능관부?”
“능력자 관리부요. 미국 헌터 기관이에요.”
“아, 응.”
유선우는 보고 들으면서도 반신반의했다.
만난 지 2주도 안 된 사이라지만 나름대로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한강의 이런 모습, 굉장히 어색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살짝 어이가 없었다.
‘지 폰은 죽어도 안 쓰네.’
휴식하는 사이에 강창민이 늑대 이빨을 뽑아서 돌아왔다. 인원이 전부 모이자 최현석이 물었다.
“방송 켜?”
“응. 창민아, 다음은?”
“시간 좀 걸릴 거예요. 저기 언덕 넘으면 돼요.”
“어딜 봐도 언덕밖에 없는데. 그냥 운전대 잡아.”
“저 운전할 줄 모르는데요? 면허도 없고.”
“보기 드문 애네. 돈 벌어서 차도 안 샀어?”
유선우의 말에 강창민이 어깨를 으쓱였다.
“차는 샀죠. 운전기사 따로 고용했어요.”
“…진짜 보기 드문 애네?”
“됐으니까 지도나 줘봐.”
최현석이 지도를 받아 면밀하게 살폈다.
몬스터들의 부락, 대칭점에 위치한 오아시스.
뚫어지라 살펴보다가, 점차 눈이 가늘어진다.
“중앙이 아예 비었네.”
“가다가 포기했죠. 뭐가 있어 보이긴 하는데, 자살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뭔 소리야? 줘봐.”
“여기.”
유선우가 지도를 건네받았다.
정 가운데를 중심 삼아 마주 보는 오아시스.
부락들은 중앙을 원형으로 감싸듯 분포되어 있었다.
“수상쩍네. 장난쳐? 처음부터 말했어야지!”
“가까운 데로 알려달라고 그랬으면서. 그리고 던전 공략이랑은 별 상관없을 거예요.”
“그건 그렇지.”
남아 있는 정예 몬스터 수는 정확히 열일곱.
직접 처리한 숫자만 해도 벌써 열 마리고, 한 놈은 다른 장소에서 멋대로 죽었다.
오아시스 근처만 순회해도 클리어는 할 수 있다.
‘근데 내가 던전이나 깨러 온 게 아니지.’
이름을 알리러 왔다. 뽕을 뽑으러 왔다.
공략만이 목적이었다면 홀로 게이트를 넘었겠지.
그는 냄새를 맡았다. 노다지의 냄새를.
경험상 이런 곳에는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 확률이 높다.
행운은 쟁취하는 것. 찾아오기만 기다려서는 일생에 몇 번 잡기도 힘들다.
“일자로 쭉 가자. 빠꾸 없이.”
유선우의 눈이 탐욕으로 번뜩거렸다.
***
벤츠는 먼지를 흩날리며 모래 위를 달렸다.
이동하면서 근처의 부락을 소탕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덕분에 사막의 한가운데에 가까워졌을 때, 남은 정예 몬스터는 13마리뿐이었다.
8마리만 잡으면 클리어인 시점.
오아시스까지 쭉 달리면 숫자가 딱 맞아떨어질 터였다.
C급 던전 토벌에도 이틀은 걸리기 마련인데 클리어 타임이 5시간도 나오지 않게 생겼다.
‘나도 현실감 안 드는데 시청자는 어떨까.’
최현석은 새삼스레 어이가 없어 싱겁게 웃었다. 이제는 웬만한 일로는 놀라기도 힘들지 않을까. 정작 유선우는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호들갑 떨기도 우습고.
“선우야, 뭐 보냐?”
“헌갤.”
“뭐?”
“헌터 갤러리.”
유선우는 커뮤니티 사이트를 훑어보고 있었다.
화력은 전에 없이 대단했다. 새로고침을 누를 때마다 페이지가 넘어가서, 댓글을 달린 글을 찾기도 힘들었다.
반쯤은 감탄과 질문, 또 반쯤은 드립이었다.
그는 글을 확인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 제목이 죄다 비슷비슷해서.
- ??? : 운전해라 “최 현 석”
- ??? : 창민아! 시킨 대로 말 잘했지!?
- 유읍읍이 S급 못 찍는 이유.fact
- 일주일 뒤 ??? : 미국 간다 씹새드라^^7
‘내가 미국을 왜 가?’
당최 알 수가 없다.
글을 둘러보니 합성 사진도 꽤 많았다.
밥 먹고 드립만 생각하는지 재밌는 글도 수두룩해서 심심풀이로는 충분했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습격이 뜸해졌다.
보이지 않는 경계라도 지나온 듯했다.
방송이 지루해질 무렵, 유선우는 이변을 눈치챘다.
“뭐야. 언제부터 이랬어?”
“뭐가?”
“모래 봐. 매가리 없어졌잖아.”
그 말에 한강이 숨을 삼켰다. 언제부터인지 모래가 발하는 빛이 희미해져 있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 듯한 변화라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진짜네요. 그리고 좀 추운 것 같, 에취!”
“담요 줄까?”
“휴지도 주세요.”
최현석이 담요와 휴지를 뒷좌석으로 넘겨주자 한강이 크흥, 하고 코를 풀어댔다.
한강을 쳐다보던 유선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니 갑갑함이 느껴졌다.
기시감이 들어 마력을 실처럼 뽑아 흘려봤다. 그러자 파란 실이 한 방향으로 빨려가기 시작했다.
‘맞네.’
주변의 마력을 빨아들이는 무언가가 있다.
다행히도 컨디션이 크게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저 약간 불편할 뿐. 집에서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기분이라고 할지.
곧 넓은 평지가 나타났다.
땅 위에 널려 있는 건물의 잔해.
아득한 세월이 지나면서 풍화된 폐허였다.
“……인조물 아닌가?”
최현석의 중얼거림에 유선우가 생각에 잠겼다.
‘내가 모르는 게 많네.’
던전에 대한 정보가 희박했다.
이곳에 국한된 얘기가 아닌, 던전 자체에 대해.
여태껏 던전에서 인간을 만났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아인종도 마찬가지다.
게이트로 연결된 차원과 431-9 차원의 결정적인 차이점이었다.
‘이건 다음에 관리자한테 묻기로 하고.’
폐허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공기가 쌀쌀해졌다.
어둠마저 내려앉아 주변이 을씨년스러웠다.
눈에 띄는 변화에 한강이 몸을 잘게 떨었다.
“돌아가면 안 돼요…?”
“응. 안 돼.”
유선우는 위기감을 눈곱만치도 느끼지 못했다.
위기감은커녕 흥분될 따름. 좋다고 카메라를 들이미는 강창민보다도 더 들떠 있었다.
‘오길 잘했어.’
고대 문명을 연상시키는 폐허.
털어서 쪽박을 친 적이 없는 필드다.
‘뼈까지 빨아 먹어야지.’
게임과 달리 드롭률에 기댈 필요도 없다. 보스의 집을 탈탈 털더라도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슬슬 내리자.”
“벌써?”
“벌써는 무슨. 다 왔구만.”
공기 중의 마력을 야금야금 먹는 존재.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다시 마력을 뽑아내자 파란 실이 아래로 흡수되었다.
벤츠에서 내린 유선우가 열 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가만히 멈춰 서서 턱을 매만졌다.
‘어떻게 하면 되나.’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베일을 걷어낼 방법이 문제다. 전에는 동료 마법사에게 부탁하거나 아티팩트를 사용했었던가. 현재로선 어느 쪽이든 불가능하다.
뒤따라 차에서 내린 최현석이 물었다.
“뭐해?”
“그 뭐냐, 문을 열어야 하는데 방법을 모르겠네.”
“갑자기 웬 문?”
“열어야 열리겠죠?”
한강이 뇌를 거치지 않고 말했다.
강창민은 피식거리며 비웃었으나 의외로 유선우는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잠깐 비켜봐.”
셋이 물러나자 유선우가 발을 높게 들어 올렸다.
입구를 찾을 필요도, 쓰지도 못하는 마법에 매달릴 필요도 없다. 걷어차면 열리겠지.
쿵!
땅을 내리치자 지축이 흔들렸다.
먼지가 흩날렸으나 구덩이는 파이지 않았다.
쿵!
횟수를 거듭할수록 굉음이 커져갔다. 단번에 무너뜨릴 수는 있어도 힘 조절이 중요한 법. 자칫하다간 지반이 주저앉을 우려가 있다.
여덟 번째로 발을 굴렀을 때.
바닥이 난데없이 푹 꺼졌다.
눈치 빠른 강창민은 멀찌감치 달아나 있었고, 그의 도움을 받은 한강도 범위에서 벗어났다.
유선우는 떨어지면서도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애초에 이게 목적이었다. 깊이가 상당한지 체공 시간이 어지간히 길었다.
바닥에 착지하자 눈앞이 빼곡하게 채워졌다.
[히든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잊혀진 전사의 무덤]
- 던전 난이도 : S- Rank
- 클리어 목표 : 구원자 페이밍 처치
- 클리어 조건 : 던전 내 보스 처치